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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에 접어들면서 메밀꽃밭이 화들짝 피어나고 있다. 하얀 눈이 쌓인듯 강원도에 메밀들이 무성지게 피어나고 있다.
▲ 메밀꽃 가을에 접어들면서 메밀꽃밭이 화들짝 피어나고 있다. 하얀 눈이 쌓인듯 강원도에 메밀들이 무성지게 피어나고 있다.
ⓒ 김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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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밀꽃 밭이 가장 예쁠 때는 언제일까? 초가을에 접어든 이후 추석을 맞이하기 전 보름달이 뜨는 밤이 아닐까?

이효석의 <메밀꽃 필 무렵>에서 묘사하고 있는 밤, 그 밤은 아마도 이 즈음이라고 생각한다. 이때만큼 메밀꽃이 예쁘게 피어나는 시기는 없다. 소금을 뿌린 듯 하얀 메밀꽃 밭을 보름달이 휘엉청 뜬 밤에 볼 수 있다면 이 시기가 아니면 언제겠는가?

9월 초면 봉평에서 '이효석 메밀꽃 축제'도 열린다. 메밀꽃 필 무렵에 열리는 것이다. 꽃은 모든 때가 아름답지만 막 피어날 때가 가장 아름답다. 봉평은 아니지만, 강원도 어머님 산소에 벌초를 갔다 다녀오는 길, 하얀 메밀꽃 밭을 만나는 행운을 얻었다.

가을이 이렇게 가까이 왔구나 싶다. 벌초를 하면서 등줄기의 땀을 식혀주는 바람도 제법 가을바람이다 싶었는데, 눈으로 보는 가을은 더욱 더 가을을 체감하게 한다.

곤드레나물로 잘 알려진 고려엉겅퀴, 가을꽃들은 보랏빛을 간직한 꽃들이 많고, 산이 깊을수록 보랏빛은 더 선명해 진다.
▲ 고려엉겅퀴 곤드레나물로 잘 알려진 고려엉겅퀴, 가을꽃들은 보랏빛을 간직한 꽃들이 많고, 산이 깊을수록 보랏빛은 더 선명해 진다.
ⓒ 김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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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엉겅퀴, 우리에겐 곤드레나물로 많이 알려진 꽃이다. 이른 봄 줄기가 연할 때 채취하여 묵나물로 밥을 지을 때 섞어 먹으면 건강에도 좋을 뿐 아니라 그 맛이 일품이다.

묵나물이 주는 씁쓰름한 맛과 묵나물만이 간직한 영양소도 있다고 한다. 최근에 어느 식당에 가서 곤드레밥을 시켰는데 푸릇푸릇한 곤드레가 나왔다. 사정을 듣고 보니 요즘은 하우스에서 연한 곤드레가 사시사철 출시된다는 것이다. 아무래도 나에게는 묵나물이 주는 씁쓰름한 맛과 약간의 질긴 식감이 잘 맞는다.

"곤드레밥 좋아하지? 저게 무슨 꽃인 줄 알어?"
"고려엉겅퀴라며?"
"그래, 그게 곤드레나물이야."
"우리 나물 좀 해가자."
"아니, 지금은 질겨서 안되. 봄에 해야지."


가을이면 숲 가장자리에서 무성지게 피어나는 물봉선, 그들이 피어나면 가을인줄 알고, 그들이 피어나면 '나를 건드리지 마세요'라는 간절한 그들의 외침을 듣는다.
▲ 물봉선 가을이면 숲 가장자리에서 무성지게 피어나는 물봉선, 그들이 피어나면 가을인줄 알고, 그들이 피어나면 '나를 건드리지 마세요'라는 간절한 그들의 외침을 듣는다.
ⓒ 김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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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봉선도 피었다. 고려엉겅퀴에 비하면 하도 무성지게 피어나니 물봉선도 나물로 먹으면 좋겠다는 아내의 바람, 그러나 물봉선은 어린 순을 약용나물로 사용하기는 하지만 일반적으로 먹는 나물은 아니다.

그리고 가을이 되어 꽃이 피어나고 그들의 존재를 알 때쯤이면 어린 순이나 연한 줄기는 찾을 수도 없다. 봉선화의 꽃말이 "나를 건드리지 마세요"인 것처럼 물봉선의 꽃말도 그렇다. 어쩌면 이 말은 '나를 좀 건드려 주세요'라는 외침과 다르지 않다. 그래야만 멀리 멀리 씨를 퍼트릴 수 있으니까.

