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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3의 수시 전형 원서 접수가 얼마 남지 않았다. 불볕더위에도 고등학교 교무실은 여름 내내 수시 원서 상담을 위한 학부모, 학생, 교사의 만남으로 붐빈다. 담임이 아닌 교사들은 여름 방학 내내 학생부에 뭘 기록해야 하나를 두고 머리를 싸맨다. 학생부 전형의 확대가 가져온 학교의 변화의 이면을 살펴보자는 의미에서 적어 본다. - 기자 말

대입 수시 전형에서 비중이 점점 커져가는 학생부 전형, 그 중에서도 학생부 종합 전형(이른 바 '학종')에 대한 찬반 논란이 거세다. 찬성하는 쪽에서는 단순한 성적이 아니라 학교별, 개인별 특성을 반영할 수 있어서 지방 학생이나 소외 학교에도 대학 진학의 기회를 더 줄 수 있다는 점, 대입 자료로 활용되는 생활기록부 기록 내용의 변화가 교사의 수업 방법뿐 아니라 학생의 수업 참여 양상까지 바꾸어서 결과적으로 학교 교육의 질적인 변화를 가져올 수 있다는 것을 이유로 댄다.

반대하는 쪽에서는 어차피 학생부 종합 전형이 특목고와 자율형사립고 등 일부 특권학교에 유리한 전형이 될 수밖에 없으며, 학생부에 기재될 내용을 관리해 줄 수 있는 부모를 가진 상류층 학생들을 위한 전형으로 전락할 것이며, 학교 수업 내용과 방법의 변화보다는 기록의 테크닉만 바뀌어 생활기록부의 신뢰성이 오히려 낮아졌다는 주장을 하고 있다.

세상의 거의 모든 제도에는 장점과 단점이 있듯이 수시전형, 특히 학생부 전형에도 보이는 장점과 드러나지 않은 단점이 있다. 부모의 사회경제적 배경이 수시 또는 정시 중 어디에 더 영향을 미치는지에 대한 관측도 서로 다르다. 비슷한 여건, 심지어 같은 학교에 있는 교사와 학부모들도 이 전형의 확대에 대한 정 반대의 입장을 보이기도 한다는 것이 이를 증명한다.

학생부 전형 확대를 주장하는 사람들의 근거는 이를 통한 수업 변화이다. 교육학에서 말하는 'positive washback effect'(backwach effect), 우리 말로는 역류 효과, 환류 효과, 세환 효과, 송환 효과 등으로 부르는 것이 학생부 전형을 통해 나타나고 있다는 것이다. 교사가 학생에게 실현하고자 한 목표가 수업을 통하여 얼마나 달성되었는가를 확인하기 위한 것이 평가(test, evaluation)인데, 거꾸로 그 평가가 교사의 수업과 학생의 교육(내용 뿐 아니라 과정, 방법까지 포함)에 영향을 미치는 현상을 이르는 교육학 용어가 '역류 효과'이다.

일부에선 학생부 전형의 확대를 통해 교사의 수업 방법이 변하고, 학생의 수업 참여가 활발해져서 학교 교육이 정상화 되고 있다는 주장을 제기한다. 교사의 수업 방법이 문제 풀이에서 과정 중심으로 바뀌고, 수동적인 학생들의 수업 참여가 적극적인 것으로 바뀐다는 것이다. 분명히 그런 교사, 그런 수업, 그런 학교가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이 주장은 몇 가지 질문으로 쉽게 반박할 수 있다. '그 변화가 학생부 전형을 통해서만 이룰 수 있는 것인가?' '변한 것처럼 보이는 결과, 즉 학생부 기재 내용은 과연 신뢰할만한가?' '경제학의 P.P.R(Price-Performance ratio, 가성비)가 얼마나 될까? 등이 그것이다.

너무나도 막강한 수능시험의 역류 효과

우리 나라의 대입 제도는 역류 효과가 대단히 크다. 대입 제도가 바뀌면 그에 맞춰 고등학교 수업은 완전히 바뀌고, 심지어 중학교에까지 영향을 미친다. 현재의 수능을 보자. 고3, 빠르면 고2부터 거의 모든 교사들이 수능 문제풀이를 한다. 그것도 EBS 교재로 통일해서.

