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일 일본 도쿄에서 국카스텐의 공연이 열렸다. 하루 전인 2일, 도쿄 산겐자야(三軒茶屋)에 있는 국카스텐의 연습실을 찾아 그들의 공연준비 모습을 취재했다.

지난 3일 일본 도쿄에서 국카스텐의 공연이 열렸다. 하루 전인 2일, 도쿄 산겐자야(三軒茶屋)에 있는 국카스텐의 연습실을 찾아 그들의 공연준비 모습을 취재했다. ⓒ 김주리


(* 이 기사는 [3일간의 동행 기록 ①]편에서 이어집니다.)

국카스텐을 다시 만난 건 지난 3일 도쿄 공연 하루 전인 2일, 도쿄 산겐자야(三軒茶屋)에서였다. 처음에는 경계심으로 가득하던 그들도 어느 정도 마음을 열었는지 공연을 위한 연습과정과 리허설 및 뒤풀이 등 전체 일정을 공개하기로 했다.

이들을 만나기 위해 찾아간 곳은 합주실. 필자가 도착할 때쯤 이들은 이미 어느 정도 공연을 위한 합주를 진행하고 있었고, 보컬 하현우를 제외하고는 전 멤버 및 한국과 일본 스태프들이 모여 합주를 돕고 있었다.

솔직히 말해 처음 합주실에 도착한 30여 분은 약간 실망했다. 물론 공연 현장이 아닌 연습에 불과한 공간이기에 속된 말로 '적당히 때려대는' 것일 수도 있겠지만, 기타도 베이스도 드럼도 어딘가 합이 맞지 않고 불규칙하게 따로따로 엇갈리는 느낌이 들었다. 일본 공연이라 긴장했나? 원래 합주실에서는 이렇게 헐렁하게 연습하나? 이런저런 생각들이 생겨나던 중에 보컬 하현우가 합주실에 도착했다.

인사와 여러가지 말들이 오가고 하현우를 포함해 국카스텐 전 멤버의 합주가 재개됐다.

"그만 그만, 잠깐만!"

돌연 하현우가 중단시켰다. 합주 재개 후 약 10초나 흘렀을까. 그는 합주를 끊고 각 악기의 볼륨 상태를 묻고 이에 대한 지적과 지시를 시작했다. 악기의 톤(tone)에 관해서도 이것저것 스태프들에게 요구했다.

그리고 나서 인이어 이어폰을 꽂고 다시 합주 시작. 결과는 놀라웠다. 이전까지만 해도 다소 엉성하고 불안정하던 소리들이 제각기 역할을 찾은 듯 알맞은 자리로 돌아갔다. 뭐가 어떻게 바뀌었는지는 모르겠다. 합주 내내 하현우는 중간중간 연주를 끊고 뭔가 변경을 요구했고, 그때마다 연주는 점점 나아졌다. 과장을 조금 보태 말하면, 밴드의 연주가 하현우의 한 마디로 한 걸음씩 진화하는 기분까지 들었다.

리더 하현우 : 학교, 공연장, 연습실, 공사판

 국카스텐 합주 현장. 합주 내내 보컬의 하현우는 중간중간 연주를 끊고 사운드의 방향을 지시했다. 그가 요청하는 한 마디 한 마디를 기준으로 연주는 점점 나아졌다. 밴드의 연주가 하현우의 한 마디로 한 걸음씩 진화하는 기분까지 들었다.

국카스텐 합주 현장. 합주 내내 보컬의 하현우는 중간중간 연주를 끊고 사운드의 방향을 지시했다. 그가 요청하는 한 마디 한 마디를 기준으로 연주는 점점 나아졌다. 밴드의 연주가 하현우의 한 마디로 한 걸음씩 진화하는 기분까지 들었다. ⓒ 김주리


 하현우는 인터뷰를 통해 인디밴드와 대중 뮤지션의 사이에서 줄타기를 하고 있는 심정을 허심탄회하게 밝혔다. 국카스텐은 다른 밴드에 비해 비교적 많은 음악 장비들을 사용하고 있는데, 이 장비마련을 위해 공사판을 전전해야 했다.

하현우는 인터뷰를 통해 인디밴드와 대중 뮤지션의 사이에서 줄타기를 하고 있는 심정을 허심탄회하게 밝혔다. 국카스텐은 다른 밴드에 비해 비교적 많은 음악 장비들을 사용하고 있는데, 이 장비마련을 위해 공사판을 전전해야 했다. ⓒ 김주리


"살아오면서 있었던 곳은 딱 네 곳 같아요. 학교, 공연장, 연습실, 공사판."

