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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한국에서는 총선을 앞두고 한 여당 정치인의 취중 막말이 종합편성채널을 통해 공개되는 바람에 한동안 정국이 시끄러웠다. 그런데 캄보디아에서도 얼마 전 한 유명 정치인의 스캔들을 담은 녹취내용이 공개되어 요즘 정국이 꽤나 시끄럽다.

유명 정치인의 불륜스캔들이 터진 것은 지난 3월 초로 거슬러 올라간다. 한 페이스북 계정에 두 남녀 간 전화 내용을 담은 녹취파일이 34개나 올라왔다. 그 안에는 연인 사이에나 오갈 만한 은밀한 대화 내용이 담겼다. 이와 함께 캄보디아 유력 정치인으로 추정되는 한 남성이 상대 여성에게 작은 사업을 할 수 있도록 미화 4천 불(약 467만 원)을 주고, 그녀가 살 아파트도 마련해주겠다는 내용이 포함되어 있었다.

이 문제의 녹취 파일은 'SNS'를 통해 삽시간에 전국으로 퍼져나갔고, 그 유력 정치인이 과연 누구냐에 세간의 관심이 쏠리기 시작했다. 그런데 놀랍게도 녹취 파일 속 목소리 주인공으로 추정되는 인물이 다름 아닌 제1야당인 구국당(CNRP) 부총재라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정치적, 사회적 파장이 커질 대로 커진 상태다.

야당 부총재 스캔들에 지지자들 충격

최근 불륜 스캔들로 정치적 위기에 빠진 켐 소카 캄보디아 야당 부총재. 지난 2013년 12월 야당집회 당시 연설 모습.
 최근 불륜 스캔들로 정치적 위기에 빠진 켐 소카 캄보디아 야당 부총재. 지난 2013년 12월 야당집회 당시 연설 모습.
ⓒ 박정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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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당 정치인의 스캔들 소식을 접한 일반 국민들은 물론이고, 현재 야당 지지자들은 이미 큰 충격과 실망감에 빠진 상태다. 야당 대변인도 처음에는 그저 '지저분한 속임수'라고 언급했을 뿐, 사건 발생 보름이 넘도록 이렇다 할 해명조차 내놓지 못할 정도로 곤혹스러워하는 모습이다.

현지 언론에서는 거의 하루도 거르지 않고 야당 정치인의 스캔들 관련 기사를 내보내고 있지만, 정작 목소리의 주인공으로 의심받고 있는 야당 부총재 켐 소카는 이 사건에 대해 어떠한 반응도 보이지 않고 묵묵부답으로 일관하고 있다. 아무래도 시간이 해결해줄 것으로 믿는 눈치다. 하지만 이번 스캔들 의혹과 이에 따른 파장은, 그의 의도와 달리 시간이 갈수록 눈덩이처럼 커져가는 상황이다. 

최근에는 약 100여 명의 젊은 대학생 그룹이 야당 총재의 직접 해명을 요구하며 야당 당사까지 몰려와 시위를 벌였다. 이 바람에 사건이 일파만파 커져버렸다. 지난주 이들 대학생은 부정부패방지위원회(ACU)측에 야당 부총재의 부정축재 의혹을 조사해 달라고 요청했다.

부정부패방지위원회 청문회에 출석한 대학생 대표 '스레이 짬로은'은 녹취 테이프에 나오는 목소리의 주인공이 켐 소카 야당 부총재가 맞다고 확신한다며, 그가 어떤 경로로 그 같은 부동산을 취득했는지 조사해달라고 의뢰했다. 또 녹취 속 남성이 여성에게 주기로 약속한 미화 4천 불의 출처를 밝혀달라고도 요구했다.

그는 덧붙여 야당 부총재를 법원에 고소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단순한 성 스캔들을 둘러싼 도덕성과 윤리 문제를 벗어나 이제는 야당 정치인의 부정축재 의혹으로 확대된 것이다.

야당과 인권단체를 포함한 일각에선 이들 대학생의 행동을 두고 정부여당의 조종을 받는 '프락치'라는 의심의 눈초리를 보내고 있다. 하지만 대학생들은 이를 전면 부인한다. 정부여당의 고위정치인 중에도 고급 맨션과 막대한 재산을 가진 정치인들이 많은데, 정작 그들에 대해서는 왜 문제제기 하지 않느냐고 묻는 현지 언론 기자들의 질문에 대해서도 이 그룹의 리더인 스레이 참로은은 "여당 정치인들이 부정부패에 연루되었다는 별다른 증거가 없다"며 다소 궁색한 변명을 늘어놓았다. 이들은 특정 정당으로부터 금품을 받거나 지원을 받았을지도 모른다는 의혹에 대해서도 강력 부인하고 있다.

