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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사는 마을은 한때, 초등학교를 끼고 있어서 아이들과 주민들이 북적거리는 곳이었다. 농촌 시골 마을 현실이 다 비슷하듯이, 우리 마을도 젊은이들이 도시로 빠져나가면서 점점 활력을 잃어갔다. 사람의 손길이 없어서 흉물스럽게 변해버린 빈집들과 더불어 20여 가구 남짓한 규모로 쇠락했다.

마을 주민의 대다수는 노인들이다. 젊은이들과 아이들이 없으니 초등학교도 문을 닫았다. 이제 마을에 남아있는 아이들이란 우리 집 삼남매가 유일하다. 저출산, 고령화 문제는 고성장 시대의 종말과 더불어 우리 앞에 닥친 국가적 위협이다. 기대 수명 상승에 따른 노인층의 증가는 돌봄과 복지에 대한 수요를 증대시킨다.

이를 감당하기 위한 복지 재정을 어떻게 확보할 것인가의 문제가 사회적 갈등으로 불거진 것이 바로 '국민연금' 논란이다. 노인층과 청년층의 복지 불균형에 관한 문제가 엉뚱하게 '세대 갈등'으로 불똥이 튀기는 했지만, 이것은 저출산-고령화 사회가 짊어져야 할 많은 문제들 중에 일부에 불과하다.

저출산-고령화에 따른 국가적 위기를 우려하는 경고음에도 불구하고 이 문제에 대한 체감온도는 그다지 높지 않다. 국민연금 사안처럼 구체적인 논란으로 불거지지 않는 이상, 저출산-고령화는 당장의 먹고 사는 문제로 생생하게 다가오지 않는다.

특히 대도시로 갈수록 체감온도는 더 떨어진다. 하지만 시골로 오면 사정이 달라진다. 저출산-고령화는 마을의 지속가능성과 직결되는 중대한 문제다. 우리 집 삼남매가 자랐을 때는 이 마을이 남아있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위기감, 시골 마을에서 인구 감소는 그야말로 죽느냐, 사느냐의 문제다.

일본 열도를 충격에 빠뜨린 '마스다 보고서'

<지방소멸> 표지
 <지방소멸> 표지
ⓒ 와이즈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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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5월 일본 열도를 충격에 빠뜨린 인구 감소에 관한 보고서가 있다. 일명 '마스다 보고서'로 불리우는 이 문건은 2040년까지 일본의 지자체 중 절반에 해당하는 896개가 사라질 것이라는 전망을 내놨다.

이 보고서를 집필한 마스다 히로야 전 총무장관은 896개 자자체를 '소멸 가능성 도시'라고 명명했다. '마스다 보고서'의 내용을 담은 책 <지방 소멸>은 인구 감소로 연쇄 붕괴에 직면한 일본 사회의 생존 전략을 제안한다.

일본은 2008년을 정점으로 인구 감소 국면에 진입했다. '국립 사회보장 인구문제 연구소'의 '일본의 장래 추계 인구' 보고서를 바탕으로 예측한 결과, 2010년 1억 2806만명이던 일본의 총인구는 2050년에 9708만명, 2100년에는 4959만명이 될 것이라고 한다. 불과 100년도 지나지 않아 일본은 현재 인구의 40% 수준만 남게 된다는 충격적인 결과다.

저자가 보기에 일본의 인구 감소는 저출산에 따른 자연감소에도 원인이 있지만 지방에서 대도시권, 특히 도쿄권으로의 '인구 이동'에 더 깊은 관련이 있다. 일본 전체가 똑같은 비율로 인구가 감소하는 것이 아니라 지방은 인구가 격감하는 반면, 대도시는 인구가 집중되는 현상을 보이고 있다.

저자는 "도쿄가 인구를 유지하는 이유는 지방에서 인구가 유입되고 있기 때문"이라며 "도쿄는 출산률이 매우 낮아서 인구 재생산력이 저조하다. 지방의 인구가 소멸하면 도쿄로 유입되는 인구도 사라져 결국 도쿄도 쇠퇴할 수밖에 없다"고(13쪽) 전망한다.

지방의 인구 감소는 지방만에 국한된 문제가 아니라 곧 도시로의 연쇄 붕괴로 이어질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저자는 이를 '극점 사회'의 도래라고 부른다. 그는 "인구의 '자연적 감소'만 따진다면 인구 감소의 속도가 보통 느리게 진행되지만, 여기에 젊은층의 인구 유출에 따른 '사회적 감소'가 추가됨으로써 인구 감소에 가속도가 붙는다"며 "'지방 소멸'은 어느 시점부터 단숨에 가시화될 것이다, 사태의 심각성을 깨달았을 때는 이미 늦어버렸을 가능성이 높다"고(39쪽) 경고한다.

