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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민학교에서 아이들이 자원봉사자들과 함께 책을 보며 놀고 있다.
 난민학교에서 아이들이 자원봉사자들과 함께 책을 보며 놀고 있다.
ⓒ 배을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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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당신에게 미션이 주어졌다. 3만 원의 돈으로 150명이 먹을 음식을 요리하라. 가능한 이야기일까?

오스트리아인 베아트릭스 미엘 그라버(Beatrix Miehl Grabher, 45)는 터키 이스탄불에 머물고 있는 시리아 난민들에게 한 끼의 식사를 제공하기 위해 80터키리라, 약 3만 원으로 무엇을 구매할 수 있는지 알려준다.

"항상 국수예요. 다른 것은 살 수가 없죠. 허기를 채우는 데는 탄수화물만한 게 없으니까 주식을 국수로 해서 약간의 야채를 곁들이죠. 요거트 한 숟가락, 빵 한 조각 그리고 여유가 있는 날은 과일 한 조각을 제공할 수 있어요. 군것질 거리나 사탕 초콜릿 같은 것은 소량이나마 어린아이들에게만 제공할 수 있죠. 예산은 언제나 빠듯하답니다."

터키 이스탄불의 시리아 난민학교에서 봉사 중인 베아트릭스.
 터키 이스탄불의 시리아 난민학교에서 봉사 중인 베아트릭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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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아트릭스는 교사인 남편이 이스탄불 주재 오스트리아학교에 근무 발령을 받게 된 계기로 5년째 이스탄불에서 살고 있다. 그녀는 비엔나국립대학교와 이탈리아에서 정치학과 역사학을 공부한 후, 런던과 파리에서 석사학위를 받기 위해 공부하면서 유네스코(Unesco)에서 일했다.

그녀는 유네스코에서 일하면서 '평화의 문화', '아프리카의 여인들'이라는 주제에 많은 관심을 가졌고, 그 이후 카리타스(Caritas)라는 NGO에서 컨설턴트로 근무했다. 이런 배경 때문이었을까. 그녀는 다른 사람들을 돕는 일에 관심을 갖게 되었고, 그 이후 몇몇 기관과 교회를 통해 아프리카와 남미 난민들을 돕기 위한 기금을 조성하는 일을 하게 되었다.

그리고 지금은 시리아 보트피플들이 유럽으로 가기 위한 발판으로 가장 선호하는 터키 이스탄불에서 시리아 난민들을 돕는 자원봉사자로 일하고 있다.

등록된 난민 중 10%만 미국, 유럽 등으로 망명

수프키친에서는 80터키리라로 150인분의 식사를 요리해야 한다. 주식은 사진처럼 언제나 국수다.
 수프키친에서는 80터키리라로 150인분의 식사를 요리해야 한다. 주식은 사진처럼 언제나 국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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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공식집계에 의하면 현재 이스탄불에만 머물고 있는 시리아 난민들은 200만 명이 넘는다고 한다. 시리아전쟁 초에는 터키 국경에 근접해 살고 있는 시리아인들이 터키로 유입되었지만, 전쟁이 장기화 되면서 시리아 전국에서 터키로의 난민 행렬이 계속되고 있다. 터키 남부로 들어온 시리아 난민들은 걷거나, 버스를 타고, 아니면 기차를 타고 일단 대도시인 이스탄불로 온다.

이들이 터키 그리고 이스탄불로 오는 데는 이유가 있다. 일단 터키는 출입국사무소에서 비자를 구매하면 입국이 허락되는 나라다. 그리고 대도시 이스탄불에서는 난민들끼리의 정보교류가 활발하다. 브로커를 만나기도 쉽다. 유럽으로 가기 위해서 일단은 이스탄불에서 정보를 얻어야 한다.

하지만 모든 난민들이 유럽으로 가서 새 삶을 영위하려는 것은 아니다. 난민으로 등록된 이들 중 보통 10%만이 캐나다와 미국, 유럽과 호주로 망명한다. 그리고 나머지 90% 난민들의 유럽·아메리칸드림은 꿈으로 끝나버린다.

