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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과 희생, 화목함의 상징인 가족. 그러나 한국 가정의 53.8%는 '폭력' 가정입니다. 그만큼 가정 폭력은 익숙한 문제이기도 하지만 어디까지나 '남의 일', '감히 참견해서는 안 될 가정사'라고 생각됩니다. 우리 사회가 함께 해결해야 할 문제라고 여기지 않습니다. 이처럼 가족과 가정폭력을 둘러싼 이중적인 잣대, 인식의 괴리는 폭력의 본질적인 해결을 어렵게 합니다.

올해로 33년 동안 아내폭력을 해결하기 위해 노력해 온 한국여성의전화가 다양한 사례와 함께 가정폭력 문제의 근본적인 해결책에 대해 이야기하고자 합니다. 보수적인 가족상과 폭력의 연관성, 현 가정폭력 관련 제도의 문제, 가정폭력과 얽혀있는 또 다른 폭력의 실상을 파헤쳐봅니다. - 기자말

1983년 3월 5일자 경향신문에 '추행강도 15년 선고' 기사가 실렸다. 재판부는 "피고인들이 1회의 강도 강간 범행을 했지만 용납할 수 없는 가정침해사범이어서 중형을 선고한다"고 밝혔다. 80년대 강간사건에 대한 사법부의 판단은 '추행은 중죄'라는 점에서 일관되다.
 1983년 3월 5일자 경향신문에 '추행강도 15년 선고' 기사가 실렸다. 재판부는 "피고인들이 1회의 강도 강간 범행을 했지만 용납할 수 없는 가정침해사범이어서 중형을 선고한다"고 밝혔다. 80년대 강간사건에 대한 사법부의 판단은 '추행은 중죄'라는 점에서 일관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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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3년 3월 5일 자 <경향신문>에 '추행강도 15년 선고' 기사가 실렸다. 재판부는 "피고인들이 1회의 강도 강간 범행을 했지만 용납할 수 없는 가정침해사범이어서 중형을 선고한다"고 밝혔다. 이 사건에서 검사는 무기징역을 구형했다(당시엔 추행과 강간은 구별되어 쓰이지 않았다). 그해 1983년 6월 다방에 들어가 강도와 강간을 일삼은 20세 서아무개씨에게 징역 15년이 선고됐고(<동아일보>, 1983. 06. 28) '대낮에 가정집에 들어가 남편을 찌르고 부인을 강간'한 장아무개씨는 15년을 선고받았다.

사형을 선고한 재판부도 있었다. 21차례 강도강간을 저지른 황아무개씨와 공범 3명은 사형을 선고받았고 다른 공범 4명은 무기징역 등 중형에 처한다(<동아일보> 1983. 5. 18). 당시 신문은 형법상 단순 강도강간의 최고형은 무기징역이지만, 특정범죄가중처벌법이 병합되어 재판부는 최고 사형까지 선고할 수 있다는 설명을 덧붙였다.

1980년대 강간사건에 대한 사법부의 판단은 '추행은 중죄'라는 점에서 일관되다. 심지어 당시 법무부장관이 "가정파괴사범은 반드시 잡아 초범자라도 법정최고형인 무기징역으로 엄단하라"고 '전국검찰에 특별지시'까지 내릴 만큼(<매일경제>, 1985. 11. 02) 80년대 성폭력 가해자는 무거운 처벌을 받았다.

강간범에게 15년 이상의 중형을 선고했던 1980년대 기사와 2016년 한국사회의 성폭력 처벌 현황을 함께 살펴보는 일은 꽤 흥미롭다. 1994년 성폭력특별법 제정 이후에 성폭력범죄에 대한 법적 처벌이 강화되었다고 생각해온 우리의 상식이 깨지기 때문이다.

지난 4월 동료 직원을 강간한 30대 남성은 별다른 처벌 전력이 없다는 이유로 집행유예를 선고받았다(<연합뉴스> 2016. 04. 20). 5월에는 아내의 친구를 강간한 30대 남성이 "형사처벌 전력이 없는 점, 피해자에게 용서받은 점, 우발적인 범행인 점" 때문에 감형받아 집행유예로 풀려났다(<아시아경제> 2016. 05. 13). 전 여자친구를 강간하고 동영상을 찍어 유포한다고 협박한 20대 남성도 대학생·초범·처벌불원·반성함 등을 이유로 집행유예를 받았다(<세계일보>, 2016. 05. 19).