외갑천로에서 만난 시골농가, 흙담과 처마아래 놓인 농기구와 공구들이 정겹게 느껴진다.
▲ 시골농가 외갑천로에서 만난 시골농가, 흙담과 처마아래 놓인 농기구와 공구들이 정겹게 느껴진다.
ⓒ 김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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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초도 하고, 가을 꽃 구경도 하고, 풀섶에서 가을 뱀도 만나 가슴도 쓸어내리고, 땀도 흘리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시골 농가들을 바라본다.

시골 여행에서 사라져가는 시골 농가들을 만나는 일은 마음 아픈 일이기도 하지만, 다큐멘터리 사진의 기록적인 측면에서 본다면 사라져가는 피사체에 초점을 맞출 수밖에 없는 숙명을 가진 것이 다큐멘터리 사진가의 운명이다. 스스로 다큐멘터리 사진을 찍지 않는다고 할지라도, 사진에 담긴 것은 어차피 소멸되어 간다는 점에서 사진의 속성 자체가 다큐멘터리적이다.

하나하나 시골 농가 처마 밑에 놓인 기구들을 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사진 왼쪽 전기줄에 묶인 개줄을 쫓아가다 보면 왼쪽 구석에 살아있는 견공이 한 마리 있다. 그리고 오른쪽 끝에는 이 집 주인 분의 성함이 선명하게 박힌 문패와 우체통 옆에 우체부에게 당부하는 말이 붙어 있다. 흙담은 시골 농가의 세월을 말해주고 있으며, 처마 밑에 있는 것들은 지금도 여전히 이곳에 사람이 살고 있다는 것을 암시한다.

시골농가 창고에 기대에 마르고 있는 참깨, 나에게 이 모습은 하나의 예술작품처럼 보였다.
▲ 참깨 시골농가 창고에 기대에 마르고 있는 참깨, 나에게 이 모습은 하나의 예술작품처럼 보였다.
ⓒ 김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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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 옆에는 창고가 있는데, 창고는 양철지붕을 잇는 재료로 벽을 마감했다. 아마도 사용하던 것인가 싶은데 일정한 패턴으로 골곡진 것이 화폭인 셈이다. 거기에 참깨가 기대어 그림이 되었다. 공교롭게도 잘 마른 참깨의 색깔이 양철에 칠해진 페인트와 같은 색이다. 일정한 패턴이 세로 일색인 가운데 참깨단을 묶은 줄은 가로이며, 도드라지게 붉은 색 끝이다. 그리고 사진의 맨 윗부분도 양철이지만 골곡도 페인트도 없는 직선 양철판이다.

문학작품이나 예술작품 혹은 사진 등을 해설해 놓은 내용을 보면 작가가 그런 의도를 정말 가지고 있었을까 싶은 해설들을 본다. 어차피 그것이 해설가의 역할이지만, 작품을 해석함에 있어서 때론 작가가 인지하지 못한 부분들까지도 해석하는 것이다. 그래서 어떤 경우에는 난해한 이론만 남고, 그래서 일반인들은 그냥 보고, 느껴도 될 예술작품에 대해 거리감을 느끼게 된다. 마치, 어떤 이론적인 기초가 없이는 작품 감상을 할 수 없는 것처럼 느끼게 되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예술도 마찬가지다. 마치 어떤 전문가가 독점을 하는 것처럼 생각되는 것이다. 그러나 사실, 우리의 일상에서 자신이 예술적인 행위를 한다고 인식하지 않으면서 예술가적인 삶을 사는 이들이 얼마나 많은가? 나는 시골 농가에서 그것을 보았다.

투박한 농부의 손, 그저 처마 밑에 사용하던 물건을 하나 둘 가져다 놓고, 참깨도 거뒀으니 잘 마를 자리에 넌 것인데, 그게 예술작품이 된 것이다.

'그 어떤 예술가도 이런 작품을 만들긴 힘들 걸?'

계절의 변화도 그러하다. 어찌 저 풀들이며 나무들마다 제각기 다른 꽃을 시절에 따라 피운단 말인가?


태그:#가을, #메밀꽃, #곤드레나물, #강원도, #시골농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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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을 소재로 사진담고 글쓰는 일을 좋아한다. 최근작 <들꽃, 나도 너처럼 피어나고 싶다>가 있으며, 사는 이야기에 관심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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