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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자리가 사라진다. 글로벌 저성장 기조와 기술의 발달은 우리 모두를 일자리 공포로 몰아넣고 있다. 평생직장의 시대는 오래 전 끝났고, 100세시대 누구나 2~3번의 일(業)을 해야 생존한다. 국가도 사회도 답해줄 수 없는 문제, 결국 개인이 스스로 답을 찾아야 한다. 내 일은 내가 만들어가야 하는 시대다. 직장을 다니면서, 또는 홀로서기를 통해 '1인기업'을 운영해온 이들에게서 답을 찾고자 한다. '직장 다닌다고 직업 생기지 않는다'는 사실을 일찍 간파한 '1인기업가'들의 경험담을 통해 해법을 찾아본다. [편집자말]
'고탱의 비디오' 속 한 장면.
 '고탱의 비디오' 속 한 장면.
ⓒ 고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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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창시절 말 잘 듣고 조심스럽던 아이는 늘 무언가에 주눅 들어 있었다. 학업 스트레스, 제도와 규율에 억압돼 자신이 누구인지도 몰랐던 그는 동영상을 만나 억눌렸던 욕구를 분출할 수 있었다. 동영상 속 또 다른 자신의 모습을 통해 세상으로 나아갈 수 있는 자신감을 얻게 됐고, 사람들 속에서 이야기를 만들어나가는 즐거움을 알게 됐다. 페이스북 53만, 유튜브 11만 구독자를 가진 코믹 채널 '고탱의 비디오' 제작자 고태원(29)씨 이야기다.

개그맨 지망생 아니냐고? 말 잘 듣고 주눅 들어있던 아이

한양대서 관광학을 전공하던 고씨는 한국문화를 해외에 알리는 과제를 하던 중 유튜브라는 신세계를 발견했다. 이미 많은 한국인들이 유튜브를 통해 해외에 한국문화를 알리고 있었고 동영상으로 외국인과 소통하고 있었다. 펜팔 외에는 외국 친구를 사귀는 법을 몰랐던 고씨에겐 엄청난 충격이었다. 

유튜브에 푹 빠진 고씨는 그때부터 동영상과 영어공부를 시작했다. 중고 캠코더로 이런저런 영상을 찍어 올리면서 외국 친구들과도 사귀게 됐다. 여행 콘텐츠를 올리며 드문드문 활동하던 중 해외의 재미있는 동영상에 빠져들게 됐고 이때부터 혼자서 코미디 콘텐츠를 만들어 올리기 시작했다.

"어느 날 페이스북에 영상을 올렸더니 갑자기 공유가 확 늘었어요. 이전까지는 친구들의 '좋아요'가 10개 정도에 그쳤는데 하루 만에 '좋아요' 4000개가 된 거죠. 영문도 모른 채 뜨거운 반응에 들떠서 계속 비슷한 영상들을 찍어 올렸어요. 그때는 그걸로 돈을 벌 수도 있겠다는 생각은 전혀 못 했었죠. 취미로 하던 동영상 활동이 직업이 될 거라곤 생각지도 못했어요."

동영상 제작 크루 '웃음코뿔소' 멤버들.
 동영상 제작 크루 '웃음코뿔소' 멤버들.
ⓒ 고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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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튜브 속에 비즈니스 기회가 있겠다는 생각에 고씨는 MCN((Multi Channel Network/다중 채널 네트워크)업계 취업에 도전하게 된다. 2013년 여러 개의 채널을 보유한 대기업 계열사에 인턴으로 합격했고, 2개월간 인턴십을 거쳐 온라인콘텐츠 PD로 최종 합격했다. PD지망생이라면 누구나 입사하고 싶어 하는 기업이지만 고씨는 합격통보를 받고 고민에 고민을 거듭했다. 인턴십을 하는 내내 생각보다 수직적인 조직문화를 온몸으로 느꼈고, 이 문화가 고스란히 콘텐츠에도 영향을 미칠 것 같았기 때문이다.

"사실 그 당시 제가 만든 영상이 하루가 다르게 성장하는 것을 지켜본 경험이 있기 때문에 입사를 놓고 고민이 컸었어요. 때마침 메이크어스 같은 회사들이 생기는 것을 보면서 이 시장은 대기업이 아닌 개인이 다른 공식으로 풀어볼 수 있는 시장이라고 생각했어요. 저도 저만의 공식으로 풀어볼 수 있을 것 같았어요."

