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2013년 늦가을 어느 날, 친구와 인천종합예술회관에 갔다. 셰익스피어의 4대 비극 중 하나인 <리어왕>을 인천시립극단이 무대에 올린다고 해, 보러간 것이다.

1605년께 쓰인 원작은 늙은 왕 리어와 그의 세 딸을 둘러싼 사랑과 배신, 어리석음과 같은 인간의 다양한 모습을 보여줬다. 셰익스피어의 작품 중 가장 처절하고 참담한 비극이란 평을 얻고 있는 <리어왕> 원작을 인천시립극단은 충실하게 재현했다.

특히 원작에 쓰여 있는 문구를 연극 대사로 만날 수 있어 반가웠다. 연극 <리어왕>에서 주연을 했던 서국현(56) 시립극단 수석단원을 지난 20일 만났다. 세월은 그에게 연륜과 멋스러움을 덧대어 주었다.

연극이란 움직이는 그림
   
서국현 인천시립극단 수석단원.
 서국현 인천시립극단 수석단원.
ⓒ 김영숙

관련사진보기


충남 공주시 계룡산 자락에서 태어난 서 수석은 어릴 때 홍역을 앓았다. 위로 형 둘이 홍역으로 세상을 떠, 그의 아버지는 그의 출생신고를 몇 년 후에 했다. 네 살 때 인천 동구 송림동으로 이사를 온 서씨네는 동네에서 비교적 부유한 편이었다. 어릴 때 하늘이 노랗던 경험을 곧잘 했던 서씨를 두고 주변 어른들은 오래 살지 못할 거라고 수군대기도 했다. 그러나 남동구 구월동으로 이사 와 부모님이 운영하는 양계장 일을 도운 후로는 건강해졌다.

'구월초등학교를 다닐 때부터 책읽기를 좋아해 세계위인전집을 다 읽었다'는 서씨는 그림 그리기도 무척 좋아했다. 선인중고교를 다닐 때도 그림을 꾸준히 그려 대회에서 곧잘 상을 탔지만, 중앙대 동양화과에 지원했다가 떨어진 후 홧김에 서울예대 영화과에 입학했다. 적성에 맞지 않아 방황했다.

"친구들이 서울예대 디자인학과를 권했는데, 상업예술에는 관심이 없었어요. 예술가 기질만 있지 경제적 개념과 먹고 사는 것에 대한 생각이 부족했습니다. 순수 회화를 좋아해 지금도 순수 연극에 관심이 많아요."

책읽기를 좋아하고 그림만 그린 내성적 성격의 서씨와는 달리 영화과 학생들은 활발해, 더욱 적응이 어려웠다. 재수를 할까, 갈등하고 있을 무렵 연극과 2학년 선배들이 졸업 작품을 연습하는 걸 봤다. 요절한 독일의 천재 작가 게오르그 뷔히너의 단편 <보이첵>을 연극으로 만들고 있었다. 서씨는 연극이 움직이는 그림으로 보였다. 화려한 의상을 입고 서 있는 배우들이 회화의 한 장면 같았다. 그걸 보고 연극을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79학번인 서씨는 1979년 인천에서 극단 '성우'를 만들었다. 1980년에는 인천의 소극장 돌체에서 '서국현 그룹'이라는 이름으로 <엘리베이터>라는 작품을 공연했다. 서씨가 처음으로 연출하고 주연을 맡은 그의 첫 작품이었다.

1년에 한 번 쉬고 매일 연기해도 행복했던 시절
   
2013년 인천시립극단 정기공연 ‘리어왕’의 팜플릿에 실린 사진.
 2013년 인천시립극단 정기공연 ‘리어왕’의 팜플릿에 실린 사진.
ⓒ 김영숙

관련사진보기


"지금은 예술계에서 은퇴한 친구가 많은데 '서국현 그룹'에 같이 있던 사람 중에는 영화감독, 아동극 하는 사람, 무술 고수 등이 있었어요. 1학년 때 세종문화회관 별관 무대에 아동극을 올리는데 무대감독을 맡아달라고 해 함께했죠. 그때 무대에 빠져들어 원래는 연출 쪽 일을 하려했습니다."

서씨는 1981년 극단 '미추홀'을 친구 세 명과 창단했고, 이듬해 남구 주안동 옛 인천시민회관 대강당에서 극단 '집현'이 연극 <리어왕>을 공연했을 때 단역을 맡았다. 그 당시 배우 최종원이 리어왕을 맡았다. 극단 '미추홀'과 '집현'은 지금도 꾸준히 활동하고 있다.

서 수석은 '리어왕' 공연을 끝내고 입대해 1984년 제대한 뒤 인천에서 '우리문화가꾸기'라는 모임을 만들었다. 인천의 시인, 연극인, 미술인들과 인천의 문화를 바꿔보자는 취지로 만든 것이다. 시낭송이나 설치예술, 퍼포먼스 등을 했고, 동인천 중앙시장에서 '사발통문'이라는 술집을 운영하기도 했다.

인천에서 활동하던 서 수석은 1985년, 서울 종로에 있는 마당세실극장에서 배우로 활동하기 시작했다. 그곳에서 3년간 1월 1일 하루 쉬고 무대에 섰다.

"한 작품으로 보름간 공연하면 그 다음 보름은 다음 작품 연습에 매진했어요. 보름에 한 편씩 작품이 만들어지던 때였죠. 매일, 그것도 하루에 두 번씩 공연하니까 힘들었지만, 실력이 많이 늘고 행복했던 시절이었습니다. 연극 활동을 하는 후배들 중에 그때 고등학생이나 대학생 신분으로 세실극장을 찾던 마니아가 많은데, 저를 봤다고 하더라고요."

