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는 독창성과 보편성을 모두 고민해야 하는 대중 예술입니다. 다른 작품들과 구분되는 특별한 것을 갖고 있으면서, 투입된 제작비를 회수할 수 있을 정도의 수입을 올릴 수 있어야 합니다. 이것이 말처럼 쉬운 것은 아니어서 감독과 제작자는 아이템 기획 단계부터 개봉 직전까지 노심초사할 수밖에 없습니다. 저예산 영화든 블록버스터든 마찬가지입니다. 흔히 예술 영화라고 불리는 아트하우스 영화들도 영화제와 마켓이 중심이 된 국제적인 유통 채널을 이용하지요.

또한 영화는 각 분야의 전문가들이 모여서 함께 작업한 끝에 만들어낸 집단 창작물이기도 합니다. 감독과 제작자는 자신들의 비전을 현실화하기 위해서 제작비를 모아야 하고, 배우와 기술 스태프들의 도움도 얻어야 합니다. 머릿속에 들어있는 것을 문서로 구체화한 시나리오는, 바로 그런 일들을 진행할 때 베이스캠프 같은 구실을 하지요.

그렇다면 이 영화 <비밀은 없다>는 어떨까요?

색깔은 강한데... 보편성을 놓쳤다

 영화 <비밀의 없다>의 한 장면. 유력 국회의원 후보자의 아내인 연홍(손예진)은 공식 선거운동이 시작된 날 실종된 딸의 행방을 필사적으로 찾아 헤맨다.

영화 <비밀의 없다>의 한 장면. 유력 국회의원 후보자의 아내인 연홍(손예진)은 공식 선거운동이 시작된 날 실종된 딸의 행방을 필사적으로 찾아 헤맨다. ⓒ CJ엔터테인먼트


A급 배우를 캐스팅하여 40억대의 순제작비를 투입한 작품이라는 것을 감안한다면, 그에 걸맞은 보편성이 많이 부족해 보입니다. 또한 감독의 취향이 지나치게 도드라지는 바람에 이야기의 균형이 무너져 있는데, 애초에 시나리오를 통해 공유되었던 것과는 다른 방식으로 감독의 의도가 관철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입니다.

처음 시작은 나쁘지 않습니다. 공식 선거 운동 기간에 돌입한 국회의원 선거 캠프라는 현실 상황을 설정하는 디테일이 매우 좋거든요. 거기에 유력 후보의 아내인 주인공 연홍(손예진)이 실종된 딸을 찾기 위해 노력한다는 이야기의 목표가 더해지면서 비교적 긴장감 있게 초반 설정이 이루어집니다.

문제는 그 이후 연홍이 자기의 주관적 심리 상태에 몰입해서 현실적 균형 감각을 잃기 시작할 때부터 시작됩니다. 처음에 설정된 대로라면 국회의원 선거라는 객관적 현실 상황이 그녀에게 지속적인 방해물로 작용해야 맞습니다. 그러나 이때부터 그녀는 자기가 원하는 진실을 찾아낼 때까지 무작정 돌진하지요. 그녀에게 이렇다 할 장애물은 없어 보입니다. 결국 이야기는 적절한 긴장감을 유지하지 못하고 지루하게 흘러갑니다.

물론 그녀가 파헤친 끝에 알게 되는 사건의 진실을 흥미롭게 여기거나, 감독이 표현한 방식에 공감하며 즐길 수 있다면 나름대로 재미있게 영화를 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제3자의 입장에서 볼 때 일종의 중2병이 낳은 비극이라 할 수 있는 영화 속 사건에 대해 많은 사람들이 공감하기는 힘들 것 같습니다.

다만 감독 특유의 감성과 세계관만큼은 잘 표현돼 있는 편입니다. 비슷비슷하게 못 만든 다른 한국 상업영화들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요. 단편 <잘 돼가? 무엇이든>이나 데뷔작인 <미쓰 홍당무> 때도 그랬지만, 이경미 감독은 확실히 자신만의 비전을 영화로 정확하게 표현해 내는 재능이 있습니다. 자기가 찍는 장면이 어떻게 보여질지 잘 알고 있고, 그런 확신을 바탕으로 뚝심 있게 원하는 화면을 얻어냅니다. 이번 영화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이야기의 균형이 무너진 상태에서 연홍의 폭주를 그렇게까지 뚝심 있게 끌고 간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죠.

감독이 노력했어야 하는 포인트

여기에는 편집이 큰 역할을 했습니다. 빈번한 점프 컷을 통해 끊임없이 집중력을 요구하면서도, 주요 플롯 포인트를 잘 설정해 두었기 때문에 이야기의 흐름이 생기거든요. 그래서 지루하지만, 끝까지 쫓아갈 수는 있습니다. 이 영화의 편집이 일반적인 극영화와 많이 다른 이유는, 편집을 잘못해서가 아니라 필요한 화면들이 애초부터 촬영되지 않았기 때문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유달리 편집 기간이 길었고 그 과정에서 편집기사도 한 번 교체되었다는 상황을 고려한다면 말이죠.

감독은 어쩌면 처음부터 대중적 이해를 바라지 않았을지도 모릅니다. 그러지 않고서야 이런 결과물을 내놓았을 리가 없습니다. 이 영화의 장르적 완성도를 논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아 보입니다. 장르적 외관만 갖추었을 뿐 장르 영화가 주는 쾌감을 목표로 찍은 영화가 아니기 때문이죠.

대신 이런 얘기는 할 수 있을 겁니다. 흥행에 신경 쓰지 않고 감독 자신의 개성을 더 앞세우고 싶다면 그에 맞는 적정한 수준의 제작비를 써서 영화를 만들어야 한다고요. 더 빠듯한 제작 환경에서 영화를 만들고 싶지는 않았던 걸까요. 하지만 자신의 독창성을 희생해서 보편성을 확보하려는 노력은 더 기울여야 했습니다. <비밀은 없다>가 감독의 연출력 말고는 그다지 볼 게 없는 영화가 되고 만 가장 큰 원인은 여기에 있을 겁니다.

 영화 <비밀은 없다>의 포스터. 감독의 연출력은 훌륭했지만, 사실상 그것이 이 영화의 전부였다.

영화 <비밀은 없다>의 포스터. 감독의 연출력은 훌륭했지만, 사실상 그것이 이 영화의 전부였다. ⓒ CJ엔터테인먼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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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권오윤 시민기자의 개인블로그(http://cinekwon.wordpress.com/)에도 함께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비밀은 없다 이경미 손예진 김주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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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와 책에 관심 많은 영화인. 두 아이의 아빠. 주말 핫케익 담당.

2014년 5월 공채 7기로 입사하여 편집부(2014.8), 오마이스타(2015.10), 기동팀(2018.1)을 거쳐 정치부 국회팀(2018.7)에 왔습니다. 정치적으로 공연을 읽고, 문화적으로 사회를 보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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