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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지난 10월 19일부터 매일 아침 교문에서 피켓을 들고 역사 교과서 국정화 반대 1인 시위를 벌이고 있다. 시작한 계기는 이렇다. 보수와 진보를 막론하고 역사학자와 교사 등 전문가들 대다수가 반대하는 데도, 그즈음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국정화 찬반이 반반으로 엇비슷하게 나뉘는 걸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물론, 지금은 반대쪽으로 확연히 기울고 있지만 말이다.

그 이유를 대다수 학부모의 무관심 때문일 거라고 생각했다. 수능에 도움이 될 거라는 어처구니없는 주장과 참고서와 문제집값을 한 푼이라도 아낄 수 있을 거라는 '소박한' 바람들이 국정화 찬성 여론으로 나타나지 않았을까 여겼다. 실제로 자녀 교육 문제로 학부모들과 상담을 하는 자리에서 그렇게 이야기하는 분들을 여럿 만난 적이 있다.

하긴 이태 전 한국사가 수능 필수 과목으로 지정되었을 때, 내심 동의는 하면서도 맨 먼저 사교육비가 걱정되더라는 분들이 정말 많았다. 국·영·수든 한국사든 하나같은 '입시 과목'이라는 인식이다. 그런 분들 앞에서 비판적 사고력을 함양하기 위해 역사를 배운다거나 다양한 관점에서 역사를 해석하도록 가르치는 게 역사교육의 본질이라는 등의 주장은 '공자 왈 맹자 왈'일 뿐일지도 모른다.

곧, 자녀들을 등하교시키기 위해 매일 학교를 찾아오는 학부모를 '설득'해내는 것이 무엇보다 시급하고 중요한 일이라 판단해 기꺼이 피켓을 들었다. 물론 직접 대면해 설명하는 것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합법적인 테두리 내에서 그들이 지닌 오해와 편견을 깨기 위한 가장 현실적인 방안이라고 판단했던 거다. 교사로서 내가 교문 앞 1인 시위에 나선 '유일한' 이유다.

학부모 설득 위해, 교문 앞 1인 시위

이날은 다행히 제가 교문을 선점했습니다. 아이들은 여기서부터 약 100m 떨어진 인근 학교 교문 근처에서 피켓을 들었습니다. 한 학부모가 자녀를 등교시키면서 차 속에서 스마트폰으로 촬영한 사진입니다.
▲ 교문 앞 1인 시위 모습 이날은 다행히 제가 교문을 선점했습니다. 아이들은 여기서부터 약 100m 떨어진 인근 학교 교문 근처에서 피켓을 들었습니다. 한 학부모가 자녀를 등교시키면서 차 속에서 스마트폰으로 촬영한 사진입니다.

적잖이 번거로웠지만 매일 점심시간 등을 이용해 피켓의 글귀를 새로 고쳤다. 학부모들의 시선을 조금이라도 더 붙들기 위한 나름의 방법이었다. 수백 대의 차가 매일 아침 내 앞을 지나가고, 그들의 눈빛이 피켓과 마주칠 때 느껴지는 뿌듯함은 순간 어깨를 으쓱하게 하곤 한다. 그땐 한 시간쯤 서둘러 출근해야 하는 분주함과 피곤함 따위는 눈 녹듯 사라지고 없다.

한 시간 가량 서있다 보면 차창을 내려 "힘내라"고, "수고 많다"고 말 건네는 분들이 정말 많다. 애써 창밖으로 손을 내밀어 박수를 보내주는 분도 있고, 받진 못하지만 더러 음료수를 건네는 경우도 있다. 다들 하나같은 마음에서다. 물론, 개중엔 표정으로 전해지는 탐탁지 않은 반응도 없진 않다. 그렇다고 불편해할 필요는 없다. 사실 그들을 설득하기 위한 노력이므로.

예상하지 못한 소득도 있다. 등굣길 교문을 들어서는 아이들도 잠시나마 내 피켓에 눈길을 준다. 글귀가 좀 긴 경우에는 잠깐 멈춰 눈 크게 뜨고 끝까지 읽고 간다. 그런 뒤 살짝 눈인사만 건네고 간다. 내게 말을 걸지 말라는 뜻으로 낀 마스크의 의미를 아이들도 아는 거다. 수업시간에 피켓에 적힌 글귀를 되뇌면서 정확한 의도가 뭔지 묻는 경우도 더러 있다.

