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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남형 혁신학교 이름은 '행복나눔학교'입니다. 올해부터 행복나눔학교로 선정된 21개 학교에서 4년간 교실 혁신이 꾸준히 추진됩니다. 행복나눔학교가 공교육의 모델이 될 수 있을까요? 가고 싶은 학교, 행복한 교실은 어떻게 만들어질 까요? <오마이뉴스>가 <충남도교육청>과 공동으로 행복나눔학교를 돌며 시행 1년을 들여다보았습니다. [편집자말]
거산초등학교
 거산초등학교
ⓒ 심규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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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 정문으로 들어섰다. 거산초다. 충남 아산시 송악면 거산리에 있는 작은 산골학교다.

'내 삶의 주인은 나, 더불어 사는 우리'. 운동장 너머 건물 중앙에 큼지막하게 걸린 글귀다. '나'를 중시하면서도 '상대방'에 대한 배려를 가르치는 교육방향이 와 닿았다.

교장실은 아이들의 놀이터

이 학교 급식실은 교장실 옆이다. 복도를 따라 교장실을 지나야 급식실을 갈 수 있다. 복도에서 쿵쾅거리며 뛰는 아이들은 없지만 오가는 사람들이 많아 소란스러울 수밖에 없다. 교장실 문은 안이 훤히 보이도록 늘 열려 있다.

점심을 마친 몇몇 아이들이 스스럼없이 교장실로 들어섰다. 아빠나 할아버지를 대하듯 대화 내용도 자연스럽다. 기자도 슬쩍 교장실 문턱을 넘었다. 이상수 교장이 아이들에게 말했다.

"손님이 오셨으니 나중에 또 놀러 와라."

한 아이가 답한다.

"네, 내일 또 올게요!"

다른 아이가 말을 받았다.

"저는 이따가 다시 올게요!"

점심을 마친 학생들이 교장실에 들러 놀고 있다.
 점심을 마친 학생들이 교장실에 들러 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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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장실 벽 한쪽 면에는 학년별로 학생들의 얼굴과 이름, 장래 꿈이 새겨져 있다. 전교생이 6학급 109명이다.

이 교장은 지난 9월 이 학교로 부임했다. 교직에 몸담는 동안 거산초에서 행복나눔학교(혁신학교)를 처음 접했다. 이 교장은 "아이들이 오가다 맘 내키면 들어와 놀다 간다"며 "처음엔 생소했지만, 지금은 되레 아이들과 나누는 시간이 즐겁다"고 말했다.

"거산초를 접하며 '진짜 교육을 하고 있구나' 생각했어요. 모든 아이의 표정이 밝고 자기 의견도 뚜렷해요. 교사들은 교육을 위해 다른 학교보다 5~6배 많은 일을 해요. 교사들이 아이들에게만 집중하도록 되도록 회의도 줄이고, 교사들이 자율적으로 운영하도록 맡겨 놓고 있어요."

교사들에게 교장과 교감은 여전히 다가가기 어려운 존재다. 서로를 신뢰하기는 더욱 어렵다. 거산초의 한 교사는 "교장과 교감이 교사들을 믿고 건강을 걱정해준다"며 "교사들이 열심히 하는 모습을 보고 어떻게 도울지를 고민해 주신다"고 말했다.

이 교장은 "권위는 남들이 인정해 줘야 선다"며 "인정해주지 않는 권위는 교만"이라고 말했다. 그는 "권위를 내려놓으니 편안하다"고 덧붙였다.

이 학교의 임재목 교감은 행정업무전담팀장을 맡아 교사들의 행정업무 대부분을 꼼꼼히 처리해주고 있다.

영화 찍는 학생들, 감독에서부터 배우까지 모두 학생

영화 촬영 중인 거산초 5학년 학생들
 영화 촬영 중인 거산초 5학년 학생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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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 건물 옥상에서 영화를 찍고 있는 6학년 학생들
 학교 건물 옥상에서 영화를 찍고 있는 6학년 학생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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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도 옆 한 교실 쪽에서 '딱'하고 '슬레이트'를 치는 소리가 들렸다. 들여다보니 아이들이 영화를 찍고 있다.

"전 학년이 일주일간 가을 체험학교 기간이에요. 5, 6학년들은 영화를 찍고 있어요."

한진희 거산초 교무부장이 상황을 설명했다. 배우들의 움직임이 예사롭지 않다. 감독을 맡은 이혜승 학생이 맘에 들지 않는지 몇 번씩 '액션!'을 외쳤다. 감독에서부터 조감독, 배우 모두 이 학교 학생들이다.

카메라 감독을 맡은 김동주(5학년) 학생의 설명이 이어졌다.

"5학년은 '학교로 가는 옹고집'을 촬영 중이에요. 지금 찍는 건 옹고집이 가출해서 피시방에서 하룻밤 자는 장면이에요. 시나리오요? 모여서 같이 상의해서 만들었어요. 힘들지만 너무 재미있어요."