김혜정 영남대 산학협력단 연구원이 대검찰청의 의뢰를 받아 조사한 바에 따르면 2014년 성범죄 집행유예 선고율은 66.5%에 달했다(2012년 43.6%, 2013년 52.3%). 이쯤이면 현재의 성범죄 양형기준이 너무 낮은 것은 아닌지 의심해볼 만도 하다. 하지만 성범죄 양형기준은 2009년 첫 시행 된 이후 4차례의 개정 끝에 최소 1년 6개월~최대 15년까지 처벌할 수 있게 정비되어 있다(*일반강간, 유사강간, 특수강간, 강도강간에 따라 양형기준이 다르며, 누범 등에 대해 1.5배 가중할 수 있다).

죗값을 치르고 반성의 시간을 가질 수 있도록 양형을 정비하고 현실화하기 위해 노력해왔던 역사와는 달리, 형의 집행을 유예하려는 재판부의 의지가 유달리 강한 것이 문제라면 문제겠다.

무분별한 엄벌주의와 무분별한 온정주의 사이 '여성'은 없었다

1980년대 '가정파괴범'에게 사형을 선고했듯이 지금도 '엄벌하라'는 말을 하려는 것이 아니다. 30년 전 재판부가 15년·무기징역·사형을 선고했어도 강간은 줄어들지 않았다. 엄벌은 답이 아니다. 그렇다고 해서 지금처럼 재판부가 강간범의 미래를 (이렇게 격하게) 고려하는 것도 답이 아니다.

피해자의 미래가 가해자의 미래보다 가볍게 고려되어야 할 이유는 없다. 더욱이 가해자에 대한 쉬운 용서는 가해자의 미래를 위한 것도 아니다. 가해자에게 반성할 기회를 빼앗는 것은 가해자에게 계속 '그런' 삶을 살라고 말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또 이런 판결은 사회적 문제인 성폭력에 눈감겠다는 선언과도 같다. 이런 정서에서 성폭력이 줄어들 리 없다.

1980년대 무분별한 엄벌주의와 (피해에 무감각한) 2016년 무분별한 온정주의 모두 성폭력 문제의 핵심에서 빗겨나 있다. '여성의 인간화' 혹은 '여성의 몸에 대한 자기결정권'을 30년 전부터 말해왔지만, 한국사회는 지난 30년간 꾸준히 여성에게 아(오)빠가 허락한 그만큼만 자기결정권을 누리라고 답해왔다.

강간범을 엄벌하던 재판부가 온정주의로 태도를 변경한 것은 공교롭게도 여성들이 '더 이상 보호는 필요 없다'고 외친 1990년대, 성폭력 제도화의 시기를 거치면서다. 성폭력이 '정조에 관한 죄'가 아니라 여성의 성적자기결정권에 대한 침해라고 외친 이후, 가부장의 보호를 거부하고 '여성(도)은 주체적인 인간이며 성적자기결정권을 가진다'고 외치는 여성들이 등장한 이후에, 재판부는 급격히 가해자에 대한 분노를 거두기 시작한다.

이쯤에서 1980년대 강간범을 '가정파괴범'으로 호명했다는 사실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그 시절 국가와 법이 성폭력을 범죄로 받아들인 이유는 여성의 몸에 대한 권리 침해가 아니라 '강간으로 인해 파괴되는 가정'에 있었다. 재판부가 강간범에게 물은 죄는 이씨의 부인을 욕보인 죄이며, 따라서 피해자는 이씨의 부인이 아니라 '이씨'였다(<경향신문>, 1983. 03. 05).

침해받은 것은 가장의 권한이지 피해자의 존엄이 아니었다. 실제로 신문에도 피해자는 이름도 성도 없이 '이씨의 부인'으로 적혔다. 남편 이씨의 가정이 침해받았다는 사실에 분노하면서도 정작 사회는 그 여성이 어떤 피해를 보았는지에는 관심이 없었다.

