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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수행 성공회대 석좌교수.
 김수행 성공회대 석좌교수.
ⓒ 이희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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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3년 서울대학교 공과대학에 입학한 학생이 한 명 있었다. 당시 대학입학시험이었던 학력고사의 사지선다 객관식 문제에 최적화된 일차원적 두뇌를 가진 전형적인 공대생이었다. 하지만 대학에 들어왔으니 왠지 사회과학 서적도 읽어줘야 미팅 나가서 여자 앞에 똥폼이라도 잡을 수 있을 것 같아 선택한 책이 하필 마르크스의 <자본론>이었다. 바로 김수행 교수가 번역한 비봉출판사 판.

역시 자본론은 어려웠다. 분명 한글로 되어 있는데, 영어로 된 전공서적을 읽을 때보다 더 이해가 되지 않았다. 어떻게든 내용을 이해하고 싶어 <자본론> 관련 해설서를 찾아 봤는데, 그때 발견한 책이 한길사에서 출간된 <政治經濟學原論(정치경제학원론)>이었다. 이 책의 저자 역시 김수행 교수였다.

<자본론>을 읽고, 삶이 달라졌습니다

김수행 교수가 번역한 마르크스 <자본론>을 김수행 교수가 쓴 해설서의 도움으로 읽어내며, 공대생은 태어나 처음으로 자본주의 체제에 대해 '개안(開眼)'하게 된다. 책을 읽기 전까지만 해도, 소위 자유로운 상거래를 보장하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빈부격차가 발생하는 이유는 각 개인의 능력 차이에서 비롯된다는 주장만 들어왔다.

그런데 마르크스 <자본론>에 따르면 빈부격차의 진정한 원인은, 자본가가 자신이 고용한 노동자로부터 시간을 빼앗기 때문에 발생하는 현상이라는 것이다. 게다가 노동자가 시간을 빼앗기는 과정을 마치 물리법칙을 증명하듯 숫자로 풀어서 증명해 놓지 않았나. 요컨대 자본주의 사회 역시 착취에 기반을 둔 사회라는 것이다.

마르크스 <자본론>을 이해했을 때의 느낌은, 영화 <매트릭스>에서 주인공 네오가 모피어스에게 빨간약을 받고 세상의 진실을 보게 됐을 때와 비슷했다. 그동안 사회에 대해 가져왔던 여러 의문점이 한 번에 해소되는 흔치 않은 체험을 한 공대생은, 자연스럽게 김수행 교수의 관련 수업도 신청해서 듣게 됐다. 그렇다. 대한민국에서 마르크스 <자본론>을 접한다는 것은 김수행을 읽는 것이었다.

<자본론>을 '제대로' 이해한다는 것은 삶이 달라지는 것이다. 얼떨결에 공과대학에서 반도체 소자 연구로 석사과정을 마치고 기업에서 꼬박꼬박 월급 받으며 연구원을 하고 있었지만, 정말 하고 싶은 것은 따로 있었다. 결국 2006년에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대한민국을 바꾸는 데 일조하겠다며 민주노동당 활동에 투신(?)하게 됐다.

당 활동을 하던 중 베네수엘라 차베스 대통령의 21세기 사회주의에 대해 다룬 <차베스, 미국과 맞짱뜨다>을 첫 책으로 쓴 것이 인연이 되어 인문사회 저자로서의 삶을 시작했다. 베네수엘라와 차베스에 대한 책으로 저자의 삶을 시작했지만, 사실은 마르크스 <자본론>의 대중적 입문서를 쓰고 싶었다.

 김수행 교수가 번역한 마르크스 <자본론>을 김수행 교수가 쓴 해설서의 도움으로 읽어내며, 공대생은 태어나 처음으로 자본주의 체제에 대해 '개안(開眼)'하게 된다.
 김수행 교수가 번역한 마르크스 <자본론>을 김수행 교수가 쓴 해설서의 도움으로 읽어내며, 공대생은 태어나 처음으로 자본주의 체제에 대해 '개안(開眼)'하게 된다.
ⓒ 임승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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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김수행 교수의 번역서와 저서를 통해 마르크스 <자본론>을 소개 받고 '개안'을 경험했듯이, 아직 마르크스 <자본론>을 접하지 못한 이들에게 내가 쓴 책으로 '개안'의 기회를 제공한다면 사는 보람을 느낄 것 같았다. 그렇게 해서 쓴 책이 <원숭이도 이해하는 자본론>이다.

내심 인생에서 '개안'의 기회를 준 김수행 교수에게 추천사를 받고 싶었지만, 학창시절 대형 강의동 구석에서 교양수업을 들었다는 얄팍한 인연으로 덜컥 추천사를 부탁하는 것은 실례라고 판단해 지레 포기하고 있었다. 그런데 이런 내 마음을 알았는지 몰랐는지 출판사에서 자체적으로 김수행 교수에게 추천사를 부탁해 이미 받아놓은 것 아닌가. 그것도 다음처럼 어마어마한 내용으로 말이다.

