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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1일 오후 인천지하철 소래포구역에서 전철을 타기 위해 플랫폼 의자에 앉아 전철을 기다리면서 들은 노부부의 대화가 재미있습니다. 소래포구까지 멀리서 왔는데 가격도 비싸고 살 것이 없다는 푸념이었습니다. 그들 부부의 손에는 작은 검은 비닐봉지가 들려있었습니다.

그들 부부가 소래포구 수산물 시장에서 산 것은 갯가재 1kg가 전부였습니다. 갯가재는 서해안 쪽에서 봄철에 많이 나오는데 삶아서 먹기는 하지만 개인적으로 즐기는 먹거리는 아닙니다.

저는 그분들과는 달리 이날 소래포구 좌판시장에 널려있는 갖가지 봄철 수산물들 가운데 사고 싶은 생선들이 많았음에도 꾹 참고 고르고 고른 몇 가지의 생선만을 산 후 꽤나 묵직한 쇼핑카트 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사고 싶은 생선이 너무 많아서 고민이었던 저와는 달리 매우 상반되는 그분들의 대화에 미소를 지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1년 전과 달라진 모습, '꽃게'가 자취를 감춘 대신...

소래포구 선착장 앞에 있는 좌판 시장의 모습입니다.
 소래포구 선착장 앞에 있는 좌판 시장의 모습입니다.
ⓒ 추광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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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리가 익어간다는 보리누름철 5월의 바다는 그 어느 때보다 온갖 수산물이 그득할 때입니다. 먼 바다에 있던 각종 생선들이 산란철을 맞아 연안으로 몰려오면서 그만큼 어부들의 그물에는 갖가지 생선들이 걸려들기 때문입니다.

인천 소래포구의 경우, 고기는 자루처럼 생긴 그물을 쳐놓고 잡는 안강망 어법을 씁니다. 고기들이 지나가는 길목에 지주를 박고 여기에 끝이 좁아지는 자루처럼 생긴 그물을 쳐놓고 물살을 따라 가는 고기가 들어오게 한 후 잡는 어획방법입니다.

이런 방식 때문에 안강망 그물에는 철 따라 갖가지 물고기가 다양하게 잡히게 마련입니다. 이맘때면 특히 많이 잡히는게 바로 암꽃게입니다.

실제 지난해 이맘때 찾은 소래포구 수산시장에는 꽃게가 가게마다 좌판마다 그득하게 쌓여 손님들의 지갑을 열기 위해 분주했었는데 올해는 지난해와 전혀 다른 모습이었습니다.

몇몇 시장내 가게들만 꽃게를 팔고 있을 뿐 봄철 암꽃게로 흥청거렸던 지난해의 모습은 찾으려야 찾을 수 없었습니다. 이곳을 찾은 사람들도 지난해에 비해 절반 정도밖에 안 되는 것 같았습니다. 이런 모습은 소래포구 수협공판장 뒤편 좌판거리에서 더욱 확실하게 알 수 있었습니다.

'병어' '아귀' '박대' '조기' '바지락' '백합' '갑오징어' '부세'

작년에 비해 손님들이 절반도 안되는 것 같았습니다.
 작년에 비해 손님들이 절반도 안되는 것 같았습니다.
ⓒ 추광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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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래포구를 찾는 가장 큰 이유는 바로 이곳 좌판시장 때문입니다. 소래포구에서 출어하는 고깃배들이 잡아오는 각종 물고기를 수매하는 곳이 수협 공판장입니다. 이곳 뒤편에서 적을 땐 몇십 명의 아주머니들이 철 따라 나는 생선들을 팔기도 합니다. 아주머니들은 새벽에 출어한 배가 잡아온 생선 가운데 수협 수매에 넘기고 남는 것을 늘어놓고 판매합니다.

지난해 이맘때는 이곳 좌판에도 암꽃게가 그득하게 쌓여 시끌벅적한 분위기를 만들어 냈습니다. 하지만 이날은 암꽃게를 파는 아주머니들은 볼 수 없었습니다. 봄철 소래포구의 경기를 좌우 한다는 암꽃게가 자취를 감췄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5월의 바다는 알을 품은 암 꽃게를 대신해 다른 먹을거리들을 넉넉하게 사람들에게 내놓고 있었습니다. 100여 명은 돼 보이는 좌판 아줌마들은 저마다 갖가지 생선을 늘어놓고 사람들과 흥정에 여념이 없었습니다.