중3, 또는 고1 예비 학생을 위한 수능 대비 교재라는 것들까지 버젓이 서점에 나와 있다. 수능 문제풀이 외의 방식으로, EBS 교재가 아닌 교과서로 수업을 하면 학생들이, 학부모가 학교와 교사에게 항의를 하는 웃지못할 사태가 교실에서 벌어진다. 사교육으로 확장하면 역류효과는 더 세다. 중학생이 수능 대비 학원을 다니고, 초등학생 과외까지도 수능 기초 어쩌고 하는 판이고, 사교육 학습지는 따로 말할 필요가 없을 지경이다.

너무나도 막강한 수능시험의 역류 효과(그것도 대체로 부정적인 역류 효과)는 그대로 온존한 상태에서 과연 학생부 전형은 긍정적인 역류 효과를 학교 교실에 가져왔을까? 이전에도 이번 학생부 전형과 거의 똑같은 목적을 이루기위해 도입된 것들이 있다. 바로 수행 평가와 서술-논술형 평가의 도입과 확대다.

교육 당국은 어떻게 평가할지 모르겠지만, 적어도 고등학교에서 수행평가와 서술-논술형 평가의 확대 실시는 의도한 결과를 가져오지 못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적어도 고등학교에서는 '사실상 실패'했다'. 교사의 평가권을 침해하고 있다는 논란뿐 아니라, 교사들의 평가 업무만 가중시켰다는 비난까지 받는 지경이다.

학생부 전형 확대는 이런 실패를 극복할 수 있을까? 학생부 전형의 도입 확대가 긍정적인 변화를 가져왔다는 사례 보고가 있다. 그런데 이런 변화가 학생부 전형의 확대에 의해서 이루어진 것이라고 일반화시킬 수 있을까? 그렇게 보이는 것, 즉, '착시 효과'는 아닌지 따져볼 일이다. 학생부 전형의 확대로 인한 교실 수업의 긍정적인 변화가 보고되는 만큼 학생부 전형의 근거가 되는 학생부의 신뢰도에 심각한 의문이 제기되는 경우도 비일비재하기 때문이다. 직접 경험한 몇 가지 사례를 보자.

S대 사범대에 수시 전형으로 1차 합격한 한 학생이 면접을 앞두고 걱정 어린 얼굴로 교무실로 들어온다.

"선생님, 저 사실은 생활기록부 독서기록란에 적은 책 안 읽었어요. 면접관이 물어보면 어떡하죠? 차라리 안 읽었다고 하는 게 나을까요? 그 책 관련 질문이 나오면 솔직히 안 읽었다고 하는 것이 읽은 척 하다가 걸리는 것보다 낫지 않을까요?"

"그게 그렇게 마음에 걸리면 안 읽었다고 하지 말고, 오늘부터라도 밤새워서 그 책을 읽는 것이 낫지 않을까? 그 책 안 물어보고 다른 거 물어봐서 네가 대답 잘 못하면 그건 너의 업보니 어쩔 수 없고..."

또 다른 사례. 지방의 어느 도시 공립학교 고3 학부모는 엄청 화가 났다. 생활기록부 때문에 담임 교사에게, 학교에 단단히 화가 났다. 그 학교에서는 공부를 잘 하는 학생들은 교사의 수업을 듣지 않는단다. 예체능 시간은 말할 것도 없고, 수능과목 수업 시간에도 교사의 수업이 아니라 따로 자리를 잡아서 유명 학원 강사나 EBS 강사들이 하는 인터넷 강의를 듣고 있단다.

그게 어떻게 가능하냐고 물으니 그 학생들은 학교에서 특별히 관리하는 학생들인데, 생활기록부는 교사들이 이미 그 학생들이 진학하고자 하는 과에 맞추어 써주기로 되어 있어서 따로 신경 쓸 필요가 없단다. 그 학생들은 수능 준비만 하면 되는데, 그 수능 준비를 (지방 중소도시의 선생님들 수업이 아니라) 유명 인터넷 강의를 통하여 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 학부모의 이야기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수는 없지만, 수업시간에 버젓이 인터넷 강의 듣고 있는 학생의 수시 전형을 위한 생활기록부에 "수업 시간에 교사의 수업에 충실하지 않고 따로 인터넷 강의를 들었음"이라고 기록되지 않았음은 분명할 것이다.

학생을 별도 모집하는 고등학교들(주로 특목고나 자사고)이 중학생과 학부모들을 대상으로 하는 홍보 중 하나가 "맞춤형 생활기록부 관리"이다. 지방의 어느 자율형사립고는 대놓고 상위 30등 이내의 학생은 학교에서 1학년 때부터 생활기록부를 1:1 특별관리 해준다고 광고한다.

