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상반기 내내 할리우드 대작의 기세에 짓눌려 좀처럼 맥을 추지 못하던 한국영화가 완전히 달라진 모습이다. 7월 <연평해전>이 반전의 계기를 마련하나 싶더니 이내 <암살>, <베테랑>의 쌍천만 흥행작이 터져나왔고 <사도>, <탐정: 더 비기닝> 등 기대 이상의 성적을 거둔 작품이 줄을 이었다. 같은 기간 <메이즈 러너: 스코치 트라이얼>, <앤트맨>, <마션>, <007 스펙터> 등 규모있는 외화가 없지 않았지만, 상반기에 비추어보면 그야말로 판이한 국면이 펼쳐졌다.

특히나 11월은 두 편의 한국영화가 역시 두 편의 할리우드 대작과 맞대결을 벌여 완전히 찍어누른 한 달이었다. <검은 사제들>과 <내부자들>이 그 주인공으로, 이 두 편의 영화는 세계적으로 명성 높은 시리즈물 <007 스펙터>와 <헝거게임: 더 파이널>을 상대로 압도적인 우세를 점하며 한국영화의 저력을 확인시켜 주었다.

비록 몇몇 대기업의 과점체제와 수직계열화로 인한 문제점이 곳곳에서 드러나고 있지만, 오늘날 한국영화의 자존심을 세워주는 것도 바로 이들 대기업 자본이란 점을 생각하면 마냥 찬양하거나 비난하기는 어려운 상황이다. 한국영화의 지속가능한 발전을 위해 현재의 시스템이 과연 적합한 것이냐는 고민이 정책당국과 자본, 영화인과 영화팬 모두에게 필요한 시점이라 할 수 있겠다.

그럼 지금부터 한 해 중 가장 기대작이 많은 12월, 10편의 영화를 가려 추천한다.

① [하트 오브 더 씨] 관객과 평단의 기대 한 몸에 받고 있는 대작

하트 오브 더 씨 포스터

▲ 하트 오브 더 씨 포스터 ⓒ 워너 브러더스 코리아(주)


아마도 <백경>은 미국 문학사에서 가장 널리 알려진 작품 가운데 하나일 것이다. 이 책을 읽은 많은 이들이 "나는 이쉬마엘이다(Call me Ishmael)"로 시작되는 소설의 첫 장을 기억한다. 그리고 그보다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다리 한 짝을 앗아간 흰 고래를 끈질기게 추적했던 에이헵 선장을 기억한다. 소설이 출간된 지 한 세기 하고도 절반이 넘게 흐른 오늘날, 에이헵이 쫓던 고래 모비딕(Mobi-Dick)과 커피를 좋아하던 일등항해사 스타벅(Starbuck)은 이 소설로 알려진 다른 무엇보다도 더욱 큰 명성을 얻었다.

3일 개봉하는 <하트 오브 더 씨>는 고래의 습격을 받은 포경선 선원들의 고난을 재구성한 미국 문학의 또 다른 정수로부터 파생된 작품이다. 너새니얼 필브릭의 논픽션 <바다 한 가운데서>를 원작으로 삼은 이 영화는 오랜만에 등장하는 해양재난 블록버스터라는 점에서 관객과 평단의 기대를 한 몸에 받고 있는 대작이다. 블록버스터 안에 휴머니즘을 녹일 줄 아는 명감독 론 하워드가 크리스 헴스워스, 킬리언 머피, 벤 위쇼 등 소위 떠오르는 배우들을 재료로 어떤 작품을 빚어낼지 기대된다.

지난 2002년 <뷰티풀 마인드>를 통해 아카데미 작품상, 감독상을 거머쥔 론 하워드의 커리어는 여전히 진행 중이다.

② [극적인 하룻밤] 로맨틱코미디의 부흥, 이뤄질까?

극적인 하룻밤 포스터

▲ 극적인 하룻밤 포스터 ⓒ CGV 아트하우스


로맨틱코미디의 핵은 배우다. 매력적인 배우들이 좋은 연기를 펼쳐야 관객이 캐릭터, 나아가 이야기에 공감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요즘 로맨틱코미디 장르의 인기가 예전 같지 않다. 두각을 나타낼 만한 배우가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90년대부터 2000년대 초중반까지는 로맨틱코미디의 전성시대라 할 만 했다. 할리우드에선 맥 라이언과 줄리아 로버츠, 카메론 디아즈, 드류 베리모어 등 기라성 같은 여배우가 쏟아져나왔고, 한국에선 김하늘과 전지현이 스크린을 평정했다. 가히 여배우들의 전성시대라 할 만 했다.

하지만 2015년 로맨틱코미디 영화의 성적은 부진하기 짝이 없다. 제법 이름 있는 배우들이 출연해도 망작이 쏟아진다. 로맨틱코미디 장르에서 검증된 배우는 손에 꼽힌다. 간간이 체면치레를 하는 영화가 있긴 하지만, 김하늘의 전성시대나 <엽기적인 그녀>의 스코어에 비할 바 아니다. 공효진, 김민희, 김효진, 이연희, 고준희, 김아중, 한예슬, 정려원, 한지민 등 최근 5년 간 로맨틱코미디에 도전해 참담한 평가를 받은 여배우가 한 둘이 아니다.

