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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불어민주당 문재인 전 대표가 14일 오전 서울 서대문구 자택에서 나와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더불어민주당 문재인 전 대표가 14일 오전 서울 서대문구 자택에서 나와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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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사람의 욕심이나 판단착오로 그가 속한 집단 전체가 어려움에 봉착했을 때, 그 개인은 어떤 책임을 져야 하나. 만일 그 개인이 정치인이고, 그가 속한 집단이 일개 정당 정도가 아니라 국가 전체라면, 그 국가가 지옥으로 떨어질 상황이 됐다면, 도무지 그 개인이 져야 할 책임이라는 것이 어떤 것이어야 할지 가늠이 안 된다. "미안하게 됐다"는 사과에서부터 의원직 사퇴, 정계은퇴에 이르기까지, 심지어 옛 일본의 사무라이들처럼 자살이라는 극단적 방법으로 책임을 지겠지만, 글쎄, 국가가 망할 지경에 빠졌을 때 고작 그런 것들로 책임을 다 했다고 할 수 있을까.

지난 3월 초, 민주진영으로부터 야권연대의 요청-아니 그 때의 그것은 호소였고 애원에 가까운 것이었다!-가 빗발치고 있을 때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는 경향신문과의 단독인터뷰에서 "(4·13 총선에서) 국민들은 독선적이고 무능한 새누리당에 절대 200석을 주지 않는다. (야권 분열로 새누리당이 압승한다면) 내가 책임지겠다"고 말했다. 많은 사람들이 "(실제 새누리 압승이라는 그런 상황이 닥쳤을 때) 도대체 당신이 진다는 책임이 무슨 소용이 있으며 무슨 위로를 줄 것인가" 라며 어떤 이는 혀를 차고, 어떤 이는 발을 동동 굴렀던 기억이 생생하다. 안철수 대표가 혜안이 있었던지 다행히 그런 일은 벌어지지 않았다. '안철수의 책임'이라는 것이 무언지, 아주 작은 호기심마저 그대로 묻혀졌다.

안철수 대표는 또 관훈토론회라는 공식 자리에서 "국민의당이 총선에서 40석을 얻지 못하면 책임을 지겠다"고 장담했다. 그리고는 "호남에서 20석 이상, 비례대표에서 정당지지율 20% 이상을 목표로 해서 10석 정도, 수도권과 충청에서 8석 이상"이라고 구체적인 내용까지 덧붙였다. 결과는 충청에서 전멸, 수도권에서 단 2석이지만 어쨌든 전체 38석으로 얼추 40석에 맞춤으로써 그가 공언한 "국민 눈높이에 맞는 책임"이 무언지도 그대로 묻혀지게 됐다. '호남지역당'이 돼 버렸지만 숫적으로는 단 2석이 모자란데 대해서까지 책임을 묻는 것은 야박하다.

안철수의 책임, 문재인의 책임

반면 안 대표가 라이벌로 생각하는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전 대표도 '책임'을 지겠다고 했다. 그의 '책임'은 구체적이었다. 오래 전 김종인 대표를 영입하는 자리에서 "총선 결과는 끝까지 저의 책임"이라고 공언했고, 선거를 눈앞에 두고서는 "(호남이) 저에 대한 지지를 거두겠다면, 저는 미련 없이 정치 일선에서 물러나겠다. 대선에도 도전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이를 근거로 박지원 같은 이는 벌써부터 "약속을 지키라"고 압박하고 있다. 조중동과 종편들도 곧 벌떼처럼 달려들 것이다.

참으로 가당찮다. 더민주는 문재인 전 대표가 그 결과를 책임지겠다고 공언한 총선에서 대승을 거두었다. (김종인 대표가 자신도 책임을 지겠다고 쳐 놓은 107석을 훌쩍 넘어섰다) 여기에 이르기까지 말 그대로 백의종군한 문 전 대표의 공로가 전혀 없는가. 총선 막판, 대권 레이스 1위 주자의 정치생명을 건 사즉생의 승부수가 호남 이외 전 지역에서 2040 연령층, 호남 출신 전통적 야권 지지층 결집의 모티프가 되고, 그것이 야권 돌풍의 한 동력이 됐다고 보는 것이 무리인가.