대기업 입사 거부하고 1인 크리에이터로 홀로서기

주변에선 회사에 들어가 조직생활을 경험해볼 것을 권했다. 하지만 고씨는 회사라는 조직에 한번 발을 들이면 나오기 힘들다는 사실을 일찍 간파했고 어차피 다른 길을 갈 거라면 하루라도 젊을 때 어려움을 겪는 것이 낫다고 판단했다. 이후 '고탱의 비디오' 채널을 본격 운영하기 시작했다.

하루 1개씩 유튜브와 페이스북에 영상을 꾸준히 올리기 시작했고 3개월만에 구독자가 20만으로 늘었다. 따로 광고영업을 하지 않았음에도 오로지 콘텐츠의 가능성을 본 기업들의 광고제의가 쏟아졌다.

"MCN 소속이 아닌 1인 크리에이터들은 수익모델을 찾는 노하우가 부족합니다. MD상품, 팬미팅, 콘서트 기획 등 많은 시도를 해봤지만 쉽지 않았죠. 하지만 MCN에 들어가서 그들의 룰에 맞춰 광고수익을 내고 콘텐츠만 만드는 사람으로 남는다면 새로운 사업기회를 찾지 못할 수도 있어요. 저는 콘텐츠 제작자들이 스스로 비즈니스의 최하단에서 사업적인 구상도 함께하지 않으면 발전하지 못한다고 생각합니다."

고씨와 4명의 친구들은 구독자 64만명(페이스북 53만, 유튜브 11만)의 '고탱의 비디오' 채널뿐 아니라 '웃음코뿔소'라는 동영상제작 크루를 운영하고 있다. 이들은 채널을 더욱 견고히 하면서 수익확대를 위해 다양한 시도를 하고 있다.

'웃소(wootso)' 대만 생방송 장면.
 '웃소(wootso)' 대만 생방송 장면.
ⓒ 고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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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청자 폭을 더 넓히기 위해 '글로벌향' 채널 운영을 시작한 것도 그 중 하나. 영어권, 대만권, 에스파뇰권 등 3개 채널을 운영 중인 글로벌 '웃소' 채널은 6개월만에 페이스북 구독자 50만을 넘어설 정도로 성장세가 폭발적이다. 특히 대만팬들이 급속 늘고 있어 이달 중 타이베이에서 첫 팬미팅도 계획 중이다.

동영상 콘텐츠 제작 아이디어는 어떻게 얻느냐는 물음에 고씨는 기성세대와 1020세대와의 차이를 언급한다. 기성세대들은 아이디어가 없으면 영상을 찍을 수 없다고 생각하지만 1020세대는 동영상을 하나의 커뮤니케이션으로 생각한다는 것이다.

"기성세대에게 동영상은 엄청난 아이디어와 좋은 퀄리티로 찍어야 한다는 고정관념이 있죠. 1020세대에게 동영상은 간단한 글을 쓰거나 말을 하는 것, 제스처처럼 하나의 수단입니다. 그러니 이들에게 동영상 소재는 도처에 널려 있죠. 아이디어가 고갈되어서 동영상을 못 찍는다는 것은 매우 올드한 생각입니다."

동영상은 커뮤니케이션 수단... 고퀄·엄청난 아이디어 없어도 돼

고씨는 외국과 달리 한국은 개인 크리에이터 문화가 자리잡기도 전에 MCN이 먼저 생겨서 생태계가 다소 부자연스런 측면이 있음을 지적했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 지난 5월부터 매월 개인 크리에이터들의 네트워킹파티인 '웃소콜라보레이션데이'를 개최하고 있다. 첫 행사에는 구독자 5000명~1만 명을 지닌 초등학생들도 참가해 눈길을 끌었다. 소재 선택에 대한 경계가 없는 이들은 졸업식 등 일상을 자신만의 언어로 풀어내 몇만 클릭의 조회수를 기록하기도 한다.

