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남편이 회식이 있어 늦는 날. 남편의 귀가를 기다리는 건 나도 아니요, 첫째 아이도 아니요, 바로 다섯 살 둘째 아이다.

"아빠는 언제 와요?"
"좀 늦으신댔는데."
"나 자면 와요?"
"아마 그럴 것 같은데..."

금세 시무룩해진 얼굴. 반면 나는 때는 이때다 싶어, 평소보다 과도한 관심을 아이에게 쏟는다. 아빠 껌딱지 둘째에게 점수 좀 따려는 것. 아이 곁을 맴돌며 책도 읽어주고, 장난도 걸어보지만 정작 아이는 별 반응이 없다.

어느덧 자야할 시간. 이를 닦자고 칫솔을 내미니, "아빠가 해줬으면 좋겠어" 하고 울먹이는 둘째. 겨우 달래 이를 닦이고 자리에 눕는데 아이가 하는 말. "아빠랑 이렇게 마주 보고 잤으면 좋겠어" 가만 듣자니 짠하기도 하고 서운하기도 하고. 그런데 어쩌랴. 아직 애라 그런 걸.

"그래... 너 옆은 아빠 자리니까 엄마는 그 옆에 누워서 잘게. 그리고 아빠 오면 깨워줄게."
"응."

늘 말은 이렇게 한다. 그래야 안심을 하고 자니까. 불도 꺼선 안 된다. 아빠가 들어와서 어두우면 넘어져셔 안 된다고. 눈물이 날 정도다. 부러워서. 밝은 방 안에서 잠을 청하려니, 이것도 못 할 짓. 내 눈은 말똥말똥한데 잠이 오지 않는다고 투정을 부리던 둘째는 어느새 꿀잠에 빠졌다. 다른 날 같으면 아빠랑 나란히 누워 마주 보고 멜로 드라마 한 편을 찍고도 남았을 텐데...

"아빠, 잘자... 사랑해요."
"그래 나도 사랑해. 잘 자~~~아."
"엄마는? 엄마도 사랑해."
"......"

둘째아이의 눈물겨운 아빠사랑. 왜 늘 엄마보다 아빠일까. 물론 엄마보다 아빠랑 보내는 시간이 많고 워낙 아이 말을 잘 들어주니 그렇다는 거 머리로는 이해하지만, 이럴 때 속상한 건 어쩔 수 없다. "지금 잠깐이지 딸은 다 나중에 엄마 편 된대" 남편의 말도 그닥 위로가 되지 않는다. 그림책 <사랑해 100번>에 등장하는 하나 엄마가 갑자기 부러워지는 밤. 나도 하나 엄마처럼 "사랑해" 백 번 해줄 수 있는데...

잠자기 전에 아이가 가는 곳은?

무라카미 시코가 쓰고 오시마 다에코가 그린 <사랑해 100번>
 무라카미 시코가 쓰고 오시마 다에코가 그린 <사랑해 100번>
ⓒ 책읽는곰

관련사진보기

아빠 없는 밤. 동생 두나는 이미 콜콜 잠들었는데 하나는 잠이 오지 않았어요. "이제 그만 자라"는 엄마 말에 하나는 "수수께기 놀이를 하자"고 합니다. 하나가 낸 수수께기는 "하나가 자기 전에 가는 곳은 어디일까요?" 였어요.

욕실일까? 자기 전에 이를 닦아야 하니까. 창가일까? 달님에게 인사하고 소원을 빌려고. 문단속? 하나는 지구수비대니까, 아니면 화장실? 하나는 오줌싸개니까. 엄마는 수수께기를 맞추려고 애를 쓰지만 뜻대로 되지 않아요.

"모두 다 틀렸다"고 말하는 하나. 엄마는 너무 어렵다며 포기를 선언하고... 엄마 말을 기다렸다는 듯 하나는 "바로 여기" 하며 엄마 품으로 뛰어들지요. 수수께기를 맞히지 못한 벌로 "사랑해 백번"을 해달라면서. 사랑해 한 번, 사랑해 두번 ... 엄마의 사랑해 소리가 늘어갈수록 하나는 깊은 잠에 빠져듭니다. 사랑해 백 번. 엄마는 말해요. "내일도 실컷 놀자"고.

자기 전에 내 속을 박박 긁어놓아도 그뿐이지, 아침에 깨서 아이들 자고 있는 모습을 보노라면 정말 천사가 따로 없다. "애들은 잘 때가 제일 예뻐" 소리가 절로 나오는 이유다. 너무 예쁜 걸 참지 못하고 아이 뺨에 쪽쪽쪽, 부비부비 하고 있는데, 잠에서 깬 둘째 아이가 하는 말.

"엄마 뽀뽀하지마!"
"왜? 좋아서 그러는데~"
"뽀뽀 하면 세균 많대. 뽀뽀 하지마."
"누가 그래?"
"선생님이!"
"어머. 얘. 엄마는 안 그래. 엄마 뽀뽀는 세균 없어."
"아, 싫어 하지마앙~."

엄마 뽀뽀를 거부하며 도망치는 둘째. 야, 그러면서 아빠한테는 왜 뽀뽀 하자고 달려드는데? 너, 정말 엄마한테 자꾸 이럴 거야?

ps. 이렇게 따뜻한 그림책을 낸 작가 무라카미 시코는 정작 부모의 사랑을 많이 받지 못한 모양이다. 작가 소개에 '양부모 밑에서 힘겨운 어린 시절을 보냈다'고 써 있는 걸 보면. 그래서 더 눈길이 가는 그림책이다.

○ 편집ㅣ손병관 기자

덧붙이는 글 | - 이 글은 베이비뉴스에도 실렸습니다.



사랑해 100번

무라카미 시코 지음, 우지영 옮김, 오시마 다에코 그림, 책읽는곰(2009)


태그:#다다, #그림책
댓글
이 기사의 좋은기사 원고료 30,000
응원글보기 원고료로 응원하기

오마이뉴스 편집기자. 시민기자 필독서 <아직은 좋아서 하는 편집> 저자, <이런 질문, 해도 되나요?> 공저, 그림책 에세이 <짬짬이 육아> 저자.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