그래서 난민들은 전쟁이 끝나고 국가가 안정되면 고향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다. 때문에 그런 난민들의 대부분은 이스탄불에서 사는 동안이라도 정상적인 삶을 살려고 한다. 일자리를 찾고, 집을 빌리고, 자녀를 학교에 보내는 것, 그것은 보통의 사람들이 아무런 욕심없이 희망하는 기본적인 삶이다. 그러나 난민이라는 따가운 시선을 받으며 타지에서 이런 삶의 기본권을 획득하는 것은 투쟁에 가깝다.

"시리아 난민들은 터키에 머무는 동안 난민 등록을 해야 해요. 난민 등록은 여타의 비자나 거주허가증을 받는 것과 같은 맥락에 있고, 터키에서 거주허가를 받는 일은 많은 인내심을 요구하죠. 서류 및 등록절차가 까다롭고, 직접 경찰서에 가서 해야 하는 인터뷰도 매번 지체되어 녹록지 않죠. 그 후에 약 두세 달이 지난 어느 날 거주증이 배달되어 오죠.

처음에는 이런 어려운 절차 때문인지, 한두 달이 지나면 전쟁이 끝나고 고향으로 돌아가겠지, 유럽으로 망명할 수 있겠지 하는 안일한 마음에서인지, 등록을 제대로 하지 않는 난민들이 많았지만 현재 이스탄불에서 보통의 삶을 살아보려고 하는 이들은 대부분 난민등록을 하고 있어요. 그래야 더 조금이라도 기본적인 삶을 영위할 수 있기 때문이죠."

베아트릭스는 최근 시리아 난민들을 가장 가까운 곳에서 보아온 사람들 중 한 명으로, 그녀가 접하는 난민들은 보통의 시리아 서민들이다. 결혼을 해서 가정을 이루고 자녀를 낳고 살다가 한순간 모든 것을 버리고 집과 고향을 떠나 타국으로 도망친 사람들, 난민. 우리는 그들을 그렇게 부른다.

"그들이 난민인 것은 맞아요. 하지만 난민, 난민하면서 그들을 동정하려고 하지 마세요. 그들에게 필요한 것은 동정이 아니라 삶을 계속 살아가게 할 희망이에요."

"난민들을 동정하려고 하지 마세요"

수프 키친 자원봉사자들이 난민들을 위한 프로그램에서 음식과 레크리에이션 등을 제공하고 있다.
 수프 키친 자원봉사자들이 난민들을 위한 프로그램에서 음식과 레크리에이션 등을 제공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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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녀를 둔 시리아 난민들이 무엇보다 우선시 하는 것은 아이들의 교육이다. 부모들은 아이들을 어느 학교에 보낼지 결정한 후, 등교가 편한 곳 인근에서 싼 월세 집을 얻는다. 그리고 부모는 집에서부터 멀리 떨어진 도시 근교의 공장 등지에서 일자리를 찾는다. 이들의 취직이 가장 쉬운 곳은 섬유공장이다.

추운 겨울에 섬유공장이 가동되지 않는 동안, 이들은 다른 일자리를 찾아야 한다. 하지만 겨울에는 일자리가 없다. 이들의 겨울나기가 혹독해지는 이유다. 부모는 고심 끝에 자녀들 중 조금 큰 아이들을 노동시장으로 내보낸다. 찻집이나 이발소에서 일할 잡일꾼이나 심부름꾼으로 보내지는 아이들의 나이는 이제 겨우 열 살 남짓이다.

"비공식집계에 의하면 현재 시리아 난민 자녀들이 다니고 있는 학교는 이스탄불 내에만 40여 개예요. 그중 저는 옥메이단(Okmeydan), 술탄가지(Sultangazi), 바샥셰히르(Başakşehir)의 세 곳에서 자원봉사를 하고 있어요. 제가 속한 구호단체의 후원을 받고 있는 학교들이죠. 이 학교들은 간판도 없는 허름한 건물들이에요. 오전 8시부터 오후 1시, 오후 1시부터 오후 6시까지 2부제로 나뉘어서 학생들을 가르치죠.

