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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신영복 성공회대 석좌교수.
 고 신영복 성공회대 석좌교수.
ⓒ 성공회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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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의 마지막 날 나는 28살의 늦은 나이에 군대에 입대하였다. 수능을 여섯 번 보면서 늦게 대학에 들어간 탓도 있었다. 하지만 학생운동의 언저리(나는 내가 학생운동의 중심부에 섰던 적이 없다고 생각한다)에서 기웃거리다가 대부분의 운동권 학생들이 그렇듯이 늦깎이 입대를 하게 됐다.

군에 입대하기 전 몇 개월 동안을 늦은 나이에 입대한다는 두려움과 2년을 잃어버린다는 상대적 박탈감 등으로 많은 방황을 하며 지냈다. 그리고 한편으론 전역하면 먹고 살 길을 마련해야 한다는 걱정과 '운동권스러운' 과거의 행적들도 정리해야겠다는 생각이 가끔씩 들기도 했다. 더욱이 과거 같은 단체에서 활동을 하며 나에게 '그렇게 운동할 거면 때려치우라'던 동지가 운동을 접고 삼성에 입사했다느니 고시를 본다느니 하는 소식이 들릴 때마다 자괴감도 들었다.

나이 많은 노병(?)으로서 또 학생운동을 하던 신분으로 군대에 가니 참 힘든 점이 많았다. 자유롭지 못한 상태, 선임의 갈굼, 일상 속의 부조리... 하지만 이런 것들보다는 사상의 자유가 통제되어 있다는 점이 가장 힘들었다.

게다가 군대에서는 정치적 중립성을 강조하면서도 매주 수요일 정훈교육 시간에 '자유민주주의의 우월성'과 '건국 아버지 이승만' 따위를 가르쳤다. 도서 반입조차 자유롭지 않아서 인문 교양서적이나 시집 정도를 읽으며 지식욕을 겨우 채울 수 있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내가 만약 신영복 선생님을 몰랐다면 아무 생각 없이 군 생활을 보냈을지도 모른다. 나만의 안위만을 생각하고 어느 변절한 정치인들처럼 되었을지도 모른다.

나에게 영감을 준 시 '처음처럼'

어찌 감히 신영복 선생님의 20년 옥살이와 내 2년의 군 생활을 비교하겠냐마는 그래도 비교적 같은 처지(?)에 서니 자연스럽게 신영복 선생님을 찾게 되었다. 신영복 선생님이 감옥에서 사색을 하셨다면 나는 군대에서 참 많은 사색을 한 것 같다. 불침번을 서면서 또 지휘통제실 근무를 서면서 이런저런 생각에 잠겨 시간을 보냈다. 그리고 나에게 가장 영감을 준 신영복 선생님의 시가 있었으니 바로 님의 <처음처럼>이다.

신영복 성공회대학교 석좌교수가 지난 15일 별세했다. 향년 75세. '감옥으로부터의 사색', '강의' 등 명저를 남긴 고인은 옥살이 중에 교도소에서 서예를 배워 출소 후 탁월한 서화 작가로도 활동했다. 사진은 서화 '처음처럼'.
▲ 별세한 신영복 교수가 남긴 서화 신영복 성공회대학교 석좌교수가 지난 15일 별세했다. 향년 75세. '감옥으로부터의 사색', '강의' 등 명저를 남긴 고인은 옥살이 중에 교도소에서 서예를 배워 출소 후 탁월한 서화 작가로도 활동했다. 사진은 서화 '처음처럼'.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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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으로 하늘을 만나는 어린 새처럼
처음으로 땅을 밟고 일어서는 새싹처럼
우리는 하루가 저무는 저녁 무렵에도
아침처럼 새봄처럼 처음처럼
다시 새날을 시작하고 있다.

소주 '처음처럼'의 서체와 가수 안치환씨가 노래로 불러 더욱 유명한 이 시는 군생활과 내 인생 전체에서 하나의 신조가 되었다. 사단 지휘통제실 앞에서 어느 봄날 흩날리는 벚꽃을 보며 이 시를 떠올리던 때를 아직도 잊을 수 없다. 시의 제목에서처럼, 그리고 나름대로의 사색을 통해 내가 얻은 깨달음은 언제나 다시 초심을 살피자는 것이었다.

일단 당장의 생활에서부터 처음처럼 행동하려고 노력했다. 말년 병장이 되어서도 이병 때의 마음을 잃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후임에게 무엇을 시키기보다는 스스로 하려고 많이 노력했다고 자부한다. 혹여나 이 글을 읽는 후임이 있다면 어떻게 느낄지 모르겠지만 당시에 내가 부족했다면 이 자리를 빌려 용서를 구하고 싶다.

그리고 사회를 바라보는 비판적 시선도 잃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더군다나 2014년 4월 16일 세월호 참사는 내가 대학시절 사회를 바라보던 시선의 끈을 놓지 않게 만들었다. 신영복 선생님의 가르침과 세월호 참사는 나를 전역 후에도 노동당과 '진보결집+', 그리고 현재 정의당 당원이 되게 만들었다. 또한 미약하게나마 진보정당 활동을 하며 한국 사회의 정의를 위해 노력하게끔 만들어준 두 축이 되어주었다.

신영복 선생님, 편히 잠드시길

신영복 성공회대 석좌교수 빈소가 16일 서울 구로구 성공회대 대학성당에 마련되었다. 신 교수는 지난 2014년 피부암 진단을 받아 투병중, 최근 암이 다른 장기로 급속히 전이되면서 병세가 악화되었다.
▲ 성공회대에 마련된 고 신영복 교수 빈소 신영복 성공회대 석좌교수 빈소가 16일 서울 구로구 성공회대 대학성당에 마련되었다. 신 교수는 지난 2014년 피부암 진단을 받아 투병중, 최근 암이 다른 장기로 급속히 전이되면서 병세가 악화되었다.
ⓒ 성공회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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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이 신영복 선생님에 대한 나의 추억이다. 나는 아쉽게도 신영복 선생님을 직접 만나본 적이 없다. 그리고 지난 15일, 나에게 삶의 신조를 만들어주신 그분이 떠나갔다는 소식을 접했다.

살아생전 꼭 만나 뵙고 싶은 분이었는데 급작스럽게 돌아가시니 참담한 심정을 금할 길이 없다. 작년 김수행 교수님의 타계 소식을 들은 이후라 한국 사회의 큰 어른을 또 한분 잃은 듯한 기분이다.

신영복 선생님의 명복을 빈다. 안치환의 <처음처럼>을 들으며 내 군생활의 큰 힘이 되어주셨고 나의 삶의 방향을 잡아주신 신영복 선생님. 선생님의 가르침처럼 언제나 처음처럼 살겠습니다.


태그:#신영복, #서거, #군대, #처음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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