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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어릴 적에 제비나 박쥐는 무척 흔한 새였습니다. 바다를 코앞에 낀 인천에서 1980년대 첫무렵을 살면서 낮에는 늘 제비를 보고 저녁에는 으레 박쥐를 보았어요. 가끔 매를 보기도 했는데 두루미만큼은 맨눈으로 만나지 못했습니다.

2010년대 한복판을 지나는 요즈음 나는 어느새 두 아이 아버지가 되어 시골에서 살림을 짓습니다. 요즈음은 큰도시에서는 제비를 구경할 수 없을 뿐 아니라, 웬만한 시골에서도 제비는 만나기 어려운 새입니다. 무엇보다 박쥐 같은 새는 거의 볼 수조차 없어요.

제비이든 뻐꾸기이든 꿩이든 매이든 우리 집 아이들은 흔하게 보지만, 박쥐처럼 예전에 아주 흔하던 새를 거의 볼 수 없기 때문에 아이들한테 박쥐가 어떤 새인가 하는 이야기를 알려주기가 어렵습니다. 두루미도 알려주기 어려운데, 요새는 꾀꼬리나 뜸부기 같은 새도 알려주기가 대단히 어렵습니다.

겉그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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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단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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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우리나라에 가장 필요한 것은 저마다 배우고 사람마다 가르치는 것이라 깨달았다. (25쪽)

나는 감옥에서 뜰을 쓸고 유리창 닦을 때마다 하나님께 빌었다. "우리나라가 독립하여 정부가 생기거든 그 집의 뜰을 쓸고 유리창을 닦는 일을 하여 보고 죽게 하소서." 하고 빌었다. (45쪽)

제국주의 군홧발에 짓눌리던 나라를 '아름다운' 나라로 되찾고 싶다는 꿈으로 살던 분이 남긴 글을 간추린 조그마한 이야기책 <김구 말꽃모음>(단비,2016)을 읽으면서 아름다움이란 무엇인가 하고 돌아봅니다. <김구 말꽃모음>은 백범 김구 어르신이 남긴 글을 이주영 님이 이모저모 손질을 해서 '요샛말'로 쉽게 읽을 수 있도록 엮은 책이라고 합니다.

어느 모로 본다면 '어록집'일 텐데, '어록집'이라는 이름은 퍽 어렵다고 여길 만하니 '말꽃모음'으로 새로운 이름을 붙였다고 할 만해요. 아름답게 남긴 말이기에 '말꽃'이고, 이처럼 아름답게 남긴 말을 모았으니 '말꽃모음'인 셈입니다.

이봉창과 윤봉길 의거를 도운 독립운동가를 잡으려는 왜경들 손길이 날마다 드세지니 동포들이 편하게 살 수가 없었다. 또 애매한 동포들이 잡힐 우려가 있으므로 나는 이봉창과 윤봉길 의거 책임자가 나 김구라는 성명서를 발표하였다. (69쪽)

현재 우리나라 남북에서 외국에 아부하는 어떤 자들은 남한을 치겠다고 말하고, 어떤 자들은 북한을 치겠다면서 갈피를 잡지 못하고 전쟁을 바라고 있다. 실제로는 아직 그 실현성은 없다. 그러나 전쟁이 터진다고 하면 그 결과는 세계 평화를 파괴하는 동시에 동족의 피를 흘려서 왜적을 살릴 것밖에 아무것도 아닐 것이다. (128쪽)

한국현대사에서 백범 어르신은 무척 남다릅니다. 무엇이 남다른가 하면 '백범'이라는 이름부터 남다릅니다. 백범 어르신은 이녁이 한 일을 대단하거나 훌륭하다고 여기지 않습니다. 그저 마땅히 할 수수한 일로 여깁니다. '백범'이라는 이름이 바로 '수수한 사람'이나 '투박한 사람'을 가리킵니다. 제대로 대접을 받지 못하는 여느 사람을 가리키는 '백범'이라는 이름이요, 권력이나 계급이나 신분이나 봉건제 같은 틀에 짓눌리던 수수하거나 투박한 사람을 나타내는 '백범'이라는 이름이에요.

그러면 한국현대사에서 백범 어르신은 어떤 일을 하면서 무엇을 바랐을까요? 우리가 흔히 알기로도 '독립운동'을 했으며 '아름다운 나라'를 바라셨습니다. 식민지도 봉건제도 계급제도 군주제도 군정도 아닌 '아름다운 민주와 자유로 춤추는 나라'를 바라셨습니다. 제국주의 우두머리를 수류탄이나 폭탄이나 총으로 죽여서 없애려고 하는 일을 하기도 했습니다만, 백범 어르신이 바란 이 나라는 '부강한 나라'가 아니라 '아름다운 나라'였어요.

수백 년 동안 조선은 계급 독재 국가였다. 유교, 그 가운데에도 오직 주자학파의 철학을 기초로 한 것이었다. 정치에 있어서만 아니라 사상, 학문, 사회생활, 가정생활, 개인생활까지도 규정하는 계급 독재였다. 주자학이 아닌 학문은 발달하지 못하였고, 그 영향은 예술, 경제, 산업에까지 미쳤다. (176쪽)

나는 우리나라가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나라가 되기를 원한다. 가장 부강한 나라가 되기를 원하는 것은 아니다. 내가 남의 침략에 가슴이 아팠으니 내 나라가 남을 침략하는 것을 원치 아니한다. (195쪽)

나도 아름다운 나라를 꿈꿉니다. 아름다운 고장을 꿈꾸고, 아름다운 마을을 꿈꾸며, 아름다운 보금자리를 꿈꿉니다. 아름다운 살림을 꿈꾸고, 아름다운 사랑을 꿈꾸며, 아름다운 말이랑 넋이랑 삶을 꿈꾸어요.

군대나 전쟁무기가 없이도 평화롭고 아름다운 나라가 되기를 꿈꿉니다. 권력이나 신분이나 학력이나 재산이 없이도 평등하고 아름다운 나라가 되기를 꿈꿉니다. 겉모습이나 자가용이나 부동산이나 옷차림으로 금을 긋지 않는 따사롭고 아름다운 나라가 되기를 꿈꿉니다.

참말로 아름다운 나라가 되어 모든 아이와 어른이 기쁨을 누릴 수 있기를 바라요. 참으로 아름다운 나라가 되어 너나없이 사랑스럽게 어깨동무를 하는 즐거운 노래를 바라요.

아름다운 나라는 어려울까요? 경제성장이 아닌 아름다움을 헤아리기는 어려울까요? 일등이나 명예가 아닌 아름다움을 생각하기는 어려울까요? <백범일지>를 읽든 <김구 말꽃모음>을 읽든 마음속에 수수하면서 투박한 따사로운 아름다움을 사랑스레 품을 수 있기를 빕니다.

덧붙이는 글 | <김구 말꽃모음>(이주영 엮음 / 단비 펴냄 / 2016.5.31. / 12000원)



김구 말꽃모음 - 김구 선생님 말씀 모음집

김구 지음, 이주영 엮음, 단비(2016)


태그:#김구 말꽃모음, #김구, #백범어록, #이주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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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꽃(국어사전)을 새로 쓴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를 꾸린다. 《쉬운 말이 평화》《책숲마실》《이오덕 마음 읽기》《우리말 동시 사전》《겹말 꾸러미 사전》《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비슷한말 꾸러미 사전》《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숲에서 살려낸 우리말》《읽는 우리말 사전 1, 2, 3》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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