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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일을 사랑할 수 있어서 기쁘다.
 내 일을 사랑할 수 있어서 기쁘다.
ⓒ 이준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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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또에 당첨된 적이 있는가? 나는 없다. 당첨될 리가 없다. 나는 복권을 사지 않는다. 주식은 하지 않고, 가입한 펀드도 없다. 부동산 투자는 생각도 안 해봤다. 땀 흘리지 않고 버는 돈에 기대감이 없다. 이런 내가 우리 반을 두고 '로또교실'이라 한다. 맞다. 실제로 우리 반에서는 로또가 수시로 터진다. 내 인생은 로또 맞았다.



아이들이 쌤(선생님)은 어릴 때 뭐가 되고 싶었냐고 물어보면 늘 이런 답을 들려준다.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하고, 사랑하는 일을 하는 남자"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는 것은 인연의 영역으로 남겨두고 일에 대해 이야기해보려 한다. 우리는 가정보다 직장에 있는 시간이 더 길다. 자신이 하는 일을 사랑한다면 인생은 절반 이상 성공한 셈이다. 그런데 일이 늘 즐거울 리 없다. 전공과 무관한 직업을 가질 수 있고, 운 좋게 원하는 곳에서 근무한다 해도 마찬가지이다. 어렵게 취업해 놓고 이직을 꿈꾸는 사람들을 주변에서 얼마나 자주 볼 수 있는가?




선생도 별반 다르지 않다. 교사 커뮤니티에 들어가보라. 착한 아이들, 민주적인 관리자, 마음씨 넓은 학부모…. 이러한 망상들을 품고 학교생활을 시작한 신규교사들의 넋두리가 가득하다. 게시글 아래에는 20년 차 교사도 같은 문제로 눈물 흘린다는 댓글이 달려있다. 힘들지 않은 사람은 없다. 사람은 저마다의 고생거리가 있다. 이 사실을 알고 나니 마음이 한결 편해졌다.




"내 일을 사랑하려면 과업 자체 또는 관련 인물들에게서 감동을 느껴야 한다."




감동은 힘이 세다. 군대 훈련병 시절 포복 훈련을 받고 흙투성이가 돼 막사로 돌아온 어느날이었다. 팔꿈치가 까지고 목은 풀독이 올라 빨갛게 부었다. 저녁이 되어 개인정비 시간에 여자친구의 편지를 받았다. 두꺼운 봉투 안에는 다치지 말라는 문구와 함께 노란색 밴드가 들어있었다. 밴드를 보낸 여자친구는 아내가 되었다.




감동은 사소한 것들에 있다. 애정 어린 눈빛으로 여러분이 하는 일과 그 주변인들을 관찰해보자. 분명 일을 좋아하게 되는 순간들을 찾아낼 수 있다. 닫히는 문을 잡아주는 동료의 손길, 내 몫으로 남겨져 있는 케이크 한 조각, 선생님을 그린 종이에 그려진 수많은 하트…. 감동을 받으면 일이 사랑스러워진다. 나는 이 특별한 장면을 '로또'라고 부른다.




'로또교실'은 선생으로서 놓치기 싫은 기억들을 기록하는 공간이다. 교실에 들어온 말벌을 쫓아주면 와~ 하며 함성 지르는 아이들이 고맙고, 집에서는 손도 안대는 브로콜리가 급식에 나오면 조금씩 먹어보려는 마음이 대견하다. 로또교실은 내 일터이고 나는 교직을 사랑한다.



 
낯선 곳에 자라난 생명은 아이들의 호기심을 자극한다.
 낯선 곳에 자라난 생명은 아이들의 호기심을 자극한다.
ⓒ 이준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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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멘트 바닥 틈에 핀 민들레 주위로 아이들이 쪼그려 앉았다. 아기 볼 만지듯 꽃잎에 손을 대본다. 한참이나 그러고 있다가 물 한 번 주고 간다."




지난 5월의 로또 한 장. 이런 날이면 선생되기 참 잘한 것 같다.
 

태그:#초등학교, #선생님, #교사, #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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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교사입니다. <선생님의 보글보글> (2021 청소년 교양도서)을 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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