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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한말 의병과 일제강점기 항일투쟁, 3·1만세의거 당시 대구복심법원을 비롯한 다른 지역 법원에 남아 있는 경남 사람들의 재판기록은 200건이 넘고 미서훈자도 200명이 넘는 것으로 파악되었다.

의병정신선양중앙회 부설 의병연구소 이태룡 소장(문학박사)은 21일 <오마이뉴스>에 보내온 자료를 통해 이 같이 밝혔다. 최근 이 소장은 전국적으로 '판결문이 있는 의병' 530명이 아직 서훈을 받지 못했다는 사실을 밝혀내 관심을 모았다. 이번에는 별도로 경남 출신 의병에다 3·1만세의거 등 독립투사들의 재판기록 자료를 분석한 것이다.

이태룡 의병연구소 소장.
 이태룡 의병연구소 소장.
ⓒ 이태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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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은 항일의병과 3·1만세의거가 다른 지역에 비해 거셌지만, 진주지방재판소 화재(화재 날짜에 대해 일부에서는 6·25 뒤인 1950년 8~9월 사이로 보기도 하지만, 이태룡 소장은 '1949년 10월 27일'로 봄)로 자료가 소실되었다. 재판 기록을 찾지 못한 후손들이 서훈 추서 신청을 포기하는 사례가 있었고, 이에 미서훈자도 많다.

이전에 경남 전체를 관할하는 재판소는 진주에 있었다. 진주재판소는 1895년 5월 15일 부산, 울산 등 전국 8곳의 재판소와 함께 개청했고, 이듬해 8월 경상남도재판소로, 1908년 진주지방재판소로 바뀌었다.

1896년 경남 전역에서 일어났던 국권회복기 전기 의병, 을사늑약과 광무황제 퇴위와 함께 군대해산에 반발하여 일어났던 후기의병과 관련한 의병 재판은 모두 진주지방재판소에서 이루어졌다.

경남은 전국 의병사에 전무후무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1896년 2월 주한일본공사관은 "진주·사천·고성 세 고을의 의병 수가 1만여 명"이라 기록해 놓았다.

또 일본의 비밀기록에는 "1908년 2월 6일부터 3월 5일까지 순국한 의병이 756명이고 부상 수백명, 포로 700여 명이며, 그해 4월부터 12월까지 일본군 또는 일본 군경 합동부대와 싸웠던 의병이 2224명이고, 그 중 사망자가 587명, 부상자가 수백명"으로 되어 있다.

경남은 3․1만세의거도 격렬했다. 박은식 선생은 <한국독립운동지혈사>에서 3․1만세의거가 가장 격렬했던 세 지역으로 의주, 평양, 진주를 꼽았다. 당시 경남지역 순국자는 창원 320명, 함안 227명, 합천 160명, 사천 120명, 밀양 105명 등 1246명이었다.

이태룡 소장은 경남지역 3·1만세의거와 관련한 재판이 진주지방재판소에서 벌어졌지만, 화재로 자료가 소실되었다고 밝혔다. 전국 의병을 비롯한 항일독립운동을 연구하고 있는 이 소장은 다른 지역 법원에 남아 있는 판결문 등 자료들을 분석해, 경남 출신 항일독립인사의 기록을 찾아낸 것이다.

이 소장은 "경남지방 의병 재판 기록과 일제강점기 항일투쟁, 3·1만세의거 기록도 대구복심법원에 항소한 경우와 다른 지역에서 활약하다 재판을 받은 기록만 남았다"며 "후손들은 이 같은 사실을 알 리가 없고, 그래서 기록을 찾지 못하다 보니 서훈 신청을 하지 못하고, 정부도 일부러 자료를 찾아내서 서훈 추서하지 않았던 것"이라 설명했다.

<통감부래안 1권>.
 <통감부래안 1권>.
ⓒ 이태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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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 미서훈 항일투쟁과 3·1만세의거 재판기록은 부산지방법원 1건과 마산지청 2건, 밀양지청 25건, 통영지청 19건이고, 대구지방법원 5건과 김천지청 4건, 안동지청 1건, 대구복심법원 110건이며, 경성지방법원 16건, 경성복심법원 10건, 고등법원 4건이다. 또 광주지방법원 3건과 순천지청 3건, 장흥지청 1건이고, 광주지방법원 전주지청 1건과 전주지방법원 12건, 정읍지청 1건, 공주지방법원 1건이다.

이태룡 소장은 이들 지역 법원에 있는 재판기록은 총 219건이고, 사람은 총 215명(4건은 개인의 추가사건)으로 보고 있다. 이태룡 소장은 "대구복심법원(진주지방재판소의 항소 담당)과 다른 지역 법원에 경남 사람들의 재판 기록이 수백건 남아 있는데, 그 중 아직 서훈을 받지 못한 분의 기록이 200건이 넘는다"고 밝혔다.

이 소장은 "뒤늦게 찾은 재판 기록이지만, 서둘러 숭고한 영령들을 위로하고 후손들의 멍든 가슴을 풀어줄 것을 간곡히 요청한다"고 밝혔다.

[관련기사] "판결문 있는 의병 530명, 아직 서훈 못받았다"


태그:#의병, #독립운동, #의병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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