이런 상황에서 윤계상, 한예리를 내세운 <극적인 하룻밤>의 등장은 신선하다. 톱스타의 기용보다 내실에 신경쓴 흔적이 역력하고, 외모보다 매력을 감안한 캐스팅이 돋보인다. 고준희와 함께한 전작 <레드 카펫>에서 로맨틱코미디에 대한 관심을 내비친 윤계상이 다시 한 번 장르영화에 도전하고 김고은, 박소담과 함께 3대 무쌍(쌍꺼풀이 없는) 여배우 트로이카 체제를 형성하고 있는 한예리도 도전장을 뽑아들었다.

이 영화는 제목처럼 '극적인' 반전을 이룰 수 있을까? 로맨틱코미디의 부흥이 이뤄질 수 있을까? 3일 확인할 수 있다.

③ [사우스포] 한달 이상 개봉 늦춰져 더욱 궁금해졌다

사우스포 포스터

▲ 사우스포 포스터 ⓒ 씨네그루(주)다우기술


가슴을 끓게 하는 복싱영화 한 편이 개봉한다. 남자냄새 가득한 작품들을 주로 찍어온 안톤 후쿠아 감독의 신작 <사우스포>가 바로 그 영화다. 원래 10월 29일 개봉예정이었다가 12월 초로 한 달 이상 개봉이 미뤄진 만큼 기대감도 증폭됐다.

왼손잡이를 가리키는 말인 사우스포를 제목으로 채택한 이 영화는 한 순간에 나락까지 추락한 왕년의 세계 챔피언이 재기하는 이야기를 감동적으로 그린 것으로 알려졌다. <록키> 이후 또 하나의 끝내주는 복싱영화가 탄생할 수 있을까? 제이크 질렌할, 레이첼 맥아덤즈, 포레스트 휘태커 등 출연배우들의 면면은 기대를 모으기 충분하다. 공은 3일 울린다.

④ [시카리오: 암살자의 도시] 평단과 관객 모두를 만족시키는 명감독의 신작

시카리오: 암살자의 도시 포스터

▲ 시카리오: 암살자의 도시 포스터 ⓒ 롯데엔터테인먼트


평단과 관객 모두를 만족시키는 흔치 않은 재능, 드니 빌뇌브의 신작이 3일 개봉한다. 제임스 카메론과 데이빗 크로넨버그라는 걸출한 명감독을 낳은 캐나다 출신으로 <달라스 바이어스 클럽>, <와일드>를 연이어 내놓은 장 마크 발레와 함께 캐나다를 대표하는 연출자로 손꼽히는 감독이다.

제이크 질렌할을 내세운 2013년작 <프리즈너스>와 <에너미>로 한국에서도 명성을 얻은 그가 에밀리 블런트, 베니치오 델 토로, 조슈 브롤린이라는 재능있는 배우들과 함께 어떤 작품을 만들었을지 몹시 기대된다.

⑤ [파더 앤 도터] 가슴 따뜻한 드라마를 원한다면

파더 앤 도터 메인 포스터

▲ 파더 앤 도터 메인 포스터 ⓒ BoXoo 엔터테인먼트


가슴 따뜻한 드라마에 강점을 가진 연출자 가브리엘 무치노가 아만다 사이프리드, 러셀 크로우 등 할리우드 톱스타와 작업을 마치고 돌아왔다. 초기작 <그게 전부야>, <라스트 키스>, <리멤버 미>를 통해 이탈리아 영화계를 평정하고 윌 스미스 부자를 내세운 <행복을 찾아서>로 할리우드까지 진출한 재능있는 감독의 신작을 즐길 더없이 좋은 기회다.

스페인의 알레한드로 아메나바르, 멕시코의 알레한드로 곤잘레스 이냐리투, 브라질의 호세 파딜라 등 비영어권 국가의 대표적인 연출자가 할리우드로 진출하는 흐름에 동참한 가브리엘 무치노의 선택이 어떤 결과를 낳을지 귀추가 주목된다. 일단 예고편은 잘 빠졌다. 10일 개봉.

⑥ [미스트리스 아메리카] 익숙한 배경 익숙한 배우들과 함께 낯선 표현을

미스트리스 아메리카 포스터

▲ 미스트리스 아메리카 포스터 ⓒ 이십세기폭스코리아(주)


전작 <프란시스 하>를 통해 누벨바그와 우디 앨런, 짐 자무시의 영화들이 그러했듯 불확실한 미래와 녹록치 않은 현실 가운데서 방황하는 청춘의 단면을 다뤘던 각본가 출신의 감독 노아 바움백의 신작. 전작에서 그는 절친한 친구와 떨어지며 주인공 프란시스가 겪게 되는 여러가지 문제를 통해 뉴욕의 청춘이 직면할 법한 현실적인 고민들과 이를 헤쳐나가는 과정까지를 애정 가득한 시선으로 그려낸 바 있다.

