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03.29 14:23최종 업데이트 16.04.08 16:36
정치자금은 '국민의 의혹을 사는 일이 없도록 공명정대하게 운용되어야 한다'(정치자금법 제2조). '정치활동 경비'로만 사용해야 한다는 것이다. 과연 19대 국회의원들은 '의혹없이' '공명정대하게' 정치자금을 사용했을까?

<오마이뉴스>는 지난해 중앙선관위에 정보공개를 청구해 약 3년치(2012년-2014년) 3만5000여 장, 36만여 건의 '정치자금 수입.지출보고서'를 받았다. 그리고 이를 데이터처리한 뒤 59개 항목으로 나누어 '1045억 원'에 이르는 19대 국회의원의 정치자금 사용내역을 집중분석했다. 20대 총선을 앞둔 지금, 이러한 분석내용이 유권자의 선택에 도움이 되기를 바란다. [편집자말]
[자료분석] 이종호 기자
[개발-디자인] 황장연, 고정미, 박종현, 박준규 
[취재-글] 구영식 김도균 유성애 기자(탐사보도팀)



'박근혜 대통령 화보집 3권.'


박인숙(서울 송파구갑) 새누리당 의원이 지난 2013년 9월 11일 정치자금으로 구입한 '정책-도서' 목록 중 하나다. '박근혜 대통령 화보집'이란 같은 해 7월에 나온 <꿈이 이루어지는 나라>(비전테크시스템즈)를 가리킨다. 이 화보집에는 박 대통령의 지난 10여년 간 정치역정이 담겨 있다.

한국에서 현직 대통령이 화보집을 펴낸 것은 처음이라서 당시 누리꾼들도 큰 관심을 보였다. 하지만 트위터와 페북에서는 "니 꿈이 이루어지는 나라", "독재의 꿈이 이루어지는 나라" 등의 비판적인 글이 많았다. 박 의원은 그런 화보집을 사는 데 총 14만7000원을 썼다. 더욱 흥미로운 사실은 박 의원이 박 대통령과 끊임없이 갈등해온 '김무성계'로 분류된다는 점이다.



이상민 413만 원, 신의진 289만 원, 한정애 268만 원

언론사에서 발행하는 연감 등을 제외한 '정책-도서'에 지출된 정치자금은 총 8653만여 원에 불과했다. 새누리당과 새정치민주연합이 각각 약 4355만 원과 4113만여 원으로 비슷했다(진보정의당 약 169만 원, 통합진보당 2만8600원).

정치자금으로 정책-도서를 가장 많이 구입한 의원은 이상민(대전 유성구)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이었다. 이 의원은 <우리도 행복할 수 있을까>(오연호) 등을 구입하는 데 총 약 413만 원을 썼다. 이 의원이 대량 구입한 것으로 알려진 <우리도 행복할 수 있을까>는 '덴마크 행복사회 탐구서'다.

정책-도서에 200만 원 이상을 지출한 의원은 김성곤.김한길.서상기.신의진.안민석.윤재옥.이상민.주호영.진성준.한정애 의원 등 11명(이상민 의원 포함)이었다. 신의진(비례대표) 의원은 총 289만 여원을 지출해 정책-도서 지출순위 2위를 기록했다. 그 뒤를 한정애(268만 여원, 비례대표).안민석(261만여 원, 경기 오산시).주호영(약 238만 원, 대구 수성구을).윤재옥(약 229만 원, 대구 달서구을) 의원 등이 이었다. 정책-도서 구입비로 100만 원 이상 지출한 의원은 29명(이상민 의원 포함)이었다.

하지만 다수 의원들이 중앙선관위에 제출한 '정치자금 수입.지출보고서'에 정치자금으로 구입한 정책-도서 목록을 제대로 기재하지 않았다. 이로 인해 정치자금으로 '어떤 책'을 샀는지 정확하게 알 수 없었다. 육군대장출신인 정수성(경북 경주시) 새누리당 의원은 보수성향의 조갑제닷컴과 (주)월간조선에 약 29만 원을 지출했다고 신고했지만 구입한 도서 목록은 전혀 기재하지 않았다. 다만 도서 목록을 기재한 의원들을 중심으로 살펴보면 의원들의 다양한 독서취향이나 정치성향이 드러났다.

해군 참모총장인 김성찬(경남 창원시 진해구) 새누리당 의원은 <일본방위백서>, 을지로위원회에서 활약한 은수미(비례대표)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은 소설가 공지영씨의 <의자놀이>(57만6000원, 쌍용자동차 이야기), 전태일 열사의 여동생인 전순옥(비례대표)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은 전태일재단에서 발행한 <전태일평전>(30만 원)을 구입했다. 김근태 전 의원의 부인인 인재근(서울 도봉구갑) 새정치민주연합 의원도 (사)남북저작권센터에서 100만 원어치의 책을 샀다.

