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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상 시간이 되니 은은한 성가가 들린다. 누워서 잔잔한 성가를 듣는 것도 기분이 좋다. 오늘은 일찍 일어났는데도 아침 산책을 하지 못했다. 7시부터 아침을 먹는다. 식당에 가 보니 빵과 비스켓, 잼, 버터, 커피, 우유, 사과 등 풍성한 식탁이 차려져 있다. 아침을 맛있게 먹고 출발한다.

오늘은 프로미스타까지 25.5Km를 걸을 계획이다. 길을 나서는데 안개가 자욱하다. 어제 이 마을에 들어올 때 꽃길을 걸었는데, 이 마을을 떠날 때도 꽃길을 걷는다. 아침 이슬에 젖은 꽃들이 싱그럽다. 아침 일찍부터 셔터를 눌러댄다. 작은 개천을 넘어 언덕을 오르기 시작한다. 언덕에 오르니 천국같은 마을 카스트로헤리스 마을이 한눈에 보인다.

언덕 위에는 젊은이가 빵과 과일, 초코렛 등을 팔고 있다. 다시 끝없는 밀밭길이 이어진다. 가끔씩 길가에는 양귀비와 라벤다 등 꽃들이 우리를 반가이 맞아 준다.
카스트로헤리스 마을을 벗어나면서 만난 양귀비 ⓒ 이홍로
언덕길을 오르다가 바라본 카스트로헤리스마을 ⓒ 이홍로
언덕을 올라서니 또 다른 세상이 펼쳐졌다. ⓒ 이홍로
양귀비와 라벤다 ⓒ 이홍로
밀밭길과 꽃길을 번갈아 걷고 있는데 하늘에는 구름이 둥실 떠 있고, 그 구름은 밀밭에 온갖 그림을 그린다. 끝없는 지평선을 걷지만 그 길이 전혀 지루하지 않다. 한참을 걷다 보니 길가에 알베르게가 보인다. 알베르게 옆 숲속에서 잠시 쉬면서 간식을 먹었다. 마을을 벗어나는 곳에 피수에르가 강이 나오고 아름다운 이테로 다리를 건너 간다.

밀밭길을 걷고 있는데 앞에 수염을 덥수룩하게 기른 순례객이 개와 함께 다가온다. "올라" 서로 인사를 나누며 지나간다. 카미노 순례길은 성 야고보가 걸은 산티아고로 가는 길이어서 반대로 걷는 순례객은 거의 없다. 그런데 이 분은 순례객인지 여행객인지 잘 모르겠다.

순례길을 걸을 때 자전거 순례자들도 자주 만난다. 끝없는 초원을 마음껏 달리는 자전거 순례자들을 보면 부럽다. 몇 년 전 낡은 자전거를 버린 후 집에 자전거가 없다. 이번에 돌아 가면 자전거를 사야 되겠다.

얼마를 걷다보니 마을이 나오고 슈퍼도 있어 점심을 준비하고 시원한 그늘에 앉아 점심을 먹었다.
밀밭 옆의 알베르게 ⓒ 이홍로
자전거 순례자와 걷는 순례자들이 자연과 어우러져 그림이 되었다. ⓒ 이홍로
양귀비와 파란하늘 ⓒ 이홍로
프로미스타의 운하 수문 ⓒ 이홍로
프로미스타 성당 ⓒ 이홍로
밀밭길을 한동안 걷다 보니 운하가 나온다. 운하를 따라 걷는 길은 나무가 있어 걷기에 좋다. 우리 뒤에는 일본인 젊은이가 걷는다. 서로 앞서거니 뒷서거니 걷는데 만날 때마다 인사를 한다. 순례길에서 일본인이나 중국인은 만나기 힘들다. 이 순례길을 기독교인들이 많이 걷는데, 일본이나 중국은 기독교 인구가 적기 때문인 것 같다.

운하를 따라 1시간 정도 걸으니 멀리 프로미스타 마을이 보인다.  마을 입구에 어떤 아저씨가 작은 광고물을 나누어 준다. 알베르게와 음식을 소개하는 광고물이다.

마을 입구에 운하의 수문이 있는데 아름답게 설계된 수문이 볼 만하다. 마을에 들어서면서 우리는 알베르게를 먼저 찾았다. 도착하는 순서대로 침대를 배정받기 때문에 일찍 도착할수록 좋은 침대를 배정받을 수 있다. 우리 침대 바로 옆에는 일본인 청년과 중년 일본인이 있다. 처음에는 부자간인 줄 알았는데 후에 알고 보니 순례길에서 만났다고 한다.

