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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자는 노동을 신성한 것이라고 이야기한다. 과연 신성한가. 시궁창에 처박혀 있는 것은 아닌가. 곰곰이 생각해보면 노동은 신성한 취급을 받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노동을 수행하는 노동자가 '노동의 신성함'만큼 대우받고 있는지 묻고 싶다. 언론에 심심찮게 보도되는, 저 높은 곳에 스스로를 유폐하는 노동자의 모습이 정말 신성한가. 고개를 갸웃할 수밖에 없다.

노동에 붙는 수식어를 살펴보면 '신성한'보다는 '고된'이 더 익숙하다. 우리나라에서 노동은 고된 것이다. 누구도 노동을 신성시 하지 않는다. 살기 위해 어쩔 수 없이 하는 것일 뿐, 생활이 보장된다면 때려 칠 사람이 부지기수다. 노동하지 않는 자본가를 부러워하며, 고된 노동을 일종의 굴레로 여기는 풍조가 만연하다.

이 같은 사회 분위기에서 타인의 노동에 대해 관심을 갖는 사람은 별로 없다. 대신 삼성이나 현대와 같은 대기업의 속사정 또는 유명인의 일거수일투족에 관심이 쏠려 있다. 대중의 관심이 부재한 자리에 울리는 '노동은 신성한 것'이라는 외침은 당연히 공허할 수밖에 없다. 지금 가장 필요한 것은 모두가 노동자라는 것을 인정하는 인식의 대전환이다.

이와 관련해 의미 있는 책이 나왔다. 바로 박점규 작가의 <노동여지도>다. <노동여지도>는 김정호가 조선 땅을 일일이 밟으며 대동여지도를 그린 것처럼, 저자가 대한민국 땅을 밟으며 전국의 노동 현장을 그려낸 결과물이다. 이 책은 노동 문제에 관심을 갖고 함께 하려는 이들에게 믿음직한 동반자가 될 만하다.

노동, 삶의 다른 이름

 <노동여지도>, 책 표지
 <노동여지도>, 책 표지
ⓒ 알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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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은 속칭 '금수저'로 불리는 몇몇을 제외하고는, 우리네 삶에서 떼어낼 수 없는 것이다. 어쩌면 노동은 삶의 다른 이름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우리나라 대부분은 그것을 인정하지 않는다. 노동을 족쇄로 여기고, 언젠가는 결코 끊어내리라 다짐한다. 우리나라의 비정상적인 교육열은 내 자식은 이 족쇄를 끊어주리라는 믿음의 징후일 것이다.

하지만 2015년인 지금 노동의 족쇄를 끊을 수 있는 방법은 없다. 상류층으로 올라갈 수 있는 사다리는 끊겼다. 남은 방법은 하나다. 노동자를 소모품으로 여기는 현 사회에서 어떻게 하면 노동자가 인간답게 살 수 있을지 고민하는 것이다. 시작은 현실을 직시하는 것이다. 저자는 우리를 28개 도시 속 노동 현장으로 이끈다.

수원, 울산, 평택 등 노동 문제와 관련해 언론에서 여러 차례 보도된 탓에 우리가 익숙한 곳에서부터 광주, 경주 등 노동 문제와는 전혀 연관이 없을 것 같은 곳에 이르기까지. 저자는 전국의 노동 현장을 생생히 그려낸다. 이를 통해 우리 삶과 노동은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는 것을 우회적으로 지적한다.

저자가 전국의 노동 현장을 종횡무진 한다고 해서, 아무런 문제 의식 없이 그저 취재'만' 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저자가 세상에 내놓은 노동여지도의 주제는 비정규직 문제다. 비정규직 문제는 우리 사회가 처한 노동 문제 중 가장 해결하기 힘든 난제다. 같은 일을 함에도 임금과 복지에 차등이 있다. 이는 정규직과 비정규직 간의 간극을 만들고, 분열에 이르게 한다.

2013년 기아자동차와 정규직노조가 장기근속자녀를 우선 채용하는 데 합의하자 '사내 하청 우선 정규직화'를 요구하며 농성을 벌이던 김 부장은 시너를 뿌리고 분신으로 항거했다. 세 딸아이의 아빠가 "아이들에게 비정규직을 물려줄 수 없다"고 외친 날은 우연히도 세월호 침몰일인 4월 16일이었다.(139쪽)

"공장 앞 선술집에 모인 비정규직 대의원들이 분노를 쏟아낸다. 정규직과 하나의 노조를 이루다 보니 비정규직이 정규직노조에 기대려고만 한다는 것이다. 동료가 분신했는데도 가만히 있고, 비정규직보다 더 열악한 '알바' 노동자들을 외면한다고 대의원들은 열 받아 한다. 최근 사내하청 130명을 뽑았는데 정규직 조합원들이 사내하청에라도 자녀를 넣으려고 했단다. 그런데 비정규직들이 "우리 자녀도 해달라"고 했단다. 정규직노조의 나쁜 점만 배우고 있다고 한탄한다."(140~141쪽)