1인 시위를 벌인 지 일주일 만인 지난 10월 26일, 늘 그렇듯 서둘러 피켓을 챙겨 출근해 보니 두 아이가 교문 앞 내가 섰던 그 자리에 서 있었다. 준비한 피켓만 넉 장이다. 하나는 손으로 들고, 다른 하나는 발 아래 기댄 채다. 큰 도화지에 삐뚤빼뚤 쓴 글귀가 한눈에 잘 들어오진 않았지만, 국정교과서에 반대한다는 주장만큼은 분명하게 담았다.

왜 하필 내 자리를 빼앗느냐고 따지듯 물었더니, 교문의 주인이 어디 따로 있느냐며 먼저 차지한 사람이 임자라고 눙쳤다. 그들은 내가 집을 나서기도 전인 오전 7시 20분부터 거기에 서 있었다고 했다. 밖이 어둑할 때부터 나와 일찍 등교하는 단 한 명의 학생들도 놓치지 않고 자신들의 메시지를 전달하겠다며 '전의'를 다졌단다. 자리를 빼앗겨 쭈뼛했지만, 한편으로는 아이들이 무척 대견스러웠다.

그들과 교문에 나란히 설 수도 없고, 그렇다고 아이들에게 떠넘긴 채 쉴 수도 없어 그들과 50m 남짓 떨어진 버스 정류장 쪽으로 나와 1인 시위를 이어갔다. 굳이 그들과 떨어져서 피켓을 든 건, 자칫 교사가 아이들을 선동했다는 오해를 살까 살짝 두려웠기 때문이다. 또 몇 명이 함께 동일한 장소에서 같은 목적으로 시위할 경우 경찰서에 사전 집회 신고를 해야 한다는 법 규정을 어디선가 얼핏 들은 적 있기 때문이다. '하루 저러다 말겠지' 싶은 생각도 없진 않았다.

비 온 다음날도 피켓 시위, 경찰이 찾아왔습니다

가을비가 제법 많이 내렸던 이튿날 아침 '예상대로' 아이들은 나오지 않았다. 다시 교문 앞을 '탈환'하고 1인 시위를 이어갔다. 큰 우산으로도 쏟아지는 비를 피하긴 어려웠다. 피켓은 비로 젖었고, 바지와 신발은 물에 그대로 잠겨 버렸다. 물에 빠진 생쥐 모습을 한 내가 불쌍해 보였는지, 빗속에도 굳이 차창을 내려 격려해주는 분들도 있어 그리 힘들진 않았다. 점심시간 우연히 만난 아이들은 '우천시'를 미처 준비하지 못했을 뿐, 비 그치면 계속할 거라고 했다.

그 다음 날이었던 28일 수요일 아침, 예상치 못한 일이 벌어졌다. 1인 시위가 끝나고 수업이 시작될 즈음 경찰이 학교를 찾아왔다. "'불법 시위'를 하고 있다"며 112로 신고가 접수돼 긴급히 방문하게 됐단다. 내가 '집회와 시위에 관한 법률(집시법)'을 위반했다며 한 학부모가 직접 조사를 의뢰했다고 한다. 너무 안이하게 여겼던 걸까. 설마 학부모가 법 조항까지 거론하며 신고하리라고는 꿈에도 생각 못했다.

더욱이 그날, 교문에 나선 두 아이 중 한 명은 바로 전날 친구들과 농구를 하다 다리가 부러져 깁스한 상태였다. 아침 목발을 짚은 채 피켓을 들고 있는 모습에 깜짝 놀랐다. 그 몰골이 뭐냐며 당장 들어가라고 했지만, 아이는 들은 척도 하지 않았다. 그는 친구와 함께 끝날 때까지 기어이 피켓을 놓지 않았다. 어쨌든 나도, 그들도 그것이 집시법을 위반한 '범죄'라는 걸, 그때까진 전혀 깨닫지 못했고 여전히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29일 목요일, '순진한' 아이들은 내가 선 교문에서 족히 약 100m쯤 떨어진 인근 학교 교문 근처까지 가서 피켓을 들었다. 이번엔 다리를 다친 아이를 대신해 다른 친구가 그 자리에 섰다. 그 날 오후가 돼서야 알게 됐지만, 경찰이 그 이른 아침에 피켓을 들고 있던 아이들을 찾아와 조사했다고 한다. 전날 '상황'이 종료된 상태에서 학교를 찾아와 헛물을 켠 경찰이 부러 일찍 와서 기다리고 있었다.