옥상에서는 6학년 학생들이 드라큘라 분장을 하고 촬영 중이다. 4학년 학생들은 연극을 준비중이다. 거산초는 매년 두 차례 각각 5일간 계절 체험학습을 하고 있다. 학습 내용은 전체 교무협의와 교사 학부모 연석회의를 통해 의견을 나눈다. 지난 6월에는 여름 계절학기를 진행했다.

수업 보조교사는 '학부모'

학교 운동장 도화지에 가을 풍경을 그리고 있는 학생들
 학교 운동장 도화지에 가을 풍경을 그리고 있는 학생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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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학생이 도화지 안에 들어가 가을 풍경을 표현하고 있다.
 한 학생이 도화지 안에 들어가 가을 풍경을 표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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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 운동장에는 1, 2학년 학생들이 모여 뭔가를 만드느라 바쁘다. 생태 체험행사로 학교 뒤 야산으로 산책하러 다녀온 후였다. 하얀 석회가루로 그은 네모 안을 도화지 삼아 나뭇잎, 나뭇가지, 풀잎 등 뒷산에서 주어온 소품을 이용, 운동장 도화지 위에 가을을 표현 중이다.

한 모둠은 액자 안에 알밤과 밤송이까지 주워다 늘어놓았다. 다른 모둠의 한 학생은 도화지 안에 앉아 있다. 다른 아이들은 열심히 주변에서 풀을 뜯어다 도화지를 채우고 있다.

"가을 풀숲에 앉아 쉬고 있는 모습이에요."

아이들의 상상력이 대견해 보였다.

교사 외에 체험 수업을 진행하는 학부모들이 곳곳에 눈에 띄었다.

"학부모 모임 중 생태지원단 소속이에요. 학생들의 생태지원 수업을 돕고 있어요."

이 학교에서는 유치원에서부터 초등생까지 월 1회 생태교육을 진행 중이다. 수업에는 생태지원단에 소속된 학부모들이 참여해 도움을 준다. 거산초에서는 모든 학부모가 한 개 이상 지원단에 가입, 활동하고 있다. 지원단은 생태지원단 외에 교육과정지원단, 문화예술지원단, 독서지원단, 연수지원단이 있다.

한 교무부장은 "아이들을 수업의 주인공으로 세워야 교실이 바뀐다"며 "교과서 밖에서 수업 자료를 찾고 아이들끼리 문제를 해결하게 하는 체험과 토론 수업이 주를 이룰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천안과 아산에서 왜 산골 학교에 아이 보내나

거산초 학부모들이 학교를 자랑하고 있다.
 거산초 학부모들이 학교를 자랑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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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악면 거산리는 60여 가구, 총인구 250여 명에 불과하다. 주민 대부분이 농업에 종사한다. 거산초는 1935년 송남보통학교 간이학교로 문을 열었지만 1992년 분교로 격하됐다. 이후 급감하는 학생 수로 여러 차례 통폐합위기를 겪었다. 

지난 2002년에는 폐교 위기를 맞았다. 지역주민들은 폐교 반대에 나섰고 학부모와 교사 학교 살리기에 나섰다. 같은 해 2월 천안, 아산에 있는 학부모 96명이 전입해 폐교를 막았다. 이들은 작은 학교를 표방하고 학생 중심의 대안적 실천교육을 시작했다.

교사회의를 통해 학교운영을 결정했다. 둘레 산골 환경을 활용한 농촌학교를 지향했고, 텃밭을 가꾸고 동물과 꿀벌을 기르는 살아 있는 체험학습을 벌였다. 학부모들은 학부모교사연석회의, 학부모총회, 학부모대표자회의 등을 통해 학교교육에 함께 참여해 의견을 나눴다.

지금은 학생들의 80%가 거산에 거주하는 지역민이다. 20%는 인근 아산과 천안에서 셔틀버스를 타고 오간다. 

임영미씨는 아산에 살면서 이 학교에 4학년과 2학년 자녀를 보내고 있다. 그는 "어린 시절을 시골학교에서 다니며 어른이 될 때까지 영향을 받았다"며 "아이들에게도 자연환경 속에서 추억을 되새김할 기회를 주고 싶었다"고 말했다.

이란희 학부모는 이 학교에 3학년과 6학년 아이가 다닌다. 그는 "교사들이 열의를 다해 애정으로 학생들을 돌봐 주신다"며 " 일반 학교에 비해 아이들에게 쏟는 시간과 에너지가 2~3배 많아 힘든데도 기쁨으로 알고 아이들을 대한다"고 말했다. 이어 "매달 학부모와 교사들이 스스럼없이 소통하고 있다"고 밝혔다.

지역이 학교를 살렸다. 학교가 지역을 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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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편집ㅣ홍현진 기자



태그:#거산초, #혁신학교, #행복나눔학교, #충남도교육청, #충남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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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보천리 (牛步千里). 소걸음으로 천리를 가듯 천천히, 우직하게 가려고 합니다. 말은 느리지만 취재는 빠른 충청도가 생활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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