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름대로 영화 강국이라고 하는 한국에 거의 찾아보기 힘든 장르가 하나 있다. 바로 음악 다큐멘터리 영화다. 이 장르가 돈이 되고 안되고를 떠나서, 사실 한국에서 가장 천대를 받는 대중 예술은 바로 음악이다. K-pop 강국에 이게 웬 뜬금없는 이야기인가 싶겠지만, 사실 한국의 K-pop, 아니 아이돌은 하나의 산업으로 기능하고 있을 뿐, 그 자체로 재생산이 가능한 음악으로써 기능하지는 않는다(물론 아이돌 그 자체를 두고 해석할 때는 매우 훌륭한 코드이자 문화로 자리잡고 있다 할 수 있다).

한쪽에선 문화 상품으로서의 아이돌이 국가적인 지원을 받아 세계로 뻗어나가고 있는 반면, 또다른 한쪽에선 소수의 계층이 소비하는 언더그라운드 음악이 평행 세계를 이루고 있다. 이제는 젠트리피케이션으로 인해 운신의 폭이 퍽이나 좁아진 한국 인디 음악들이 바로 이 '달의 어두운 쪽'이다.

90년대 중반 발생 당시에 팝 펑크와 얼터너티브 록 위주였던 인디 음악은 이제 다양한 스펙트럼으로 분화했다. 그루브한 일렉트로니카부터 대중적이고 달콤한 어쿠스틱까지 이를 정도로 다양화 되었다. 이러한 틈바구니 속에서 한국식 펑크록의 노정을 따르지도 않고 대중적이지도 않은 밴드들이 존재한다. 바로 '하드코어 펑크'로 분류되는 밴드들이다.

전주국제영화제 경쟁작 오른 영화 <노후대책 없다>

노후대책없다 다큐멘터리 영화 <노후대책 없다>는 비인기 밴드의 이야기를 다룬다. 전주국제영화제 경쟁작으로 진출했다.

▲ 노후대책없다 다큐멘터리 영화 <노후대책 없다>는 비인기 밴드의 이야기를 다룬다. 전주국제영화제 경쟁작으로 진출했다. ⓒ 이주영


영화 <노후대책 없다>는 크러스트 코어 밴드인 '스컴레이드(Scumraid)'와 하드코어 펑크 밴드 '파인더스팟(Find The Spot)'의 이야기를 다룬다. 이들은 펑크 에토스를 충실히 흡수하고 있지만, 기존의 한국식 펑크-하드코어의 전통과는 몇 걸음 떨어져 있다. 한국 펑크록의 여명기에 등장했던, 이제는 완숙미 넘치는 30~40대가 된 하드코어 밴드들과도 사뭇 다르다. 이들은 하드코어 펑크 초기의 정신에 충실하고, 철저히 DIY(Do It Yourself) 정신에 기반한다. 게다가 무엇보다도 젊고, 혈기 넘친다.

이 영화는 무려 2년에 걸쳐 촬영되었다. 허나, 처음부터 기획하고 제작한 영화는 아니었다. 이 영화의 영상들은 본래 스컴레이드의 일본투어 영상을 담아보자는 취지로 아무렇게나 찍던 영상들이었다.

이동우 감독은 대학에서 영화를 전공한 젊은 영화학도이자, 스컴레이드의 베이시스트다. 그 스스로 평가하길, 스컴레이드는 "아주 시끄럽고 한국에서 아무도 모르는" 밴드다. <노후대책 없다>는 이렇게 비인기 밴드들의 이야기다.

그런데, 이 영화, 전주국제영화제 경쟁작까지 올라갔다.

밴드의 성장과정 그리다

 파인더스팟의 보컬리스트 송찬근이 마이크로 자신의 이마를 가격하여 피를 흘리고 있다.

파인더스팟의 보컬리스트 송찬근이 마이크로 자신의 이마를 가격하여 피를 흘리고 있다. ⓒ 이동우 감독


영화는 스컴레이드의 일본 투어 준비과정을 조망하며 시작된다. 그리고 영화가 진행되는 동안 밴드는 일본 공연을 통해 (비록 언더그라운드에 국한되지만) 전세계적인 밴드가 된다. 30년 전통을 자랑하는 펑크 록 팬진 <맥시멈 로큰롤>에 소개되고, 아시아의 기라성같은 크러스트 코어 밴드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게 된다(물론 크러스트 코어 자체가 언더그라운드의 언더그라운드인 장르라 듣는 사람들만 듣는다). 밴드는 조금씩 성장하게 되고, 멤버들과 그들 주변의 친구들도 함께 성장한다.

파인더스팟도 마찬가지다. 이들은 삶의 방식으로서의 펑크록을 매 순간 펼쳐보이는 현존재들이다. 보컬 송찬근은 마이크로 이마를 찢어가며 공연장을 피로 물들이고, "펑크 록 앞에 국경은 없다"며 언더그라운드의 국제주의를 각성시킨다. 그는 밴드 보컬리스트로서, 인테리어 일에 종사하는 노동자로서, 자긍심을 가지고 열정적으로 살아간다. 기타리스트 심지훈은 민주노총 소속 활동가이기도 하다. 그는 노조업무와 밴드를 병행하며, 때로는 시위 현장에서 물대포와 최루액을 맞아가며 생활한다.

