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를 쓰다보면, 이름 앞에 '배우'라는 호칭을 달기 애매한 경우가 있다. 영화에 한두 번 출연했다고 다 배우는 아닐 것이다. 반면, 배우란 호칭 위에 힘껏 방점을 찍어도 모자란 마음이 들 때가 있다. 배우 김명민이 꼭 그랬다. 그는 대쪽같이 '본질'을 지키고, 본질 아닌 모든 껍데기는 멀리하려고 노력하는 연기자였다.

지난 3일 오전, 서울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만난 김명민은 자신만의 연기 철학을 부단히 잡아나가는, 성실한 사람이란 인상을 주었다. 초심자처럼 노력하는 모습이 다소 의아해 보이기도 했다. 오는 16일 영화 <특별수사 : 사형수의 편지>(아래 <특별수사>) 개봉을 앞둔 그의 인터뷰를 아래에 옮긴다. 배우를 꿈꾸는 이들이라면, 천천히 읽으시길.

[본질 하나] 연기자는 연기에 집중하는 사람

 영화<특별수사 : 사형수의 편지>에서 경찰 출신 브로커 최필재 역의 배우 김명민이 2일 오후 서울 팔판동의 한 카페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영화 <특별수사 : 사형수의 편지>에서 경찰 출신 브로커 최필재 역의 배우 김명민이 2일 오후 서울 팔판동의 한 카페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 이정민


김명민은 배우로서 무엇이 가장 중요한 지를 매순간 상기하려 했다. 앞서 말했듯 '본질'을 따르는 일이 바로 그것이다. 결과를 미리 생각하고 작품에 임한 적이 없다는 그는 "예전부터 돈을 따라가진 않겠다는 신념 하나는 지키고 있다"고 단단한 어투로 말했다.

"배우가 연기를 할 때 본질을 찾아 그에 따라야 한다. 흥행스코어나 돈을 좇는 건 본질에서 벗어난 것인데, 그러면 그 순간에는 잘 되는 것 같지만 결국 생명이 짧아진다. 드라마 <베토벤 바이러스>를 할 때 안판석 감독이 내게 한 말씀을 아직도 새기고 있다. 지금까지도 그 신념에는 변함이 없다."

"부와 인기를 따라가다 보면 나중엔 내 주변에 3류 사람들만 모일 것이다. 하지만, 초심을 가지고 간다면 당장 인기는 없어도 주변에 하이퀄리티의 사람들이 모일 것이다." (안판석 감독)

김명민이 말하는 '연기자의 본질'은 명료했다. 외과의사는 수술에 집중해야 하고, 수술을 잘 해야 하는 것처럼 연기자는 연기에 집중하고 탁월한 연기를 선보여야 한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성격이 좋고 안 좋고는 두 번째 문제"라고 덧붙였다.

배우로서의 본질을 지키기 위해 그가 스스로를 다잡고 있는 듯 느껴졌다. 평소 배역을 준비하는 과정에 대해 물었다. "실존인물이라면 역사책을 많이 보고, 허구의 인물이라면 전사와 후사를 써내려간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이어 "(맡은 배역의) 직업에 대한 연구는 당연히 하는 것이고, 발음은 안 되면 안 되는 기본 덕목"이라며 그에 더해 행간의 서브텍스트를 찾아서 대본에 메모하는 습관은 젊어서 연극할 때부터 쭉 해온 것이라고 했다. 

[본질 둘] 고양이 역할을 맡으면 고양이가 되고

 영화<특별수사 : 사형수의 편지>에서 경찰 출신 브로커 최필재 역의 배우 김명민이 2일 오후 서울 팔판동의 한 카페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신과 소통하는 사람, 접신을 통해서 사람과 신을 연결하는 사람이 배우이므로 고양이 역을 맡으면 고양이가 될 순 없어도 최대한 그 근처까지는 가야 한다." ⓒ 이정민


최상의 연기를 위해 최대한 집중력을 발휘하는 그는 연기를 위해 몸을 혹사시키기로 유명(?)하다. 2009년 영화 <내 사랑 내 곁에>서 루게릭 환자 역할을 맡아 뼈만 앙상하게 남을 만큼 체중감량했던 것이 대중에 각인돼 있다.

