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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게의 고장' 영덕에 대게가 사라진다면? 정부 제7차 전력수급기본계획으로 영덕에 핵발전소 2~4기가 신설되면 방사능 오염과 온배수 배출로 서식환경이 악화되고, 상표가치가 하락할 수 있다. 주민들은 11월 11일을 목표로 주민투표를 추진하고 있다. 이에 오마이뉴스 10만인클럽과 녹색당은 '영덕대게를 부탁해요!'라는 제목으로 '탈핵 응원글 보내기' 공동 캠페인을 진행한다. 또 영덕 핵발전소 계획의 문제점을 진단하고 나아가 우리나라 핵발전 사업의 거짓과 진실을 알리고 대안도 제시하는 현장-기획 기사도 내보낸다. 첫 글은 지난 8월3일부터 9일까지 영덕에 머물면서 '탈핵 휴가' 캠페인을 벌였던 한재각 녹색당 공동정책위원장의 글이다. [편집자말]
[8월 3일 영덕읍] "누가 시켰나?"

기온이 38.2도까지 치솟으면서 달궈진 아스팔트는 열기를 뿜어냈다. 해가 기울고 어스름이 깔렸지만 큰 길에는 사람들이 드물었다. 영덕읍 사람들은 더위를 피해 어딘가로 모습을 감추었다. 간혹 행인들의 손에 유인물을 들려주고 오십천으로 흘러들어가는 지천까지 걸어가니 한 할머니가 바람을 쐬고 있었다.

"핵발전소 들어온다는 소식을 들으셨지요? 이것 한번 읽어 보십시오."

할머니는 이미 알고 있다는 표정이다. 그녀의 관심사는 다른데 있는 듯이 보였다.

"어디에서 왔노?"
"서울에서 왔습니다."
"서울에서 누가 시키더나?"

긴장되는 순간. 외지인들이 와서 왜 영덕 일에 간섭을 하냐는 핀잔을 들어야 하나 싶었다. 지난 4월 영덕군 의회가 한 여론조사 결과, 핵발전소 건설에 반대하는 의견은 58.8%였지만, 여전히 35.7%는 찬성했다. 

"영덕에서 핵발전소 반대운동 하시는 분들, 도와주러 왔습니다."
"그리 멀리서 도와주러 왔노. 고맙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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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어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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땡볕의 거리를 돌아다닐 힘을 얻었다. 꼬불거리는 골목 안쪽에 들어서니 사람들이 모여 있다. 활짝 열어 놓은 가게 안 밥상 앞에 모여 앉는 사람들, 더위를 피해 골목 그늘에 앉아 있는 사람, 어딘가로 저녁 마실을 나선 사람들. 대부분 반갑게 유인물을 받아 들었다. "주민투표는 언제 하노?"라며 적극적으로 묻는 사람도 있었다. 핵발전소 찬반을 떠나 주민투표가 필요하다는 여론이 65.7%에 달한다는 여론조사 결과를 확인하는 듯 했다.

[8월 8일 영덕군 석리 포구] 커터 칼 휘두른 어부의 분노

석리는 조그만 포구 마을이다. 가파른 언덕에 40여 채의 집이 있다. 며칠 전에도 육지의 공기와 찬 바다 공기가 만나 5미터 앞도 보이지 않는 밤안개를 뚫고 이곳에 왔었다. 영덕핵발전소반대 범군민연대의 활동가들이 더위에 지쳐서 어디라도 다녀오자고 나선 길 끝에 도착한 곳이다. 밤 해무의 몽환적 분위기를 한껏 끌어올린 것은 가파른 언덕 집에서 번져 나오는 불빛이었다. 석리를 경유하면서 펼쳐진 '블루로드'에 어울리는 황홀한 풍광이었다.

버스에서 내린 녹색당원들이 조그만 포구에 모여들었다. 머리에는 영덕 대게를 상징하는 빨간 모자를 쓰고 있어서 사람들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이 곳 석리가 영덕 핵발전소 부지로 예정된 핵심 지역이라는 설명을 시작하려는 데 한 주민이 녹색당원들이 만들어낸 원의 한 복판으로 우악스럽게 들어섰다.

"당신들 뭐하는 사람들이야! 여기 사는 사람들 생각해봤냐!"

그는 그물을 손보던 커터 칼을 허공으로 휘둘렀다. 서둘러 블루로드의 트렉킹 코스로 사람들을 이동시키면서 더 이상의 마찰은 피했다.