대학 진학을 위하여 따로 관리하는 생활기록부, 그 생활기록부가 과연 얼마나 진실할지 심각하게 고민하지 않을 수 없다. 우리 나라 고3 학생들의 생활기록부만 보면 "모든 학생이 성인 군자, 전지전능"이라는 비아냥이 나오는 이유이기도 하다. 생활기록부가 대입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상황에서 학생의 부정적인 면을 있는 그대로 기록할 수 있는 교사는 거의 없다.

학생부 전형 확대가 가져왔다는 변화의 이면

대학 입시 제도가 고등학교 이하 교육 과정에 절대적 영향을 미치는 우리 현실에서 수시 전형의 확대, 그 중에서도 학생부 전형의 확대는 많은 변화를 가져왔다. 어떤 변화가 일어났는지 살펴보면서 질문을 던져보자. "그 변화를 좋게만 볼 수 있는가? 과연 그 변화가 교육적인가?"

물론 이 사례를 모든 학교, 모든 교사에게 일반화시킬 수 없다. 그러나 이와 비슷한 경험이나 고민 한번 안 해본 교사는 거의 없을 것이다. 학생부 전형이 도입되고 가장 눈에 띄는 변화는 학교마다 각종 경시대회와 무슨 무슨 학교장상이 우후죽순처럼 생겨났다는 것이다. 과거 수학이나 글짓기 같이 몇 개만 있었던 학교장상이 학생부 전형의 근거 자료가 되는 생활기록부에 유일하게 기록될 수 있는 상이라는 이유로 거의 모든 과목에 생겼다.

국어 과목은 그냥 웅변(말하기) 경시대회나 글짓기 대회 정도가 아니라 독서 경시대회, 시-소설-수필 등 각 장르별 경시대회, 논술 경시대회, 국어 어휘력 경시대회(우리말 경시대회), 자기 소개서 쓰기 경시대회 등이 생겨났고, 영어 과목도 영어 말하기, 영어 에세이 쓰기(작문), 영어 논술, 영어 읽기, 영어 독서 감상문, 영어 어휘력, 영어 토론 등 각종 경시대회로 세분화되었다. 과학 과목은 물리, 화학, 생명과학, 지구과학 경시대회가 별도로 생겼고, 발명 경진대회니 창의력 경시대회니, 인터넷 관련 각종 경시대회까지 생겨났다.

학교별로 적어도 수십 개에 이른다. 물론, 이렇게 경시대회가 생겨난 만큼 학생들의 취미와 관심을 키워줄 수 있다면 나쁘게 볼 수는 없다. 그런데, 정작 몇 명의 학생들을 위한 잔치에 대부분의 학생들은 들러리 신세라는 점이 문제이다.

최대한 수상자를 많이 내야 하는데 수상 인원이 참여자의 20% 이내로 정해져 있기 때문에 편법으로 수상자를 만들어낸다. 상의 이름과 함께 참여 학생수를 기재하도록 되어 있으므로 당연히 참여 학생수가 많은 것이 상의 가치를 높이는 것으로 받아들여진다.

당연히 참여하는 학생수가 많을수록 비례해서 수상자도 많아진다. 최대한 많은 학생을 참여시키기 위한 각종 편법이 동원되는 이유이다. 희망과 상관없이 반강제로 참여하여 이름만 쓰고 백지 답안을 내도록 하거나, 일과후에 희망자를 대상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정규 시간에 모든 학생들을 대상으로 대회를 진행하기도 한다.

경시대회라는 것이 어차피 특정 분야에 특별한 재능을 가진 학생들을 위한 행사이다 보니 대부분의 학생들은 참가 학생수만 채워주는 들러리 신세인 것이다. 경시대회가 생겨날 때마다 "이번에는 또 누구를 밀어주려고 저러는 거지?" 하는 학생들의 웅성거림이 들릴 정도다. 수상 학생들이 대체로 정해져 있어서 특정 학생을 위한 경시대회 급조라는 오해를 사기도 한다.

각종 경시대회뿐 아니라 모범학생상 등 각종 명목으로, 심지어는 월별로 수상하는 상에 이르기까지 각종 학교장상이 생겨났다. 어떤 학생은 수상 기록만으로 생활기록부 몇 페이지를 채울 정도다. 상을 위한 상, 대회를 위한 대회로 인하여 상장의 가치만 떨어뜨렸다는 것이다. 학교바깥의 세상 사람들은 이런 현실을 잘 모른다. 과연 이게 학생부 전형이 가져온 긍정적인, 교육적인 변화 맞나?

