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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신기 박사의 글  <김종인 파동, 총선 이후에 또 터진다>를 잘 읽었다. 그 심정에 동조하고 논지도 일정부분 동의하지만, 내 생각은 근본적으로 다르다. 정치평론이란 게 사견(私見)이기 때문에 시비를 가릴 수는 없다. 하여 반론이라는 것도 장 박사의 판단이 틀렸다는 게 아니라 다른 관점의 판단을 제기하는 것일 뿐이다.

장신기의 논지는 이러하다. '문재인 대표가 김종인을 영입한 것은 소위 중도화 전략의 일환이다, 중도화란 원래 야당의 기반이었던 호남+운동권의 복원을 전제로 해야 한다, 그런데 김종인 대표는 그것을 추진할 수 있는 인물이 아니다'라는 것이다.

시대는 변했다. 이미 오래 전에 변했는데 그 변화를 읽지 못하고 김대중 대통령이 구축한 호남+운동권에 집착해온 결과가 오늘의 모습이다. 이제 이 구도를 타파해야 할 때가 왔다. 열린우리당은 운동권이 주축이 되어 호남의 외연을 넓힌다는 게 호남인들의 오해만 사고 실패로 끝났다. 그걸로 운동권은 역사의 소임을 다했다고 보고 이제 새로운 시대의 과제에 복무해야 한다. 그리고 호남인들은 서운함을 묻어두고 김대중 대통령이 강조한 3대 과제의 실현을 위해 밀알이 되어야 한다.

시대정신은 호남 + 운동권인 아니라 지식의 융합

새로운 시대는 지역을 초월하여 융합적 지식으로 무장한 정당과 정치인을 원한다. 운동권 정치인은 정의감과 진보이념으로 정치를 해왔다. 아직까지 그러하다. 그러니 낡은 진보라는 비판이라도 아프게 받아들여야 한다. 새 시대의 정치인은 정의롭되 보수-진보의 낡은 틀을 벗어나 융합적 지식으로 무장해야 한다. 정권에 반대하고 투쟁하는 모습이 아니라 창조적인 아이디어로 비전을 만들어가야 한다. 창조적인 아이디어는 바로 융합적 지식에서 나온다.

융합이 대세라는 데는 다들 동의할 것이다. 대학도 융합을 앞세워 구조개혁을 한다고 난리들이다. 그러면 융합이란 무엇인가? 대학의 구조개혁이 잘못된 것은 융합을 빌미로 하여 대학을 대기업의 하청구조로 재편하려는 교육부와 그에 굴종하는 대학의 경영진이 주도하기 때문이다. 대학의 구조개혁은 학과의 벽을 허무는 데서 출발해야 한다. 쉬운 일이 아니다.

그렇다. 융합은 지식의 경계를 허무는 것이다. 지금까지 지식인들은 하나의 전공으로 평생을 철밥통으로 지냈지만 이제는 통하지 않는다. 복수전공이나 다중전공으로도 부족하다. 적어도 하나의 전공영역에는 전문가가 되어야겠지만, 그 밖의 다른 분야에 대해서도 상당한 수준의 지식을 축적해야 한다. 대학생들이 졸업하면 평생 직업이 아홉 번은 바뀔 것이라고 한다. 대학에서 배운 전공분야 내에서만 바뀌지 않을 것이다.

지식의 융합은 개인의 수준에서 달성되어야 하고, 부족한 부분은 협업을 통해 완성되어야 한다. 학문이란 박학심문(博學審問), 넓게 배우고 깊이 있게 묻는 것이다. 그러나 지금 학문은 좁게 한다. 융합이란 넓게 배우는 학문의 본령으로 되돌아가자는 것이다. 그게 절실한 시대가 된 것이다.

더불어민주당의 길은 융합적 지식으로 무장하여 시대 선도해야

정치는 이러한 시대를 선도해야 한다. 이 과업을 선도하려고 할 때 호남 + 운동권의 조합은 부적절하다. 그 점에서 볼 때, 이번 더불어민주당의 공천은 의식적이건 아니건 의미 있는 변화라고 본다. 이해찬과 정청래를 아웃시켰을 때 안타까웠지만 불가피했고, 호남민심에 편승한 탈당 파동도 새로운 시대로 가는 과정의 진통일 것이다.    

장신기는 "김대중도 1992년 대선을 앞두고 정책적 차원에서 뉴DJ 플랜을 내세웠고, 97년 대선에서는 인물과 정치세력을 향해서도 중도화 전략을 펼쳐서 DJT(김대중+김종필+박태준) 연합 및 연대를 이뤄냈다. 2002년 대선에서도 노무현 후보가 승리할 수 있었던 것은 정몽준과 단일화를 했기 때문이다"라고 하여 중도의 방향을 제시했다.

그러나 더 이상 그러한 전략은 불가능하다. 가능하지도 않고 답습해서도 안 된다. 김대중이나 노무현과 같은 걸출한 위인이 다시 나온다면 대선에서는 그림이라도 그려볼 수 있겠지만 총선은 다르다. 호남 + 운동권은 기반이 아니라 자발적 고립이 되고 있다. 시대는 이미 변화했는데 이 낡은 구도를 고집해서는 총선은 물론이고 대선도 어림없다.

장신기는 "김종인은 중도화 전략의 대표 주자로서는 부족한 인물"이라고 평가했다. 지금 필요한 것은 중도화가 아니라 당을 리모델링하는 것이다. 허물고 다시 짓는 수준의 전환이 필요하다. 그 때 건물의 기반은 호남 + 운동권이 아니라 지식의 융합이어야 한다.

이 작업에 김종인은 적절한 대안일 수 있다고 본다. 경제민주화의 신념에서 비롯된 고집과 카리스마가 단점보다는 장점으로 작용할 것이라고 보기 때문이다. 독단적인 측면도 보이지만 비례대표 선정과 관련한 중앙위원회의 역할로 미루어 볼 때 크게 걱정할 수준은 아닐 것이다. 본인도 깨달은 바가 있지 않겠는가.  

정보통신산업의 눈부신 발전에 따른 소셜 미디어 사회로의 급진전, 뇌과학의 발전과 인공지능의 등장, 중력파의 발견이 보여준 자연과학의 존재감, 유전공학의 대중화 등을 동서양 철학과 역사의식으로 꿰뚫어보며 사회현상을 과학적으로 설명할 수 있는 융합적 지식으로 무장한 정당. 이것이 더불어민주당이 가야 할 길이라고 생각한다.


태그:#더불어민주당, #김종인, #호남, #운동권, #융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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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언론정보학회 회장, 한일장신대 교수, 전북민언련 공동대표, 민언련 공동대표, 방송콘텐츠진흥재단 이사장 등 역임, 리영희기념사업회 운영위원. 리버럴아츠 미디어연구회 회장, MBC 저널리즘스쿨 강사, 한국미디어리터러시스쿨 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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