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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어제 밤 10시쯤, 동생 부부가 아이들을 데리고 쳐들어왔습니다. 불금이고, 더워서 잠도 안오니 치맥이나 하자는데 사실 이 부부, 속셈이 있는 방문이었습니다. 어제 오후 퇴근 전 동생은

"언니, 우리 둘째 유치원 줄넘기 대회에서 상탔네! 호호호"

이런 자랑의 목소리로 카톡방을 흔들더니, 잠시 후에는

"우와, 큰 녀석은 영어 말하기 대회 장려상!"

이 문구를 띄웠습니다. 기쁜 소식에 축하한다는 말을 전했지만 왠지 모르게 타들어가는 내속! 아 속좁게 내가 왜 이러나 궁시렁대며 그저 누르고 있는 그 밤에, 이제는 아예 상장을 들고 방문까지 했습니다.

물론 조카들이 잘하는 것이 기쁘지 아니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절대평가보다 더 사람을 비참하게 만드는 상대평가! 그때까지 옆에서 TV를 보던 아이들에게로 눈이 돌아가면서 이런 말이 목구멍까지 올라왔습니다.

'얘들아, 너희들 TV보는 시간에 쟤들은 뭘했기에 상을 그리도 많이 받냐. 너희들도 둘 중 하나만이라도 좀 받아와라. 나도 자랑 좀 해보자.'

그러나 여름밤의 치맥. 그 어떤 야식과도 견줄 수 없는 기쁨을 안겨주는 치맥 덕분에 기분은 점점 원상복귀되어 갔습니다. 맥주 한 잔, 그리고 두 잔 넘어 세 잔을 기울이다보니 '뭐 그깟 상이 중요하냐. 건강하게 잘 크면 되지'라는 생각으로 조금 전까지 속을 더부룩하게 누르고 있던 부러움과 속상함들이 시원한 맥주와 바삭한 치킨들에 밀려 뱃속 저 멀리까지 내려가 버렸습니다. 그래서 잠도 편히 잘 잤습니다. 그러나 문제는 오늘 아침에 생겼습니다.

저녁에 즐겁게 치맥을 나누던 동생의 남편, 그러니까 제부가 아침 운동을 하러간다며 서둘러 화장실로 가서 씻고 나오며 물었습니다.

"처형, 처형이 쓰는 세안제 어디 꺼래요? 거품도 잘 나고 씻으니까 얼굴이 뽀득뽀득한데요."
"응? 세안제? 뭐 맨날 쓰는 거 쓰는데..."

평소 화장품에 관심이 많던 제부는 제대로 알고 넘어가야겠는지 다시 화장실로 들어가 제품을 들고 나왔습니다.

"이거요. 이거 못 보던 건데 아주 좋은데요."

오. 마이. 갓! 제부 손에 들려져 있던 것은 세안제가 아닌, 여성청결제였습니다. 그 순간 무슨 말을 해줘야 할까 버벅거리다가,

"어... 그거 천연성분 100%라서 그런가 보네."

라고 말하며 제부의 손에 든 '천연성분 100% 세안제'를 급히 낚아채 화장실로 들어갔습니다. 영문도 모르고 피부가 정말 좋아졌다고 콧노래까지 부르며 로션을 바르는 제부를 쳐다보며 동생이 급히 따라들어왔습니다.

"언니! 아니 왜 그걸 세면대 위에 올려 놓구 그래. 아이 참, 뭐라구 말해줘야 하나."
"큭큭, 그러게 말이야. 왜 걔가 거길 올라가 있니?"

화장실 문을 닫고 소리도 못 내고 웃던 동생과 나. 잠시 후에 화장실에서 나와서도 제부가 나갈 때까지 터져나오는 웃음을 참느라 고생했습니다. 그리고는 이 사실을 누구에게도 말하지 말자고 약속까지 했습니다. 그나저나 제부의 얼굴은 괜찮은지 걱정입니다.


태그:#세안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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