지난 영덕군수는 2010년 말에 한국수력원자력에 핵발전소 부지 유치 신청서를 내면서, 영덕군민 4만 명 중에서 399명의 서명을 첨부했다. 399명 중에는 발전소 부지가 들어설 석리의 40여 가구의 주민들이 포함되어 있다. 영덕 내에서 가난하고 소외된 마을로 알려진 석리 주민들. 핵발전소 부지로 수용되면서 보상을 받을 수 있는 흔치 않은 기회가 그들에게 찾아온 것이다. 조금 전의 소동은 이를 무산시키려는 외지인들에 대한 분노의 발로였다.

[8월 5일 강구읍 농협 앞] 위생검사로 겁줄 때, 쫄지 말고 당당하라?

핵발전소를 반대하는 주민들은 영덕, 영해 그리고 강구를 돌아가면서, 매주 수요일 촛불 문화제를 개최했다. 벌써 12번째, 이번에는 강구다. 영덕읍 왼 편을 흘러 내려온 오십천에 가로 놓인 강구대교를 건너면, 거대한 붉은 대게들이 두 손을 벌려 환영해준다. '영덕 대게'를 잡은 배들이 들어오고 그 맛을 보러 사람들이 몰려드는 곳이 바로 이곳 강구다.

강구면 중심지인 농협 건물 앞에 촛불 문화제 마당을 열었다. 영덕 사람들은 빔 프로젝터와 자막, 앰프와 스피커 등을 설치하는 일에 능숙했다. 은박지도 깔고, 초와 종이컵도 준비했다. 그러나 예정된 시간이 지났는데도 사람들의 수가 적었다. 지난주 영해 촛불 문화제에서는 80여 명 정도였는데, 강구는 절반도 되지 않았다. 의문점은 이윽고 풀렸다. 매주 문화제에서 노래를 부르는 영덕 청년 록키씨가 부르는 개사곡(반대리카노)에 답이 있었다.

"공무원이 위생검사로 겁줄 때, 쫄지 말고 당당하게, 반대, 반대, 반대, 반대".

강구의 많은 주민들은 대게 요리를 팔고 있기에 핵발전소 반대 집회에 참석하면 영덕군청 공무원의 눈 밖에 날 수도 있다. 영덕 핵발전소 반대운동 초기에 일인 시위용 피켓을 맡아줬다는 이유로 한 가게 주인이 공무원들로부터 이런 저런 검사를 받으며 괴롭힘을 당한 일도 있단다. 시위에 참여해도 익명성이 보장되는 서울과는 사정이 너무 달랐다.

오후 8시에 강구 촛불 문화제가 시작됐다. 특별한 손님이 와 있었다. 근처 청송에서 열리는 국제 연극제를 위해 방한한 연극배우이자 여성 가수인, 재일동표 3세 김기명씨. 그는 할머니를 그리는 슬픈 노래를 불렀다. 그의 할머니는 일제 시기 현해탄을 건너 가 고된 삶을 살다가 얼마 전에 돌아가셨다. 그런데 무슨 일로 그는 강구까지 와서 노래를 불렀을까?

그의 할머니가 경험했을지도 모르는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의 핵폭탄이었을 것이다. 핵폭탄은 십여 만 명의 목숨을 순식간에 앗아갔고, 살아남은 자들과 후손들은 오래 동안 방사능 피폭에 따른 병으로 고통을 안겨다 주었다. 또한 자신이 경험했을 후쿠시마의 핵사고였을 수도 있다. 방사능 오염으로 아직도 십만 명 이상이 정든 고향을 떠나 있는 후쿠시마 난민들의 슬픈 이야기는 계속 되고 있다.

그러나 강구까지 그녀의 손을 잡아 이끈 것은 영덕 주민들이다. 핵발전소를 반대하며 매주 켜는 촛불이 그녀를 불러 들였다. 김기명씨는 자기 할머니의 고단하고 슬픈 삶과 영덕 주민들의 힘겨운 핵발전소 반대 투쟁이 이어져 있다고 여기는 것 같았다.

