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① <인간과 시민의 권리 선언>과 시민권의 기원

민주주의가 꽃을 피우는 데 시동을 건 프랑스 혁명 시대로 돌아가 보자. 혁명이 진행되던 1789년, 프랑스 국민의회는 '인간과 시민의 권리 선언'을 선포했다. 근대 사회에 '시민'이라는 개념을 등장시킨 이 선언은 현대 민주주의 사회의 기초가 되는 여러 가치와 규범들을 규정했다. 그중 선언문 2조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모든 정치적 결사의 목적은 인간이 지닌 자연적이고 시효 없는 권리의 보존이며 자유권, 재산권, 신체 안전에 대한 권리, 압제에 대한 저항권이 그 권리이다."

영국의 철학자였던 로크는 정치사회, 즉 정부가 구성되는 목적을 위 선언에 나타난 자유와 재산, 그리고 생명(신체의 안전)의 소유를 보존하는 것으로 생각했다. 또한 정부가 이러한 소유에 대한 억압을 가할 때 시민이 정부를 전복할 수 있는 권리를 옹호했다.

바꿔 말하면 경찰과 군대를 통해 폭력을 합법적으로 독점한 국가가 국민을 압제할 때 그에 대해 저항할 권리가 시민에게 주어져 있다고 본 것이다. 이러한 시민권의 개념은 자유민주주의 국가를 표방하는 대한민국에도 같은 맥락으로 적용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지난 보름 정도의 시간 동안, 대한민국 시민들은 자신들의 시민권을 굉장히 가시적인 방법으로 내세우며 저항했다.

② 정당 간 현수막 정치에 시민이 뛰어들다

발단은 노동개혁에 대해 새누리당이 내건 현수막이었다. 새누리당이 현수막에 "노동개혁으로 청년에게 좋은 일자리를"이라는 문구를 담아 노동개혁에 긍정적 프레임을 씌우려 했다. 그러자 새정치민주연합은 이내 노동개혁에 부정적 프레임을 씌우는 현수막을 달아 반박했다.

이러한 현수막 정치는 '보여주기'의 측면이 강했다. 정확한 사실에 바탕을 둔 내용보다는 보는 이의 시선을 좀 더 잡아끄는 문구들, '혹'할 법한 문구들을 삽입하는 것이다. 새누리당의 노동개혁 현수막을 본 사람들은 '아, 노동개혁이 청년 일자리를 창출하는가 보구나' 하고 지나치지, '노동개혁이 어떻게, 왜 청년에게 일자리를 제공한다고 하는 건가' 하고 생각하며 멈춰 있지 않는다. 사람들에게 특정한 프레임을 씌우는 데 아주 효과적인 방법이 바로 '현수막 정치'였다.

현수막 정치와 대립을 보여주는 두 정당의 현수막.
 현수막 정치와 대립을 보여주는 두 정당의 현수막.
ⓒ 새누리당, 새정치민주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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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그들(?)의 바람과는 달리, 시민들은 더는 예전처럼 현수막을 보고 그냥 지나치거나 가만히 서 있지만은 않았다. 새누리당의 현수막을 보다 못해 '전쟁'을 선포한 것이다.

지난 10월 11일, 인터넷 커뮤니티 '오늘의유머' 시사게시판에는 '열 받는 새누리당 현수막에 전쟁을 선포한다'라는 제목의 글이 올라왔다. 내용은 이러했다. 새누리당의 '거짓' 현수막(주로 '노동개혁'과 '청년 일자리' 사이에 긍정적 관계를 끼워 넣는)에 열이 올라 가만 있을 수 없으니, 시민들의 자발적 모금과 공모된 문구를 이용해 현수막을 만들어 달자는 내용이었다. 현수막에 넣을 문구를 시민이 결정하고, 현수막 제작 비용도 시민이 부담하며, 현수막을 다는 일까지 시민이 한다는 것이 눈여겨볼 점이었다.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참여 신청을 한 시민들이 모여 현수막을 나눠 달기로 한 지난 10월 18일까지 모인 모금액은 340만 원에 달했다. 백여 장의 현수막을 만드는 데 105만 원을 쓰고도 한참 남는 금액이었다. 18일 오후 4시, 현수막을 직접 달겠다고 서울 보신각 앞으로 모여든 시민의 수는 쉰 명에 가까웠다.

10월 18일 16시, 보신각 앞에서 시민 제작 현수막을 펼쳐든 시민들.
 10월 18일 16시, 보신각 앞에서 시민 제작 현수막을 펼쳐든 시민들.
ⓒ 김선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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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신각 앞에서 현수막에 대한 간단한 교육을 받은 뒤 시민들은 몇 명씩 짝을 이루어 현수막을 나눠 가지고 서울 도심 곳곳으로 흩어졌다. 종로와 을지로·시청과 서울역 일대·서대문·충정로·신촌·홍대·합정·여의도와 영등포까지. 노동개혁에 대한 비판과 한국사 교과서 국정화 반대의 내용을 담은 현수막이 길가 여기저기에 달렸다.