"이 작은 책이 3000쪽에 달하는 <자본론> 세 권을 모두 다룰 뿐 아니라 독점과 제국주의, 그리고 새로운 세상까지 다룰 수 있게 된 것은, 필자의 설명이 매우 짧으면서도 핵심을 찌르기 때문일 것이다. 필자는 여러 곳에서 수많은 강의를 한 것 같고 청중들의 질문에 대답하는 과정에서 <자본론>과 현대 자본주의를 어떻게 가르쳐야 할까를 터득한 것 같다. 매우 훌륭한 입문서임에 틀림없다."
- 김수행 (전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 현 성공회대 석좌교수, <자본론> 완역)


저자가 직접 부탁하지 못했다는 송구스러움과 과분한 추천사를 받은 것에 대한 감사함을 직접 전하기 위해 출판사에서 연락처를 받아 직접 김수행 교수의 연구실을 방문했다.

"임승수씨? 반갑네. 내가 자네 책을 처음부터 끝까지 꼼꼼히 읽어 봤어. 아주 잘 썼더군."

그가 뿌린 씨앗 키워 열매 맺는 일, 우리의 과제

 나라면 일면식도 없는 무명 저자의 보잘 것 없는 책을, 그 바쁜 시간을 쪼개서 꼼꼼히 읽고 정성들여 추천사를 써 줄 수 있을까?
 나라면 일면식도 없는 무명 저자의 보잘 것 없는 책을, 그 바쁜 시간을 쪼개서 꼼꼼히 읽고 정성들여 추천사를 써 줄 수 있을까?
ⓒ 임승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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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라면 일면식도 없는 무명 저자의 보잘것없는 책을, 그 바쁜 시간을 쪼개서 꼼꼼히 읽고 정성들여 추천사를 써 줄 수 있을까? 김수행 교수를 직접 만난 사람들 대부분은 서울대 교수라는 무게와 어울리지 않는 소박하고 넉넉한 인품에 깊은 인상을 받는다고 들었다. 사실 그런 인품의 소유자였기 때문에 마르크스 <자본론>을 완역하고 대중저술 활동을 할 수 있었을 테다.

학계에서는 번역활동, 그리고 학술적 목적이 아닌 대중저술은 제대로 업적으로 인정하거나 평가하지 않는 분위기라고 들었다. 김수행 교수는 자신의 교수 경력에 그다지 보탬이 되지 않는 번역 작업과 노동자와 청년학생을 위한 대중저술 및 강의활동에 상당한 노력을 기울였는데, 그의 삶의 목적이 단지 교수로서의 경력을 쌓는 데만 머물지 않았다는 것을 보여준다.

공대생이었던 나는 어느덧 김수행 교수가 그랬던 것처럼 경희대학교에서 '자본주의 똑바로 알기'라는 수업을 가르치며 마르크스 <자본론>의 내용을 학생들에게 전하고 있다. 심지어는 한 학생이 나를 국정원에 신고해 인생에서 처음으로 신문 1면과 포털 메인화면을 장식하기도 했다(관련 기사 : 나를 국정원에 신고했답니다).

인생지사 새옹지마라고, 덕분에 <원숭이도 이해하는 자본론>의 판매가 갑자기 급상승하는 기현상이 일어나기도 했다. 부족하나마 책을 쓰고 강의를 하며 좀 더 많은 사람들이 '개안'을 하는 데 보탬이 되도록 노력하고 있다.

갑작스런 김수행 교수의 황망한 부음에 종일 혼란스러운 마음이었다. 평상시 워낙 정정한 모습이라 더욱 그런 마음이었던 것 같다. 페이스북 타임라인에는 김수행 교수의 가르침 덕분에 '개안'을 하게 된 사연과 함께 갑작스런 부음에 안타까움과 슬픔을 표하는 글이 끊이지 않는다.

그 글들을 보니 오히려 혼란스러운 마음이 차분해 진다. 김수행 교수가 씨앗을 뿌린 밭의 폭과 깊이가 만만치 않다는 것을 눈으로 확인했기 때문이다. 이제 그 씨앗을 키워 열매를 맺는 것은 우리 세대의 과제다.

○ 편집ㅣ홍현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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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숭이도 이해하는 자본론> <차베스, 미국과 맞짱뜨다> <나는 행복한 불량품입니다> <세상을 바꾼 예술 작품들> <원숭이도 이해하는 공산당 선언> <원숭이도 이해하는 마르크스 철학> 등 몇 권의 책을 쓴 저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