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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제규는 일반 고등학교에 다닙니다. 날마다 해야 하는 보충수업과 야자, 두 달 반 동안 고민한 제규는 담임선생님을 찾아갔습니다. 정규수업 끝나면 집에 가서 밥을 하고 싶다고요. 고등학교 1학년 봄부터 식구들 저녁밥을 짓는 제규는 지금 2학년입니다. 이 글은 입시공부 바깥에서 삶을 찾아가는 고등학생의 이야기입니다.  -기자 말 
먹어야 했다. 살아가는 사람의 숙명이었다. 아버지 돌아가시고도 우리는 끼니 때마다 밥을 먹었다. ⓒ 배지영
물을 못 넘기고, 밥알을 못 삼킬 것 같았다. 그러나 때가 되면 먹어야 했다. 살아있는 사람의 숙명이었다. (시)아버지를 화장해서 납골묘에 두고 와서도 우리는 곧장 식당으로 갔다. 달게 물을 마시고, 밥을 먹었다. 다시 일상, 아침에 일어나면 밥을 먹고 각자의 학교와 일터로 갔다. 저녁이면 함께 모여서 또 밥을 먹었다.

일주일에 한두 번만 친구를 데려오던 제규는 평일 내내 친구들과 집에 오기도 했다. 자신이 큰고모랑 같이 만든 생채, 거기에 참기름을 넣고서 양푼 비빔밥을 해먹었다. 부대찌개, 매운 닭찜, 두부 김치, 피자, 파스타, 샐러드, 마파두부, 떡볶이, 날치알 김밥 등을 만들었다. 노력하지 않아도 저절로 되는 '완식', 열여덟 살 소년들은 참 많이들 먹었다.
제규 친구들 설거지 하는 대관. 멘츠카츠 만드는 제규와 친구들(이름은 밝히지 말라고 했음). ⓒ 배지영
제규가 저녁밥을 할 때, 나는 늘 밥벌이를 하고 있다. 옆에서 지켜볼 수 없는 처지다. 글을 쓰기 위해서는 스마트폰의 녹음 기능을 켜고 인터뷰 시간을 갖는다. 제규는 음식 재료와 조리 과정을 자세하게 설명한다. 나는 가끔 못 알아들을 때가 있다. 떡갈비 고기는 세 종류로 손질한다고 했을 때도, 감이 안 잡혔다.

"엄마, 갈빗살을 해동시켜 가지고 다 분해한다고요. 뼈랑 살을요. 처음에는 뼈에 고기가 어느 정도 붙게 손질해요. 살은 살대로 따로 하고요. 반절은 완전히 다지고요. 나머지 살은 적당히 다져요. 그러니까 세 가지죠. 뼈와 살, 적당히 자른 살, 다진 살. 뼈는 한 번 더 씻어요. 뼈를 자르는 기계가 더러울 수도 있으니까요."

제규는 손질한 갈빗살에 후추와 소금을 뿌렸다. 간장에 다진 파, 마늘, 매실 액을 넣은 양념장을 만들어서 갈비를 재었다. 처음 할 때는 양파도 다져서 넣었지만 물기가 많이 생겨서 안 넣는다고 했다. 엄마 눈치를 살피지 않고, 마음껏 텔레비전과 스마트폰을 할 수 있는 '불금'. 제규는 다음 날 먹을 떡갈비를 준비하느라 부엌에 있었다.

토요일 오전 5시 40분, 제규는 벌떡 일어났다. 자신이 좋아하는 식당의 떡갈비처럼 만들고 싶었다. 반찬도 비슷하게 차려야지. 그러려면 부추가 있어야 한다. 시장도 마트도 닫힌 시간. 제규는 안방으로 가 봤다. 엄마 아빠와 동생은 무척 곤하게 자고 있었다. 늦잠 자는 게 정상인 10대 소년은 갑자기 잠이 쏟아졌다. 제 방으로 가서 누웠다.