우린 샤워를 하고 빨래까지 마친 후 마을 산책을 나섰다. 먼저 바에 가서 시원한 맥주를 한 잔 마신다. 옆에는 우리와 계속 같이 걷고 있는 미국인 부녀, 브라질 아저씨, 일본인 청년과 아저씨도 보인다. 모두들 힘든 길을 걸으며 만났다가 헤어지고 다시 만나기 때문에 만나면 매우 반갑게 인사를 한다.

순례자 메뉴로 저녁을 먹고 마트에 들러 내일 아침과 점심을 준비하여 숙소로 들어갔다.

열다섯번째날 새벽 산책을 하다

어제 일찍 잠들었기 때문인지 새벽 5시에 일어났다. 카메라를 들고 마을 산책을 나섰다.  숙소 바로 앞 성당에 조명이 있어 낮에 보는 것과는 다른 분위기이다. 너무 이른 시간이어서 하늘이 너무 짙게 나온다. 큰 도로로 나와 왼쪽으로 조금 걸으면 또 다른 성당이 나온다. 성당의 모습은 전혀 다르다. 순례길을 걸으며 아침 산책을 즐기는데 아무도 없는 마을을 혼자 걷는 것은 새로운 경험이고 여유가 있어 좋다.

아침 공기가 차다. 새벽 6시 알베르게에 들어가 다시 침대에 누웠다. 아침 7시 배낭을 챙겨 정원 의자에 앉아 빵과 요구르트로 아침을 먹고 출발한다. 오늘은 카리온 데 로스 콘데스까지 20Km를 걸을 계획이다. 오늘은 낮 12시 경 목적지에 도착할 수 있을 것 같다.

1시간 정도 걸으니 포플라시온 데 캄포스 마을이다. 여기에 순례자 동상이 있고 의자가 있어 순례자들이 쉬었다가 걷는다. 이 곳에서 갈림길이 나온다. 도로를 따라 곧장 걷는 길이 있고, 오른쪽으로 가면 강을 따라 걷는 길이다. 물론 좀 더 돌아 가는 길이다. 우리는 곧장 가는 길을 택했다.
새벽 프로미스타 성당 ⓒ 이홍로
프로미스타의 또 다른 성당 ⓒ 이홍로
포블라시온 데 캄포스의 순례자 동상 ⓒ 이홍로
순례길 옆에 있는 호스텔 ⓒ 이홍로
하늘은 금세 비라도 내릴 듯 먹구름이 밀밭을 덮기도 하고 파란 하늘이 나오길 반복한다. 한참을 걷다 보니 길 옆 호스텔에서 간식을 팔고 있다. 넓은 잔디밭에 순례객들이 커피와 빵을 먹기도 하고 물을 마시며 쉬기도 한다. 방목하는 닭들이 다가와 빵 부스러기를 먹기도 한다.

다시 1시간 정도 걸으니 비알카사르 데 시르가 마을이 보인다. 오른쪽 마을에 성당이 아름답게 보이고 햇살이 마을과 성당만 비춘다. 어느 화가가 그린 그림 같다.

몇 년 전 스페인도 경제적 위기를 겪으며 외국인이 30평 아파트를 구입하면 거주권을 준다는 기사를 본 적이 있다. 산티아고 순례길에 공장 지역이 없어서인지 스페인은 2, 3차 산업 보다 1차 산업이 우선인 것처럼 생각되었다. 이 풍요로운 땅이 오히려 3차 산업, 정보화 산업 발전에 방해가 되지는 않는지 모르겠다. 스페인은 꽤 큰 도시에도 TV 안테나가 집집마다 있다. 한국은 TV 안테나가 없어진 지 오래 되었는데. IPTV 덕분이다.
도로 옆길로 이어진 순례길 ⓒ 이홍로
트렉터를 몰고 나오는 농부 ⓒ 이홍로
카리온 데 로스콘데스의 순례자 동상 ⓒ 이홍로
카리온 데 로스콘데스 광장 ⓒ 이홍로
커리온 데 로스콘데스 마을 풍경 ⓒ 이홍로
삼겹살을 구워 먹으니 힘이 났다

