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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변호인>에서 '송변(송강호 분)'은 피 토하듯 외친다. "국가란 국민입니다!" 이 발언은 '송변'의 개인적 주장이 아니라 엄연히 헌법에 실린 객관적 사실이다. 

헌법은 국가의 정체성을 규정하고 국민의 권리와 의무를 담은 최고 규범이다. 이 대한민국을 떠받치는 주춧돌은 제1조 2항에서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고 규정했다. 이 조문을 통해 '국가가 국민'이 된다.

보통 많은 사람이 헌법을 자신과 멀리 있다고 느낀다. 민법이나 형법으로 소송에 얽히는 경우는 있어도 헌법은 그런 경우가 거의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법은 소수 전문가의 독점물이 돼선 안 된다. 헌법은 특히 그렇다. 그런 원칙에 부합하게 헌법은 하위 규범과 다르게 생경한 전문용어 대신 비교적 '일상 언어'에 가깝게 쓰였다.

하다못해 홈쇼핑에서 물건 하나를 사더라도 꼼꼼히 살펴본 후에 전화기를 든다. 그런데 우리의 모든 생활에 영향을 미치는 헌법을 읽어본 적이 없다면 부끄럽지 않겠나. 박홍순은 그래서 <헌법의 발견>을 썼다. 인문학으로 헌법을 읽기 쉽게 푼 책이다.

헌법이 사회계약 원리를 담고 있는 이상, 주권을 가진 계약 당사자로서 각 개인이 누구보다도 계약 내용을 잘 알고 있어야 한다. 현실의 법률과 정책의 계약 위반 여부는 물론이고, 과거의 계약이 갖는 한계와 새로운 계약의 필요 여부에 대해서도 주권자로서 판단할 수 있어야 하겠다. - <헌법의 발견> 저자의 말 중에서

우리 국민은 권위주의로 점철된 군사정권을 거치며 헌법을 비롯한 법 자체를 이해하기 보다 지켜야 할 대상으로 보는 경향이 짙다. 법에 담긴 정신을 살피는 법 대신 '준법정신'만 주입 받았다. 특정 집단이 헌법 해석을 독점하는 세태를 좌시하면서 '국가가 국민'이라고 외쳐대기만 할 텐가.

헌법이 보장한 권리, 무슨 이유로 막나

인문학, '시민 교과서' 헌법을 발견하다 <헌법의 발견>
▲ 책표지 인문학, '시민 교과서' 헌법을 발견하다 <헌법의 발견>
ⓒ 비아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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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법의 발견>에 실린 몇 가지 조항을 보자. 먼저 제21조 2항이다. '집회·결사에 대한 허가는 인정되지 않는다'라고 규정돼 있다. 집회는 '신고'만으로 충분하다. 그러나 이 '신고'도 따지고 보면 헌법에 반하는 경우로 흐를 수 있다.

한국은 시위의 규모나 종류와 관계없이 모든 옥외 집회를 같이 취급한다. 소수가 모이는 집회나 간단한 성명 발표조차 경찰의 구미에 따라 언제든 금지될 여지가 있다.

책에 따르면 미국의 많은 주와 상당수 민주국가에서 사전 신고가 요구되는 경우는 대규모 집회나 시위일 뿐이다. 양심에 따라 국민의 의견을 제시하는 도구인 언론·출판·집회·결사의 자유에서 '최대한의 원칙'을 견지하기 때문이다.

심지어 독일에서 신고 의무는 '구체적 위험의 회피'를 위한 것이고 그 자체가 목적이 아니므로 신고 의무 위반이 곧바로 해산 사유가 되지 않는다. 신고 없는 집회라도 해산은 엄정한 이유가 있어야만 정당화될 수 있다는 말이다.

정부는 껄끄러운 내용을 요구하거나 통치에 방해가 되는 형식의 집회 및 시위에 대해서는 금지 조치를 남발해 왔다. 집회 및 결사를 사상과 양심의 자유를 실현할 주요 통로로 인정하고 적극적으로 보장하는 헌법 정신을 사실상 부인해 온 것이다. - <헌법의 발견> 중에서

제33조 1항은 어떤가. '근로자는 자주적인 단결권·단체교섭권 및 단체행동권을 가진다'라고 분명히 밝히고 있다. 책은 이 조항 중 '자주적'이란 말에 주목했다. '자주적'은 헌법 분량을 늘리기 위해 그냥 넣어둔 단어가 아니다.