그러한 가운데 설상가상으로 친야 성향의 유명 여성까지 나서 야당 지도자 비난 공세 대열에 가세하는 바람에 이 야당 정치인은 더욱 곤경에 빠진 상태다. '티 소완다'라고 불리는 이 여성은 무려 130만 명이 넘는 팬클럽을 가진 캄보디아에서는 꽤나 유명한 페이스북 스타다. 수년째 SNS에 야당을 옹호하는 콘텐츠를 올려 젊은 진보층에게 높은 인기를 얻었다.

그런데 이 젊은 여성이 갑작스레 흥분하게 된 이유는 전화 대화 속에 자신의 이름이 거론되었기 때문이다. 녹취내용에는 놀랍게도 켐 소카 부총재로 추정되는 남성이 티 소완다에게 차를 사주거나 돈을 준 사실을 부인하는 내용이 나온다. 게다가 티 소완다가 돈을 벌기 위해 야당의 이름을 함부로 이용하고 있다고 비난하며 상대 여성을 달래는 내용까지 나오자 발끈한 것이다. 티 소완다는 현재 야당 정치인을 명예훼손죄로 법정에 고소한 상태다.

가장 신난 사람은 31년째 장기집권 중인 총리

연설 중인 캄보디아 훈센 총리.
 연설 중인 캄보디아 훈센 총리.
ⓒ 박정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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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듯 야당 지도자의 스캔들과 부정부패 의혹을 둘러싼 사건이 연일 매스컴에 오르내리자,  31년째 장기집권중인 훈센 총리는 신이 난 눈치다. 그는 평소 눈엣가시처럼 여겼던 야당 부총재의 불륜 스캔들이 터지자 때를 기다렸다는 듯 공개적인 망신주기에 나섰다.

지난 18일(현지시각) 한 대학 연설에서 훈센 총리는 야당 부총재의 스캔들 의혹을 사실상 '기정사실화'하며 야당 정치인의 불륜스캔들을 입증할 만한 여러 장의 사진을 직접 확보한 상태라고 밝혔다. 심지어 총리는 야당 부총재가 문제의 이 여성과 함께 태국 방콕으로 여행을 떠난 적이 있으며, 그녀의 해외출국 사실도 얼마든지 입증할 수 있다고까지 말했다. 야당 정치인의 불륜 스캔들 의혹을 더욱 부채질하는 모습이다.

그가 이러한 증거 사진 자료를 어떻게 경로로 입수했는지 알 수는 없지만, 현지 전문가들은 캄보디아에서는 충분히 가능한 일이라고 입을 모은다. 

이에 앞서 이번 불륜 스캔들의 상대로 거론된 여성은 사건 발생 9일 후인 지난 10일(현지시각) 현지 영자신문 〈프놈펜 포스트〉와의 인터뷰에 나서 자신의 얼굴을 공개했다. 그녀의 나이는 25살이며 직업은 현직 미용사다. 현재 이 여성은 현재 '에드혹'(Adhoc)이란 국제인권단체의 보호 아래 변호사의 도움을 받고 있다. 본명이 '꼼 찬다라티'인 이 여성은 '몬 스라이'라는 또 다른 애칭을 갖고 있다.

그런데 여기서 이 여성의 이름에 잠시 주목할 필요가 있다. 두 남녀 간 녹취내용을 공개한 페이스북 계정 이름이 바로 '몬 스라이'로 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이 문제에 대해 이 여성은 자신의 페이스북이 최근 누군가에 의해 해킹되어 한동안 자신의 계정을 사용할 수 없었다고 진술했다. 경찰소환조사에 이미 2차례나 응한 바 있는 이 여성은 켐 소카는 자신의 고객에 지나지 않는다며 야당 부총재와는 아무런 관계도 없다고 밝혔다. 녹취 파일 속 목소리의 주인공 역시 자신이 아니라고 강력히 부인했다.

그러나 그녀의 지인들은 전화 목소리가 그녀의 것 같다고 말한다. 다만, 정황상 그녀의 목소리가 맞다 하더라도 이 여성이 스스로 자신의 페이스북에 그러한 녹취 파일을 올렸을 개연성은 거의 없다는 게 일반적인 판단이다. 대화 녹취내용 대부분이 그녀에게 유리한 게 단 하나도 없기 때문이다. 현재로선 그녀 역시 그저 단순한 사생활 침해 피해자일 가능성이 높다. 그렇다면 누가 어떤 의도와 방식으로 전화내용을 도청했으며 누가 가짜 페이스북 계정까지 만들어 녹취파일을 올렸을까?

사실, 사건 발생 초기 이 전화내용을 녹취한 사람이 누구냐를 두고도 논란이 잠시 있었다. 하지만 무슨 까닭인지 수사당국은 지금까지도 IP 추적 등 페이스북을 해킹한 범인을 찾으려는 의지가 별로 없어 보인다. 게다가 문제의 이 페이스북 계정은 이미 사라진 상태다.

