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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월계동의 3층 빌라에서 에어컨을 수리하다 떨어져 숨진 삼성전자서비스 성북센터 엔지니어 진남진씨의 빈소가 하계동 을지병원에 마련됐다.
 서울 월계동의 3층 빌라에서 에어컨을 수리하다 떨어져 숨진 삼성전자서비스 성북센터 엔지니어 진남진씨의 빈소가 하계동 을지병원에 마련됐다.
ⓒ 삼성전자서비스지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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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어컨 수리 기사가 너무 부족해."

삼성전자서비스 성북센터 가전 수리 엔지니어(기사) 진남진(45)씨는 23일 오전 동료들에게 푸념을 늘어놓았다. 여름이 시작되는 6월이면, 에어컨을 비롯한 각종 가전제품 고장 신고가 쏟아진다. 엔지니어는 하루 종일 뛰어다녀야 한다. 점심 때 식당에서 밥 먹으며 숨 돌릴 틈도 없다.

진씨는 이날도 도시락으로 끼니를 때우며 일했다. 오후 3시께 서울 노원구 월계동의 한 빌라 3층에 올랐다. 고장 난 에어컨을 수리하기 위해, 실외기가 설치된 철제 난간을 살폈다. 순식간에 철제 난간이 무너지면서 그는 아래로 떨어졌다.

함께 일하는 동료들은 사고 소식을 바로 듣지 못했다. 진씨가 병원에서 생사의 기로에 섰던 그날 오후, 성북센터는 엔지니어들에게 해결되지 못한 수리 건을 뜻하는 '미결'이 많다면서 실적을 압박하는 문자메시지를 보냈다.

오후 4시 41분 : '현재시간 외근미결 위험수위로 가고 있음. 처리가 매우 부진함.'
오후 6시 12분 : '현재 미결 매우 힘든 상황임.'
오후 6시 52분 : '금일 처리 건이 매우 부진함. 늦은 시간까지 1건이라도 뺄 수 있는 건은 절대적으로 처리.'

진씨의 휴대전화에도 같은 문자가 쌓였다. 고인의 동료는 "사람이 3층에서 떨어져 병원에 후송됐는데, 센터 쪽은 실적을 압박하는 문자메시지를 계속 보냈다. 어떻게 이럴 수 있느냐"라고 말했다.

삼성전자서비스 성북센터 엔지니어 진남진씨가 서울 월계동의 3층 빌라에서 에어컨을 수리하다 떨어져 생사의 갈림길에 선 23일 오후, 성북센터는 엔지니어들에게 실적을 압박하는 문자메시지를 보냈다.
 삼성전자서비스 성북센터 엔지니어 진남진씨가 서울 월계동의 3층 빌라에서 에어컨을 수리하다 떨어져 생사의 갈림길에 선 23일 오후, 성북센터는 엔지니어들에게 실적을 압박하는 문자메시지를 보냈다.
ⓒ 금속노조 삼성전자서비스지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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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한 명의 하청노동자가 죽었다

진씨의 죽음을 두고, 지난달 서울지하철 2호선 구의역 스크린도어(안전문)를 수리하다 목숨을 잃은 김아무개(19)씨의 사건처럼 위험 업무의 외주화와 실적 압박 탓에 일어난 일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삼성은 서비스센터를 직접 운영하지 않는다. 삼성그룹 계열사인 삼성전자서비스는 센터를 운영하는 하청업체와 계약을 맺고 가전제품 수리 등을 맡긴다. 진씨는 하청업체 소속 직원이다.

기본급은 낮고 수리 건수에 따라 성과급을 받는 임금 체계인 탓에 엔지니어들은 과중한 업무와 '빠른 일처리'에 내몰린다. 초등학교 5학년 아들과 2학년 딸을 둔 가장인 진씨는 누구보다 바쁘게 일했다.

6월 들어 성북센터는 서울지사의 20개 센터 중에서 실적이 낮아 비상이 걸렸다. 센터 쪽은 지난 8일 엔지니어들에게 보낸 문자메시지에서 과격한 단어를 써가면서 압박했다.