"1시간 정도만 더 자야겠다고 생각했지. 근데 일어나니까 10시 반이었어요. 망한 건 아니에요. 재어둔 갈빗살을 얇게 펴서 오븐에 돌리기만 하면 돼요. 원래 철판으로 구워야 하는데 우리 집은 없잖아요. 식당 흉내를 내고 싶어서 새우하고 애호박도 볶았어요. 아빠가 음식하고 남겨둔 돼지고기가 냉장고에 오래 있는 것 같아서 수육도 했고요."
식당 메뉴 흉내내서 차린 밥상 떡갈비도 5인분도 혼자서 먹는 제규. 스스로 장보고 음식 하면서는 "사 먹는 건 다 비싸"다고 한다. 그래서 직접 떡갈비를 만들었다. 식당의 상차림을 흉내냈다고 한다. ⓒ 배지영
밥상은 제규가 원하는 모양새였다. 그런데 남편이 점심 약속 있다면서 나간단다. "그럴 수도 있죠"라고 말하는 제규 표정에는 실망감이 드러났다. 음하하핫! '현명한 엄마'인 나에게는 '플랜 B'가 있다. 제규가 아이였던 시절에는 '절친'으로 지냈던 사람, 육식은 하지 않지만 돈가스와 떡갈비만은 먹는 내 자매 지현이 있으니까.

나는 지현에게 전화를 했다. 안 받았다. 제부 전화도 신호만 갈 뿐, 받지 않았다. 우리 집과 지현의 집은 걸어가면 3분에서 5분. 뛰어갔다. 문을 두드렸다. 야근하고 와서 잠을 자던 제부가 문을 열어주었다. "처형, 지현이 미용실 갔어요"라고 했다. 나는 제부에게 "우리 집 가서 밥 같이 먹을래요?"라고 물었다. 거절당했다. 제부는 더 자야 했다.

"제규야, 지금 이모네 집 앞이거든. 이모가 핸드폰 두고 미용실 갔대. 미용실에 전화해 봤더니 방금 나갔다고 하고. 엄마가 찾으러 가면, 이모랑 길이 엇갈릴 수 있으니까 여기서 기다릴 거야. 음식, 식어도 괜찮겠어?"
"엄마, 그럼 그냥 와요. 이모는 미용실 갔다가 은행까지 들렀다 올 것 같아요."   

제규는 음식이 식어서 맛없어지는 걸 싫어한다. 나는 뛰었다. 밥상의 음식은 따끈따끈하지 않았다. (집안에서는) 눈치 보는 게 뭔지 전혀 모르는 꽃차남, 솔직한 말과 행동만 하는 '초딩' 1학년은 포문을 열었다. "이거, 맛없을 것 같어"라고. 제규가 "먹지 마!"라고 맞받아친다면, 그 다음 장면은 뻔했다. 식탁은 전쟁터로 돌변할 판이었다.

아슬아슬한 순간, 남편이 왔다. 모임에 가서 얼굴만 비추고 돌아왔다고. 밖에서도 집안을 꿰뚫어볼 줄 아는 그는 식탁에 앉았다. 꽃차남에게 "맛있으면 맛있다고 하는 거야"라고 했다. 그리고는 제규가 만든 떡갈비를 먹었다. 아빠가 먹는 모습을 본 제규는 식당에서 먹는 맛이 안 난다는 자체평가를 했다. "아빠는 맛이 어때요?"라고 물었다.
제규가 만든 떡갈비 금요일 저녁에 실컷 텔레비전 보고 스마트폰 할 수 있는데 떡갈비를 재었다. 식당에서 파는 것처럼 맛있게 되지 않았다고, 제규는 자체평가를 했다. ⓒ 배지영
"제규야, 식당에서 파는 떡갈비처럼 할라면 고기를 많이 두드려야 해. 전분을 써서 접착성도 높이고."
"다 하긴 했어요. 근데도 그 맛이 안 나. 아직은 사 먹는 게 낫겠어요."

제규가 좋아하는 식당의 떡갈비는 1인분에 2만 1000원이다. '육식인' 이니까 혼자서 5인분도 거뜬하게 먹는다. 툭 하면, "우리 떡갈비 먹으러 가요"라고 말했다. 우리 식구는 자주 갔다. 제규가 고등학교 들어가기 전까지만. 스스로 장 보고 음식을 하면서는 달라졌다. 살림 고수 주부들처럼 "사 먹는 건 다 비싸요"라고 한다.   
 
한편, 제규의 예언대로 지현은 미용실에 갔다가 은행에 들러서 집으로 갔다(지현은 어린 제규를 데리고 미용실, 은행, '초록마을'에 다녔다. 단둘이 그 이상을 가 본 적 없다). 제부는 현관 앞에 나와서 지현을 기다리고 있었다. 1년 365일 중에 딱 그 시간만 비웠는데 부재중 전화 19통. 뜻하지 않게 조카와 남편을 애타게 만든 지현은 머쓱했다.

