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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주반은 소박하고 간결하면서도 견고한 것이 특징이다. 은행나무로 만든 사각반의 모습이다.
 나주반은 소박하고 간결하면서도 견고한 것이 특징이다. 은행나무로 만든 사각반의 모습이다.
ⓒ 이돈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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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는 해야 할 일이라 생각했지만, 저는 아닌 줄 알았죠. 제가 4남 1녀의 막내거든요. 대학도 전자공학과에 들어갔는데, 그만큼 관심을 갖지 않았다는 증거죠. 내가 전수받아야겠다고 생각한 건 대학 4학년 때였습니다."

중요무형문화재 소반장 전수자이면서 전남무형문화재 나주반 전수조교인 김영민(46·나주) 씨의 말이다. 전수해 주는 이는 그의 아버지 김춘식(80) 선생이다. 50년 넘게 나주반을 만들어 온 아버지는 중요무형문화재 제99호 소반장(小盤匠), 전남무형문화재 제14호 나주반장 보유자로 지정돼 있다.

"그 전까지는 아버지의 일손을 돕는 수준이었고요. 본격적으로 접수를 받기 시작한 게 대학 4학년 때였으니까, 20여 년 됐습니다. 혼자 몸일 때여서 큰 부담도 없었어요."

영민씨의 말이다.

"전통 이어야 한다는 사명감, 누가 알아주지 않아도 괜찮아요"

김영민 씨가 나주반을 전수받게 된 이야기를 풀고 있다. 김 씨는 아버지(김춘식)로부터 무형문화재인 나주반을 전수받고 있다.
 김영민 씨가 나주반을 전수받게 된 이야기를 풀고 있다. 김 씨는 아버지(김춘식)로부터 무형문화재인 나주반을 전수받고 있다.
ⓒ 이돈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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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민 씨가 작업실에서 체험용 나주반을 다듬고 있다. 김 씨는 나주반을 만들면서 체험 프로그램까지 운영하고 있다.
 김영민 씨가 작업실에서 체험용 나주반을 다듬고 있다. 김 씨는 나주반을 만들면서 체험 프로그램까지 운영하고 있다.
ⓒ 이돈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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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민 끝에 영민씨가 나주반을 전승하겠다고 나서자, 아버지는 반대했다. 전통을 잇는다는 게 힘들뿐더러 벌이도 변변치 않다는 이유였다. 편하게 직장생활하며 살 수 있는데, 왜 고생을 사서 하냐는 것이었다. 하지만 영민씨의 굳은 결심을 확인한 아버지는 더 이상 말리지 않았다. 그때부터는 팔을 걷고 가르쳤다. 그 과정이 혹독할 정도였다.

"각오를 하고 시작했는데도, 막상 하니까 생각보다 힘들더라고요. 중간에 포기하고 싶은 생각도 여러 번 들었어요. 그런데, 전수를 받으면서 사명감 같은 게 생기더라고요. 전통을 이어야 한다는…. 누가 알아주든, 알아주지 않든 상관없이요."

영민씨는 나주반을 전수받으면서 대학원에 진학, 산업공예를 공부했다. 대학에 다니면서 만났던 아낙네와 혼인도 했다. 지금은 중학교 1학년과 초등학교 6학년, 연년생의 아들을 두고 있다. 부인도 영민씨의 나주반 전수를 적극 돕고 있다. 그의 아버지도 흡족해하고 있다.

중요무형문화재 제99호 소반장과 전남무형문화재 제14호 나주반장 보유자인 김춘식 선생(왼쪽)과 전수조교인 아들 김영민(오른쪽) 씨가 나주반전수교육관 앞에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중요무형문화재 제99호 소반장과 전남무형문화재 제14호 나주반장 보유자인 김춘식 선생(왼쪽)과 전수조교인 아들 김영민(오른쪽) 씨가 나주반전수교육관 앞에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 이돈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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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춘식·김영민 부자가 만든 나주반. 나주반 전수교육관에 전시된 제품들이다.
 김춘식·김영민 부자가 만든 나주반. 나주반 전수교육관에 전시된 제품들이다.
ⓒ 이돈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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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민씨가 전수받고 있는 나주반(羅州盤)은 상이다. 잡다한 장식 없이 간결하면서도 견고한 것이 특징이다. 운각이 간단하고, 다리 선은 둥글면서도 날렵하다. 다리와 다리를 연결하는 가락지는 미끈하다. 나무의 결이 그대로 들여다보이는 옻칠을 사용한다.