그랬던 그가 <프란시스 하>의 주연배우 그레타 거윅과 다시 한 번 뉴욕을 배경으로 한 영화를 찍어냈다. 2010년작 <그린버그>에 이어 <프란시스 하>, <미스트리스 아메리카>까지 세 작품을 노아 바움벡과 함께한 그레타 거윅이니 만큼 그의 페르소나라 칭해도 부족하지 않을 듯하다.

익숙한 배경, 익숙한 배우, 익숙한 동료들과 함께, 그러나 낯선 표현의 영역으로 한 걸음씩 걸어들어가는 노아 바움벡의 신작은 지켜볼 가치가 있다. 10일 개봉한다.

⑦ [서툴지만, 사랑] 벌써부터 한효주 안티팬의 공격이 있지만, 그래도

서툴지만, 사랑 포스터

▲ 서툴지만, 사랑 포스터 ⓒ (주)블루미지


전작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을 통해 호랑이(처음)부터 물고기(끝)까지 조제(진정으로 사랑하는 사람)가 되었던 여인을 그려내 수많은 관객을 울린 이누도 잇신 감독의 영화다. 우연한 시작, 안타깝게 놓친 인연, 엇갈린 사랑까지. 언제고 관객의 가슴을 때릴 수 있는 소재를 드라마에 잔뼈 굵은 능란한 연출자가 집어들었다는 것 만으로도 관객은 심장까지 가드를 올려야 한다.

한국인 캐릭터 태소연 역을 맡은 한효주의 출연으로 더욱 눈길을 끄는 이 영화는 온라인 상에서 이뤄지는 안티팬의 집중적인 공격으로 벌써부터 논란을 일으키고 있다. 이처럼 안티팬의 집중적인 포화를 겪은 송혜교, 이병헌 주연의 작품들이 고난의 행군을 이어갔던 점을 고려해보면 부정적인 측면이 적지 않지만, 좋은 내용에도 주목받지 못해 묻힌 그간의 일본영화를 생각해보면 꼭 나쁘기만 한 건 아닐 것이다.

10일 개봉하는 <서툴지만, 사랑>이 올 겨울 극장가의 승자가 될 수 있을까? 가능성이 없지는 않다.

⑧ [대호] <신세계> 박훈정 감독이 포수 천만덕 역으로 최민식을 점지하다

대호 메인 포스터

▲ 대호 메인 포스터 ⓒ NEW


명량해전서 그리도 분투했지만 결국엔 나라를 잃고 일제 앞잡이에 의해 조선의 마지막 호랑이를 쏘아죽여야 할 상황에 몰렸다. 이쯤되면 운명이라 해야겠지만, 단 12척의 배를 갖고도 수백척의 적선을 격파한 최민식이다. 어느덧 민족의 정기를 세우는 영화들에 연달아 출연하고 있는 왕년의 살인마·조폭·범죄자 전문배우 최민식의 변신은 무죄! <신세계>의 박훈정 감독이 포수 천만덕 역할로 최민식을 일찌감치 점지했다니 기대감이 상당하다.

호랑이를 살리기 위해 총을 든 조선의 명포수 이야기는 사람을 살리기 위해 칼을 썼다는 바다 건너 이름모를 사무라이의 전설을 무색케 한다. 2015년 시작부터 유명 제작자들이 올해 최고의 기대작으로 꼽았다는 이 영화, 16일 개봉한단다.

⑨ [스타워즈: 깨어난 포스] 더 무슨 설명이 필요하랴

스타워즈: 깨어난 포스 포스터

▲ 스타워즈: 깨어난 포스 포스터 ⓒ 루카스필름


새로운 전설이 시작된다! 쌍제이의 손에서.

⑩ [이웃집에 신이 산다] 크리스마스 이브 데이트에 이 영화를!

이웃집에 신이 산다 티저 포스터

▲ 이웃집에 신이 산다 티저 포스터 ⓒ (주)엣나인필름


<토토의 천국>, <제8요일>, <미스터 노바디>의 자코 반 도마엘의 신작. 1996년작 <제8요일> 이후 2009년작 <미스터 노바디>를 내놓기까지 무려 13년이 걸렸다. 심지어 국내 개봉은 2013년이었으니 그의 팬은 온전히 17년을 기다림으로 채워야 했다. 이제 신작 <이웃집에 신이 산다>가 불과 6년 만에, 그것도 정상적인 시차를 두고 개봉을 한다니 영화팬들은 양 팔을 펼쳐 반길 일이다.

작가를 넘어 거장이라는 칭호가 어울릴 현존하는 몇 안 되는 감독의 영화다. 영화를 통해 예술을 하는 멸종위기 예술가의 작품이다. 크리스마스 이브 데이트에 이 영화를 선택하는 센스있는 연인이 되어보자. 24일 개봉.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김성호 시민기자의 개인블로그(http://goldstarsky.blog.me)에도 함께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기대작을 추천합니다 김성호의 씨네만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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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평론가.기자.글쟁이. 인간은 존엄하고 역사는 진보한다는 믿음을 간직한 사람이고자 합니다. / 인스타 @blly_kim / 기고청탁은 goldstarsky@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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