같은 처지에 있는 이들이 서로 아귀다툼을 벌이고 있는 모습이 바로 노동 현장의 모습이다. 자신의 안위에 천착하다 보면 자신이 이러한 아귀다툼 속에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없다. <노동여지도>가 비집고 들어가는 것이 바로 이 지점이다. '나와 내 가정의 안위를 지켜야 한다'는 본능적인 투쟁에서 한 걸음 물러나 노동 현실 전반을 조망하도록 유도하는 것이다.

항상 자신을 객관화 하지 않으면 이용당할 수밖에 없는 것이 냉혹한 현실이다. 노동자는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아귀 다툼을 자신만의 콜로세움에서 낄낄거리며 지켜보고 있는 자본가의 모습을 올려다봐야 한다. 하지만 모두가 싸움을 멈추지 않으면 올려다볼 수 없다. 눈앞에 칼을 휘두르는 적이 있는데 어느 누가 싸움을 멈출 수 있을까.

연대, 상투적인 만큼 진리에 가까운 방법

"대공장 정규직은 부잣집 마름, 중소기업 노동자는 가난한 집 머슴이에요. 대공장 정규직이 이제 신분이 되어버렸죠. 완성차, 부품사 정규직 노조가 책임감을 가지고 사내하청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조직해야 합니다."(124쪽)

모두가 싸움을 멈추는 방법은 딱 하나다. '연대'하는 것이다. 하지만 지금까지 그래왔듯이 쉽지 않은 일이다. 차등이 실존하는 사회에서 연대를 실천하려면 누군가의 희생은 필수불가결이다. 희생이란 없는 곳에서보다 있는 곳에서 일어나는 게 아름답지 않은가. 그렇다면 연대의 시작은 정규직이 비정규직을 품는 것에서부터이지 않을까.

혁명은 누군가의 일방적인 희생에서 비롯됐다. 우리나라가 일제에서 해방된 것도, 독재의 서슬퍼런 칼날에서 살아남은 것도 모두 누군가의 희생에서 피어난 것이었다. 몇몇을 제외한 모두가 노동자인 사회에서, 1퍼센트의 자본가가 우리나라 대부분의 과실을 차지하고 있는 비참한 사회에서 비정규직을 만든다는 것은 '때린 데 또 때리는 격'이 아닌가.

"처음 들어왔을 때에 비하면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로 좋아졌어요. 그런데 그보다 더 좋은 건 할 소리를 하고 살 수 있게 됐다는 거예요. 인간답게 살 수 있다는 게 뭔지 알 게 됐어요. 우리가 뭉쳐서 싸웠기 때문이죠."(52쪽)

"삼성전자서비스 젊은 친구들에게 '노동조합이 따낸 것도 없는데 좋은 게 뭐냐'고 물으니까 '우리 목소리를 낼 수 있어서 좋다'는 거야. 또 같이 일하는 동료의 소중함을 알게 됐다는 거야. 그게 정답이라고 생각해."(203~204쪽)

"'사축'이라는 말을 아세요? '회사의 가축'이라고 일본의 직장인들이 스스로 비하해서 하는 말이라고 해요. 지금 우리가 그렇게 살고 있어요. 열심히 일하면 인정받을 수 있고 내가 살아남을 수 있다고 생각하잖아요. 이제는 좀 멈춰야 하지 않을까요?"(383쪽)

저자가 <노동여지도>에 담아낸 목소리는 모두 '인간답게' 살고 싶다는 작은 희망을 말하고 있다. 저자가 밟은 노동현장에서는 그 암울함 속에서도 작지만 소중한 연대의 성과들이 있었다. 연대하면 이뤄낼 수 있는 것은 무궁무진하다. 1960년 4.19혁명에서부터 1987년 6월 항쟁까지. 전례는 충분하다.

'만국의 노동자여, 단결하라!'는 선언은 더 이상 빨갱이나 종북 좌파의 전유물이 아니다. 우리가 노동자로서 살아남기 위한 선언으로 전유해야 한다. 대한민국의 노동자여, 연대하라!

덧붙이는 글 | <노동여지도>(박점규 씀/ 알마/ 2015. 4/ 정가 16,800원)

이 기사는 본 기자의 블로그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노동여지도 - 두 발과 땀으로 써내려간 21세기 대한민국 노동의 풍경

박점규 지음, 알마(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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