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1일 방영한 tvN <배우학교> 한 장면. 장수원의 고민은 개인의 고민으로 그치지 않고 시청자의 공감을 이끈다.

지난 11일 방영한 tvN <배우학교> 한 장면. 장수원의 고민은 개인의 고민으로 그치지 않고 시청자의 공감을 이끈다. ⓒ tvN


박신양에게 연기를 배우기 위해 tvN <배우학교>에 출연한 7명의 학생 중에서 가장 눈에 띄는 인물은 장수원이다. 지금까지도 회자되는 장수원의 연기는, 엄밀히 말해 '잘한다' 혹은 '못한다'라고 구분지어 평가하기 어렵다. 그의 연기에는 '감정'이 없다. 연기는 극중 인물의 감정을 표현하는 작업이라고 하는데, 장수원의 연기에는 그 어떠한 감정이 느껴지지 않았다.

처음부터 끝까지 동일한 톤을 유지하는 그의 남다른 대사 처리에 시청자들은 신선한 충격을 받았고, 그 결과 장수원은 발연기도 아닌 '로봇연기'의 창시자라는 새로운 별명을 얻게 된다.

계속 연예인 생활을 해나가는 것이 신기할 정도로 내성적이고, 자신의 감정을 드러내는 것도 힘들어 보이는 장수원은 매 시간 무언가 표현하는 과제도 상당히 어려워한다. 물론 이는 장수원 뿐만 아니라 그 자리에 있던 모든 학생들에게도 큰 부담으로 다가오지만, 장수원에게는 특히 더 버겁게 다가오는 듯하다. 결국 장수원은 지난 11일 방영분에서 심각하게 자퇴를 고려하는 모습까지 보였다.

다그치거나 재촉하지 않는 선생, 박신양

 지난 11일 방영한 tvN <배우학교> 한 장면. 박신양은 학생을 다그치지 않는다. 주입식과 수월식 교육에 익숙한 우리에게 신선한 충격을 선사한다.

지난 11일 방영한 tvN <배우학교> 한 장면. 박신양은 학생을 다그치지 않는다. 주입식과 수월식 교육에 익숙한 우리에게 신선한 충격을 선사한다. ⓒ tvN


박신양과 첫 만남에 있었던 자기소개의 '멘붕'을 딛고, 잘하던 못하던 일단 주어진 상황에 적극적으로 부딪쳐보는 다른 학생들과 달리, 유독 힘들어하는 장수원이 계속 눈에 밟힌다. 그는 계속 위축되고 있었고, 자신감은 점점 사라지고 있었다. 그렇게 장수원은 박신양에 눈에 아른거리는 아픈 손가락이 되어가고 있었다.

그런데 박신양은 수업을 힘들어하는 장수원을 결코 다그치거나 재촉하지 않는다. 대신, 장수원이 용기를 내어 그 자신을 표현할 수 있도록 시간을 두고 기다린다. 장수원 뿐만이 아니다. 박신양은 자신의 수업을 듣기 위해 찾아온 학생들에게 자기만의 방식을 강요하지 않는다. 지난 11일 방영분에서 몸을 풀거나, 발성 연습을 하는 데 있어서도 박신양은 자신이 하고 있는 스트레칭이나 발성을 학생들에게 일방적으로 가르치지 않는다. 일단, 학생들 각각이 기존에 해왔던 방식으로 몸을 푸는 과정을 거친 뒤에야, 비로소 그 자신이 해왔던 발성법을 학생들에게 알려 준다.

학생들에게 무엇을 가르치는 것보다, 학생들 스스로가 무언가를 해낼 수 있게 시간을 두고 기다리는 점에 있어서 박신양의 교수법은 흡사, 자크 랑시에르의 <무지한 스승>에 적혀있는 한 구절을 떠오르게 한다. 연기를 잘할 수 있는 노하우를 알려주기보다, 질문법을 통해 학생 스스로가 자신의 연기를 평가하는 시간을 갖게 한다. 그동안 주입식 교육에 익숙해진 학생들은 끊임없이 질문을 던지는 박신양의 수업이 낯설다. 그리고 박신양은 항상 학생들에게 그들의 연기에 대해 무엇을 표현하고자 했고, 그때 실린 감정에 대해서 설명할 것을 요구한다.

