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BS <힐링캠프>에 출연한 황정민.

SBS <힐링캠프>에 출연한 황정민. ⓒ SBS


토크쇼 실종의 시대다. 더욱이 1인 게스트를 대상으로 하는 토크쇼는 퇴출되다시피 했다. MBC <무릎팍도사>의 종영의 상징적이었다. 언뜻 스쳐지나가는 토크쇼만 KBS의 <승승장구>, SBS의 < GO쇼 > 등 여럿이다. 연예인을, 유명인을 초대해 그들의 농밀한 속내를 끄집어내는, 전통적인 토크쇼의 시대는 이미 저문지 오래다.

그 자리를 집단 토크쇼가 채웠다. 19금 토크와 신청 사연을 가지고 특화시킨 <마녀사냥>은 '그린라이트'라는 유행어와 함께 JTBC의 히트상품이 됐다. 김구라 식의 독한 토크와 새얼굴 발굴에 주력하는 MBC <라디오스타>는 집단 MC와 집단 게스트의 대표 주자로 자리 잡았다. 그리고, 의학이니, 부모 자식 관계니, 요리니 특정 주제를 놓고 소위 '떼토크'를 벌이는 집단 토크쇼가 일본에서 건너와 TV를 점령하다시피 해 버렸다.   

그 와중에, 그나마 1인 게스트의 명맥을 유지하던 SBS <힐링캠프>가 독한 변신을 단행했다. 김제동만을 남기고 이경규, 성유리가 하차했고, '1 대 500'을 표방하며 500인의 방청객을 MC로 활용한다는 복안을 내세웠다. 이미 지난 2월 실험했던 '김제동의 토크 콘서트' 형식을 도입한 것이다.

일단, 27일 방송된 개편 후 첫 방송은 절반의 성공을 거뒀다. 4.3%(닐슨코리아 전국기준)를 기록한 시청률은 답보상태였지만, 확 바뀐 형식에 호불호가 갈리면서 일정 정도 관심을 끌어내는데 성공했다. 그러나, 아직 넘어야 할 산이 한 둘이 아닌 것은 분명해 보인다. 일단 1주일에 비슷한 형식의 토크 콘서트를 두 번이나 녹화해야 하는 MC 김제동은 어떡해야 하나. 이게 무슨 얘기냐고?

배우 황정민에게 쌍욕 대사 시키는 500인의 MC 

 27일 방송된 <힐링캠프>의 한 장면.

27일 방송된 <힐링캠프>의 한 장면. ⓒ SBS


첫 번째 게스트는 여전히 많은 이들이 '밥상' 수상소감의 주인공으로 기억하는 황정민. 이제는 영화 <국제시장>의 황정민인 그에게 한 방청객이 영화 <신세계>의 명대사를 해 달라고 부탁했다. "드루와 드루와"도 아닌, 무려 진한 욕설이 포함된 "야이, XX 브라더"라는 명대사를.

이날 김제동에 의해 '욕 좀 하는 남자'로 포장된 황정민에게 그 대사를 요구하는 막무가내 팬, 그걸 부추기는 김제동, 그리고 이걸 묵음 처리와 함께 방송에 내보내는 제작진. 아마도 과거 <힐링캠프>였다면 절대 시도하지도, 가능하지도 않았던 장면이었으리라. 일반인들을 '500인의 MC'로 모신다는 발상을 실천에 옮기면서 가능한 돌발상황이란 얘기다.

색다른 장면은 계속됐다. 다시 태어나면 배우가 아닌 목수가 되고 싶다는 황정민의 개인적인 바람에 실망했다는 방청객이 나왔다. 인간 황정민보다는 배우 황정민을 아는 팬의 입장으로서 아쉽다는 지적이었다. 그러나, 당혹스러움은 당신들의 몫이라는 듯 황정민은 그럴 수 있지만 인간 황정민이 있어야 배우 황정민도 존재할 수 있다는 취지의 답을 자연스럽게 내놨다. 그 질문자의 친구인 무명 배우에게 현실적인 조언을 건네는 것도 잊지 않은 채로.

예능이 원하는 감동은 의외의 순간에 터져 나왔다. 경찰인 남편의 당직 근무 때문에 아기 만들기가 여의치 않다는 아내는 사실 자궁암 환자였고, 그래서 아이를 하루 빨리 갖고 싶다는 사연을 털어 놓았다. 그러자 김제동까지 눈물을 훌쩍이는 상황이 발생했고, 시청자들 또한 여기에 공감했다는 평을 적잖이 내놨다. 