이 세 학교에 등교하는 학생들은 총 1000명이에요. 선생님도 학생들도 난민 출신이에요. 시리아 학교이기 때문에 아랍어로 수업을 해요. 터키어 수업이 있다는 것을 제외하면 시리아의 학교 과정과 별반 다르지 않죠. 학교등록금으로 매월 50터키리라(약 1만8000원)를 부모가 부담해야 하지만, 책이나 문방용품 등은 구호단체에서 제공하고 있어요. 선생님들은 월급으로 약 800터키리라(약 26만 원)를 받아요."

베아트릭스는 현재 이 세 학교의 난민컨설턴트로 일하며, 빈센트커뮤니티(Vinzenzgemeinschaft)라는 곳에서는 구호예산경영자로, 또 다른 가톨릭교회에서는 수프키친(Soupkitchen)이라는 커뮤니티를 통해 음식을 만들며 자원봉사자로도 활동하고 있다.

터키에는 많은 종교단체들이 합법 비합법적으로 인도주의적인 차원에서 난민들을 돕고 있다. 특히 가톨릭 구호단체는 난민 의료상담, 어머니와 아이들 및 임신여성 프로그램, 교육, 그리고 음식 및 식료품지원 등 네 가지 영역에서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다. 

어떤 이들은 시리아 난민들이 비싼 휴대전화를 가지고 다니고, 좋은 옷을 입고 다니는데 왜 그렇게 많은 구호단체들이 그들을 도와주어야 하는지, 왜 선진국들이 그들의 망명을 받아들여야 하는지 의심한다.

"휴대전화가 없는 난민들은 없어요. 어쩌면 그들에게는 여권보다 휴대전화가 더 중요해요. 그들은 위급상황이 닥쳤을 때 가족과 친척들에게 연락하고 싶어 하죠. 내가 아직 살아있다고, 그러니 걱정하지 말라고요. 그리고 우리가 구호물품으로 나누어주는 옷가지들은 사실 매우 깨끗한 상태예요. 지금 같은 시대에 우리가 그들에게 누더기 같은 구호물품을 전달할 필요가 없죠. 이 세상의 모든 어머니들은 아이들을 위해 따뜻한 한 끼의 식사를 해주려하고, 학교에는 깨끗한 옷을 입혀 보내고 싶어 해요. 난민이 거지는 아니니까요."

난민 모두가 기회주의자라고 정의해선 안돼

가톨릭 난민구호기관에서 펼치고 있는 주요 활동 중 하나가 의료상담 및 지원이다.
 가톨릭 난민구호기관에서 펼치고 있는 주요 활동 중 하나가 의료상담 및 지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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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부 터키인들은 시리아 난민들이 이런 식으로 터키에 눌러 앉아 살게 되는 것을 걱정하고, 부유한 아랍권 국가들은 시리아 난민들의 망명을 이웃집 불 보듯 한다. 한국 등 아시아 국가에서는 시리아 난민들의 망명이 거의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시리아 난민들을  받아들이는 국가는 캐나다, 미국, 호주 그리고 서유럽국가들 뿐이다. 베아트릭스는 말한다.

"사람들은 누구나 이질적인 것에 대한 불안이 있어요. 하지만 우리는 인도주의적인 차원에서 난민들을 돕고 포용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유럽이 난민들을 포용하는 것은 글쎄요. 여러 가지 이유 때문일 거에요. 유럽에서는 두 번의 혁명이 있었어요. 저는 영국에서 있었던 산업혁명과 프랑스에서 있었던 정치혁명이 개인의 행복을 위한 이기주의가 아닌 우리 사회의 행복을 위한 이타주의로 사람들의 의식을 이끌어갔다고 봐요.