[8월 8일 영해 주택가] "그런다고 핵발전소 막을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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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어진 일정으로 해가 기울었다. 바다 멀리에서는 천둥과 번개까지 내리쳤다. 서울과 부산 등 각지에서 온 녹색당원들은 범군민연대 활동가들의 안내로 주민투표 동의서 서명을 받았다. 사람들은 '핵발전소 반대'와 '주민투표'가 쓰인 노란색 조끼를 입었다. 각기 서명판과 유인물을 든 이들이 한 조였다. 노란 조끼들은 트럭 짐칸에 올라탔고, 영해의 한 블록을 훑어가면서 서명을 받았다. 빗방울이 떨어졌지만, 주민투표 동의서를 받는 일이 범군민연대 활동가들에게는 중요했다.

영덕 핵발전소 반대운동은 삼척으로부터 많은 영감을 얻었다. 정부는 거의 30년 만에 새로 핵발전소 부지를 동해안 지역에서 마련하겠다며 삼척과 영덕을 동시에 지목했고, 두 지역은 묘한 인연으로 엮였다. 자칫 잘못 하면 서로 핵발전소 부지를 가져가라고(혹은 불행하게도 가지겠다고) 경쟁할 수도 있다.

삼척은 반핵운동 끝에 자체적인 주민투표를 통해 다수가 핵발전소를 거부한다는 의사를 명확히 했다. 이 승리에 고무되어, 영덕 반핵운동가들도 삼척처럼 주민투표로 영덕 주민들의 결집된 의사를 밝히겠다는 희망을 가졌다. 영덕군청은 주민투표를 위한 협조를 거부하고 있기에 민간이 주도하고 있다. 그 첫 번째 작업이 선거인 명부를 직접 작성하는 것이고, 영해의 골목길을 누빈 노란 조끼들이 한 일이다.

사람이 없는 집일 줄 알았다. 낮은 대문 틈새에 유인물을 끼워 두고 가려는데, 현관 안쪽에서 인기척이 느껴졌다. 불도 켜지 않은 채 마루에 노부부가 TV를 보고 있었다.

"영덕에 핵발전소 들어온다는 것 들으셨어요?"
"들었지".
"핵발전소 건설하는 것이 좋은지 아닌지, 찬반 주민투표하자는 동의서입니다, 해주실 수 있으세요?"

방금 전, 바쁜 가게에 들어갔다가 냉랭한 반응을 접하고 나니 조심스러웠다. 하지만 할아버지는 "핵발전소가 위험하다는 것 다 알고 있다"면서 부부의 주소, 생년월일, 전화번호까지 꼼꼼히 적고 사인까지 해주면서도 한마디 붙였다.

"근데 이런 것 한다고, 막아지겠나?"

워낙 국가와 관에서 일방적으로 밀어붙인 사업들을 봐 왔던 때문이리라. 할아버지는 우리에게 특별히 답을 기대한 것도 아니었다. 오랜 경험으로부터 나온 체념 섞인 넋두리이기도 하고, 외지 사람들이 이렇게 하고 다니는 것을 보면 이번에는 다를까 싶은 기대가 배인 말인 것 같기도 했다. 현관을 나서는 우리에게 수고하라는 인사를 잊지 않았다.

그렇게 골목을 누비는 동의서 서명운동은 다음 날에도 청년녹색당원에 의해서 진행됐다. 범군민연대는 영덕군 유권자를 대략 3만 명으로 추산하고 있고, 그 절반인 1만 5천 명의 선거인명부를 만드는 것이 목표라고 한다. 앞으로 몇 주 동안, 지역주민들과 함께 영덕으로 온 여러 연대자들은 늦은 여름 더위 속에서 골목을 돌고, 시골 마을을 찾아다니면서 선거인명부를 만드는 막바지 작업을 진행한다.

[후기] 11월 11일은 영덕 주민투표의 날, 응원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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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덕 주민들은 오랜 논의와 준비 끝에 핵발전 찬반 주민투표 추진위원회를 구성하고, 주민투표를 11월 11일에 실시하겠다고 공식적으로 발표했다. 영덕 주민들은 전국의 시민들에게 영덕 주민투표가 무사히 이루어질 수 있도록 도움을 요청하고 있다.

지난 2003년의 부안 방사능폐기물 처리장 설치를 두고 이루어진 주민투표와 작년 삼척 핵발전소 유치 문제에 대한 주민투표에 이어서, 주민들이 자기 운명을 결정하기 위한 발걸음이 영덕에서 다시 시작됐다.

○ 편집ㅣ장지혜 기자



태그:#영덕대게를 부탁해요, #10만인리포트, #핵발전소, #탈핵, #녹색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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