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06개 스크린을 차지한 <검사외전>과 지난해 1843개를 차지했던 <어벤저스 : 에이지 오브 울트론>. 스크린 독과점 문제는 갈수록 심화되고 있다.

1806개 스크린을 차지한 <검사외전>과 지난해 1843개를 차지했던 <어벤저스 : 에이지 오브 울트론>. 스크린 독과점 문제는 갈수록 심화되고 있다. ⓒ 쇼박스, 월트디즈니컴퍼니코리아


"강요된 선택, 예견된 흥행."

설날 연휴 <검사외전>의 흥행에 대한 어느 누리꾼의 반응이다. 한 관객은 "이 영화가 어떻게 <국제시장>이나 <도둑들>보다 흥행 속도가 빠른지 처음에는 이해가 안 갔다"면서 스크린을 많이 차지했던 것을 흥행 원인으로 꼽았다. <검사외전>은 하루 최대 1806개의 스크린을 장악하고 1만 회 가까이 상영되며 연휴 내내 관객몰이했다. 이 때문에 한동안 잠잠했던 스크린 독과점 논란도 다시 촉발했다.

647개로 시작한 스크린독과점, 10년간 3배 커져

스크린 독과점 논란의 시작은 지난 2006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2006년 8월 5일 영화 <괴물>이 647개 스크린에서 개봉하면서 문제가 제기됐다. 당시 스크린(약 1800개)의 3분의 1에 해당하는 스크린을 한 영화가 차지하는 것에 대해 거센 비판이 일었다.

하지만 2007년 6월 개봉한 <트랜스포머>는 863개를 차지하며 이 기록을 가볍게 넘어섰다. 2009년에는 <트랜스포머 : 패자의 역습>이 1154개를 차지하며 1000개를 돌파했다. 1500개를 넘어선 것은 2014년 <트랜스포머 : 사라진 시대>로 1602개였다. 2015년 <어벤져스 : 에이지 오브 울트론>은 1843개로 이 기록마저 갈아치우며 최고 기록을 세운다.

주로 외화들이 스크린 독과점 문제를 일으켰지만, 한국영화의 경우 2013년 <은밀하게 위대하게>가 1341개, <관상>이 1240개로 1000개를 넘어섰다. 2014년에는 <명량> 1581개를 기록했다. 그리고 설날 연휴, <검사외전>이 1806개 스크린을 차지하며 한국영화 최다 스크린 수를 차지하며 역대 2위에 올라섰다.

숱한 토론과 비판에도 더 악화일로

 지난해 5월 전주국제영화제에서 열린 스크린독과점 관련 토론회. 여러 토론회가 있었지만 현실적인 대책은 나오지 못하고 있다.

지난해 5월 전주국제영화제에서 열린 스크린독과점 관련 토론회. 여러 토론회가 있었지만 현실적인 대책은 나오지 못하고 있다. ⓒ 전주국제영화제


논란이 시작된 지 올해로 10년이 됐지만 어찌 된 영문인지 조금도 개선되지 않고 갈수록 더 심해지는 게 특징이다. 수많은 토론회가 열렸다. 한국영화산업에 결코 긍정적이지 못한 현상이기에,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는 데 영화계 대부분이 공감하고 있다. 그런데도 개선은커녕 더 나빠지고 있는 게 현실이다. 마치 스크린 독과점에 대한 논의 자체를 비웃는 모양새다.

결과적으로 스크린 독과점 문제는 한국영화의 무기력함을 드러내는 대표적 사안이 됐다. 지난 10년간 문제 제기가 끊이지 않았음에도 더 심화하고 있는 이유는 어디에 있을까? 영화인들이 겉으로 표현하는 것과 속내가 다르기 때문이다.

스크린 독과점 논란이 있을 때마다 법적 규제와 자율적 해결이 팽팽히 맞서왔다. 한 작품이 과도하게 스크린을 장악하지 못하게 법을 만들자고 주장하면, 다른 쪽에서는 해법이 될 수 없다며 자율적 해결을 주장했다. 법이 능사가 아니고 영화인들이 머리를 맞대고 풀어야 한다는 게 이들 주장의 요지였다.