10월 18일, 1차 행동에서 달린 현수막들.
 10월 18일, 1차 행동에서 달린 현수막들.
ⓒ 김선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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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수막 행동은 한 차례로 끝나지 않았다. 1차 행동을 끝내고 남은 모금액을 이용해 곧바로 2차 행동에 들어간 것이다.

10월 25일 16시, 북인사마당에서 현수막을 펼쳐든 시민들
 10월 25일 16시, 북인사마당에서 현수막을 펼쳐든 시민들
ⓒ 이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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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차 행동은 지난 25일 오후 4시에 벌어졌다. 북인사마당에 모인 시민들은 지난번보다 많은 150여 개의 현수막을 나눠 들고 서울 동서남북 전 권역으로 퍼졌다. 1차 행동이 도심을 주 무대로 했다면 이번에는 부도심과 주거 지역으로 무대를 옮겼다.

2차 행동에서 달린 현수막들
 2차 행동에서 달린 현수막들
ⓒ 박무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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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수막 행동에 참여한 시민들의 소감을 요약하자면 '우리가 할 수 있는 게 있구나'였다. 두 번의 행동에 모두 참여한 대학생 A씨는 2차 행동을 끝내고 해산하는 자리에서 "'그분들'은 종종 시민의 존재를 잊고 정치를 하는 것 같다. 이번 행동으로 '그분들'의 머릿속에 시민의 힘이 여전히 살아 있고 또 여전히 강하다는 사실이 박혔으면 좋겠다"며 소감을 밝혔다.

또 다른 시민 B씨는 "정치를 지켜보며 마음에 들지 않으면 뉴스 보며 욕이나 하는 게 전부였는데 이렇게 밖으로 나와 직접 행동할 수 있다는 게 스스로 만족스러웠다"며 소감을 남겼다.

③ 시민권, 그리고 법의 경계에서

일부에서는 현수막을 다는 것이 법적으로 보호받지 못하는 일 아니냐며 회의적인 의견을 제시하기도 했다. 이 지점에서 행동에 참여한 시민들이 자신들의 행동에 정당성을 부여한 방법은 '시민권이 법에 우선한다'는 것이었다. 정치권력을 잡은 정부와 정당이 시민들을 억압할 때 그것에 저항할 권리가 법 앞에 무력화되어서는 안된다는 이야기다.

다시 프랑스 혁명 이야기로 돌아가 보자. <인간과 시민의 권리 선언>이 만들어낸 '자유롭고 평등한 시민'이라는 개념은 굉장히 이상적으로 보인다. 그러나 그 이면에는, 모든 시민이 '법 앞에' 자유롭고 평등하다는 조건이 숨어 있다. 자유의 제약이 법에 따라서 결정될 수 있으며(제4조), 모든 시민이 '법 앞에' 평등하다는 것이다(제6조). 이러한 상황에서 국가가 법을 이용해 시민을 억압하려 한다면 어떻게 될까? 시민들이 외치던 말들은 모두 평등하게 무력화될 수밖에 없다. 그렇기에 시민권의 요소로 압제에 대한 저항이 포함된 것은 필수불가결한 일이었다.

현재로 돌아와서 지금 대한민국은 어떤가? 법이 시민의 자유를, 시민의 평등을 억압하고 있지는 않은가? 만약 그렇다면 시민이 해야 할 일은 무엇인가? 대한민국 민주화의 역사는 시민과 법의 투쟁 역사이기도 하다. 국가권력이 만들어낸, 시민의 권리를 심각하게 억압했던 법과 그 국가권력에 대항해 시민들이 거리로 박차고 나와 싸운 것이었다. 시민들은 자신들에게 행해지던 압제를 저항으로 무너뜨려 왔다. 4·19가 그랬고 5·18이 그랬으며 6월 항쟁이 그랬다.

굉장히 작은 움직임이다. 어떻게 보면 기껏해야 현수막을 삼백 개쯤 달았을 뿐이고 그것도 일부 지역에만 국한되어 있다. 그러나 현수막 행동은 시민의 조직된 힘이 정치권력에 대한 저항으로, 그것도 매우 가시적으로 나타났다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다. 누가 알까. 후대 언젠가 역사책 한 쪽에 '현수막 전쟁'이라는 항목이 기록되어 있을지.

○ 편집ㅣ김준수 기자



태그:#현수막정치, #시민권, #국정교과서, #노동개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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