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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수가 심판을 정해 놓고 뛰는 경기를 상상해 보자. 공정한 게임이 이루어지기 힘들 것이다. 그들의 자질이나 역량과 무관하게 관중은 경기 자체를 의심의 눈초리로 볼 가능성이 높다. 다른 선수 입장에서는 결과에 승복하기도 어렵다. 전라북도 군산시에 있는 조선·기계 분야 마이스터고인 군산기계공업고등학교(아래 군산기공고)에서 비슷한 일이 펼쳐지려 하고 있다.

군산기공고는 2010년 마이스터고로 지정된 뒤 교장직을 개방형 교장 공모제에 따라 선발해오고 있다. 현재 제3대 교장 공모 절차를 밟고 있다. 전라북도교육청(전북교육청)이 지난 6월 4일까지 교장 공모제 대상 학교 지정 신청을 받아 최종 지정한 11개교 중 유일한 중등학교다.

군산기공고가 채택한 개방형 교장 공모제는 교사·교장 자격증이 없어도 누구나 교장 공모에 지원할 수 있는 시스템이다. 교육계 경력이나 교원 자격증 소지 여부와 무관하게 교장직을 교내·외에 두루 개방해 학교에 새 바람을 불러일으키게 하자는 취지에서 도입된 교장 선발 제도 중 하나다.

전북교육청과 지역 언론 보도에 따르면 지난 6월 26일 교장 공모 지원 접수 마감 결과 군산기공고에 7명의 지원자가 서류를 접수했다고 한다. 문제는 7명 중에 군산기공고와 직·간접적으로 연관되는 지원자가 있어 공모 절차의 공정성을 담보하지 못하게 될 가능성이 높아졌다는 점이다.

'이해관계인' 배제조항, 제 구실 못해

논란의 중심에 서 있는 사람은 둘이다. 지난 6월 29일 군산지역 교육시민사회단체가 두루 참여하고 있는 '군산기공교장공모제공정성을촉구하는군산교육및시민사회단체'가 낸 보도자료에 따르면, 전북교육청 미래인재과 소속 장학사와 군산기공고 학교운영위원회(학운위)의 운영위원 중 한 명인 현 지역위원이 그들이다.

전북교육청 미래인재과는 산업체 심사위원을 위촉하는 마이스터 관련 부서다. 마이스터고인 군산기공고의 이해관계에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부서인 셈이다. 공모 절차의 공정성 시비가 불거진 이유다.

선발 과정의 공정성 문제가 제기되자 전북교육청은 미래인재과에서 산업체 심사위원 위촉을 하지 않겠다는 논리로 논란을 잠재우려 했다고 한다. 반면 지역 교육시민사회단체들은 공모 교장 지원 자격과 심사 규정 자체를 바로잡아야 한다며 갈수록 목소리를 높여가고 있다.

군산기공고 학교운영위원회(학운위)의 운영위원 중 한 명인 현 지역위원이 이번 교장 공모에 지원했다는 점도 큰 논란거리가 되고 있다. 개방형 교장 공모제에서 학운위는 공모 절차상 주요 주체에 해당한다. 2차 심사 후보자를 3배수 추천하는 1차 심사의 심사위원 구성을 주관하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학운위원은 사실상 학교 관계자에 해당한다. 공모 지원 자격을 주지 않는 것이 상식에 부합한다. 그런데 논란의 당사자는 이번 교장 공모에 지원하기 위해 학운위원직을 사퇴하고 지원 서류를 제출했다. 이에 대해 전북교육청은 교장 공모제 지원 자격과 관련하여 학운위원에 대한 배제 근거가 없다며 논란을 피해가려 하고 있다.

이번 군산기공고 교장 공모제 추진 과정에서 불거진 문제의 상당 부분은 주먹구구식 행정을 펼친 전북교육청에 책임이 있다. 전북교육청의 '2015.9.1.자 교장공모제(개방형) 추진계획'에는 '현임교 재직자 및 관내 지역교육지원청인 군산교육지원청의 교육전문직'은 지원을 제한한다는 내용이 있다. 심사 절차의 공정성을 기하기 위한 일종의 '이해관계인' 배제 조항이라 할 수 있다.