1인기업 3년 차에 들어섰지만 분명 힘들었던 시기도 있었다. 혼자서 콘텐츠 개발과 수익고민도 해야 하는 것은 큰 부담이었다. 


"2015년초쯤 광고도 만들고 콘티도 짜고 동시에 영상을 만들면서 전략도 짜야 해서 머리가 터질 것 같았어요. 그땐 영상 제작이 큰 부담으로 느껴져 하루에 하나씩 만드는 것도 힘들었죠. 콘텐츠는 계속 만들어나가야 발전할 수 있는데 쉬기 시작하면서 채널이 정체되기 시작했어요. 그동안의 고속성장이 마약처럼 중독돼서 욕심이 컸던 것 같아요. 혼자 하는 것이 쉽지만은 않다는 것도 이때 깨달았어요."


고탱 스노우앱 광고
 고탱 스노우앱 광고
ⓒ 고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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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도를 조금씩 늦춰 영상작업도 쉬엄쉬엄하면서 많은 생각을 하게 됐다. 사업적으로 어떻게 꾸려나갈지, 좀 더 발전적인 콘텐츠를 만들기 위해 깊이 고민하다 보니 또 다른 기회도 찾게 됐다. 1인크리에이터 문화가 일찍 자리 잡은 미국 일본 등의 사례를 벤치마킹하기도 했다.

해외사례를 보면서 광고에 소극적이던 고씨의 생각도 달라졌다. 이전에는 콘텐츠 자체가 영업력이라 생각해 콘텐츠에만 집중했었다면 지금은 그 자체만으로 콘텐츠가 될 수 있는 광고를 만들어 파급력을 키워보자는 쪽으로 바뀌었다. 특히 글로벌향 광고를 기획하면서 수익도 크게 늘어나기 시작했다. 고탱의 비디오가 제작한 '한국판 스냅챗' 스노우앱 광고는 서비스 초기 엄청난 다운로드 효과를 가져와 업계에서도 광고효과를 인정받기도 했다.

힘든 정체기를 거쳐 1인 크리에이터 3년 차에 접어든 고씨는 현재 웬만한 대기업 신입사원 연봉보다는 훨씬 높은 수입을 올리고 있다. 그렇다면 자신만의 길을 찾아 나가는 그가 느끼는 일에 대한 만족도는 어느 정도일까?

"결코 이 길이 쉬워서 선택한 것은 아니지만 제 선택을 한 번도 후회한 적 없어요. 직장 다니는 친구들이 저를 보며 '나도 직장 때려치우고 한번 해보고 싶다'고도 하지만 저는 직장들의 많은 룰이 잘 짜여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 룰이 다 틀렸으니까 모두 다 나와 1인기업을 해야 된다는 건 아닙니다. 하지만 저는 새로운 룰을 만들어나갈 수 있고 그에 대한 책임감을 느끼며, 힘들지만 내일이 기대되는 하루하루를 살고 있습니다."

'가슴 떨리는 일, 하고 싶은 일을 찾아 당장 회사를 나오라'는 류의 메시지는 사실 대책 없이 무책임하다. 고씨는 그런 결정이 정말 어렵다는 걸 알기 때문에 함부로 이야기할 수 없다고 말한다. 자신이 그런 결정을 할 수 있었던 것은 타이밍이 좋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동영상 콘텐츠 시장이 '크는 시장'이라는 확신이 있었고 좋은 기류를 탔기 때문이라는 것.

"제 인생에서는 유튜브를 시작한 것 자체가 제일 큰 사건입니다. 혼자서 영상을 만들다 어느 순간 유튜브 구독자 100명이 됐을 때 정말 기뻤거든요. 하고 싶고 꼭 이루고 싶은 일이 있다면 미리 준비하고 있으면 어느 순간 확신이 들 때가 옵니다. 그때는 주저하지 말고 실행해야죠. 그러기 위해선 작은 것이라도 꾸준히 쌓아야 합니다."

지난 6월 2회째 진행한 개인 크리에이터들의 네트워킹파티 '웃소 콜라보레이션데이'.
 지난 6월 2회째 진행한 개인 크리에이터들의 네트워킹파티 '웃소 콜라보레이션데이'.
ⓒ 고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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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1인기업, #유튜브, #콘텐츠 크리에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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