크기가 1m는 되어 보이는 대삼치 입니다.
 크기가 1m는 되어 보이는 대삼치 입니다.
ⓒ 추광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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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이날은 사리물 때이기에 각가지 생선들이 더욱 풍성했습니다. 당장 눈에 띄는 것은 큼지막한 삼치입니다. 1미터에 가까운 삼치는 4만 원을 달라고 합니다. 몇 번이나 망설이다 끝내 사길 포기했습니다. 이어 눈에 들어온 것은 큼지막한 부세입니다. 쉽게 보기 힘든 크기의 부세는 한 마리에 1만5000원을 주고 쇼핑카트에 담았습니다. 집에 와서 무게를 달아보니 1.3kg나 나갑니다.

젓갈용 새우도 손님들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지금 잡힌 새우로 담는 젓갈을 오젓이라고 하니 맛은 보장이 될 것 같은데 몇 번을 망설이다 다음에 사기로 마음을 굳혔습니다.

병어가 눈을 또록또록 굴리면서 '저 좀 사가세요'라는 말을 하는 것 같아 손바닥보다 조금 작은놈으로 네 마리를 만원에 샀습니다. 대형마트에 가게 되면 한 마리에 5000원은 넘을 듯했습니다.

박대가 눈에 띕니다. 박대는 껍질을 벗겨서 꾸덕꾸덕하게 말려놓으면 밑반찬으로 안성맞춤입니다. 냉동실에 넣어놨다가 프라이팬에 식용유를 두른 후 약한 불로 노릇노릇하게 구워내면 밥반찬으로도 그리고 맥주 안주로도 그만입니다. 30cm 남짓 되는 박대가 6마리에 1만 원을 부르기에 망설이지 않고 돈을 건넨 후 쇼핑카트에 담았습니다.

이번엔 아귀입니다. 제법 큰놈인데 2만 원을 달라고 하기에 망설이던 끝에 쇼핑카트에 담았습니다. 집에 와서 달아보니 3kg가 넘었습니다.

처음에는 황석어인줄 알았습니다. 크기도 그렇고 딱 황석어 같은데 자세히 보니 조기 새끼입니다. 조기의 경우 냉동실에 넣어놨다가 먹고 싶을 때 꺼내 무를 깔고 자박자박하게 끓여내면 맛이 일품입니다. 특히 작은 조기는 조림을 한 후 뼈째 먹을 수 있기에 제가 좋아하는 생선입니다. 1kg에 7000원을 달라고 합니다. 착한 가격 때문에 조기새끼 또한 망설이지 않고 쇼핑카트에 담을 수 있었습니다.

봄철 서해 수산물로 갑오징어를 빼놓을 수는 없습니다. 배를 가른 후 껍질을 벗겨 살짝 데친 후 그 하얀 속살을 초장에 찍어 먹으면 맛이 일품입니다. 또 양파와 함께 초고추장으로 버무려 놓으면 밥반찬으로도 그만이지요. 입 안 가득 침이 고이면서 갑오징어 또한 쇼핑 카트에 담겼습니다.

이날 꼭 사야만 하는 조개가 있습니다. 바로 바지락과 대합입니다. 양쪽으로 생선구이집이 많은 좁은 골목길 중간쯤, 나오는 기준으로 오른쪽에 있는 이 가게는 두 명의 젊은이가 사장입니다. 이곳은 바지락 동죽등 각종 패류만 저렴하게 파는 곳으로 몇 년째 자주 들르는 가게입니다.

바지락은 깨끗이 씻은 후 냉동실에 보관해 놓으면 각종 국을 끓이거나 할 때 바로 넣어서 사용할 수 있기에 저희 집 냉동실에서 떨어져서는 안되는 식자재 가운데 하나 입니다. 중국산이지만 3kg에 1만 원입니다. 대형마트에 비해 60% 정도의 가격 밖에 안되니 만족할만한 가격입니다.

이날 마지막으로 쇼핑카트에 담긴 것은 백합입니다. 중간정도 되는 전복크기의 백합이 1kg에 1만 원이니 대형마트에 비해 80% 정도 되는 가격인 것 같습니다.

