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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산 ⓒ 유혜준
중국에는 다섯 개의 빼어난 산이 있는데 그걸 5악이라 부른다. 동악태산(東岳泰山), 서악화산 (西岳華山), 남악형산(南岳衡山), 북악항산(北岳恒山), 중악숭산(中岳嵩山). 이 다섯 개의 산 가운데 가장 으뜸이 동악태산이라나.

그래서 태산에는 '오악독존(五岳獨尊)'이라는 글귀가 새겨진 거대한 비석이 있다. 태산의 자존심과 자부심이 한꺼번에 느껴지는 비석으로, 태산에 왔다갔다는 인증사진을 그 앞에서 찍어야 한단다. 그 때문에 이 비석 앞은 인증사진을 남기려는 사람들로 언제나 북적인다.

양사언의 시조처럼 높아봤자 '하늘 아래 뫼'인 태산에 올랐다. 걸어서? 아니다. 중천문에서 남천문까지는 케이블카를 탔고, 남천문을 거쳐 법하사, 옥황정에는 걸어서 올랐다. 길은 계단이 많아서 그렇지 힘들지 않다. 힘들면 쉬었다 가면 되지.
태산 중천문에서 남천문까지 운행하는 케이블카. ⓒ 유혜준
중천문에서 남천문까지 운행하는 케이블카는 길이가 2078m나 된다. 케이블카 정원은 8명. 10여 분은 족히 타고 간 것 같다. 케이블카를 타고 산 아래를 내려다보면 아찔하기 짝이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눈앞에 펼쳐지는 태산의 장엄한 풍경은 감탄이 저절로 터져 나오게 한다. 태안 시가지도 내려다 보인다. 인구가 500만 명이나 된다는 태안이 케이블카 아래에서 펼쳐지고 있었다.

케이블카에서 내려 10여 분을 올라가니 남천문이 나온다. 이 문, 기억해야 한다. 남천문을 경계로 사람의 세상과 신의 세상이 나뉘기 때문이다. 남천문 안으로 들어서는 순간 속세를 벗어나 신의 세계로 들어서는 것이라니. 남천문 안으로 들어가 잠시 멈춘다. 무엇이 달라졌나?
남천문. 이 문을 경계로 속세와 신의 세계가 나뉜다고 한다. ⓒ 유혜준
하늘과 맞닿은 길이라는 천가(天街)가 이어지는데, 관광상품을 파는 상가들이 즐비하다. 천가를 지나면 벽하사(碧霞祠)가 나온다. 중국에서도 손꼽히는 도교사원이다. 송나라 때인 1009년에 태산의 산신인 벽하원군(碧霞元君)을 기리기 위해 세운 사당이다. 그래서 벽하원군사(碧霞元君祠)라고도 한다. 벽하원군은 여성이다. 그래서 태산 할머니라고 부른다나. 그게 더 정감 있다. 온화한 마음으로 사람들의 소원 하나하나에 귀를 기울일 것 같다.

태산을 찾는 이들은 벽하사에 들러 태산할머니 앞에서 향을 피우고 소원을 빈 뒤, 태산에서 가장 높은 곳이면서 옥황상제가 있다는 옥황정으로 올라간다. 그곳에서도 향을 피우고 소원을 빈다. 지금이야 길을 잘 닦아놨지만, 예전에는 달랐으리라. 옥황정에 오르는 건 결코 쉽지 않았을 것 같다. 

옥황상제가 있다는 옥황정이 태산에서 가장 기도발이 잘 받는 신성한 곳일 테지만, 누구에게나 다 그런 것은 아니란다. 이광휘 가이드가 해준 이야기는 참으로 흥미롭다. 사실일 수도 아닐 수도 있다.
벽하사는 벽하원군을 모신 사당이다. ⓒ 유혜준
중국 주석이었던 장쩌민(강택민)이 상해에서 자동차 회사 당서기를 할 때였단다. 태산을 찾아온 장쩌민은 벽하사에서 향을 피우고 옥황정으로 향했다. 그런 그를 벽하사의 도사가 막아섰다. 당신은 옥황정에 오르면 안 됩니다, 하면서.

장쩌민이 이유를 묻자 도사는 말했다. 옥황정에 오르면 당신의 관직은 지금이 끝입니다. 더 높은 자리에 오를 수 없다는 말이었다. 그 말을 들을 장쩌민은 옥황정에 오르지 않고 그대로 돌아갔고, 그는 승승장구하면서 훗날 중국 주석 자리까지 올랐다는 것이다.

가이드의 말이 사실이라면 누구나 옥황정까지 올라가 소원을 빌 필요는 없겠다. 하지만 장쩌민을 만나서 확인할 수 없으니, 그냥 재미삼아 전해지는 이야기라고 생각하면 될 것 같다. 한데 그게 사실이라면 옥황상제보다 태산할머니가 더 영험한 신이라는 결론이잖아.

우리 일행이 벽하사를 방문한 날, 태산 할머니를 모신 사당에서 아주 특별한 법회가 열렸다. 벽하사 도사님께서 우리가 소원을 빌 수 있도록 법회를 준비했다는 것이다. 도사님께서 주관한 법회니 소원은 당연히 이루어지고도 남을 터. 기대가 크다.
법하사 도사 ⓒ 유혜준
법하사에 도착한 우리 일행을 맞이한 이들은 남색 도포에 검은색 모자를 쓴 도사님들이었다. 모자 위로 도사들의 쪽진 머리가 불룩 솟아 있다. 도사님들은 머리를 기르는구나. 도인의 풍모를 제대로 갖췄다.