'미결 : 110건(처리력 너무 저조합니다. 진짜 개인미결 좀 챙겨주세요.) 마감 미결 : 60건 이하.'
'성북 외근 미결 비상 : 지사 최하위 등극 중.'
'뭐하나 제대로 하는 게 없네. CS 아예 개판 5분전. 욕 좀 그만.'
'미결 지사 내 센터 꼴찌에서 두 번째(미결율) 정말 싫은 소리 듣고 있음.'

고인의 동료는 "1시간에 1건을 수리해야 한다. 이동시간을 고려하면 수리할 시간은 더 줄어든다. 1시간 안에 수리할 수 없는 경우도 많다"면서 "이런 가운데 센터의 실적 압박이 있기 때문에 항상 서두를 수밖에 없다"라고 밝혔다.

삼성전자서비스 성북센터는 6월 들어 실적이 낮다면서 소속 엔지니어들에게 실적 압박용 문자메시지를 여러 차례 보냈다.
 삼성전자서비스 성북센터는 6월 들어 실적이 낮다면서 소속 엔지니어들에게 실적 압박용 문자메시지를 여러 차례 보냈다.
ⓒ 금속노조 삼성전자서비스지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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센터 "안전장비 착용 안 해" - 고인의 동료 "착용할 시간 없어"

성북 센터 쪽은 진씨의 죽음을 두고 그가 안전벨트와 같은 안전장비를 착용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성북센터의 한 관리자는 "난간이 무너져 일어난 사고다. 센터에서는 안전장비를 지급했다. 진씨가 안전장비를 하지 않은 책임이 있다"라고 전했다.

이에 대해 고인의 동료들은 "실적 압박 분위기에서 안전벨트를 착용할 여유가 없다"라고 지적했다. 박성주 금속노조 삼성전자서비스지회 부지회장은 "지난달 구의역 스크린도어(안전문)를 수리하다가 목숨을 잃은 김모씨 사건처럼, 진씨 역시 안전을 앞세우고 일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삼성 서비스 품질이 안전보다 우선했기 때문에 생긴 일"이라고 지적했다.

진씨뿐만 아니라 삼성전자서비스의 각 센터에서 일하는 엔지니어들은 모두 실적 압박에 놓여있다. 서부산센터는 24일 오전 엔지니어들에게 '비 온다고 에어컨 (수리) 다음날 넘기지 마세요'라는 문자메시지를 보냈다. 이날 부산에는 큰 비가 내렸다.

곽형수 부지회장은 "에어컨 수리를 하면서 3층에서 떨어져본 적이 있고, 감전을 당해본 적이 있다"면서 "비가 오면 실외기를 수리하다가 감전을 당할 위험이 많다. 사람이 죽었는데도, 여전히 안전은 뒷전"이라고 지적했다.

고인은 금속노조 삼성전자서비스지회 소속 조합원은 아니었지만, 지회는 유가족을 돕고 있다. 지회는 이날 "산재사망률 OECD 1위라는 치욕스러운 현실을, 가족의 생계를 담보로 안전을 스스로 포기하라는 부당한 강요를 참지 않겠다"면서 "죽지 않고 다치지 않고 병들지 않고 일할 권리를 온전히 찾아 나서겠다"라고 밝혔다.

서울 노원구 월계동의 3층 빌라에서 에어컨을 수리하다 떨어져 숨진 삼성전자서비스 성북센터 엔지니어 진남진씨의 빈소가 하계동 을지병원에 마련됐다.
 서울 노원구 월계동의 3층 빌라에서 에어컨을 수리하다 떨어져 숨진 삼성전자서비스 성북센터 엔지니어 진남진씨의 빈소가 하계동 을지병원에 마련됐다.
ⓒ 선대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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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삼성전자서비스 하청노동자 죽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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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법조팀 기자입니다. 제가 쓰는 한 문장 한 문장이 우리 사회를 행복하게 만드는 데에 필요한 소중한 밑거름이 되기를 바랍니다. 댓글이나 페이스북 등으로 소통하고자 합니다. 언제든지 연락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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