여기까지 <힐링캠프>의 변화상만 놓고 보면, 대수술인 건 맞다 싶다. 방향이 게스트에게 쏠리기보다 그 게스트와 함께 방청객의 사연을 두런두런 나누는 형식인 셈이다. 그런데 이 형식, 꽤 많은 시청자들이 이미 즐기고 있지 않은가. 매주 일요일 방송되는 JTBC <김제동의 톡투유-걱정 말아요 그대>(이하 <톡투유>) 말이다. '김제동의 토크 콘서트'의 장점을 양 프로그램이 쏙 빼고 있는 형국인데, 개편한 <힐링캠프>를 보면 어째 그 가능성은 후자 쪽으로 더 기우는 듯한 느낌이다. 

후발주자 <힐링캠프>, <톡투유> 모방 의혹 받지 않으려면 

 27일 방송된 <힐링캠프>의 한 장면.

27일 방송된 <힐링캠프>의 한 장면. ⓒ SBS


스케치북이거나 쪽지거나. 혹은 사회학자와 뇌 과학자거나 앞으로 섭외할 어떤 유명인인거나. <톡투유>와 <힐링캠프>의 차이는 고작 이 정도다. <힐링캠프>가 500인이라는 숫자로 명확성을 더했지만, 어차피 '토크 콘서트' 형식에 유명인 게스트를 더한 것뿐이다. 중간에서 오작교 역할을 해 주는 이가 김제동이라는 점은 변함이 없다. 전자가 하나의 토크 주제를 던져 준다면, 후자는 게스트가 그 역할을 대신한다.

종편 프로그램, 더욱이 MC까지 동일한 프로그램을 기획하면서, <힐링캠프> 제작진 역시 유사성에 관한 지적은 감내하리라 마음먹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유의할 점은 적지 않다.

먼저 게스트의 문제. 생면부지의 방청객들의 이야기를 경청하고 센스 있는 답을 내놓기란 웬만한 순발력의 소유자가 아니고서는 쉽지 않은 일이다. 김제동이 높이 평가받는 이유이기도 하다. 첫 방송에서 황정민 역시 때때로 당황하거나 머뭇거리는 순간이 포착되기도 했다. 섣불리 섭외했다가는 게스트를 바보 만들기 십상인 자리인 셈이다. 거기서 1대500을 강조하다니, 뭔가 공포스럽지 아니한가.

과도한 자막도 부자연스럽기는 마찬가지다. 그 500인의 방청객을 고스란히 MBC <마이 리틀 텔레비전>의 채팅방에 참여하는 시청자라고 인식해서는 곤란하다. 또 게스트의 이야기와 방청객의 사연에 대한 분량 조절도 시급해 보인다. 타이밍이 매끄럽지 못한 것은 치명타다. 진실한 사연을 전달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적당한 치고 빠지기야말로 일반인과 유명인 게스트가 공감하고 그 공감대를 시청자들에게까지 전달한다는 제작 의도를 충족시킬 필수 요소다.

소통이 강조되지만, 그 소통이 점점 어려운 시대다. 방송 역시 점점 사람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지 않고 있다. 나직이 자신의 이야기를 털어 놓는 1인 토크쇼가 명멸하고, 신변잡기와 대상에 대한 경험담만이 횡행한다.

그런 시대에 <힐링캠프>가 갑남을녀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겠다고 나선 것은 분명 환영할 일이다. <톡투유>가 선점했고, 김제동이 동일하게 등장한다 해도 그 가치는 줄어들지 않는다. 그 주제에 맞는 형식을 찾는 것만이 <힐링캠프>가 살아남는 길이리라. 적어도, "또 종편에서 베껴왔어"라는 소리를 들으며 혹평과 시청률 답보에 시달려야 쓰겠는가.

힐링캠프 김제동의 톡투유-걱정 말아요 그대 황정민 김제동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기고 작업 의뢰 woodyh@hanmail.net, 전 무비스트, FLIM2.0, Korean Cinema Today, 오마이뉴스 등 취재기자, 영화 대중문화 칼럼니스트, 시나리오 작가, 각본, '4.3과 친구들 영화제' 기획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