서씨는 그 후 서울 여의도 챔프 예술극장과 신촌 예당소극장에서 활동하다가 1991년 선배의 권유로 인천에서 사업을 했다. 그런데 1992년 말에 교통사고를 당해 장이 파열됐고, 수술 후 '사업은 하지 말아야겠다'고 다짐했다. 수술한 지 한 달 만에 인천연극제 예선전에 참여했다.

'그것은 목탁 구멍 속의 작은 어둠이었습니다'라는 불교 연극이었다. '3000배를 해야겠구먼'이라는 대사가 있는데, 그게 얼마나 힘든지를 경험하고자 배우들과 수봉공원 입구에 있는 '부용사'에서 3000배를 하기도 했다.

"장파열 수술 직후라 2500배를 하다가 쓰러졌고, 나머지 500배를 선배가 대신 해줬어요. 그 공덕인지 그 선배가 중풍으로 쓰러졌는데 멀쩡하니 회복됐어요."

그 예선전에서 서 수석은 작품 대상과 남우주연상, 연출상을 받았고, 인천 대표로 전국대회에 참가해 남우주연상을 탔다.

인천시립극단을 가장 오래 지켜온 사람

서 수석은 시립극단 배우 21명 중 최고령자이자 가장 오래 동안 시립극단을 지킨 사람이다.

"1993년 시립극단에서 '수전노'라는 작품 출연을 제의해 함께했고, 1994년 이승규 예술감독이 시립극단으로 온다고 해, 단원 모집에 지원했습니다. 이승규 연출가는 서울에서 극단 '가교'를 창단했고, 전국적으로 유명한 사람입니다. 1999년까지 시립극단 예술감독으로 계셨는데, 그때 좋은 작품을 많이 했습니다."

무대에선 왕도하고 장군도 해보고, 신부, 스님, 목사의 역할도 해본 서 수석은 정작 자신의 인생은 바보처럼 살았던 것 같다고 말했다. 마음이 여려 지인들의 빚보증을 서주다 힘들었던 경험도 몇 차례 했고, 미술전시회를 할 수 있는 갤러리를 마련했는데 건물 주인이 말도 안 하고 팔아 투자한 돈을 날리기도 했다. 그러다 만난 작품이 2013년 <리어왕>이었다.

"중년 이상의 배우들이 가장 선망하는 작품이에요. 리어왕의 인생 자체가 드라마틱합니다. 아버지로서 권력을 잡았지만 자신의 오만함으로 자식들한테 재산을 물려주고도 배신을 당해 미치광이로 떠돌잖아요. 부귀영화를 누리다 타락하는 리어왕을 다들 해보고 싶어 합니다. 열흘 공연했는데 연극이 끝나고도 거기에 빠져서 한동안 우울증에 시달렸어요."

민간극단과 시립극단을 두루 거친 서 수석에게 어디가 나은지 물었더니, 장단점이 있단다.

"시립극단은 고정 월급이 나오니까 경제적으로 안정적인 반면, 틀에 박혀 편협해지거나 게을러질 수 있어요. 자기 노력을 하지 않으면 배우로서 안 좋죠. 이에 비해 국공립 극단이 아닌 곳에서 활동하는 친구들은 경제적으로 힘들지만, 영화나 방송 출연 등의 기회가 옵니다. 유명한 영화배우들 중에 연극배우 출신이 많아요. 시립극단에 있던 연극인 중에도 영화배우나 방송 활동을 하는 사람도 있고요."

서 수석은 단원들이 나태해지지 않으려고 자기관리를 철저히 한다고 덧붙였다. 무에타이나 수영, 무용 등, 몸 관리나 기술을 배우기도 하고 악기는 하나 이상씩 모두 배운단다.

"저도 3년 전부터 색소폰을 배우고 있습니다. 예전에는 장구 등, 사물놀이도 했고요. 배우들이 무대 앞에 서는 스트레스가 심합니다. 시립극단 단원으로서 시민들에게 즐거움과 감동을 전달하려 기량을 쌓고 있습니다."

예술은 사회의 청량제
   
인천시립극단의 2016년 첫 정기공연 작품인 '꿈하늘' 포스터
 인천시립극단의 2016년 첫 정기공연 작품인 '꿈하늘' 포스터
ⓒ 김영숙

관련사진보기


시립극단 단원들은 5월에 개막할 연극 준비로 한창 바쁘다. 단재 신채호 선생의 작품 <꿈하늘>을 무대에 올린다. 서 수석은 독립운동가 이회영 역을 맡았다. 5월 27일부터 29일까지 인천종합문화예술회관 대공연장에서 열리는, 올해 시립극단 첫 정기공연이다.

서 수석은 "인천시립극단은 전국 어디에 내놔도 손색 없이 작품을 잘 만들고 연기를 잘 한다"고 자랑한 뒤 "그렇기에 시민들에게 충분히 사랑받을 자격이 있다"고 덧붙였다.

"무대에 서 있는 시간이 제일 행복해요. 관객들은 배우를 통해 삶의 희로애락을 느끼죠. 연극이나 음악 등, 좋은 작품 한 편을 만나면 정서가 순화되잖아요. 요즘 경쟁사회니 정서가 메마르다느니 하는데, 학생들한테는 예술교육이 줄어들고 성인들에게는 예술을 접할 기회가 부족해서 그래요. 예술은 사회의 청량제입니다."

덧붙이는 글 | <시사인천>에 실림



태그:#서국현, #인천시립극단, #리어왕, #꿈하늘, #수석 단원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