지금 같은 자본주의 사회에서 빈부의 격차가 커지면 커질수록 덜 가진 사람들은 불행해지고 그들의 불만은 커져가겠죠. 이렇게 불평등한 사회는 불안정해지고, 불안정한 사회에서는 그 누구도 행복할 수 없죠. 조금 더 가진 사람들이 덜 가진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는 것은 당연하다고 봐요. 사회 전체의 안녕과 행복을 위해서요. 당신이 만약 집 걱정 밥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되고 휴가지 선택의 고민을 한다든가, 쇼핑의 고민을 하고 있다면 당신은 삶과 죽음의 기로에서 고민하는 사람들에게 충분히 무엇이든 나누어 줄 수 있는 사람이에요."

유럽 국가들 중에서도 독일, 오스트리아가 시리아 난민들의 입국을 더 적극적으로 받아들이고 있는 이유가 있을까. 5일 베르너 파이만 오스트리아 총리는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와의 논의를 거쳐 양국이 헝가리를 통해 입국하는 난민들을 제한 없이 받아들이기로 했다고 밝혔다.

"일단 독일은 급속한 인구고령화 문제를 안고 있어요. 이것은 곧 경제생산성 하락과 세수감소 문제로 직결되어 커다란 사회 그리고 경제문제가 될 거예요. 독일은 젊은 노동자들이 필요해요. 시리아 난민들의 대부분은 20, 30대로 젊죠. 그리고 독일과 오스트리아는 제 1, 2차 세계대전에서 패하면서 패전국이 되었고 국민들은 난민과 다름없는 신세였어요.

집은 파괴되었고, 먹을 것은 없었죠. 하지만 독일과 오스트리아인들은 정부와 함께 다시 일어났어요. 거주지가 없는 국민들에게 정부는 사회거주정책을 내놓았고, 정부소유로 많은 주택을 건설해서 가장 정당한 월세를 내고 노동자 계층이 살 수 있도록 배려해 주었어요.

1956년 소비에트연방에 대항해 헝가리혁명이 일어났을 때 오스트리아 정부는 소비에트연방의 강제진압으로부터 도망친 20만 명의 헝가리 난민들을 받아들였죠. 아마 오스트리아가 그때 입국을 허가한 헝가리 정치난민의 숫자는 지금 오스트리아에 망명을 원하는 시리아 난민의 수보다 많을 겁니다." 

최근 빅토르 오르반 헝가리 총리는 시리아 난민들을 가리켜 "그들은 위험에 처한 망명자(refugees)가 아니라 독일식 삶을 원하는 이민자(immigrants)"라고 폄하하기도 했다. 일부 유럽인들은 이슬람종교에 아랍어를 쓰는 이방인들이 유럽으로 망명해 잘 구축되어 있는 유럽의 사회복지시스템을 악용할 것이라는 판단에 그들의 유럽 망명을 거부한다.

실제로 EU 회원국가의 국민으로서 자국보다는 사회복지가 더 잘 되어있는 서유럽국가로 이주해 실속을 챙기는 동유럽국민들도 많다. 난민들의 망명은 심사국의 이런 부정적인 견해로 걸림돌이 될 수도 있다.

"잇속만 차리려는 기회주의자들은 세계 어느 나라에나 있지요. 난민들 중에도 있을 겁니다. 하지만 난민 모두가 기회주의자라고 정의하지 말아야 합니다. 그들이 새로운 삶을 시작하는 국가에 돌려주는 것도 분명히 있을 겁니다. 난민 대부분이 정말 바라는 것은 자녀들이 부모보다 더 나은 삶을 사는 거예요. 그래서 이런 어려운 상황에서도 그들은 아이들을 학교에 보내고 있습니다. 부모보다 더 좋은 교육을 받고 더 좋은 환경에서 자란 난민의 아이들이 유럽과 미국에서 가치있는 인재가 되는 날이 분명 올 것입니다."