지난해 11월 부안 격포 해수욕장을 간적 있는데 이날 아침에 나온 국이 바로 백합국이었습니다. 백합에 애호박을 넣고 끓인 후 청양고추를 쫑쫑 썰어 넣은 백합국은 알싸한 맛과 뽀얀 국물이 어우러지면서 그 맛이 일품이었습니다. 지난해 먹었던 백합국의 맛을 상상하는 즐거움 속에 백합도 쇼핑카트에 안착했습니다.

이날 사온 생선들 가운데 몇 가지 입니다. 아귀 조기새끼 병어 박대 입니다.
 이날 사온 생선들 가운데 몇 가지 입니다. 아귀 조기새끼 병어 박대 입니다.
ⓒ 추광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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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고, 다듬고, 회 뜨고, 초장에 무치고...

당장 저녁식탁이 풍성합니다. 먼저 1.3kg 큼지막한 부세는 두 쪽 포 뜨기를 한 후에 회로 냈습니다. 맛을 보니 민어와 흡사합니다. 크다 보니 부레도 있습니다. 회를 뜬 나머지는 매운탕을 끓였는데 뽀얀 국물이 우러나면서 고급 일식집에서 먹는 민어매운탕 맛이 납니다.

병어는 살만 동태 포처럼 회칼을 이용해 저며냈습니다. 네 마리의 병어 앞뒤를 그렇게  포를 뜨니 밥그릇으로 2/3공기 정도 되는 양이 나옵니다. 손으로 꼭 쫘서 물기를 없앤 후 오이와 양파를 썰어서 넣고 초고추장으로 버무린 후 깨를 솔솔 뿌리니 맛이 일품입니다. 고등학교 2학년인 둘째 아이가 맛을 보더니 '병어는 맛있는 음식 베스트5에 꼽아야겠다'라고 말합니다.

부세로 뜬 회 입니다. 양이 많아 반쪽만 썰어서 먹고 나머지는 냉장실에 넣어놨습니다.
 부세로 뜬 회 입니다. 양이 많아 반쪽만 썰어서 먹고 나머지는 냉장실에 넣어놨습니다.
ⓒ 추광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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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오징어는 내장을 손 질 한 후 뜨거운 물에 데쳐냈습니다. 하얀 속살이 너무나 아름답습니다. 맛 또한 일품입니다. 초장에 찍어서 한입 먹으니 담백한 맛이 입안을 가득 채웁니다.

조기 새끼는 깨끗이 씻은 후 250g씩 4등분해 냉동실에 무사히 안착시켰습니다. 냉동실에는 바지락과 백합도 한쪽을 차지합니다.

아귀는 다음날 먹을 요량으로 다듬은 후 토막만 내놨습니다. 아귀의 위를 꺼내서 다듬다 보니 안에서 밴댕이 새끼와 함께 플라스틱 컵이 나옵니다. 바다에 떠다니던 컵을 먹은 후 그때 까지도 위에 담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마지막으로는 박대입니다. 예전에는 손질에 애를 먹었는데 이제는 요령을 알았습니다. 깨끗이 씻은 후 바닷물과 같은 정도의 염도의 소금물에 12시간 정도 담가둔 후 껍질을 벗기면 됩니다. 하룻밤 소금물에 담가 두었던 박대는 위아래 머리쪽에 살짝 칼집을 내고 손으로 살살 잡아당겨 껍질을 벗긴 후 꾸덕꾸덕하게 말리면 됩니다.

껍질을 벗긴 박대를 대나무 소반에 담아 음지에서 말리고 있습니다.
 껍질을 벗긴 박대를 대나무 소반에 담아 음지에서 말리고 있습니다.
ⓒ 추광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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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로 다시 돌아갑니다. 1시간여의 소래포구 시장에서의 장보기를 마친 후 다시 집으로 돌아오는 소래포구 전철역입니다. 노부부의 손에 들린 1kg쯤 정도 되어 보이는 갯가재가 담겼다는 검정 비닐봉투와 15kg에 육박해 꽤 묵직한 제 쇼핑카트를 비교해보니 속으로 미소를 짓습니다.

왜 저분들은 그 많고 많은 수산물이 있는데도 살 것이 없다고 투덜거리셨을까요. 여러분들은 그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신문고뉴스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소래포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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