가장이 가정파괴범이라는 사실을 인정하지 못한 법원

1980년대 '가정파괴범'에게 사형을 언도했듯이 지금도 '엄벌하라'는 말을 하려는 것이 아니다. 1980년대 무분별한 엄벌주의와 (피해에 무감각한) 2016년 무분별한 온정주의 모두 성폭력 문제의 핵심에서 빗겨나 있다.
 1980년대 '가정파괴범'에게 사형을 언도했듯이 지금도 '엄벌하라'는 말을 하려는 것이 아니다. 1980년대 무분별한 엄벌주의와 (피해에 무감각한) 2016년 무분별한 온정주의 모두 성폭력 문제의 핵심에서 빗겨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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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년대 한국사회의 '멘붕'은 가장이 가정파괴범일 때에 온다. 1982년 <경향신문>은 '「아내강간」 범죄시는 부당'이라는 기사를 통해 '아내강간'을 강간죄에서 분리한다. 영국의 법의학자를 인용하면서 기자는 남편을 강간범으로 취급해서는 안 되는 이유를 밝힌다.

'오늘날 미국에서도 약 2백만 명의 아내들이 남편으로부터 강간을 당하고 있는 것으로 추산되고 있지만, 그렇다고 남편을 모조리 강간범으로 취급하거나 이혼의 사유로 몰아붙이는 일은 가정파탄은 물론 심각한 사회적 문제를 야기할 것'이라는 것이 글의 요지였다(<경향신문>, 1982, 08. 10). 여성에 대한 폭력은 가정을 보호하는 범위 안에서만 '문제'일 수 있었다.

다시 말해 성폭력은 가장의 승인이 있을 때만 '문제'가 될 수 있었다. 물론 아내구타도 예외가 아니다. 미리 말하지만 아내구타와 아내강간은 아내의 경험 속에서 분리되지 않는다. 구타 후 강간은 공식처럼 일어나며(그것은 '화해'로 포장된다), 폭력관계에서 일어나는 강제적 성관계는 성폭력과 구분되기 어렵다.

1980년대에 아내구타는, 기소는커녕 범죄구성요건도 되지 않는 아내강간과 달리 '폭력행위 등 처벌에 대한 법률위반'으로 기소가 되기도 했다. 하지만 법은 '이유 있는 매질은 구속사유가 안 된다'는 이유로 영장을 기각한다(<동아일보>, 1983. 07. 25.).

남편의 학대를 견디다 못해 '눈물을 머금고 경찰에 고발한 부인'의 사연은 신문 하단 가십란(<동아일보>, 1983. 08. 22)에 실릴 정도로 가볍게 취급됐고, 아내구타를 문제 삼는 신문에서조차 '아내의 잘못을 다스리는 방법이 유독 폭력이어야만 하는지'를 물으며(<경향신문>, 1983. 07. 27) 남편의 '아내 다스리는 방법론'만을 문제 삼았다.

1984년 <경향신문>은 '아내 강제로 범해도 강간'이라는 뉴질랜드 법 개정 뉴스를 단신으로 내보내지만, 한국사회에서 아내강간이 법적으로 처벌받는 일은 2009년이 되어서야 최초로 가능해졌다. 그리고 이 판결로 필리핀 아내를 흉기로 위협해 강간한 남편은 재판 결과에 억울함으로 호소하다 자살했다. 가해자가 스스로 목숨을 끊어 억울함을 풀고 싶을 만큼 아내강간은 한국사회에서 강간의 범주에 속해있지 않았다.

1991년 성폭력특별법 제정운동 당시 성폭력을 '가정 내 성폭력'과 '가정 외 성폭력'으로 구분하고 결국 가정 내 성폭력이 최종법안에서 제외된 건, 성폭력을 가정파괴문제로 사고했던 당시 인식의 한계에 기인한다. 그리고 그 제도화의 효과는 2016년 한국사회에 강렬히 나타나는 중이다.

'가족'은 가부장의 성역인 채로 30년을 너끈히 버티는 중이고, 성적자기결정권은 가정 내에서는 통용되지 않는 것처럼 회자되는 중이며, 그렇다고 해서 가정 밖 여성의 성적자기결정권이 생성되는 형편도 아니다. 꾸준히 여성들에게 "보호해줄 테니 그만 좀 해"를 외치는 중이며, 그 말이 심지어 '평화롭고' '정의로운' 줄 아는 형국이다. 하지만 '보호'는 정의나 평화와 거리가 멀다.

강남역 10번 출구의 외침, 개인의 기억을 역사로 만드는 작업

1983년 당시 여성단체들은 성폭력과 가정폭력을 구분하지 않았다. '성폭력'은 강간, 성추행, 아내구타, 인신매매, 매매춘 등을 포괄하는 개념이었고, 실제로 한국여성의전화에 걸려오는 전화는 그 모든 폭력을 포함했다. 여성들은 그런 경험을 '연속적으로' 하면서 살아간다.