김명민은 이에 대해 담담하게 "그건 제작사의 문제였던 것 같다"고 말했다. 보통 장소별로 촬영하는데 그 영화는 대본 순서대로 찍었고, 대본에 '몰라보게 살이 빠진, 뼈만 앙상하게 남은' 등의 순서로 쓰여 있었다는 것.

"한편으로는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내가 어디까지 (체중을) 덜어낼 수 있을까, 나 자신에 대한 도전을 한 번 해보고 싶었다. 루게릭병을 전염병으로 알고 있는 사람들도 있는데, 제가 제대로 연기해서 바로 알리고 싶었다. 루게릭 환우들을 만나 손을 잡고 눈을 맞췄는데, 잘 연기해달라고 내게 말하는 것 같았다. 만약 내가 컴퓨터 그래픽의 도움을 받았다면 연기에 진심이 느껴지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배우이기 전에 그도 인간인데, '인간 김명민'의 삶은 중요하지 않은 걸까. 이 물음에 그는 갑자기 대학시절 교수님의 이야기를 꺼냈다. "배우는 사람이 아니라고 교수님이 말한 적 있다"며 연기의 기원을 언급했다. "연기자의 기원은 무당에 가깝다"며 "신과 소통하는 사람, 접신을 통해서 사람과 신을 연결하는 사람이 배우이므로 고양이 역을 맡으면 고양이가 될 순 없어도 최대한 그 근처까지는 가야 한다"고 주장했다.

[본질 셋] 나부터 납득이 돼야 연기할 수 있다

 영화<특별수사 : 사형수의 편지>에서 경찰 출신 브로커 최필재 역의 배우 김명민이 2일 오후 서울 팔판동의 한 카페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한 공간에 있는 스태프들, 상대 배우들을 설득시키지 못하는 연기라면 어떻게 스크린을 뚫고 관객을 이해시킬 수 있느냐." ⓒ 이정민


스스로 납득이 돼야 연기에 임할 수 있는 그의 태도 역시 본질을 따르는 일처럼 보였다. 캐릭터가 관객에게 받아들여지게끔 만드는 일이 가장 중요하다고 말하는 그는, 일단 자신이 납득이 안 되면 한 마디의 대사도 내뱉지 못한다고 털어놨다. 캐릭터가 납득이 안 되는 시나리오는 전체적인 흐름도 이상하기 때문에 아예 선택하지 않는다고. 그런데 딱 한 번 예외가 있었으니, 바로 드라마 <베토벤 바이러스>다.

"똥덩어리 대사는 정말이지 어이가 없었다. 도저히 납득되지 않아서 감독과 이야기를 많이 나누고 3일 만에 결정했다. 출연을 결정할 수 있었던 건 '이 사람은 현실에 있는 사람이 아니다'고 생각한 덕분이다. 아예 바흐나 베토벤 때의 고전적 사람이며 타임머신을 타고 온 인물이라고 설정했더니 스스로 납득이 됐고, 똥덩어리 대사도 자연스럽게 뱉을 수 있었다."

이번 영화 <특별수사>에서도 관객에게나 자신에게나, 설득이 가능한 연기를 하기 위해 힘썼다. 앞에 있는 상대배우가 내 연기를 보고 공감을 못하면 그건 잘못된 연기라고 말하는 김명민은 함께 연기한 김영애 선생님의 '납득되는' 연기에 소름이 돋았던 경험을 들려줬다. 갑질의 횡포를 일삼는 사모 역의 김영애는, 같은 공기에 서 있는 것만으로도 엄청난 공포감을 주었다고 한다. 그러면서 "한 공간에 있는 스태프들, 상대 배우들을 설득시키지 못하는 연기라면 어떻게 스크린을 뚫고 관객을 이해시킬 수 있냐"고 되물었다.

인터뷰의 막바지, 그의 연기 철학을 한 마디로 정리해달라고 부탁했다. 생각할 시간이 필요 없다는 듯 즉각적으로 대답이 돌아왔다.

"연기에 정답은 없다. 아직도 나는 내 길을 찾고 있다. 다만, 한 가지 확실한 건 모두가 공감할 수 있는 보편성 위에 특수성을 올려야 한다는 것이다."

 영화<특별수사 : 사형수의 편지>에서 경찰 출신 브로커 최필재 역의 배우 김명민이 2일 오후 서울 팔판동의 한 카페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연기에 정답은 없으며 아직도 나는 내 길을 찾고 있다." ⓒ 이정민



김명민 특별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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