'극점사회의 대도시에는 집적 효과를 추구하는 경제 구조가 만들어질 가능성이 높은데, 이것은 반대로 거대한 경제 변동에 약한 '단일구조'라고 할 수 있다. 대지진 등의 대규모 재해 리스크에 대한 반응이라는 측면에서도 문제가 드러난다. 극점 사회가 안고 있는 커다란 문제 중 하나는 수도권 직하형 지진을 비롯해 일부 지역에서의 대규모 재해가 일본 전체를 마비시킬 수도 있다는 점이다. 이런 관점에서 생각할 때 일본은 극점 사회의 도래를 막고 지방이 자립함으로써 다양성을 바탕으로 지속가능한 사회의 실현을 지향하는 것이 중요하다.' (42쪽)

결국은 대도시로의 집중을 막고 지방의 지속가능성을 확보하는 것이 답이다. 그렇다고 모든 지역에 다 똑같은 노력을 쏟아부을 수는 없다. 선택과 집중이 필요하다. 저자는 지방 중핵 도시를 거점으로 삼으면서 그곳과 인접한 각 지역의 생활 경제권이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경제 사회의 측면에서 서로를 지탱하는 '유기적인 집적체' 구축(151쪽)을 대안으로 제시한다.

'지방의 지속가능성은 '젊은이에게 매력적인 지역인가, 아닌가?'에 달려 있다고 할 수 있다. 요컨대 앞으로 지향해야 할 기본 방향은 '젊은이들에게 매력적인 지방 중핵 도시'를 축으로 한 '새로운 집적 구조'를 구축하는 것이다. 한편 당장은 지방의 인구 감소를 막을 수 없다. 이 어려운 조건 속에서 한정된 지역 자원을 재배치하고 지역 간의 기능 분담이나 연계를 진행해나가는 것이 중요하다.

이를 위해서는 인구 감소라는 현실을 직시하고 철저히 '선택과 집중'의 개념에 입각해 가장 효과적인 대상에 투자와 시책을 집중할 필요가 있다. 이런 관점에서 먼저 광역 지역 블록별로 인구 감소를 막으면서 각 지역이 자신들의 자양한 힘을 최대한 쥐어짜내 독자적인 재생산 구조를 만들기 위한 '방어, 반전선'을구축할 수 있는 인구, 국토 구조를 제안하고자 한다.' (59~60쪽)

한국도 예외 아냐... 마을이 사라진다

앞으로 30년 안에 지자체의 절반이 사라질 것이라는 전망은 비단 일본에만 국한된 이야기가 아니다. 최근 중앙일보가 통계청과 함께 전국 252개 시군구의 인구자료를 토대로 시뮬레이션 한 결과, 일본과 비슷한 경로를 밟을 것으로 예측됐다.

통계청에 따르면 2040년 한국의 65세 이상 노인 비율은 32.4%, 1650만명이 될 전망이다. 노인 인구 증가치를 전국 252개 시군구에 적용해 분석하면 2040년 전국 지자체 72곳에서 65세 이상 노인이 절반을 넘을 것으로 보인다. 경남 남해와 합천, 의령 등은 노인 인구가 80%를 넘을 것이라고 한다.

또한 '충남연구원'이 조사한 바에 따르면 2040년까지 충청남도 내에서 소멸 위기에 놓인 마을은 351개에 달한다고 한다. 현재의 고령화 추세가 지속될 경우 기대 수명을 감안한다면 20~30년 뒤에는 사라지는 마을이 속출할 것이라는 얘기다. 지방을 살리는 획기적인 대책이 없다면 마을이 사라지는 것은 막을 수 없을지도 모른다.

저자는 "저출산화에 따른 인구 감소 문제는 고령화 문제에 가려져 왔다"며 "만성질환처럼 나타나는 저출산화가 자신들의 마을과 삶에 어떤 영향을 끼칠지에 대해서 위기감을 느끼고 인식을 공유해야 한다"고(10쪽) 지적한다.

고령화 현상에 대한 대책을 실시하는 동시에 인구 감소에 대한 대책을 강구해야 한다. 출산율을 높이기 위한 정책도 중요하겠지만 인구의 사회적 감소를 막고 수도권과 지방의 균형적이고 지속가능한 발전을 위한 국가 전략을 마련해야 한다. 인구 감소는 미래의 문제가 아니라 현실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 편집ㅣ최은경 기자

덧붙이는 글 | <지방소멸> (마스다 히로야 지음 / 와이즈베리 펴냄 / 2015.9. / 1만4000원)

이 기사는 이민희 시민기자의 개인 블로그(http://blog.yes24.com/xfile340)에도 함께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본인이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지방 소멸 - 인구감소로 연쇄붕괴하는 도시와 지방의 생존전략

마스다 히로야 지음, 김정환 옮김, 와이즈베리(2015)


태그:#인구 감소, #지방 소멸, #저출산, #고령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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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시골 농촌에서 하루 하루 잘 살기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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