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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 18일 농성장을 방문하기 전 비를 맞고 있는 농성장을 촬영했다
▲ 도로 맞은편에서 바라본 농성장 전경 11월 18일 농성장을 방문하기 전 비를 맞고 있는 농성장을 촬영했다
ⓒ 유문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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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충북 단양에서 농사 짓는 43세 유문철입니다. 지난 18일 백남기 선생의 쾌유를 기원하는 서울대병원 앞 농성장에 갔습니다.

지난주 토요일(14일) 민중총궐기 대회에서 백남기 선생께서 경찰이 얼굴에 직사한 물대포를 맞고 중태에 빠졌다는 소식을 듣고 내내 죄스런 마음이 들었습니다. 젊은 농부가 집회에 참석하지도 않고 아버님 연배의 선배 농민이 쓰러지는 동안 뭐했던가, 하는 자괴감에 무척 괴로웠습니다. 날마다 페이스북과 매체를 통해 백남기 선생의 성자 같은 인생을 조금씩 알게 되면서 괴로움은 더해 갔습니다.

쌀 팔고 마늘 팔아 '백만원 봉투' 만들다

17일, 단골 손님들이 주문한 햅쌀과 마늘, 고추가루, 참깨, 옥수수 등 한해 동안 재배한 온갖 농산물을 택배 보내느라 방아 찧고, 고추가루 빻고, 마늘 손질하고 옥수수 따느라 분주했습니다. 이렇게 보내고 받은 돈이 백만 원이 조금 넘더군요. 백남기 선생이 우리 농민 모두를 위해 집회에 참석해, 맨 앞에서 차벽을 끌어내는 줄을 당기다 변을 당했습니다. 그렇게 사경을 헤매는 동안 저는 제 농사일을 하고 돈을 벌었습니다.

농성장 운영 경비로 쓰시도록 농산물 판 돈 1백만원을 준비하다
▲ 농성장 후원금 농성장 운영 경비로 쓰시도록 농산물 판 돈 1백만원을 준비하다
ⓒ 유문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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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남기 선생의 희생에 비하면 아무 의미도 없지만 이 돈은 저의 돈이 아니라는 생각에 이 돈을 들고 서울대병원 앞 농성장으로 갔습니다. 농성장엔 전농(전국농민회총연맹) 의장님, 전여농(전국여성농민회총연합) 의장님, 환농연(환경농업단체연합회)과 친농연(친환경농업인연합회) 사무총장님, 가톨릭농민회을 비롯한 많은 분들이 슬픔을 함께 하고 쾌유를 기원하고 있었습니다.

백남기 선생의 동료인 보성농민회 어르신들도 단체 상경하셔서 농성장을 지키는 분들께 감사와 미안함을 전달하고 있었습니다. 김영호 전농 의장님께 집회에 참석하지 못한 사과를 드리고 농성 경비로 쓰시도록 개인 차원에서나마 후원금을 드렸습니다.

비 오는 날, 동료 농민들과 농성장에 앉았습니다. 강다복 전여농 의장님께서 내어 주신 귤과 엿을 먹으며 전기장판에 앉아 비오는 거리를 바라보며 이런저런 얘기를 두런두런 나누었습니다. 오늘 처음 뵈었지만 우리 옆집 아주머니와 사는 이야기 나누듯 평화로운 시간이었습니다.

지나가는 시민이 건네 준 커피잔을 마주 하고 비내리는 거리의 현수막을 바라보다
▲ 농성장 안에서 바라본 거리 지나가는 시민이 건네 준 커피잔을 마주 하고 비내리는 거리의 현수막을 바라보다
ⓒ 유문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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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바꾸는 보통사람들의 힘

그것도 잠시, 모두들 기자회견 한다고 떠나고 농성장 한 켠에 홀로 남았습니다. 지나가던 시민이 건네 준 커피 한 잔을 놓고 농성장에 앉아 이런저런 생각을 했습니다.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농성 천막 안에 앉아 본 건 이번이 처음입니다. 학생 시절과 농민이 된 후 이런 저런 집회에 참여해서 거리 연좌 농성을 해 본 적은 있지만 천막농성은 사뭇 느낌이 다릅니다.

전 오늘 이 농성장을 잠시 다녀가지만 이 자리를 지키시는 분들은 몇날 며칠 밤을 새워 농성을 합니다. 백남기 선생을 위한 농성장뿐만 아니라 세월호 농성장, 콜트콜텍 농성장 등 우리 사회 곳곳에 피눈물 나는 사연을 호소하는 농성장이 많습니다. 전 농민으로서 농민의 피눈물을 더는 일에 반발짝이나마 걸음을 내디디었습니다.

오른손이 하는 일을 왼손이 모르게 하는 것이 미덕이라고 하는 사회에서 제가 이름을 내고 후원금액을 말하는 이유는 저처럼 소심한 사람들이 저처럼 용기를 내서 참여하기를 호소하기 위함입니다.

나 먹고 살기도 어려운데 무슨 후원이냐, 바뀌는 것도 없는데 무슨 참여냐 하지 말고 각자의 자리에서 자라나는 다음 세대에게 더 좋은 세상을 물려주기 위해 작은 실천이라도 합시다. 집회와 농성의 일선에 계신 활동가들의 헌신도 중요하지만 세상을 변화시키는 건 우리 평범한 민초들의 행동입니다.

농민이 편하게 농사 짓는 세상을 염원하며 밥쌀 수입 개방 반대를 외치다 쓰러지신 백남기 선생의 희생은 어린 농부의 미래를 열기 위함이다.
▲ 젊은 농부의 아들 유한결 농민이 편하게 농사 짓는 세상을 염원하며 밥쌀 수입 개방 반대를 외치다 쓰러지신 백남기 선생의 희생은 어린 농부의 미래를 열기 위함이다.
ⓒ 유문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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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세상은 거저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 우리 한사람 한사람이 변화를 실천할 때 옵니다. 만인이 평등한 참다운 민주주의 세상을 위해 조금씩이라도 용기를 냅시다.

○ 편집ㅣ홍현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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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유문철 농민은 18일 서울대병원 농성장 방문 이후 가톨릭농민회에 가입하여 원주대교구 소속으로 정기적인 농성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이번 사태와 관련한 추가 소식은 페이스북 백남기대책위 https://www.facebook.com/backnamki1114/?fref=ts, 가톨릭 농민회 블로그 http://ccfm.or.kr/를 확인해 주시기 바랍니다.



태그:#백남기, #민중총궐기대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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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북 단양에서 유기농 농사를 짓고 있는 단양한결농원 농민이자 한결이를 키우고 있는 아이 아빠입니다. 농사와 아이 키우기를 늘 한결같이 하고 있어요. 시골 작은학교와 시골마을 살리기, 생명농업, 생태운동을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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