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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이아몬드가 '따뜻함'보다 정말 더 귀한 것일까?

인문적 사유의 시작과 그 과정에서 '교감'은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교감이란 어떤 대상을 만나서 마음과 정신으로 느끼고 생각하고 서로 통하는 일을 말합니다. 그런데 직접 체험 이외에 이러한 교감을 가장 크고 깊게 경험할 수 있게 해 주는 인문적 대상이 바로 문학 작품입니다. 문학 작품은 언어를 매개로 하여 인문 분야 중에서도 가장 직접적이고 구체적으로 인간의 삶과 감정을 형상화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문학 작품이 추구하는 것은 삶의 진실한 모습이고, 동시에 진실하게 사는 것입니다. 이것은 인문 정신의 핵심이기도 하지요. 그래서 문학 작품 속에는 우리들의 삶을 좀 더 사람답게 만들어주는 소중한 보석들이 담겨 있습니다. 문학 작품 속의 보석이 더 가치 있는 이유는 원래 있던 자리보다 그 보석을 발견한 사람의 마음속에서 그 사람에게 맞는 빛깔로 더욱 아름답게 빛나기 때문입니다.

안도현의 〈너에게 묻는다〉라는 시를 보겠습니다.

연탄재 함부로 발로 차지 마라
너는
누구에게 한 번이라도 따뜻한 사람이었느냐

                     - 안도현, <외롭고 높고 쓸쓸한>(문학동네, 1994.)

잘 알려져 있는 이 시는 무척 짧지만 참 소중한 생각들을 하게 해 줍니다. 몹시 추운 겨울 날 제 몸을 불살라 사람들을 따뜻하게 해 주고 자신은 재가 되고 마는, 재가 되어서도 이놈 저놈 발길에 채여 부서져버리기 일쑤인 연탄의 운명에 대해서 생각합니다.

모두가 살기 어려웠던 시절, 가슴이 답답하거나 화나는 일이 있을 때 길거리의 연탄재를 발로 차면 발도 아프지 않으면서 연탄재가 팍 퍼지는 순간 무언가 가슴이 후련해지던 기억들도 되살아납니다. 하긴 아무리 답답해도 그만한 크기의 돌을 찰 수는 없는 일이었으니까요.

그리곤 사람들 사이의 따뜻함에 대해 오래 생각합니다. 사람이 살아가는 데 사람들 사이의 따뜻함이라는 게 얼마나 소중한 것인가. 그런데 나는 누군가 단 한 사람에게라도 따뜻한 사람이었는지. 나만 따뜻해지려고 안간힘을 쓰며 살아가고 있는 건 아닌지….

이 짧은 시 안에는 깊고 소중한 의미의 '따뜻함'이라는 보석이 들어 있습니다. 타인에 대한 진정한 관심과 애정이라는 보석 말입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데 있어서 비싼 값을 주고 사야 하는 금이나 다이아몬드가 이 시 안에서 발견한 '따뜻함'이라는 보석보다 정말 더 귀한 것일까요?

사람의 마음속에서 아름답게 빛나는 보석

다음은 정호승의 <수선화에게>라는 시입니다.

울지 마라 / 외로우니까 사람이다 / 살아간다는 것은 외로움을 견디는 일이다 / 공연히 오지 않는 전화를 기다리지 마라 / 눈이 오면 눈길을 걸어가고 / 비가 오면 빗길을 걸어가라 / 갈대숲에서 가슴검은도요새도 너를 보고 있다 / 가끔은 하느님도 외로워서 눈물을 흘리신다 / 새들이 나뭇가지에 앉아 있는 것도 외로움 때문이고 / 네가 물가에 앉아 있는 것도 외로움 때문이다 / 산 그림자도 외로워서 하루에 한 번씩 마을로 내려온다 / 종소리도 외로워서 울려퍼진다

                                    - 정호승, <외로우니까 사람이다>(열림원, 1998.)
                        
이 시에서 내가 발견한 보석은 삶에 대한 이해와 긍정이었습니다. 인간 존재의 근원적 외로움에 대한 이해, 그리고 그런 외로움 속에서도 기꺼이 살아갈 수 있는 삶에 대한 긍정 같은 것이었습니다.

이 시에서 여러분은 어떤 보석을 찾을 수 있을까요? 같은 작품이라도 만나는 사람에 따라 문학 속의 보석은 모양과 빛깔이 다를 수 있습니다. 앞에서도 얘기했듯이 문학 작품 속 보석은 그것을 발견한 사람에게 맞는 빛깔로 그의 마음속에서 아름답게 빛납니다.

다음은 신경림의 <가난한 사랑 노래>를 같이 보겠습니다.
                
가난하다고 해서 외로움을 모르겠는가 / 너와 헤어져 돌아오는 / 눈쌓인 골목길에 새파랗게 달빛이 쏟아지는데. / 가난하다고 해서 두려움이 없겠는가 / 두 점을 치는 소리,
방범대원의 호각소리, 메밀묵 사려 소리에 / 눈을 뜨면 멀리 육중한 기계 굴러가는 소리. / 가난하다고 해서 그리움을 버렸겠는가 / 어머님 보고 싶소 수없이 뇌어보지만, / 집 뒤 감나무에 까치밥으로 하나 남았을 / 새빨간 감 바람소리도 그려보지만. / 가난하다고 해서 사랑을 모르겠는가 / 내 볼에 와 닿던 네 입술의 뜨거움 / 사랑한다고 사랑한다고 속삭이던 네 숨결 / 돌아서는 내 등 뒤에 터지던 네 울음. / 가난하다고 해서 왜 모르겠는가 / 가난하기 때문에 이것들을 / 이 모든 것들을 버려야 한다는 것을

                                      - 신경림, <가난한 사랑노래>(실천문학사, 1988.)

이 시는 '이웃의 한 젊은이를 위하여'라는 부제가 붙은 작품으로, 가난한 젊은 도시 근로자의 삶과 사랑을 노래하고 있습니다. 시의 화자는 비록 가난하지만 사람이기에 외로움과 두려움, 그리움과 사랑 따위의 감정들이 왜 없겠냐고 반문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 주변에는 가난 때문에 때로는 이런 인간의 감정들이 사치가 되어 애써 눈 돌리며 감추고 살아야 하는 사람들도 있는 것입니다. 이 시에서 내가 발견한 보석은 '유대감'입니다. 즉 같이 살아가는 공동체 안의 가난한 사람들, 소외된 사람들에 대해 같은 인간으로서 가져야 하는 진정한 이해와 애정이라는 귀한 마음입니다. 이처럼 문학 작품은 우리가 조금 더 삶의 진실에 다가갈 수 있도록 길과 눈을 열어 주는 인문적 사유의 보고입니다.


태그:#인문적 사유, #문학, #교감, #마음의 보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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