한 학생이 동아리 활동 10개? 서류에만 있는 동아리 활동

학생부 전형의 확대와 더불어 가장 많이 변한 학생부 내용 중 하나가 동아리 활동 영역이다. 예전엔 동아리라고 하면 축구반, 미술반, 연극반 등 예체능을 중심으로 비슷한 취미 또는 취향을 가진 학생들의 클럽이었고, 학생부엔 클럽명과 간단한 활동을 적는 정도였다.

그러나 지금의 동아리 활동은 범위가 훨씬 넓어졌다. 일단 정규동아리 외에 자율동아리라는 것이 생겨서, 가입하여 활동하는 동아리가 하나가 아니라 많게는 10개에 이르는 학생이 있다. 한 학생이 적어도 1개의 정규동아리와 많게는 10개나 되는 자율동아리 동시 가입도 가능하다는 의미다.

이렇게 많은 동아리를 가입하여 모든 동아리 활동을 열심히 하고 있을까? 학교마다 다르겠지만, 대부분의 고등학교 동아리 활동은 전에 비하여 훨씬 위축되었다. 일단 1990년대나 2000년대 초반까지 거의 모든 학교에 있던, 동아리 하면 떠오르던 연극반, 문학반, 풍물반과 같은 대표적인 동아리들은 거의 학교에서 사라졌거나 유명무실한 경우가 많다.

동아리 활동을 할 수 있는 시간도 이전보다 훨씬 줄어들었다. 학교 안에서는 방과후에도 보충수업에 자율학습, 학교밖에서의 학원이나 과외 수업 등으로 동아리 멤버들이 함께 모여서 활동할 수 있는 시간을 맞추는 것이 어렵게 되었다.

그런데 왜 동아리 종류나 개수는 이전보다 훨씬 많아졌을까? '생활기록부의 착시'이다. 학생들이 여러 개 동아리에 가입하는 이유는 진로가 확정되지 않아, 혹시나 진로와 연관 될 가능성이 있는 동아리에 우선 가입하고, 없으면 페이퍼로라도 만드는 것이다. 실제 활동은 거의 없는, 페이퍼로만 있는 수많은 동아리들이 존재하는 이유이다.

생활기록부에 동아리 활동을 기록하는 내용을 두고 학년 말에 벌어지는 진풍경이 있다. 바로 동아리 지도 교사가 다른 동아리 지도 교사에게 "기록 좀 지워 달라"고 요청하는 모습이다. 학생이 가입한 동아리가 많기 때문에, 빚어지는 일이다. 학생이 가입한 동아리가 많다보니 모두 기록할 수 없는 것이다. 이에 이미 기록된 내용을 지우기도 하고, 줄여달라고 하다 보면 동아리 지도 교사들 사이에 감정 상하는 일이 생기기도 한다.

'학생들이 동아리 많이 가입해서 열심히 활동하면 취미도 살리고 좋은 거 아니냐'고 할 수 있지만, 그건 희망사항일 뿐이다. 대다수 학생에게 동아리 활동은 끼와 흥을 살리기 위한 것이 아니라 학생부전형으로 대학을 가는데 필요한 '기록',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더 황당한 건 동아리 활동을 하지도 않고 한 것처럼 거짓으로 입력을 하는 경우다. 특히, 고등학교 2학년 2학기 이후 3학년 때는 동아리 활동을 하지 않는 학교가 많다. 그런데도 동아리 활동에 열심히 참가한 것처럼 생활기록부에는 기록되어 있다.

정리하자면, '학생의 동아리 활동이 활성화'된 것이 아니라 '교사의 동아리 활동 기록이 활성화' 되었다고 하는 편이 진실에 가깝다. 슬픈 현실이다. 물론, 일부 그렇지 않은 학교도 있겠지만 대부분의 학교는 그렇다는 거다.

* 2부에서는 독서기록, 봉사활동 등과 생활기록부 전형에 대한 근본적 재검토에 대해 이야기하고자 합니다.


태그:#학생부, #신뢰도, #수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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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교육에 관심이 많고 한국 사회와 민족 문제 등에 대해서도 함께 고민해 보고자 합니다. 글을 읽는 것도 좋아하지만 가끔씩은 세상 사는 이야기, 아이들 이야기를 세상과 나누고 싶어 글도 써 보려고 합니다.

오마이뉴스 기획편집부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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