어떤 식으로든 의견이 모이면 좋은 일이다. 그런데 자율적 해결을 위한 논의를 하자고 해도 관심이 없는 게 맹점이었다. 지난 2013년 8월 한국영화평론가협회는 "자율적 해결을 위해 영화계의 협상 테이블을 구성하자"고 제안했다, 그러나 호응이 없었다. 논란이 생기면 냄비처럼 들끓다가 이후로 다시 조용해지는 일이 반복되고 있다.

이 때문에 10년 동안 스크린 독과점 논란은 조금도 진척되지 못했다. 647개로 시작된 게 1800개를 넘었다. 2000개 도달도 어렵지 않을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다들 겉으로는 스크린 독과점을 비판하지만, 속으로는 자신의 영화도 스크린을 다 차지해 '대박'을 내고 싶은 마음이 숨겨져 있어 소극적일 수밖에 없다"는 것이 한 영화계 인사의 지적이다.

최근에는 강제적으로라도 법적 규제를 밀어붙여야 한다는 의견이 힘을 받는 분위기지만, 국회는 영화계가 합의된 안을 가져오기를 요구하고 있다. 한 국회의원실 관계자는 "스크린 독과점 논란에 관해서는 영화계 자체의 의견이 다양하기에 어느 한쪽 입장만을 반영해 주기가 어렵다"고 말했다. 몇 차례 관련 법안이 발의됐음에도 국회에서의 입법 자체가 지지부진한 이유다.

영화산업 장악한 대기업 수직계열화 폐해

 CGV 압구정점의 모습. CGV를 포함한 대규모 멀티플렉스 영화관이 수직계열화에 나서면서 불균형 문제가 더욱 심각해졌다.
ⓒ CG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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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기업 수직계열화도 한몫하고 있다. 대기업이 투자와 배급, 극장을 장악한 구조도 영화산업의 불균형을 초래한 큰 원인으로 지목된다. 자사 투자·배급 작품을 관객이 몰리는 시간대에 상영하거나 많은 극장을 배정하고, 불편한 영화는 의도적 죽이기에 나서는 횡포는 영화산업구조를 왜곡했다. 스크린 독과점도 결국 대기업이 영화산업을 장악하면서 시작된 일이다.

제작과 배급 쪽에서 일한 영화계의 한 관계자는 이번 논란에 대한 구조적인 문제를 이렇게 설명했다.

"배급사는 설날이란 대목을 맞아 <검사외전>을 대표선수로 내보낸 것이다. 그런데 이번 경우는 다른 배급사들이 마땅한 영화를 내보내지 못한 게 원인이 더 크다. 또 극장은 명절 대목에 장사해야 하는 처지에서 선택의 여지가 없다. 쏟아지는 관객이 다른 극장으로 가지 않게 수용해야 하기 때문이다.

제작·투자사들의 경우 대기업이 대부분인 투자사들이 국내에는 좋은 시나리오가 없다 보니 흥행을 위해 캐스팅을 택한다. 캐스팅만 해 오면 투자를 해 주겠다고 한다. 여기서 투자를 못 받으면 준비한 게 다 휴지통으로 간다. 결국, 제작자는 배우에게 매달리게 된다. 감수성 뛰어난 배우들은 제작자가 눈물로 읍소하는데 흔들리지 않을 수 있겠는가?"

이 관계자는 "관객이 던지는 돌은 달게 받아야 하겠지만, 지금 영화에 종사하고 있는 자 중에는 돌을 던질 자 없다"고 덧붙였다. 대기업이 돈줄 역할을 하며 영화산업을 지배하고 있는 구조에서 문제의 해결은 쉽지 않다는 것이다.

한국영화프로듀서조합 대표를 역임한 최은화 프로듀서는 "관객이든 영화계든 이 현상을 자연스럽게, 당연하게 받아들이게 되면, 한국영화 산업의 양극화는 더욱 심해질 수밖에 없고, 미래는 암울할 듯싶다."고 우려했다.

하지만 대기업이란 고양이 목에 누가 방울을 달 수 있겠느냐는 게, 스크린 독과점 논란에서 한국영화의 솔직한 모습이다. 문제 해결에 나서야 할 영화인들이 손 놓고 있는 한 피해는 고스란히 관객들의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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