이 경험은 가정 내/외로 구분될 수 없고, 직장 안/밖으로 구분될 수 없으며, 동의/비동의로도 구분될 수 없다. 여성의 생애에서 이 경험들은 분리되어 있지 않다. 리츠 캘리(1987)가 이야기했듯이 여성에게 성폭력은 일생 동안 경험하는 어떤 것이며, 사건을 규정하는 방식과 주변인들의 영향력 속에서 피해의 내용과 방식은 각기 다르게 구성된다.

성폭력을 '수치'로 입증하라는 사회에서 피해는 수치로 기억되기 쉽지만 부끄러움이 가해자의 몫인 사회에서라면 수치심과 비난, 고통은 피해자의 몫일 수 없다. (부끄러운 소매치기 피해자를 본 적 있는가 말이다.)

강남역 10번 출구에서 터져 나온 여성들의 일상적 성폭력 경험은 이제야 부끄러운 과거의 기억에서 분노스러운 현재의 역사로 쓰이고 있다. 개인의 기억은 이렇게 역사로 이동 중이다. 그 역사적 경험들이 일러주고 있듯이 여성의 몸을 도구화하고 쉽게 '사용할 수 있다'고 여기는 정서에서 성폭력으로부터 안전한 공간은 없다.

가장의 소유물을 파괴한 죄를 묻는 80년대 엄벌주의나 가해자에게 공감하는 지금의 온정주의는 '여성을 도구화'한다는 점에서 큰 차이를 갖지 않는다. 이런 구도에서 비난과 수치는 모두 여성/피해자의 몫이 되어왔다. 이제는 여성의 몸에서 시선을 거둘 때가 되었다.

그러기 위해는 필히, 성폭력의 연속선과 그 '성별성'에 직면해야 한다. 새롭게 공부할 것도 없다. 역사 속의 페미니스트들이 미리 일러주었듯이 성폭력은 가부장제 사회를 유지하기 위해 남성이 여성에게 행하는 구체적인 통제의 방식이고(Kelly & Redford, 1987), 실제로 '강압적 통제(성폭력)'는 젠더구조가 보다 평등하게 변화하려는 시점에서 나타났다(허민숙, 2012). 의심할 것 없는 여성표적 살해 사건을 두고, 무모하게 '여성표적 살해가 아니었다'고 우길 때가 아니다.

아무리 감추려 해도 벌써 많은 이들은 알아버렸다. 강남역 여성 살인 사건을 기점으로 사람들은 성폭력이 비단 '남성 개인의 인성 문제'가 아니라는 사실에 직면했다. 겉모습만으로 날 때부터 남자와 여자를 가르고 서로 다른 위치를 할당해온 이 세계를 바꾸지 않으면 결코 끝나지 않을 문제라는 사실을 알아가는 중이다.

여성을 도구로 삼는 일에 이미 익숙한 '자신'을 발견하는 중이고 성별을 떠나 어쩌다 이 지경인 세계를 '인식조차' 하지 못했는지 깜짝 놀라는 중이다. 남성들은 스스로 '내가 여성을 보호한다'고 말하지만, 현실 여성들은 이것을 통제와 위험으로 감지한다는 걸 이해하는 중이다.

"왜 날 가해자 취급하는 거냐" 구조의 부당함에 눈감는 태도

80년대 여성단체들이 성폭력특별법제정운동을 시작하지만 않았다면, 다시 말해 성폭력이 가정침해 문제가 아니라 성적 지배의 문제, 여성을 인간화하지 않는 문제라고 여성들이 들고 일어나지만 않았다면 성폭력 사범들이 지금처럼 가볍게 집행유예로 풀려나는 일은 없을지도 모른다.

그때부터 재판부는 가해자에 대한 분노를 철회했고, 오히려 호의를 베푸는 방식으로 '소유물의 위치'에서 벗어나겠다는 여성들을 응징했다. 마치 이렇게 말하는 것 같다. "그러게 내가 보호해준다고 할 때 가만히 있으면 좋았잖아. 여성의 성적자기결정권이라니, 그걸 지금 나보고 인정이라도 하라는 거야?"라고 말이다.

젠더 체계를 유지/재생산하는 일에 참여하는 방법에는 여러 가지가 있다. '다 차려놓은 밥상에 숟가락 하나 얹었는데 이런 상을 주셨다는' 배우 황정민의 수상소감을 빌리자면, 다 차려놓은 밥상에 숟가락 하나 얹는 것도 이 체계를 유지하는 일이다.