노동자 스스로 판단하고 활동할 수 있어야 한다는 의미다. 이미 1948년 '세계인권선언'은 제23조 4항에서 '모든 사람은 노동조합을 결성하고 가입할 수 있는 권리가 있다'고 규정했다. 노동자의 자주적 권리를 옥죄는 건 70년이나 뒤떨어진 행태다.

자주적인 권리라는 점에서 노동조합은 정부에 의한 일방적인 허가의 대상이 아니다. 하지만 한국 정부는 헌법이 부여한 권한을 넘어 노동조합을 사실상 허가제로 운영하는 비상식적인 행정행위를 반복하고 있다. 한국 정부가 최소한의 노동자 권리를 인정한다면 해고자의 조합원 자격을 제한하는 조항을 즉각 폐지하고 전교조를 비롯한 공무원 노조를 사회적 파트너로 인정해야 한다. - <헌법의 발견> 중에서

그러니 시민 의견의 표출 통로인 집회를 자의적 잣대로 허락하지 않는다거나 "노조가 없었으면 선진국이 됐을 것"이란 언사, 헌법에 보장된 노동조합을 하위 규범을 이용해 사실상의 허가 대상으로 전락시키는 행위는 위헌적 망동이다.

민주주의 짓밟은 쿠데타 옹호하는 건 '반헌법적'

14일 오후 서울 광화문에서 열린 민중총궐기 대회에서 경찰이 참가자들에게 물대포를 쏘고 있다. '민중총궐기 대회'는 민주노총 등 53개 노동·농민·시민사회단체로 이뤄진 '민중총궐기 투쟁본부'가 세월호 참사, 역사교과서 국정화, 언론장악, 철도-의료-교육민영화, 노동개악 등 박근혜 정부를 규탄하며 개최한 대회다.
▲ 민중총궐기 대회', 경찰의 마구잡이 물대포 14일 오후 서울 광화문에서 열린 민중총궐기 대회에서 경찰이 참가자들에게 물대포를 쏘고 있다. '민중총궐기 대회'는 민주노총 등 53개 노동·농민·시민사회단체로 이뤄진 '민중총궐기 투쟁본부'가 세월호 참사, 역사교과서 국정화, 언론장악, 철도-의료-교육민영화, 노동개악 등 박근혜 정부를 규탄하며 개최한 대회다.
ⓒ 이정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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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헌법은 전문에서 '불의에 항거한 4·19민주이념을 계승'한다고 못 박고 있다. 책은 "당시의 법질서를 정면으로 거부하고 물리적 힘을 통해 정부를 전복시키려 한 시도"라면서 "이를 '민주이념'으로 표명할 뿐만 아니라 대한민국 정통성의 근거로 삼는다는 점에서 우리 헌법이 공식적으로 저항권을 인정하고 있다는 견해가 많다"고 지적한다.

'저항권'이다. 이승만 독재를 종식한 4·19혁명을 불법시위로만 매도했다면 지금의 헌법이 있었을까. 현행 헌법은 30년 전 최루탄을 직격 발사해 국민의 생명을 위협하던 군사정권으로부터의 저항을 통해 쟁취한 소중한 산물이다. 당시의 직격 최루탄과 지난 14일 '민중총궐기'에서의 물대포 직격 발사 장면이 겹쳐 보이는 건 왜일까.

여기에 더해 4·19를 통해 성취한 민주주의를 짓밟았던 5·16군사쿠데타를 옹호하는 행위 또한 '반헌법적'이란 해석이 가능하다. 누구보다 헌법을 지켜야 할 각료와 국회의원들은 아직도 '반헌법적' 언사를 서슴지 않는다. 이런 뿌리 깊은 악행을 막기 위해서라도 우리는 헌법을 읽어야 한다.

국가란 국민이다. '송변'의 절규가 공허한 울림으로 남지 않도록 헌법을 지키는 건 국민의 의무다. 넉넉히 한 시간이면 된다. 헌법을 읽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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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편집ㅣ최은경 기자

덧붙이는 글 | <헌법의 발견> (박홍순 지음 / 비아북 펴냄 / 2015.11 / 1만5000원)



헌법의 발견 - 인문학, '시민 교과서' 헌법을 발견하다!

박홍순 지음, 비아북(2015)


태그:#헌법의 발견, #박홍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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