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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에서 받은 가정통신문. 오전 10시까지 학교로 와 달라는 메시지와 함께, 예방 주사를 맞기 전 유의 사항이 적혀 있다
 학교에서 받은 가정통신문. 오전 10시까지 학교로 와 달라는 메시지와 함께, 예방 주사를 맞기 전 유의 사항이 적혀 있다
ⓒ 김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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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에서 온 가정통신문, 백신 주사 놓기 위해 학생 보호자 초대

몇 주 전 아이의 초등학교에서 가정통신문을 하나 받았다. 내용인즉슨, 주니어 인펜트(우리나라 유치원 과정) 학생들을 위한 백신 주사를 학교에서 실시하게 되었고, 학생들 보호자를 학교로 초대한다는 메시지였다.

'아이들이 어려서 그런가? 학교에서 주사 맞을 때 보호자가 동반하는 건 또 처음이네.'

한국에서 초등학교를 다닌 나에겐 꽤나 신기한 가정통신문이었다. 개인 병원도 아닌 학교에서 맞는 주사에 보호자가 동반한다는 것은 한 번도 생각해보지 못한 일이었기 때문이다. 이날 아이들은 2개의 예방 접종을 할 예정이었고, 가정통신문에 적힌 대로 오전 10시에 학교에 도착했다.

그런데 10시에 예약이 된 학부모는 나를 포함, 다른 한 아이 부모밖에 없었다. 알고 보니 아이들마다 백신을 맞는 스케줄이 조금씩 달랐다. 초등학교 때 교실 안에서 친구들과 같이 주사 맞던 것을 떠올리며 엄마들이 다 같이 모인 상태에서 아이들이 백신을 맞을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다.

10분 간격으로 약속 시간을 잡고, 주사를 맞는 장소도 아이들 교실이 아닌 다른 교실에서 진행되었다. 아이의 보호자가 오면 해당되는 아이가 하나씩 나와서 주사를 맞고 다시 교실로 들어가는 식이었다.

학교에 도착하니 교실 창문 너머로 공부하는 아들 모습이 보였다. 뭔가를 열심히 색칠하고 있는 모습이었다. 학교에서 공부를 하는 아이의 모습을 본 것은 오늘이 처음이다. 내 아들이 맞나 싶을 정도로 집에서 보았던 모습보다 훨씬 더 의젓해 보인다.

선생님이 아이 이름을 부르자, 아이는 하던 일을 멈추고 고개를 들었다. 창문 너머에서 웃고 있는 엄마를 보고 반가워 손을 흔들어 준다. 내 손도 어느새 자동으로 움직이고 있었다.

아이는 오늘 예방 주사를 맞는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약간 긴장을 하고 있었지만 엄마가 있다는 사실이 아이에게는 큰 힘이 되나 보다. 엄마 손을 꼭 잡은 채 예방 주사를 맞기 위해 다른 교실로 향했다. 그곳에는 간호사 선생님 두 분이 준비를 하고 계셨다. 선생님은 나에게 아이를 내 무릎에 앉히고 아이 팔을 잡아달라고 말했다.

아이의 예방 접종을 위해 보호자가 동반하는 것도 신기했지만 더 신선한 장면을 경험할 수 있었다. 바로 아이들에게 주사를 놓는 방식이었다. 주사는 양쪽 팔에 한 방씩 맞았는데, 오른쪽 팔에 주사를 맞을 땐 왼쪽에 앉아 계시던 간호사 선생님이 아이에게 동화책을 읽어 주었다.

목장이 나오고 양과 돼지가 나오는 책을 읽으면서 선생님은 책 속에 동물이 몇 마리 있는지 세어 보라는 식으로 아이의 관심을 다른 쪽으로 돌렸다. 그 찰나에 반대쪽 선생님은 아이 팔에 주사를 놓았다.

왼쪽 팔에 주사를 맞을 땐 오른쪽에 앉아 계시던 간호사 선생님이 똑같은 방법으로 다른 책을 읽어주면서 아이의 관심을 다른 곳으로 돌렸다. 순식간에 모든 일이 진행되었다.

아이는 한 번에 예방 주사 두 방을 다 맞고도 울기는커녕 언제 주사를 놓았는지조차 기억하지 못하는 눈치였다. 주사를 다 맞은 후, 간호사 선생님은 커다란 스티커 두 개를 직접 고를 수 있는 특권과 롤리팝 사탕을 선물로 주었다.

아이는 스티커와 간호사 선생님에게 받은 사탕에 그저 싱글벙글이다. 사탕을 입에 물고 룰루랄라 교실로 들어가는 아이의 가벼운 발걸음, 사탕을 먹으며 들어오는 친구를 보자 사탕을 빨리 받고 싶어 자신의 이름이 호명되기만을 기다리는 아이들 표정. 가장 공포스러운 순간이 가장 행복한 순간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을 가르쳐 준 시간이었다.

아이의 예방 접종이 끝난 후 간호사 선생님은 학부모들에게 최소 15분 이상 학교에 머물러 있기를 권장했다. 행여나 부작용으로 아이의 이상 반응을 바로 확인하기 위함이었다. 모든 과정이 매우 세심하게 이루어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모든 학년 아이들이 주사를 맞을 때 부모를 동반하지는 않는다. 또한 아일랜드 모든 초등학교에서 똑같은 시스템을 적용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학교는 나이가 어린 아이들에게는 최대한 그들 눈높이에 맞는 교육과 정서를 제공해주기 위해 노력한다.

이런 작은 아이디어는 한국 유치원이나 저학년 아이들의 예방 접종 시간에도 충분히 적용할 수 있지 않을까?


태그:#아일랜드초등학교, #아일랜드, #아일랜드교육, #해외교육, #아일랜드교육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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