문제는 이 조항이 제구실을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고등학교인 군산기공고의 주무관청은 군산교육지원청이 아니라 전북교육청이다. 사업 예산을 배분해 마이스터고에 영향을 줄 수 있는 주무부서 역시 전북교육청 미래인재과의 직업교육팀이다. 전북교육청 추진계획상의 이해관계인 배제 관련 조항의 취지를 고려한다면 첫 순위로 배제 적용을 받아야 하는 대상에 해당한다.

전북교육청이 추진계획에 명기해 놓은 내용만을 놓고 보면 직접적인 이해관계인이 아닌 이들은 지원 자격에서 배제시키고 직접적인 이해관계인에게는 지원을 가능케 하고 있는 것으로 해석할 수밖에 없다. 공정성을 살리기 위해 '선한' 의도로 도입했을 조항이 공정성을 살리는 훼손하는 모순이 발생한 것이다.

공정성 시비 논란, 2012년에도 벌어져

군산기공고 개방형 교장 공모제 추진 과정에서 벌어지고 있는 최근의 공정성 시비 논란은 2012년에도 있었다. 군산기공고의 현 교장은 2012년 3월 1일자 교장 공모제에 지원하여 임용되었는데, 지원 당시 직위가 전북교육청 미래인재과 소속 과장이었다. 군산기공고의 교장 공모제에 관련 이해관계인이 지원하여 최종 선발되는 일이 벌어진 것이다.

당시 군산지역 교육시민사회단체는 전북교육청에 개방형 교장 공모제 지원 자격과 관련하여 불공정 문제를 제기하였다. 진정한 학교 혁신을 이룰 수 있는 능력 있고 개혁적인 인사를 공정한 심사 절차에 따라 발탁하라고 학교와 교육청에 촉구하였다.

하지만 그 사이 개방형 교장 공모 시스템에는 아무런 손질도 가해지지 않았다. 교장 공모제 지원 자격과 관련된 공정성 논란의 빌미가 된 부서의 장학사가 아무런 제한도 받지 않고 서류를 제출한 것이 증거다.

한 술 더 떠 현임교 재직자의 지원은 막으면서 1차 심사를 주관하는 학운위의 현 위원이 지원하는 것은 허용하는 모순을 범하고 있다. 심판이 선수를 정해놓고 경기를 뛰고 있다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위에 말한 '선한' 의도가 의심스러운 까닭도 여기에 있다.

군산기공고는 2010년 마이스터고로 최초 지정된 뒤 제1, 2대 교장 모두 임기를 다 못 채우고 물러난 '과거'가 있다. 현재 군산기공고는 전국 22개 마이스터고 평가에서 최하위를 기록해 지정 탈락 위기에 놓여 있다. 학생, 학부모들의 우려가 어느 때보다 크다.

전북교육청은 이번 군산기공고 문제와 관련하여 학운위원이 사실상 학교 관계자가 아니기 때문에 교장 공모 대상에서 배제할 근거가 없다고 해명했다고 한다. 행정 편의주의적 발상이라 아니할 수 없다.

일종의 '내부자'들인 장학사, 학운위원의 자진 사퇴가 문제 해결의 단초를 제공해 줄 수 있을 것이다. 전북교육청이 교장 공모제 추진 계획을 합리적으로 수정하는 방식으로 문제 발생의 근본 원인을 제거할 필요도 있다.

군산기공고 누리집 안내문에 따르면 이번 공모 교장에 대한 1차 심사가 7월 6일로 예정되어 있다. 시간이 많지 않다. 군산기공고 개방형 교장 공모제의 불공정성 시비를 잠재울 수 있는 특단의 조처가 필요하다. 전북교육청의 결단이 있어야 한다.

덧붙이는 글 | 제 오마이뉴스 블로그(blog.ohmynews.com/saesil)에도 싣습니다.



태그:#군산기계공고, #개방형 교장 공모제, #마이스터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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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 민주주의의 불한당들>(살림터, 2017) <교사는 무엇으로 사는가>(살림터, 2016) "좋은 사람이 좋은 제도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좋은 제도가 좋은 사람을 만든다." - 임마누엘 칸트(Immanuel Kant, 1724~18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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