베아트릭스와의 인터뷰가 끝난 오후, 갑자기 주변의 모스크로부터 에잔(Ezan, 이슬람 예배 기도문)이 울려 퍼졌다. 이 기도문은 코란의 내용으로 아랍어로 낭송된다. 무슨 뜻인지는 몰라도 애절하고 구슬픈 오후의 기도문에 고개가 숙여졌다.

이 에잔을 듣는 시리아 난민들도 지금 무릎을 꿇고, 머리를 땅에 대고 기도를 올릴 것이다. 그들의 기도가 이루어지길 바라면서 기억나는 아랍어를 중얼거려본다.

'살람' 평화.  '인샬라' 신이 바라건대...

난민에게 무료 교육하는 괴테인스티튜트

터키 이스탄불에 위치한 괴테 인스티튜트. 시리아 난민들에게 무료 독일어 수업을 하고 있다.
 터키 이스탄불에 위치한 괴테 인스티튜트. 시리아 난민들에게 무료 독일어 수업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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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세계에 위치한 괴테인스티튜트는 독일어와 독일문화, 국제문화협력사업 등을 펼치고 있는 독일문화원이다. 터키에는 이스탄불, 앙카라, 이즈미어의 세 도시에 괴테인스티튜트가 있으며, 특히 이스탄불에서는 현재의 사태에 대응해 시리아 난민들을 위해 무료 독일어강좌 및 문화 교육 프로그램을 더욱 활발히 진행하고 있다. 다음은 이스탄불 괴테인스티튜트의 볼프 본 지베르트(Wolf von Siebert) 원장과의 짧은 인터뷰다.

- 어떤 취지에서 괴테인스티튜트에서 시리아 난민들을 위해 무료 독일어강좌를 시작하게 되었나?
"몇 년 전부터 중동지역에서 정치사회적인 분쟁이 계속 되어왔다. 때문에 우리는 레바논, 요르단, 이집트, 이라크, 터키에 위치한 괴테인스티튜트에서 난민들을 위한 무료 독일어강좌 및 문화교육 프로그램을 제공해 왔다. 현재의 시리아전쟁 및 난민사태로 인해 이스탄불 괴테인스티튜트가 난민들을 위한 중요한 교육의 중점으로 떠올랐고, 독일 본국에서도 시리아 난민사태를 매우 중요한 정치적 이슈로 다루면서 난민들에게 무료로 독일어강좌를 제공하게 되었다.

무료 강좌는 지난해 말 개설되었다가 잠시 휴식기를 가진 후, 올해 여름부터 다시 활성화되었다. 우리는 어학강좌 뿐 아니라 문화, 특히 연극 프로그램 등으로 학생들에게 다양한 교육의 기회를 주고 있다. 이런 기회가 시리아 청소년들에게 교육의 기둥을 튼튼하게 쌓을 수 있는 계기가 되기를 바라고 있다."

- 현재 몇 명의 학생들이 무료 독일어강좌 혜택을 받고 있나?
"10~15명의 시리아 난민들이 수업을 받고 있다. 이들은 우리가 뉴스로 보는 보트피플이 아니라, 열심히 독일어를 공부해서 시험을 보고 독일 및 오스트리아 대학에 입학해 공부를 계속하고 싶어 하는 열기가 뜨거운 학생들이다. 지금은 난민이지만 합법적으로 유럽에 가서 공부하고 싶어 하는 학생들이다."

- 학생들의 나이는 어떠한가? 열심히 배우려는 열정이 있는가?
"20세에서 35세의 매우 다양한 학생들이 아주 열심히 배우고 있다. 어떤 학생들은 라틴알파벳을 전혀 읽고 쓰지 못해 처음에는 어렵게 시작했지만, 대부분이 아주 진취적으로 열심히 배워서 나중에는 웃으며 재미있게 언어를 습득하고 있다. 성과가 좋은 친구들은 UNHCR(United Nations High Commissioner for Refugees), 즉 유엔 난민 고등판무관 사무소로부터 장학금을 받고 유학생활을 할 수 있다. 지난해, UNHCR로부터 장학금을 받고 독일로 유학을 간 전세계 난민들의 숫자는 약 3만 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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