저녁 식사 자리에서 이어진 하현우와의 인터뷰는 비교적 편안한 분위기에서 진행됐다. 그가 미술 전공으로 대학에 입학했다가 1년 만에 학업을 그만둔 사실, 어린 시절 가지고 있던 콤플렉스, 그리고 현재 인디밴드와 대중 뮤지션의 사이에서 줄타기를 하고있는 심정까지 많은 이야기가 오갔다.

다른 밴드에 비해 비교적 많은 음악 장비들을 사용하는 국카스텐은 현재 소속사에 안착하기 이전인 인디 시절부터 지금까지 본인들의 자비를 들여 장비를 전부 마련했다고 한다. 아마도 그의 생애 25%를 차지했다는 '공사판'은 그 때문이었을 것이다.

"다 합하면... 글쎄요. 천만 원 정도 들었을까. 물론 장비들이 갖춰지기 이전에도 국카스텐의 음악 색깔은 변하지 않았습니다. 있을 때는 있는 대로, 없을 때는 또 없는 대로 국카스텐의 정체성을 나타내는 음악을 만들려고 최선을 다했으니까요."

어릴 때는 어땠을까?

"노래는 학창시절부터 잘한다는 소리를 들었던 것 같아요. 보통 학급에서 '노래 잘하는 아이 나와봐라'고 선생님이 말씀하시면 친구들이 저를 추천하면서 교단 앞으로 밀어내곤 했으니까요. 천성적인 부분도 있는 것 같은데, 태어나자마자 뱉은 첫 울음소리가 너무 커서 저한테 무슨 문제가 있나 따로 검사해봤을 정도라고 해요.(웃음)"

미대에 입학했던 그의 그림도 제법 대단했다. 그가 공개한 그의 작품들은 어떤 면에서는 국카스텐의 음악과도 닮아있었다.

 국카스텐의 보컬 하현우가 직접 그린 그림

국카스텐의 보컬 하현우가 직접 그린 그림. 하현우는 미술 전공으로 대학에 입학했다가 1년 만에 학업을 그만두었다. 학창시절 '노래 잘하는 아이'로 추천받을 정도로 노래에 소질을 보였으며 미술에도 관심과 재능이 특별했다. ⓒ 하현우


볼수록 들을수록 대단한 뮤지션인데, 스스로에 대한 평가는 냉철했다.

"천재성이요? 전혀요. 어느 정도 음악적인 소질이 있다는 부분에 대해서는 인정하지만, 저는 제가 잘하는 부분과 잘하지 못하는 부분에 대해서 상당히 객관적으로 평가하고 있어요. 그러려고 노력하기도 하고요. 남들보다 분명히 뛰어난 부분도 있고, 또 그만큼 남들보다 부족한 부분도 있습니다."

'스스로 천재라는 것을 알고 있느냐'는 일종의 유도신문에 대한 대답이었다.

사실 처음 서울에서 열린 공연을 본 이후부터 그의 능력과 재능에 감탄함과 동시에 마음 한구석에는 아쉬움이 있었다. 물론 지금도 그는 상당히 훌륭한 뮤지션이다. 하지만 그렇다 해도 어딘지 모르게 그가 가지고 있는 여러 잠재력이 아직 100% 생성되고 표출되지 않고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다. 만약 그가 한국보다 대중음악이 다양화되어있고, 또 그런 다양성이 인정되는 다른 어느 사회에서 태어났다면? 그리고 그곳에서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유수의 뮤지션과 교류를 해왔다면? '현재는 존재하지 않는 그 가상의 음악'을 들어보고 싶다는 느낌이 들었다.

"척박한 환경이었기에 나올 수 있었던 음악도 있었겠죠. 어찌됐건 지금은 지금의 환경에서 최선이 나오고 있다고 생각하고, 또 그러기 위해 많은 연습과 시간을 들이고 있으니까요. 창조의 원천이 결핍 외에는 없다고 생각하지 않지만…"

인디밴드를 한다는 것

 국카스텐 합주현장의 드러머 이정길. 인디밴드의 수입원은 언제나 불안정하기 때문에 대출도 잘 안 된다. 언제나 생활고에 시달려야하지만 이들은 음악에 대한 열정을 놓지 않았다.

국카스텐 합주현장의 드러머 이정길. 인디밴드의 수입원은 언제나 불안정하기 때문에 대출도 잘 안 된다. 언제나 생활고에 시달려야하지만 이들은 음악에 대한 열정을 놓지 않았다. ⓒ 김주리


척박한 환경 - 인터뷰 중 여러 번 등장한 표현이다. 음악 장비를 마련하기 위해 공사판에서 "막노동을 했다"고 말한 하현우의 말대로, 대한민국에서 대형 기획사에 소속되지 않고, 또 설사 소속되었다 하더라도, 소신있는 음악 활동을 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최근 두 아이의 아빠가 된 기타리스트 전규호 역시 이에 동의했다.

