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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6월 26일 '나고야 소송 지원회' 회원들이 일본 도쿄 미쓰비시 중공업 본사 앞에서 사'죄와 배상'을 요구하는 '금요행동'을 열고 있다. 지난 2007년부터 시작한 금요행동(1·2차)은 14일로 만 6년을 맞았다.
 지난 6월 26일 '나고야 소송 지원회' 회원들이 일본 도쿄 미쓰비시 중공업 본사 앞에서 사'죄와 배상'을 요구하는 '금요행동'을 열고 있다. 지난 2007년부터 시작한 금요행동(1·2차)은 14일로 만 6년을 맞았다.
ⓒ 근로정신대 시민모임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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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쓰비시 중공업은 조선여자근로정신대 피해를 사죄하고 배상하라. 그것이 정의다".

매주 금요일 아침 일본 도쿄 시나가와역(品川驛)과 미쓰비시(三菱) 중공업 본사 앞에서 미쓰비시와 일본 정부를 향해 구호를 외치는 이들이 있다.

'나고야 미쓰비시 조선여자근로정신대 소송을 지원하는 모임(아래 나고야 소송 지원회)' 회원들이다. '광복 70년'을 하루 앞둔 14일. '나고야 소송 지원회'가 벌이고 있는 '금요행동'이 만 6년을 맞았다.

미쓰비시 본사 앞 '금요행동'..."포기할 수 없는 싸움"

1998년 결성된 나고야 소송 지원회는 일제 강점기 미쓰비시 중공업(아래 미쓰비시) 나고야(名古屋)항공기제작소에 강제징용된 한국인 여자근로정신대 피해자를 지원해 오고 있다. 이 단체 회원들이 처음으로 금요행동(1차)을 시작한 것은 2007년 7월이다.

피해 할머니들이 1999년 3월 1일 나고야 소송 지원회의 도움으로 제기한 손해배상 소송이 잇따라 패소(1심·2심)하자, 일본 최고재판소에 상고한 후 직접 행동에 나선 것이다. 주요 사장단 회의가 열리는 매주 금요일을 '행동의 날'로 정했다.

금요행동을 벌이던 중 일본 최고재판소는 원고 패소 확정판결(2008년 11월)을 했다. 또 한번 현실의 벽을 확인한 순간이었다. 일본에서 법적 책임을 물을 길은 막혔지만, 다카하시 마코토((高橋信·73) 대표의 표현을 빌리면 "소송 이상으로 훨씬 힘든 투쟁"을 멈출 수 없었다.

"다시는 반인륜적인 행위가 일어나서는 안 된다는 양심을 포기할 수 없다. 할머니들과 그 유가족들의 존엄을 반드시 회복해야 한다는 신념 때문이다".

나고야 소송 지원회의 '1호 회원'인 히라야마 료헤이(平山良平·67)씨는 "일본이 저지른 잘못에 '입 다물지 않겠다'는 의지를 보여주고 싶다"라며 "금요행동 등 지원회 활동은 일본인으로서 부끄럽지 않기 위한 것이다"라고 말했다.

나고야 소송 지원회와 피해 할머니들의 힘겨운 싸움이 알려지면서, 2009년 3월 광주에서 '근로정신대 할머니와 함께하는 시민모임(아래 시민모임)'이 결성됐다. 일본 정부와 미쓰비시 중공업에 대한 시민들의 공분도 컸고, 십수 년 동안 한국인 피해자를 지원해 온 나고야 시민들의 헌신에 자극받기도 했다. "우리가 먼저 해결해야 할 문제인데 그동안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는 부끄러움이 앞섰다.