때론 울고, 때론 웃는 험난한 청춘들

 <스컴레이드>의 공연장면. 이 영화는 일반적인 음악 영화보다 사회적인 메세지도 강하게 녹아있다. 실제로 파인더스팟의 기타리스트 심지훈은 집회 도중 경찰에게 연행되어 거액의 벌금을 떠안기도 했다.

<스컴레이드>의 공연장면. 이 영화는 일반적인 음악 영화보다 사회적인 메세지도 강하게 녹아있다. 실제로 파인더스팟의 기타리스트 심지훈은 집회 도중 경찰에게 연행되어 거액의 벌금을 떠안기도 했다. ⓒ 이동우 감독


영화는 이 청춘들의 궤적을 따르며 좌충우돌 흘러간다. 밴드들이 다사다난한 일정을 이어가는 동시에, 어찌 보면 이 작품의 주인공이라 할 수 있는 이평안과 문경훈은 또 하나의 이야기를 이어간다. 어머니가 보시는 앞에서 친구들과 소주를 마시고, 때로는 울고 웃으며 험난한 청춘의 현실을 있는 그대로 보여준다.

아직 젊기에 돈도 충분치 않고, 감정의 기복도 격하다. 하지만 누구는 20대 초반에 그렇지 않았던가? 적잖은 관객들은 그들의 모습에서 자신들의 주변에 하나쯤은 있을 괴짜 친구를 발견 했을지도 모른다(물론 그러기에 이들은 상식선을 많이 넘어서는 괴짜들이다). 개인적으로 이평안이 어머니에게 허세 넘치는 말을 하는 장면과 문경훈이 횟집 수족관을 깨부수고 며칠 뒤에 사과하는 장면은 이 영화의 백미라고 생각한다.

또한 이 영화는 일반적인 음악 영화보다 사회적인 메세지도 강하게 녹아있다. 실제로 파인더스팟의 기타리스트 심지훈은 집회 도중 경찰에게 연행되어 거액의 벌금을 떠안기도 했다. 또한 이들의 일본 투어 중 최근 일본에서 벌어지고 있는 혐한단체의 헤이트 스피치에 관한 이야기도 오간다. "최근 일본에서 멍청한 놈들이 헤이트 스피치를 거리에서 하고 있는데…"로 시작하는 일본 뮤지션들의 발언은 국경을 넘나드는 우애를 느끼게 한다.

펑크록과 서브컬쳐, 그리고 삶의 방식에 대하여

<파인더스팟>의 홍대 앞 놀이터 공연 <파인더스팟>의 홍대 앞 놀이터 공연 모습이다. 영화상에는 이날 있었던 밴드와 경찰간의 갈등도 여과없이 묘사된다.

▲ <파인더스팟>의 홍대 앞 놀이터 공연 <파인더스팟>의 홍대 앞 놀이터 공연 모습이다. 영화상에는 이날 있었던 밴드와 경찰간의 갈등도 여과없이 묘사된다. ⓒ 이동우 감독


영화는 뜨거운 펑크족 젊은이들의 이야기를 가득 담고 끝나지만, 결국 이 작품은 삶과 태도라는 것을 다루고 있다. 이 영화에는 펑크록과 서브컬쳐, 삶의 방식에 관해 진지한 토론이 자주 등장한다. 이것이 왜 단순한 취미가 아니고 '삶'인지, 그리고 그것을 자신들은 왜 찾아나섰는지에 대한 진솔한 이야기가 많이 다루어지고 있다. 전주 국제 영화제에서 있었던 GV에서 감독과 출연진들이 받았던 질문들 중에 가장 많은 것이 삶의 방식에 관한 것이었다.

영화가 끝나도 이들의 삶은 또한 계속된다. 후일담에 의하면 스컴레이드는 여전히 해외를 돌며 국내의 작은 공연장을 돌며 공연을 이어가고 있고, 파인더스팟의 심지훈은 여전히 벌금에 시달리고 있지만 직장과 밴드를 병행하고 있으며, 보컬 송찬근은 여전히 노동자로서 충실히 살아가고 있다. 이평안은 새 밴드를 시작했다고 한다. 문경훈은 괴짜같은 이미지와 달리 좀 더 진지한 사람이 되어 사회적 소수자를 위한 공연을 기획하고 있다고 한다.

이 영화는 한국 언더그라운드 음악의 단면을 포착한 걸작이자 삶을 어떻게 살지를 고민하게 만드는 수작이다. 영화에 출연한 모든 '호걸들'의 건투를 빌며 글을 마친다.

 스컴레이드의 도쿄 공연 모습니다. 일본 인디-언더그라운드의 유서 깊은 클럽 로프트에서 펼쳐졌다.

스컴레이드의 도쿄 공연 모습니다. 일본 인디-언더그라운드의 유서 깊은 클럽 로프트에서 펼쳐졌다. ⓒ 이동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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