그저 누군가가 가르치는 대로 열심히 따라오기만 했지, 자신이 하고 있는 행위에 대해서 타인에게 명확히 드러내는 행위가 익숙하지 않는 학생들은 이 상황이 몹시 당황스럽다. 심지어 지난주 방송에서는 유병재가 자기소개 도중 예상치 못한 박신양의 질문 세례에 힘겨워한 나머지 통증을 호소하기도 했다.

진지한 예능 <배우학교>만의 매력

 지난 11일 방영한 tvN <배우학교> 한 장면. 다큐멘터리 같은 이 예능의 묘미는 바로 박신양의 진지함에 있다. 그가 학생들에게 다가가는 모습은, 보는 이까지 감동하게 만든다.

지난 11일 방영한 tvN <배우학교> 한 장면. 다큐멘터리 같은 이 예능의 묘미는 바로 박신양의 진지함에 있다. 그가 학생들에게 다가가는 모습은, 보는 이까지 감동하게 만든다. ⓒ tvN


박신양이 배우 지망생 혹은 배우들에게 연기를 가르치는 콘셉트로 시작된 예능 프로그램임에도 불구하고, <배우학교>는 한없이 진지하고 어느 순간에는 적막감과 냉기가 흐르기 까지 한다. 하지만 <배우학교>는 그 특유의 진지함 덕분에 기존의 주입식 교육의 틀에서 벗어나, 진정한 나를 찾아가는 과정에 대해서 생각하게 한다.

안타깝게도 여전히 주입식 혹은 수월식을 고집하는 한국 교육 시스템하에서 박신양처럼 학생 스스로가 무언가 찾을 수 있도록 시간을 두고 지켜봐 주는 선생을 만나기는 쉽지 않다. 장수원과 같이 수업을 따라가기 힘들어하는 학생들에게 다른 학생들과 똑같은 기준을 제시하고 다그치는 것이 아니라, 그의 눈높이에 맞게 차근차근 길을 제시해주는 선생 역시 찾기 어렵다.

한국에서 학교에 다녔고, 연극영화과를 나온 박신양 또한 어떤 특정한 수업 방식이 다른 방식에 비해 효과적인 것처럼 보일 수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을 것이다. 그런데도 박신양은 선생 스스로 있어서 엄청난 인내심을 필요로 하는 길을 택한다. 눈앞에 있는 지름길을 놔두고, 일부러 먼 길을 돌아서 가야 하는 고행을 말이다. 하지만 그 길만이 자기만의 연기를 찾아야 하는 학생들에게 가장 큰 도움이 된다는 것을 잘 알기에, 박신양은 학생들에게 끊임없이 질문을 던지고, 학생 스스로가 자신에 대해서 알 수 있는 시간을 갖게 한다. 그리고 박신양과 함께 자신에 대해서 생각할 수 있는 시간을 갖게 된 학생들은 조금씩 변화를 겪게 된다.

남이 봤을 때 자연스러운 연기를 하는 것이 아니라, 나 스스로가 느끼는 자연스러운 연기를 하는 것. 비단, 연기를 잘하고 싶어하는 배우들에게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나를 가두고 있던 틀을 조금씩 깨트리는 과정을 배우게 하는 <배우학교>의 묘미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권진경 시민기자의 개인 블로그(neodol.tistory.com)와 <미디어스>에도 함께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배우학교 박신양 장수원 연기 교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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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 지금 여기에서 여성의 눈으로 세상을 보고 이야기하고자 합니다.

2014년 5월 공채 7기로 입사하여 편집부(2014.8), 오마이스타(2015.10), 기동팀(2018.1)을 거쳐 정치부 국회팀(2018.7)에 왔습니다. 정치적으로 공연을 읽고, 문화적으로 사회를 보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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