겉모습만 봐서는 속세와 인연을 끊고 도교에 푹 빠져 도를 닦는 도사지만, 몇몇 도사의 손에는 스마트폰이 들려 있었다. 법회 도중에 스마트폰을 들여다보는 도사도 있었다.

태산 할머니가 모셔진 사당에 도사들이 하나 둘씩 모여들었다. 앞쪽에서 법회에 참석하는 도사들은 학이 수놓아진 비단 예복을 입었다. 태산 할머니를 사이에 두고 양쪽으로 다섯 명씩 열 명의 도사가 섰다. 오른쪽에 있는 도사들은 악기를 하나씩 손에 들었다. 목탁 소리가 천천히 울리면서 법회가 시작됐다.

지금 소원을 빌면 그 소원이 그대로 이루어진단다. 내 소원은 무엇인가. 나는 무엇을 빌어야 하나. 무릎을 기역자로 구부리고 눈을 감았다. 은은하게 울리는 목탁 소리와 함께 이따금 금속성 악기 소리가 사당 안을 가득 채운다. 북소리도 들렸던가?
예복을 입은 법하사 도사들. ⓒ 유혜준
삼십여 분쯤 지났을까? 무릎이 저리다 못해 굳어진 것 같았을 때가 되어서야 법회가 끝났다. 아이구야, 내 다리. 수런거리는 말소리가 사당 안으로 물결처럼 퍼지고, 도사들이 예복을 벗으면서 환하게 웃는다. 소원이 이뤄지면 3년 안에 꼭 태산에 다시 와야 한다니, 태산에 다시 올 날을 기대해보자.

벽하사에서 나와 대관봉을 거쳐 옥황묘까지 올라갔다. 그 길에서 사람들에게 둘러싸인 '오악독존' 비석을 만났다. 사람들은 저마다 비석 앞에서 기념사진을 찍느라고 난리다. 사진을 찍겠다고 새치기도 마다하지 않는다.
태산 오악독존 비석 ⓒ 유혜준
글자가 없는 비석, 무자비. ⓒ 유혜준
태산에는 글자가 새겨진 비석만 있는 게 아니다. 글씨가 한 자도 새겨지지 않은 비석도 있다. 진시황이 세웠다는 무자비(無字碑)는 이름 그대로 아무것도 새겨지지 않은 비석이다. 글자가 없어서 유명해진 비석이라니, 재미있다. 높이가 5.2m나 된다. 무자비에서도 세월의 흔적이 느껴진다.

중국의 황제들이 하늘에 제사를 지냈다는 옥황묘에는 옥황상제가 모셔져 있다. 도교에서 가장 높이 모시는 신이라고 한다. 옛날 이야기에 많이 등장하는 옥황상제를 태산에서 만난 것이다. 옥황묘 안으로 들어가니 마당 한 가운데에 태산 정상을 알리는 비석이 세워져 있다.

이 비석을 엄청나게 많은 자물통들이 둘러쌌다. 자물통들 가운데 한글이 새겨진 것도 있다. 재물을 바라는 사람들의 염원이 자물통마다 잔뜩 매달려 있는 것 같다. 보고 있기만 해도 무게감이 느껴진다. 소원성취, 운수대통. 사람들의 염원이 자물통의 무게보다 더 무거운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을 잠시 했다.
옥황정 비석. 무수히 많은 자물통들이 둘러싸고 있다. ⓒ 유혜준
옥황묘 한쪽에 자물통을 파는 판매대가 있다. 얼굴에 미소를 머금은 여자 판매원이 중국어로 사라고 권한다. 옥황묘 기념 메달도 있다.

기원전 219년, 중국을 통일한 진시황이 태산에서 처음 하늘에 제사를 지내면서 유명해진  태산은 중국의 5악 가운데 가장 독보적인 존재인 것만은 확실하다. 태산을 한 번 찾을 때마다 10년씩 젊어진다는 속설까지 있어, 중국인들은 평생에 한 번은 태산에 올 수 있기를 소망한다는 이야기도 들었다.

옥황묘에서 내려다본 태산 줄기는 장엄하기 그지 없었다. 태산을 다녀간 이들 가운데 별 것 아니라는 말을 하는 이들도 있지만, 중국인들이 5악 가운데서도 으뜸으로 꼽는 것은 그만한 이유가 있기 때문이 아닐까. 태산에 올랐더니 중국의 5악 가운데 나머지 4개의 산에도 가보고 싶다. 다른 산들은 태산과 어떻게 다를까?

태산이 유명하니 여기서 나는 돌도 덩달아서 유명하다. 태산석을 회사나 공장 앞에 가져다놓으면 절대로 부도가 나지 않는다나. 태산의 기도발이 돌에 그대로 담겨지기 때문인가 보다. 그래서 태안에는 태산석을 파는 가게들이 많다고 한다. 

덧붙이는 글 | 태항산대협곡 한국사무소, 왕망령한국 사무소에서 마련한 팸투어에 참가했습니다.

태그:#중국여행, #태산, #벽하사, #옥황묘, #태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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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편집기자. 시민기자 필독서 <아직은 좋아서 하는 편집> 저자, <이런 질문, 해도 되나요?> 공저, 그림책 에세이 <짬짬이 육아>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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