노동문제에 관심이 높은 은 의원이 <독일노동법전>, 전순옥 의원이 자신의 저서인 <끝나지 않은 시다의 노래>(23만4000원)를 구입한 것도 눈길을 끈다. <끝나지 않은 시다의 노래>는 전 의원의 영국 워릭대 박사학위 논문인 <They are not machine>(그들은 기계가 아니다)>(2001년)를 지난 2004년 한국어로 번역한 것이다.

인 의원이 100만 원어치(할인가)의 책을 구입한 (사)남북저작권센터는 (사)남북경제문화협력재단에서 설립한 단체로 '북측 저작물 사용의 포괄적인 사전협상 권한'을 위임받아 북측 전체 저작권을 위탁받아 관리해왔다. 그는 현재 '김근태의 평화와 상생을 위한 한반도재단'(한반도재단) 이사장도 맡고 있다.



주호영, 여야 의원들 책 구입에 130만 원 지출

친이명박계 핵심인 주호영 새누리당 의원은 소속정당을 불문하고 동료 의원들의 출판기념회를 잘 챙긴 것으로 보인다. 주 의원은 같은 당 이장우.이상일,정병국.박대동 의원뿐만 아니라 야당의 박수현.홍의락.추미애.신기남.서영교.한정애(새정치민주연합).조승수(진보정의당) 의원이 쓴 책을 각각 10만 원어치씩 구입했다. 이렇게 지출한 금액만 130만 원에 이른다.

박근혜 대통령 화보집을 3권 구입했던 박인숙 의원은 <조선왕조실록> 구입에 30여만 원을 지출했고, 특히 <개념의료>를 30권(48만여 원)이나 구입했다. <개념의료>는 대한공중보건의사협의회장을 지낸 박재영씨의 저서로 한국의료의 현실을 비판적으로 다루었다. 박 의원은 소아과를 전공한 의사다. 그는 평양 사범대 교수로 재직하다가 탈북한 김현식씨의 자서전 <나는 21세기 이념의 유목민>도 25권(25만여 원)이나 구입했다.

중국 출장에 대비해 <중국어회화>(4만8000원)를 산 것도 눈에 띈다. 박 의원은 지난 2014년 10월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의 중국 방문에 동행해 시진핑 주석을 면담했다. 당시 방중단에는 박 의원 외에 김문수.이재오ㆍ정갑윤ㆍ이병석ㆍ조원진ㆍ김학용ㆍ김세연ㆍ박대출ㆍ김종훈ㆍ이에리사 의원이 포함돼 있었다.

193만여 원을 정책-도서에 지출한 김현미(경기 고양시 일산서구)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은 경제, 노동, 정치 등 주로 정책개발과 관련한 도서를 구입했다. 강기윤(경남 창원시 성산구) 새누리당 의원은 족보편찬회에 20만여 원을 지출했고, 같은 당 김희정(부산 연제구) 의원은 EBS 라디오인터뷰용 참고도서, 안민석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은 한국사능력검정시험 서적을 구입했다.

특히 정책-도서에 261만여 원을 지출한 안민석 의원은 <운동화 신은 뇌>(존 레이티.에릭 헤이거먼), <한미FTA 국민보고서>(FTA 범국본), <담대한 희망>(오바마), <어떻게 살 것인가>(유시민), <그때 알았더라면 좋았을 것들>(정여울), <높고 푸른 사다리>(공지영), <맹자>와 <논어> 등 다양한 분야의 책을 구입해 눈길을 끌었다.

주변 사람들에게 책을 선물하는 것으로 유명한 정두언(서울 서대문구을) 새누리당 의원은 <권력의 조건> 등을 구입하는 데 약 122만 원을 썼다. 특히 정 의원은 도리스 컨스 굿윈이 쓴 <권력의 조건>을 지인들에게 적극 추천했다. <권력의 조건>은 '라이벌까지 껴안은 링컨의 포용 리더십'에 관한 책이다.

정 의원은 언론과 한 인터뷰에서 "<권력의 조건>은 링컨의 정치인생을 요약한 것인데 한마디로 이야기하면 인내와 관용이다"라며 "요즘 우리 정치는 불인내와 불관용이다, 우리 정치도 인내와 관용을 배워야 한다"라고 말했다. 당내 비주류인 자신의 처지가 독서취향에도 투영돼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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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기사는 연재 국회의원 정치자금 공개(2012-2022) 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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