"한국으로 떠나라" 조롱 듣지만... 720km 원정 시위 6년째

 14일 만 6년을 맞은 나고야 소송 지원회의 도쿄 금요행동. 지원회가 일본 도쿄 미쓰비시 중공업 본사 앞에서 매주 금요일 벌이는 원정 시위는 강제징용 투쟁의 상징이 됐다. 사진은 지난 6월 26일 금요행동에 참석한 회원들이 시나가와 역에서 전단지를 배포하고 있는 모습이다.
 14일 만 6년을 맞은 나고야 소송 지원회의 도쿄 금요행동. 지원회가 일본 도쿄 미쓰비시 중공업 본사 앞에서 매주 금요일 벌이는 원정 시위는 강제징용 투쟁의 상징이 됐다. 사진은 지난 6월 26일 금요행동에 참석한 회원들이 시나가와 역에서 전단지를 배포하고 있는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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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 광주에서 전개된 10만 명 서명운동·미쓰비시자동차 광주전시장 앞 1인 시위와 1차 불매운동, 일본 후생성의 '후생연금 탈퇴 수당 99엔 지급' 파문, 도쿄 삼보일배(관련 기사 : "일본과 미쓰비시의 양심은 99엔인가?"), 나고야의 금요행동 등이 겹치며 미쓰비시를 비난하는 여론은 갈수록 높아졌다. 모르쇠로 일관하던 미쓰비시가 협상 가능성을 타진해 왔다. '역사적인 협상'이라며 기대했지만 2010년 7월부터 시작해 2년 동안 벌여 온 협상은 결국 결렬됐다.

미쓰비시는 사죄는 물론 배상까지 거부하며 "일본으로 유학 온 한국인을 지원하겠다"는 터무니없는 말만 되풀이했다. 한국 정부는 뒷짐만 지고 있었다. 나고야 소송 지원회는 다시 거리로 나섰다.

이렇게 2012년 8월 10일, 잠정 중단했던 금요행동(2차)을 재개했다. 금요행동은 지난 7일까지, 모두 291차례(1차 145회·2차 146회) 개최됐다. 6년 동안 2400여 명이 함께 했다. 마쓰이 타에코씨는 "힘든 일은 수없이 많다"고 말했다. 나고야에서 도쿄까지 왕복 720km(거리 360km)를 마다치 않았다. 신칸센(新幹線·일본 고속철도)을 탈 수밖에 없어 교통비도 부담이 적지 않다. 한화로 20만 원을 훌쩍 넘는다.

291차례 열렸지만 10명 이상 참가한 날은 드물었다. 열 손가락으로 꼽을 정도다. 지나가는 도쿄 시민들을 붙들고 전단을 배포하지만 싸늘한 반응이 다반사다. 낯 뜨거운 조롱도 듣는다. 다카하시 대표가 왜 "소송보다 더 힘든 투쟁"이라고 표현했는지, 짐작된다.

"한국 사람들에게 속고 있다, 전부(강제징용·식민지 침략 등) 거짓말이다. 왜 한국 사람 편을 드느냐. 그리 한국이 좋으면 한국으로 떠나라".

이와타 아사코(岩田朝子·70)씨는 "일본 국민이 나쁜 것이 아니라 역사를 제대로 가르치지 않기 때문이다"라며 "할머니들이 겪은 치욕적인 피해를 알게 되면 그렇지 않을 것이다"고 담담하게 받아들였다. 이국언 시민모임 상임대표는 "광주-서울보다 먼 거리를 매주 오가며 투쟁한다는 것은 힘든 일이다"라며 "무엇 하나 녹록지 않은 데 존경스럽다"고 말했다. 

한국만 외면하는 미쓰비시... "할머니들 웃는 날, 투쟁 끝나는 날"

 나고야 소송 지원회는 매주 금요일 일본 도쿄 미쓰비시 중공업 본사 앞에서 원정 시위를 벌이고 있다. 사진은 지난해 6월 26일 주주총회를 앞둔 미쓰비시 본사에서 사죄와 배상을 요구하고 있는 모습이다. 이날은 광주 근로정신대 시민모임 회원들이 함께 했다.
 나고야 소송 지원회는 매주 금요일 일본 도쿄 미쓰비시 중공업 본사 앞에서 원정 시위를 벌이고 있다. 사진은 지난해 6월 26일 주주총회를 앞둔 미쓰비시 본사에서 사죄와 배상을 요구하고 있는 모습이다. 이날은 광주 근로정신대 시민모임 회원들이 함께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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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고야 소송 지원회 활동을 전해 들은 한국인들이 "고맙고 부끄럽다"고 말하면, 되레 회원들은 "미안하다"고 되받는다. 1988년부터 다카하시 대표와 함께 활동해온 고이테 유타카(小出裕·74) 사무국 총무는 "일본의 (전후) 70년은 잘못됐다"라며 "한국에 미안하다"고 사과하기도 했다.

