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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첫 산행에 나선 아이에게는 산 속에 있는 모든 것들이 호기심 덩어리다 |
ⓒ 오두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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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일 일요일 새벽 5시.
세 살배기 아들이 눈을 떴다. 두리번두리번 거리는 것도 잠시 "엄마~ 아빠~"를 불러가며 자기랑 놀아달라고 칭얼대기 시작했다. 이럴 땐 최대한 꿈쩍 않고 자는 척 하는 게 상책. 하지만 이런 노력도 곧 이어진 아들의 눈, 코, 입 찌르기와 배 올라타기 공격 앞에서는 속수무책이다.
요즘 아내는 둘째를 임신해 밤새 잠을 제대로 못 잔다. 결국 "오늘만이라도 내가 아들과 놀아야겠구나" 하는 심정으로 아들을 방에서 데리고 나왔다.
하지만 아이는 거실로 나오자 마자 "나가~ 나가~"를 외쳐댄다. 요즘 한창 밖에서 뛰어노는데 재미가 들어서 그런지 하루 종일 "나가~"라는 소리를 입에 달고 산다. 순간 "그동안 하고 싶었지만 하지 못했던 일을 바로 오늘 해야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 아들을 안고 신발을 신긴 뒤 무작정 집을 나섰다.
밖에 나가는 것과 뛰는 것 그리고 차를 타는 것을 좋아하는 아들인지라 차를 타고 이동하는 동안에는 얌전했다. 지나가는 나무들을 보면서 "나무 많아~ 나무 많아~"를 외치는 아들을 보니 절로 미소가 지어진다.
집 근처에는 낮은 산이 있다. 평소 많은 사람들이 운동을 하며 오르락내리락 하는 산인데 성인 걸음으로 왕복 1시간 코스다. 언제 한번 아들과 함께 손 붙잡고 와야지 했는데 그날이 바로 오늘이 될 줄은 생각도 못했다.
눈곱은 둘째 치고 이빨도 못 닦고 까치집 머리까지 한 채로 아들과 등산로로 향했다. 결혼을 한 뒤 아내가 임신을 하고 아이를 낳아 키우는 근 3년간 산에는 가볼 엄두도 못 냈었다.
하지만 오늘 아들과 함께 산행을 한다니 같이 있는 것만으로 설레었다. 비록 세 살 인생에서 첫 산행이지만 아들도 씩씩하게 한발 한발 잘도 걸었다. 조그만 아이가 아장아장 씩씩하게 산을 오르는 모습을 보니 어찌나 뿌듯한지.
산에 오르면서도 나무, 풀, 들꽃이 마냥 신기한지 가던 길을 멈춰 서고 한동안 바라보고 있지를 않나 커다란 나무에 고사리같이 작은 두 손을 대고 "으~~" 하고 미는 모습을 보니 마냥 웃음만 나온다.
그래도 산은 산인지라 나무뿌리에 걸려 넘어지지는 않을까 내리막길에서 뛰다 넘어지는 것은 아닌가 이래저래 마음을 졸이기도 했다.
다행히 세 살 꼬마의 첫 산행은 순조로웠다. 지나가는 아저씨, 아주머니가 귀엽다고 손을 잡을라 치면 "안돼~"라고 외치며 손을 뿌리치다가도 다시 환하게 웃어 주는 모습을 보니 그렇게 좋을 수가 없다. 오래도록 지금의 그 환한 웃음을 잃지 않는 사람으로 성장했으면 하는 마음이 간절하다.
평소보다 오래 걸린 산행이었지만 아들과 함께 하니 발길이 가벼웠다. 아들이 힘들어 하는 것 같으면 목마를 태워 주기도 하고 또 그게 지루한 것 같으면 길 위에 내려줘 같이 걸었다. "언젠가 아들이 성장하면 내 손을 잡고 날 이끌 날이 오겠지" 하는 생각도 해 봤다. 먼 훗날 이야기겠지만 이 순간만큼은 무슨 상상을 해도 즐거웠다.
하산길에는 아들이 힘들어 하는 것 같아 목마를 태웠다. 재잘재잘 끊임없이 떠들던 아이가 조용해졌다. 이상하다 싶어 스마트폰으로 셀카를 찍어봤다. 반쯤 감긴 눈, 몸 중심을 잡지 못해 휘청거리는 모습을 보니 그렇게 귀여울 수가 없다.
결국 남은 하산길 동안에는 아들을 안고 내려 왔다. 둘의 체온으로 온몸이 뜨거웠지만 아들의 심장 소리를 들을 수 있어 참 좋았다. 한참을 내려오니 등산로에 벤치가 있어 잠시 아들을 내려놓았다. 첫 산행이 피곤했는지 잠에 취해 일어날 기미가 보이지 않을 정도였다. 결국 남은 산행도 아들을 안고 내려 왔다.
아이가 크면 첫 산행을 추억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하지만 아빠는 아들과의 첫 산행 추억을 잊을 수 없을 것 같다. 다음에는 꼭 엄마랑 새로 태어날 동생과 다 같이 오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