이 때문에 일부 야당 지지자들은 훈센 정부가 정보기관을 통해 야당지도자의 은밀한 전화내용을 녹취한 것으로 의심하는 분위기다. 하지만 정황만 있을 뿐 현재로써는 아무런 증거는 없다. 캄보디아 형법 301조에도 다른 사람의 대화를 녹취하거나 엿들을 경우 처벌을 한다는 조항이 있다. 단, 정부의 허가를 받으면 허용된다고 명시되어 있기에 정부 쪽 누군가가 도청 범행을 저질렀을 가능성에 대한 추론만 나돌 뿐이다. 

국민 반응 싸늘... 끝없이 추락하는 야당

지난 2103년 총선 직후 정부여당의 부정선거 개입의혹과 관련, 도심 시위에 나선 제1야당 두 지도자들의 모습(왼쪽부터 켐 소카 부총재, 삼 랭시 총재)
 지난 2103년 총선 직후 정부여당의 부정선거 개입의혹과 관련, 도심 시위에 나선 제1야당 두 지도자들의 모습(왼쪽부터 켐 소카 부총재, 삼 랭시 총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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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부정부패방지위원회(ACU)에서는 지난 24일(현지시각) 전문가들의 분석내용을 토대로 녹취록 속 목소리 주인공이 야당 부총재라고 공식 발표했다. 아울러 야당 부총재를 조만간 소환해 재산축적 의혹 등을 조사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국회 역시 야당 부총재가 직접 이 사건을 공식적으로 해명하라고 요청한 상태다.

돌이켜 보면, 사실 야당 부총재가 여성과 관련된 스캔들로 구설에 오른 것이 처음은 아니다. 지난 2013년 총선을 불과 한 달여 앞두고 열린 야당 집회에 한 여성이 나타났다. 그녀는 켐 소카 야당 부총재의 정부(情婦)며, 그들 사이에 낳은 딸이 있다고 밝혔다. 이 여성은 딸아이의 양육비를 요구하고 나섰다. 당시 그 여성은 결국 야당 지지자들과 몸싸움 끝에 쫓겨났다. 이후 법원에 소송까지 제기했지만, 흐지부지되고 말았다.

이러한 스캔들 전력 때문에 야당 부총재를 바라보는 국민의 시선은 매우 따갑다. 이번 스캔들도 대부분 기정사실로 믿는 분위기다. 지난해 여당의 단독 투표로 그가 국회 부의장 자리에서 쫓겨났을 당시 쏟아졌던 국민들의 동정여론도 사라진 지 이미 오래다. 야당을 향한 신뢰도도 추락했다.

설상가상으로 삼랭시 야당 총재마저 허 남홍 외무부 장관을 모함했다는 혐의로 구형된 징역 2년형을 피해 망명 중이라, 야당에 실망한 지지자들이 많다. 그런 가운데 야당을 홀로 지켜야 할 부총재마저 불륜 스캔들로 위태로운 지경에 이르고 말았다. 일부에서는 이번 여파로 2년 후 총선에서 야당의 승리를 기대하기는 힘들다는 분석까지 나온다.

현 야당에 실망한 지지자 및 진보세력들은 새로운 대안 정당을 찾고 있지만, 이마저도 쉽지 않은 상태다. 현재로써는 두 야당 정치인을 대신할 만한 새로운 정치적 구심점을 찾기가 힘들기 때문이다. 

한편 현지 정치평론가 중에는 이번 스캔들이 야당 지도자 흠집 내기로 야당을 분열시키려는 계략이 숨어있다고 보는 이가 적지 않다. 정치평론가 오우 위락씨도 그중 한 사람이다. 그는 최근 현지 언론과의 인터뷰를 통해 "정치적인 관심이 아닌 개인의 사생활과 선정성에 초점을 맞추어 국민으로 하여금 현실정치를 멀리하게 하려는 정치적인 의도가 깔려 있다"고 비난했다.

그렇지만, 이번 스캔들은 훈센 총리와 정부여당에 유리한 방향으로 흘러가는 모양새다. 야당에 대한 지지는 끝을 모를 정도로 추락하고 있고, 현재로썬 상황을 타개할 마땅한 대안도 없어 보인다. 물론 총선까지 아직 2년이나 남아 있고, 여러 변수가 도사리고 있어 미리 단정 짓기는 어렵다. 하지만 지금의 정치구도 상황만 본다면 66세인 훈센 총리가 74세까지 집권하겠다는 호언장담이 현실이 될 확률이 점점 높아지고 있다.


태그:#캄보디아, #불륜 스캔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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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프 캄보디아 뉴스 편집인 겸 재외동포신문 기자

'좋은 사람'이 '좋은 기자'가 된다고 믿습니다. 오마이뉴스 정치부에디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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