태평양전쟁 당시 미쓰비시 나고야 항공기제작소 도토쿠(道德) 공장 직원으로 근로정신대 할머니들과 함께 일했던 무라마쓰 히사토(村松寿人·87)씨는 "일본의 잘못된 전쟁으로 인한 희생이다"라며 "있는 힘껏, 생이 마감할 때까지 행동할 것이다"고 다짐했다. 그는 자신의 명함에 '강제연행 직장 미쓰비시 중공업'이라는 문구를 넣었다. 자신이 몸담았던 기업의 부끄러운 과거를 고백하며 사죄를 촉구하기 위해서다.

"언제까지 금요행동을 할 것이냐"는 기자의 질문에 회원들은 하나같이 "할머니들이 납득할 만한 사죄와 배상을 받을 때까지", "할머니들이 웃을 때까지"라고 말했다.

이국언 시민모임 대표는 "한국에 변변한 지원 단체도 없었고 주목하지도 않았던 시절, 피해 할머니를 지원해 온 나고야 시민들의 투쟁은 너무 소중하고 고마운 일이다"라며 "때로는 '메아리 없는 외침' 같은 현실의 벽을 대면하지만 지원회와 함께 '끝나지 않은 싸움'을 끝내겠다"고 연대의 뜻을 전했다.

한일 양국 시민단체의 금요행동과 불매운동 등을 비웃기라도 하듯, 최근 미쓰비시머티리얼은 잇따라 미국과 중국인 강제징용 피해자에게 사과와 보상을 했다. 한국엔 "강제징용이 아니다"며 유독 한국만 외면하고 있다(관련기사 : 미쓰비시 "한국인 징용, 전쟁포로와 달라" 보상 거부). 지난 6월 24일 광주고등법원이 "미쓰비시에 배상책임이 있다"고 원고 승소 판결했지만 받아들이지 않고 대법원에 상고했다.

이에 대해 다카하시 나고야 소송 지원회 대표는 미쓰비시를 바위에 비유하며 "계란을 계속 던질 것이다, 언젠가는 깨질 것"이라며 "한국 국민들도 더 투쟁해 줬으면 좋겠다"고 당부했다.

"슬픔을 반복하지 않기 위해 여기에 진실을 새긴다". 나고야 소송 지원회는 소송 지원활동, 금요행동 뿐 아니라 조선여자근로정신대 할머니들의 피해 사례를 조사하고 기억하는 '기억투쟁'도 오랫동안 벌여왔다. 사진은 지난 4일 근로정신대 시민모임이 주관한 6기 한일청소년평화교류단에 참여한 광주지역 청소년들이 도난카이(東南海) 대지진 희생자 추모비를 방문, 헌화하고 있는 모습이다. 이 추모비는 미쓰비시 나고야 항공기제작소 도토쿠(道德) 공장으로 끌려와 강제노동에 시달리던 지진으로 사망한 한국 소녀 6명을 기리기 위해 건립했다. 다카하시 대표 등이 주도해 1988년 건립된 추모비는 옛 도토쿠 공장 터에 자리하고 있다.
▲ "슬픔을 반복하지 않기 위해 여기에 진실을 새긴다". 나고야 소송 지원회는 소송 지원활동, 금요행동 뿐 아니라 조선여자근로정신대 할머니들의 피해 사례를 조사하고 기억하는 '기억투쟁'도 오랫동안 벌여왔다. 사진은 지난 4일 근로정신대 시민모임이 주관한 6기 한일청소년평화교류단에 참여한 광주지역 청소년들이 도난카이(東南海) 대지진 희생자 추모비를 방문, 헌화하고 있는 모습이다. 이 추모비는 미쓰비시 나고야 항공기제작소 도토쿠(道德) 공장으로 끌려와 강제노동에 시달리던 지진으로 사망한 한국 소녀 6명을 기리기 위해 건립했다. 다카하시 대표 등이 주도해 1988년 건립된 추모비는 옛 도토쿠 공장 터에 자리하고 있다.
ⓒ 강성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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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편집ㅣ박정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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