"나 지금 갈게."

밥을 다 먹어 가는데 지현이 보낸 문자가 왔다. 제규는 "으악, 어떻게 해요? 이모 줄 떡갈비 별로 없는데, 뭐라도 해야겠어요"라고 했다. 일어나서는 밥상을 걷고, 새로 접시를 꺼내서 반찬을 따로 담았다. 나는 밥을 덜었다. 그때 지현이 우리 집에 왔다. 제규는 청소년 특유의 웅얼웅얼 말투를 썼다. 해석하자면 다음과 같았다.

"이모, 그릇도 식당이랑 비슷한 느낌 나게 차린 거예요. 부추 무침도 할라고 했는데 못 샀어요. 그렇게 맛있지는 않아요. 근데 다음에는 더 잘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식탁에 앉은 지현은 수저를 들지 않았다. 우량아로 태어나서 청소년기부터 줄곧 다이어트를 해온 그녀는 "입맛 없다"는 말의 실체를 몰랐다. 몇 년 전부터야 "입맛이 쓰다"는 게 괴로운 일이라는 걸 알았다. 그러나 조카가 한 음식은 기쁘게 먹어왔다. 지현은 제규 눈치를 살폈다. 만세! 제규는 친구들이랑 만날 시간이 다 됐다면서 잽싸게 나갔다.

토요일 한낮, 더위에서 기분 나쁜 물기가 감지되었다. 밥 먹었는데도 처졌다. 날씨의 영향을 받지 않는 꽃차남은 쾌활했다. 어디든 나가자면서 블록 통을 꺼내 와서 쏟았다. 색종이 뭉치를 한꺼번에 펼쳤다. 우리 집에 있어봤자 지현은 좋은 꼴 못 본다. 깔끔한 그녀는 청소를 하려들겠지. 나는 지현에게 남은 떡갈비와 새로 한 밥을 싸주면서 집에 가라고 떠밀었다.
레시피 노트 제규가 쓰고 있는 레시피 노트. 요새는 조리과정을 쓰는 것보다 자잘하게 그림 그리는 것에 재미를 붙인 듯 하다.^^ ⓒ 배지영
제규는 집에 오자마자 "아침에 떡갈비 맛있었어요?"라고 물었다. 나는 객관적인 사람, 감탄사 "꺄아!"는 뻥 차버리고 시작했다. 최대한 절제해서 "겁내 맛있었징"라고 했다. 제규는 쓰고 있는 레시피 노트를 가져와서 나한테 보여주었다. 아버지 돌아가신 5월 2일, 그 뒤로도 우리는 밥 먹고 살았다. 제규는 다양한 요리를 했다. 그러나 나는 글로 쓰지 못 했다.

"엄마! 떡갈비 글을요, 다른 요리랑 묶어서 쓸 거예요? 그러면 피자랑 마늘간장치킨이랑 멘츠카츠 만든 스토리가 너무 아깝지 않아요?"

그렇다면 다음 주제는 고칼로리 음식이 되겠다. "너는 전생에 나라를 구한 거야? 어떻게 고등학생 아들이 차려주는 밥을 먹고 사냐"는 부러움은 재깍 반사하겠다. 옆구리에 잡히는 살을 걱정하는 아주머니의 비통함이 담긴 글이 나올 테니까.
고칼로리 음식 제규는 10대 소년. 고칼로리 음식을 좋아하고 즐겨 만든다. 나도 덩달아 먹어야 한다. 고딩 아들이 차려주는 밥 먹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다.^^ ⓒ 배지영
태그:#떡갈비, #고칼로리, #야자 대신 저녁밥 하는 고딩 아들, #야자 땡땡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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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는 사람이 되고 싶다면』 『소년의 레시피』 『남편의 레시피』 『범인은 바로 책이야』 『나는 진정한 열 살』 『내 꿈은 조퇴』 『나는 언제나 당신들의 지영이』 대한민국 도슨트 『군산』 『환상의 동네서점』 등을 펴냈습니다.

행복의 무지개가 가득한 세상을 그립니다. 오마이뉴스 박혜경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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