"지금이야 기획사를 옮겼으니 다행이지, 그 이전에는 한 달 수입 20만 원이었어요. 이동통신사에서 빼가는지, 음원 사이트에서 떼가는지, 저희야 모르죠 뭐."

여차하다 소속사와 갈등이 생겨 소송전이라도 벌어질 경우, 민사든 형사든 소송 준비에 들어가야 하고, 그 소송에 들어가는 비용 또한 만만치 않다. 그러다 보면 또 인디밴드들의 수입원인 활동, 즉 행사를 진행할 수 없게 되고 그러면 또 수입이 끊기는 악순환이 반복된다. 평생 음악밖에 모르고 살아온 이들에게 법적인 지식이 있을리 없고(있을 필요도 없고) 이들을 도울 수 있는 복지 제도는 존재하지 않는다. 도움을 요청할 수 있는 곳은 기껏해야 지인들 정도일까.

"사실 제일 갑갑한 건 대출이 안된다는 거예요. 대출 심사를 받으려면 기본적으로 4대 보험 가입 증빙이 되어야 하는데, 국카스텐도 그렇고 다른 인디밴드들도 그렇고 4대 보험에 들어있지를 않으니 대출도 못 받아요. 그러다 보면 인디음악 하는 친구들은 사실 연애하기도 힘듭니다. 당최 돈이 있어야 좋은 데서 밥도 먹고 영화도 보고 여행도 가고 그러죠."

이제는 신세한탄도 익숙해진 듯 전규호가 씁쓸하게 웃으며 말했다.

지난 2015년 시행된 '문화예술인 지원제도'에 관해 알고 있었느냐 물었다. 전속 매니저를 포함해 밴드 멤버 중 이에 대해 알고 있는 이가 한 명도 없었다. 사실 필자 역시 당시 상황상 산업자원부 홈페이지에서 정보를 얻으려던 중 우연히 알게 된 정책이었다. 지하철에 한 장의 광고라도 실었으면, 보다 적극적으로 해당 정책이 홍보됐다면, 이 정도로 이에 관해 모르지는 않았을텐데 말이다.

하지만 알게 됐다 해도 유쾌하지 않은 반전이 숨어있다. 지난해 한시적으로 시행된 이 제도의 자격조건은 한 달에 100만 원 혹은 150만 원 이상 수입을 내는 문화예술인에 한정됐다. 추가로 걸려있는 복잡한 너댓 가지 자격요건과 함께.

"그 정도만 벌 수 있어도 굳이 공들여서 이것저것 서류 정리해서 지원받을 필요 없지 않을까요?(웃음)"

사실 그나마 국카스텐은 '인지도'라는 얄팍한 보상을 일단 받았으니 나은 편이다. 이런 기회조차 받지 못하고 이곳저곳에서 차가운 시선을 견디며 창작욕 하나로 모든 고통을 버티고 있는 수많은 인디음악인들이 있다. 창조의 원천은 고통과 결핍이라고 하지만, 문화예술인이기 이전에 이들은 시민이다. 기본적인 생활과 안전을 보장받아야 하는.

인터뷰 다음날 열린 국카스텐의 도쿄 공연도, 역시 최고였다. 국카스텐은 천생 '음악인'이었다. 그러나 이 정도 지위에 있는 예술인들조차 제대로 된 지원을 받을 수 없다는 현실이 자꾸만 가슴에 박혔다.

"좋은 기사 부탁드립니다"는 국카스텐의 마지막 인삿말이 왠지 씁쓸하고 미안했다.

 인터뷰 사진

인터뷰에 응하는 국카스텐의 모습이다. 인터뷰 다음날 열린 국카스텐의 도쿄 공연은 나무랄 데 없이 훌륭했다. 국카스텐은 음악인다운 면모를 한껏 보여주었고 관객은 열광했다. 이런 재능 있는 예술가들이 제대로 된 지원을 받게 되길 바란다. ⓒ 김주리



국카스텐 하현우 인디밴드
댓글1
이 기사의 좋은기사 원고료 10,000
응원글보기 원고료로 응원하기

오마이뉴스 선임기자. 정신차리고 보니 기자 생활 20년이 훌쩍 넘었다. 언제쯤 세상이 좀 수월해질랑가.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