낮 12시 20분, 목적지 카리온 데 로스 콘데스에 도착했다. 먹구름이 몰려 오고 비가 내리더니 잠시 후 다시 하늘이 맑게 개인다. 입구의 알베르게를 찾았는데 바와 같이 있어 소란할 것 같고 숙박비도 22유로이다. 우린 성당에서 운영하는 알베르게로 갔다. 여기서 부산에서 오신 부부를 다시 만났다. 아저씨는 지금도 한쪽 다리를 절고 있다. 부엌에 가보니 취사 시설이 잘 되어 있다. 이번에는 확실하게 확인하고 마트에 가서 쌀과 삼겹살, 상추, 양파, 마늘, 감자, 와인 등을 구입하였다. 

스페인에서 삼겹살은 600g에 6유로 정도 한다. 한국의 반값 정도이다. 이 곳 사람들에게는 삼겹살이 인기없는 부위라고 한다. 오랜만에 삼겹살을 구워 먹으니 힘이 난다. 옆에 일본인이 혼자서 빵과 요구르트를 먹고 있다. 어제 알베르게에서 만났던 일본인이다. 인사를 나누고 같이 와인을 한 잔하며 이야길 나눈다. 나이는 64세 우리와 동갑이다. 식품 회사에 다니다가 정년 퇴직을 하고 카미노를 걷는다고 한다. 요코하마 주소를 적어준다. 기회가 되면 찾아 오라고 한다.
알베르게에 수녀들이 찾아와 같이 노래를 부르다. ⓒ 이홍로
수녀들과 함께 노래를 부르는 순례자들 ⓒ 이홍로
성당에서 미사를 드린 후 순례자들을 축복하는 신부 ⓒ 이홍로
신부가 순례자들을 축복해 주는 동안 성가를 부르는 수녀 ⓒ 이홍로
천사들의 찬양 같았던 수녀님들의 노래

늦은 점심 겸 저녁을 먹고 샤워를 한 후 식당에 내려와 일기를 쓴다. 밖에는 비가 내린다. 스페인의 날씨는 하루에도 몇번씩 비가 내렸다가 개이기를 반복한다. 그래서 저수지가 거의 없어도 밀과 포도가 잘 되는 것 같다. 마을 산책을 나섰다. 오래된 성당의 작은 골목길, 몇 백년된 낡은 건물과 현대식 건물이 어우러진 거리가 정겹다. 토성은 거의 무너져 있고 옛 영화를 알려주는 표지판이 역사를 일깨워 준다. 반팔을 입고 산책을 하다가 추워서 숙소로 돌아왔다.

오후 6시부터 순례자 미팅 시간이다. 모든 순례자들이 로비와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에 앉았다. 수녀들이 부를 노래를 복사하여 모두에게 나누어 준다. 많은 사람들이 아는 재즈, 성가곡 등이다. 노래 중간 중간 축복의 말을 전한다. 의미는 잘 모르지만 은혜로운 시간이다. 순례자들은 돌아가며 각자 어느나라에서 왔고 왜 카미노를 걷는지 간단히 이야기한다.

기타를 치면서 노래를 하는데 그 목소리가 정말 맑고 아름답다. 수녀님들끼리 하모니가 얼마나 잘 어울리는지 천사들의 찬양과 같았다. 내가 찬양하는 모습이 너무 아름다워 촬영을 했더니 앞에 있는 미국인이 촬영을 하지 말라고 손짓을 한다. 찬양에 방해가 되는 것 같아 미안했다.

많이 알려진 노래는 모든 순례자들이 합창을 하는데 무척 즐거운 시간이었다. 오후 8시부터는 성당에서 순례자들을 위한 미사가 있다.  나는 개신교 신자이지만 미사에 참석했다. 엄숙하게 미사가 진행되고, 미사가 끝난 뒤 원하는 사람들에게 신부님이 축복을 해주었다. 축복을 해주는 동안 수녀님 둘이서 아름다운 찬양을 한다. 찬양도 아름답지만 찬양을 하는 수녀님의 모습이 더 은혜롭다. 오늘 다른 알베르게에 묵지 않고 성당에서 운영하는 알베르게에 묵게 된 것을 감사한다.
태그:#산티아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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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에 취미가 있는데 주변의 아름다운 이야기나 산행기록 등을 기사화 하여 많은 사람들에게 즐거움을 주고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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