피켓을 가로막은 채 경찰은 아이들에게 집시법 내용을 자세히 일러주었다고 했다. "서로 멀찍이 떨어져서 하는데도 문제냐"는 아이들의 질문에는, "거리 규정은 없지만 같은 장소라고 볼 수 있다며 굳이 하겠다면 혼자 하라"고 말했단다. 그러면서 "자기도 또래 자녀가 있어 처벌하고 싶진 않다"면서, "다른 사람들로부터 또 신고당할지도 모르니 그만두고 들어가 공부나 열심히 하라"고 조언했단다.

아침부터 경찰을 만난 아이들은 "겁이 나지는 않았다"고 하면서도, "이런 사소한 일조차 신고를 당하고 경찰이 끼어드니 불편하다"고 말했다. "다음부터는 한 사람씩 순번제로 나와야겠다"고, "법이 의사 표현의 자유를 막고 있다"며 불평을 했고, 다른 아이는 학생들이 집회 신고를 하는 방법에 관해 묻기도 했다. 그러면서 경찰의 마지막 '조언'에 대한 쓴소리도 잊지 않았다.

"그땐 순간 주눅이 들어 아무런 대꾸도 못 했는데, 꼭 해주고 싶은 말이 있었어요. 어른들이 말하는 공부란 고작 '그런' 건가 싶었거든요. 수능 잘 봐서 좋은 대학 가는 것 말이에요. 자기 생각과 소신을 다른 사람들 앞에서 당당히 표현할 줄 아는 것이 훨씬 더 중요한 공부의 목적 아닐까요? 옳고 그름을 따져보지도 않고, 그저 해코지당하지 않으려면 몸조심하라는 기성세대의 '찌질함' 같은 게 느껴졌어요."

자기들 때문에 선생님이 대신 벌 받는 것 아니냐며 외려 나를 걱정해주는 아이들이 고맙고도 든든했다. 거칠게 말해서, 검정교과서 세대인 아이들은 국정교과서 세대인 기성세대보다 훨씬 건강하고 유연한 사고방식을 가진 게 틀림없다. 어른이 돼가는 과정에서 '닳아지고 무뎌질지언정' 아직 아이들에게는 희망이 있음을 발견한 순간이었다.

"차라리 기소됐으면 재밌었을 것" 당당한 아이들

그날 아이들은 아침부터 경찰을 만났고, 대신 나는 기자들을 상대해야 했다. 경찰서에 주재하는 지역신문 기자들이 호들갑스럽게 나를 찾았던 거다. '아이들과 함께 교문에서 피켓을 들었다고 고발당한 교사'라는 기사 제목은 이미 인터뷰하기도 전에 뽑아놨는지도 모르겠다. 종일 전화로 인터뷰를 요청해 오는가 하면, 학교를 직접 찾아온 기자도 있었다.

대수로울 것 하나 없는 일이었지만, 늘 그렇듯 기자들은 진지했다. 경찰에 고발되고 여러 기자가 오간 '큰' 사건이었다지만, 정작 아이들과 나는 어떻게 처리되고 있는지조차 모를 만큼 무덤덤했다. 집시법이 부랑자(집시)들 단속하는 법인 줄 알았다는 한 아이는 자신의 무지를 부끄러워하기는커녕 "혼자 하기 심심해서 둘이 함께 피켓 들었다고 처벌하면 그게 나라냐"며 당당해 할 정도다.

기사를 통해 우리의 '범죄 혐의'를 알았듯, '무혐의' 처리된 사실도 다음 날 기사를 통해 알게 됐다. 아이들에게 그 '기쁜' 소식을 전하자, "차라리 기소됐으면 더 재미있었을 거"라며 너스레를 떨었다. 사실 행정예고 동안 매일 1인 시위를 하겠다고 했더니, 내 주위에선 하 수상한 시절 '소나기는 피하는 게 상책'이라며 대부분 말렸다.

아이들은 어땠을까. 한 아이가 교문 앞 피켓 시위를 제안하자 끼워달라는 아이들이 줄을 이었단다. 어른들은 그런 그들을 향해 '철이 없다'고, '세상 무서운 줄 모른다'고 되레 나무라기 일쑤다. '행동하지 않는 양심은 악의 편'이라는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아는 어른들이 말이다. 내일도, 모레도, 교과서 국정화 방침 철회를 위한 교문 앞 1인 시위는 계속된다.

○ 편집ㅣ김준수 기자



태그:#한국사 교과서 국정화, #1인 시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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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기사는 연재 역사교과서 국정화 회귀 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잠시 미뤄지고 있지만, 여전히 내 꿈은 두 발로 세계일주를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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