게다가 이른바 안철수당이 야권의 대오를 흩트리며 스스로 호남지역당으로 움츠러든 상황에서, 더민주는 새누리당의 과반을 저지하고 오히려 전국정당으로 우뚝 섰다. 문재인이 호남에 가서 꿇고 지지를 호소하는 모습에서, 비호남 유권자들이 오히려 동정심을 느끼며 "저 당이 호남당이 아니구나"하는 인식을 갖게 됐다면, 그것도 터무니없는 상상인가. 그럼에도 호남에 갇힌 자들이, 호남에 씌워진 굴레를 깨뜨리고 비약하려는 자에게 "호남의 지지를 얻지 못했으니 은퇴하라"고 요구한다면 그런 상황은 비극인가, 희극인가.

호남이 이번 총선에서 더민주에 등을 돌린 것은 정권교체에 대한 희망을 주지 못한다는 것에 대한 실망감과 호남을 홀대했다는 헛소문에 대한 섭섭함이라는, 즉 문재인 책임론이 있다. 또 지금은 완전히 다른 버전으로, 문 전 대표가 영입한 김종인 대표에게 국보위 전력이 있다는 것, 비례대표 파동, 지역구에서 구 인물을 대체한다고 내놓은 새 인물들의 면면이 대부분 잘 알려지지 않은 함량미달이었다는 것이 유력한 요인들로 꼽혀진다고 한다. 이것은 일종의 김종인 책임론이다.

나는 여기에 한 가지 호남 내부적 요인을 더 하고 싶다. 호남의 '소지역주의'다. 오랜 세월 지역차별에 고통받아온 호남을, 호남의 구태 정치인들이 소지역주의를 발동해 볼모로 잡은 것이다. 그래서 나는 호남에서의 국민의당 승리가 호남 수구기득권세력이 민주개혁세력을 거짓말로 기만하고 협박한 결과라고 확신하는 것이다.

그러나 더민주는 호남에서 참패한 사이 다른 지역에서 약진했다. 정권교체를 열망하는 야권 지지자들은 더민주의 호남 참패보다도 부산과 경남, 대구에서의 승리, 그리고 수도권에서의 압승을 더 값지게 여길 것이다. 생각있는 호남인들도 그러할 것이다. 앞으로는 더욱 그러할 것이다.

더구나 호남의 문재인 지지 여부는 처음부터 총선에 국한되는 것이 아니었다. 문 전 대표는 "호남의 정신을 담지 못하는 야당 (대선) 후보는 이미 그 자격을 상실한 것과 같다"며 "진정한 호남의 뜻이라면 저에 대한 심판조차 기쁜 마음으로 받아들이겠다"고 말했다. 여기에서 말하는 '호남의 정신'이란 총선에서만 가름될 성질의 것이 아니다. 정권교체를 향한 긴 레이스에서 '호남의 정신'은 끊임없이 물을 것이다. 민주인가, 아닌가. 개혁인가, 아닌가. 진보인가, 아닌가. 대선 승리에 대한 희망이 있는가, 없는가. 그렇다면 결국 은퇴해야 할 사람은 문재인인가, 다른 사람들인가.

이처럼 '호남의 정신'은 호남에 갇혀 있는 것이 아니며, '호남의 지지'가 항상 한 곳에 머물러 있는 것도 아니다. 그러므로 "(호남의 지지여부를) 겸손하게 기다려 보겠다"는 문재인의 말이 설득력을 갖는 것이다. 큰 싸움, 긴 싸움은 호흡을 길게 가져야 한다.

덧붙이는 글 | 페이스북에 올릴 것임



태그:#문재인 , #안철수, #총선, #책임, #은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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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이제 다시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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