한 마디로 소박하면서도 실용적이지만, 공력은 많이 든다. 재료는 은행나무나 느티나무를 쓴다. 느티나무 통판일수록, 무늬가 많을수록 더 좋다. 은행나무는 옹이가 없이 매끈해야 한다. 다리와 운각은 단단하면서도 잘 휘어지는 소나무와 버드나무를 사용한다.

나주반 제작은 은행나무나 느티나무 판에 본을 대고 밑그림을 그리고 잘라서 천판(상판)을 만드는 것으로 시작된다. 천판의 휘어짐과 갈라짐을 보완하면서 운각을 지지할 변죽도 만든다. 변죽을 대는 건 여름에 팽창하고 겨울에 수축하는 목재의 특성으로 상판이 휘거나 갈라지는 것을 막기 위해서다. 대패질과 사포질을 거쳐 서로 붙인다.

"아버지의 탁월한 조형미, 제가 따를 수 없죠"

나주반의 명칭들. 천판을 두른 변죽에 운각과 다리, 가락지를 연결한다.
 나주반의 명칭들. 천판을 두른 변죽에 운각과 다리, 가락지를 연결한다.
ⓒ 나주반전수교육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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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주반에 들어가는 재료들. 다리와 운각, 변죽, 가락지, 족대가 놓여 있다.
 나주반에 들어가는 재료들. 다리와 운각, 변죽, 가락지, 족대가 놓여 있다.
ⓒ 이돈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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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구름 문양의 운각을 만들 차례. 톱으로 대강의 모양을 잘라낸 다음 칼로 다듬는다. 이 운각을 상판과 변죽을 두른 턱에 구멍을 내서 끼워 넣는다. 고정은 대못으로 한다. 다리도 만들어 넣고 대못으로 고정시킨다. 기둥에 죽대를 연결하고 다리와 다리 사이에 가락지를 끼워 맞춘다.

깎고 다듬는 일을 칼과 대패로 하다 보니 잔손질이 많이 들어간다. 이음매도 결구를 짜서 하나하나 일일이 맞춘다. 나주반 하나를 만드는 데 대못을 36개나 쳐야 한다. 그만큼 견고하게 다진다.

마무리는 옻칠로 한다. 묽게 탄 옻을 발라 하루 이틀 말린다. 그 다음 사포로 문지르고 칠하기를 일곱 여덟 번 반복한다. 그래야 붉고 투명한 광택을 낸다. 오래도록 써도 변함이 없는 이유다.

나주반을 전수받고 있는 김영민 씨가 작업실에서 천판을 다듬고 있다.
 나주반을 전수받고 있는 김영민 씨가 작업실에서 천판을 다듬고 있다.
ⓒ 이돈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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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주반을 만드는데 쓰이는 도구들. 톱과 대패, 칼을 주로 사용하는 수작업이 많아 작업도구들도 여러 종류다.
 나주반을 만드는데 쓰이는 도구들. 톱과 대패, 칼을 주로 사용하는 수작업이 많아 작업도구들도 여러 종류다.
ⓒ 이돈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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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산제품은 4각반을 비롯 일주반, 12각 호족반, 개다리소반, 단각반 등 다양하다. 생김새와 운각, 문양에 따라 붙은 이름이다. 겉으로 보이지 않는 부분에 낙관을 찍어서 내놓는다. 제품의 질을 보장하고 책임지겠다는 약속과 자부심의 표현이다.

"지금도 아버지가 직접 짜십니다. 슬림하면서도 탁월한 조형미를 제가 따를 수가 없어요. 저는 주로 큰 것을 짜고, 마무리 칠을 하죠. 그렇다고 아버지의 스타일에 일부러 맞추려 하지는 않습니다. 기본에 충실하되, 제 스타일을 만들어 가려고요."

영민씨의 말이다. 나주반 전수교육관에서 하는 전통 소반과 부채 만들기 체험 프로그램 운영도 그의 몫이다. 가족이 하나의 소반을 함께 만들어 가져가는 프로그램이다. 체험시간은 3시간 남짓 걸린다. 초등학교 고학년 학생이 포함된 가족과 성인을 대상으로 예약을 받아서 진행하고 있다.

무형문화재 나주반 전수교육관 전경. 나주반 전시실과 함께 김춘식·김영민 부자의 작업실을 갖추고 있다.
 무형문화재 나주반 전수교육관 전경. 나주반 전시실과 함께 김춘식·김영민 부자의 작업실을 갖추고 있다.
ⓒ 이돈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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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나주반, #김영민, #김춘식, #소반장, #나주반전수교육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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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찰이 일상이고, 일상이 해찰인 삶을 살고 있습니다. 전남도청에서 홍보 업무를 맡고 있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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