그 뿐만 아니라 숟가락을 얹지 않고 밥상 옆에서 '나는 안 먹음'이라고 관조하는 이도 체제를 유지하는 데 기여한다. '나는 안 먹었는데 왜 날 가해자 취급이야?'라는 말은 그래서 부적절하다. 구조의 부당함을 말하고 있는데 마치 이 구조의 밖에서 살아가는 외부인처럼 말해서 그렇다.

절대자의 위치란 이 세계에서 존재하지 않는다. 이 체계를 유지하는 일에는 여성도 예외가 아니다. (때문에 이건 남녀싸움이 될 수 없다.) 밥상 위에 올라와 반찬이 된 여성들은 종종 맛으로 평가되곤 한다. 음식이 되지 않기 위해서 요리사가 되기도 한다. 음식이 인간이 되는 방법은 요리사가 되는 일이었을 것이다. 그간 사회가 여성을 '인간'으로 인정하는 몇 안 되는 단어에 스스로를 맞추기 위해 고생이 많았다. 현모양처와 개념녀 같은 것들 말이다. 하지만 요리사는 밥상에 자기 수저를 놓을 수 없다는 걸 알아야 한다. 잘 차려진 가부장제 밥상에 겸상은 불가능하다.

강남역 10번 출구 발화 이후 겸상 불가능한 젠더시스템을 인지한 이들이 힘있게 움직이고 있다. 점점 더 많은 여성들이 말하기 시작했다. 나만 그런 줄 알았던, 어디에도 말하지 못했던, 말하면 안 되는 줄 알았던 여자라서 겪은 성적 폭력의 경험들이 폭발적으로 쏟아지고 있고 '기록되고' 있다.

'가족'은 침묵을 수행하게 하는 구체적인 집단이라는 것도 새록새록 밝혀지는 중이다. 2015년 여름 판도라의 상자를 열어젖힌 이들은 상자를 닫기는커녕 감춰놓은 상자를 뒤져서 찾아내 봉인 해제시키는 중이다. 덕분에 여성에게(만) 위험한 이 세계를 꿈에도 알지 못했던 '남성(몸을 가진 이)들'은 하나둘씩 '여성에게(만)' 분할 배정된 이 세계를 알기 위해 몸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치마를 입고 여성혐오 반대 행진을 함께하는 '남성들'은 더는 이원젠더 시스템을 유지하지 않기로 결의한 신중한 투사들이다. 성을 구분하지 않고, 구분되지 않을 때 '여성표적살인'은 불가능하다. 여성이 누구인지/남성이 누구인지 도통 구별해 낼 수 없는 세계에서는 '여성'을 대상화하거나 도구화할 방도가 없겠다. 실은 그럴 '필요'가 없어져야 하는 거다. 이 싸움이 '구별 짓기'에 맞서는 (힘겨운) 싸움일 수밖에 없는 이유다.

힘든 과정이지만 변화는 시작되고 있다. '이 문제'는 이제 '여성문제'가 아니라 '사회문제'로 인식되는 중이다. 구조의 문제로 인식되는 중이고 귀를 열기만 한다면야 누구나 들을 수 있을 만큼 볼륨이 커졌다. 말과 글이 많아지고 볼륨도 커졌으니 이제는 더 잘 들을 수 있겠다. 들으려면 스스로에게 먼저 질문을 던지는 일이 필요하다. 나는 어디쯤에서 어떻게 이 젠더체계와 연루되어 있을까에 대해서 말이다.

변화는 시작되고 있다. '이 문제'는 이제 '여성문제'가 아니라 '사회문제'로 인식되는 중이다. 구조의 문제로 인식되는 중이고 귀를 열기만 한다면야 누구나 들을 수 있을 만큼 볼륨이 커졌다. 지난 6일 홍대 인근에서 열린 '여성혐오 세상을 뒤엎자' 행사.
 변화는 시작되고 있다. '이 문제'는 이제 '여성문제'가 아니라 '사회문제'로 인식되는 중이다. 구조의 문제로 인식되는 중이고 귀를 열기만 한다면야 누구나 들을 수 있을 만큼 볼륨이 커졌다. 지난 6일 홍대 인근에서 열린 '여성혐오 세상을 뒤엎자' 행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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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여성폭력, #가정폭력, #성폭력, #처벌, #가부장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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