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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6월 26일 미국 연방 대법원은 '동성 결혼 합헌 결정'을 내렸다. 동성애자 역시 이성애자와 동등하게 결혼할 권리를 가진다고 본 것이다. 그리고 이틀 뒤인 28일 한국에선 제 16회 퀴어문화축제가 열렸다. 한편 축제가 열린 서울광장 맞은편에선 '동성애, 동성결혼 반대' 집회가 열렸다. 성소수자 인권과 관련해 가야할 길은 아직 멀어 보인다. 성소수자 자녀를 둔 부모들은 이런 한국사회를 어떻게 바라볼까. 성소수자를 위한 재단인 '비온뒤무지개재단'과 함께 하는 부모모임 회원들의 글을 받아봤다. 아웃팅을 방지하기 위해 글쓴이 이름은 모두 익명으로 처리했다. [편집자말]
 퀴어문화축제가 열린 지난 6월 28일 서울광장을 출발해 을지로 일대에서 축제 참가자들이 퍼레이드를 하고 있다.
 퀴어문화축제가 열린 지난 6월 28일 서울광장을 출발해 을지로 일대에서 축제 참가자들이 퍼레이드를 하고 있다.
ⓒ 이희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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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랑이 엄마 이야기] 우리 앞에 선 '그들'

올해 퀴어문화축제는 최고였다. 서울광장에서 열리고 역대 최다 인원이 참가해서만은 아니다. '내가 나일 수 있는 세상'이 그곳에 펼쳐졌기 때문이다. 세상의 가차 없는 잣대와 날카로운 시선에서 살아남기 위해 억누르고 감춰야만 했던 자기 안의 것들을 꺼내놓는다는 것은 정말 신나고 유쾌한 일이었다. 성소수자의 엄마로서도, 오십대 중반의 이성애자 여성으로서도 나는 그곳에서 자유로웠다.

광장 한편에는 어김없이 '그들'이 있었다. 온몸을 태워버릴 것 같은 한여름 태양빛도 마다않고 한복을 입은 채 태극기를 흔들고 춤을 추고 북을 두드리는 그들의 모습은 비현실적이다 못해 기괴해보였다.

그들에 의하면, 나는 '나라를 타락시키고 하나님께 씻을 수 없는 죄'를 지은 죄인의 엄마다. 나는 그들에게 뭐라고 할 수 있을까? 남의 자식 신경 끄고 당신 자식이나 잘 챙기라고 소리쳐볼까? 내가 알고 있는 과학적, 종교적 지식을 총동원해 내 아이는 정신병자도 죄인도 아니라고 설득해볼까?

내 아이가 얼마나 고통스러운지 아느냐고 울부짖을까? 당신은 속고 있는 거라고, 당신의 믿음은 믿음을 위한 믿음일 뿐이라고 깨우쳐줄까? 아니면 북과 부채를 찢고 한바탕 몸싸움이라도 벌일까? 하지만 내가 어떤 말과 행동을 해도 그들을 멈출 수 없다는 절망감에 나는 꼼짝할 수 없었다.

한 할머니가 눈에 들어왔다. 무리와 조금 떨어진 곳에 앉아 북을 두드리는 그녀의 얼굴은 비장하고 처연했다. 연세를 짐작컨대 쉽지 않은 일일 텐데 그녀의 손은 멈추지 않았다. 잠깐 쉬었다 하시라고, 그래도 된다고 그 손을 잡아드리고 싶었다. 누구에 의해, 무엇에 떠밀려 이곳에 오게 되었는지 모르지만 나보다 오랜 세월을 사셨기에 어쩌면 더 힘들었을지도 모르는 그녀의 이야기를 듣고 싶었다. 그리고 나와 내 아이의 이야기를 들려드리고 싶었다.      
      
[초록이 엄마 이야기] "엄마, 나 트랜스젠더인 것 같아"

내 아이는 예의바르고, 성실하고 엄마에게 친절한 아들이었다. 학교에서도 언제나 칭찬 받고, 온갖 상을 두루두루 타왔다. 중학교 2학년 때였다. 굿나잇 인사를 하던 아이가 말했다.

"엄마! 나 성정체성에 문제가 있는 것 같아요."
"무슨 잠자다 귀신 씻나락 까먹는 소리야?"

나는 농담으로 받았다. 그러나 그것은 태풍보다 무서운 해일의 시작이었다. 아이는 어릴 때부터 한번도 남자아이들 놀이를 하지 않았다. 항상 여동생과 인형 놀이를 했다. 나는 감성이 풍부한 아이니 그럴 수 있다고, 예술가 기질을 타고 난 아이일 거라며 알 수 없는 두려움을 잠재웠다. 하지만 내 아이는 어딘가 달랐다.

"엄마! 난 트랜스젠더인 것 같아요."

'트랜스젠더.' 아이의 입을 통해 그 말을 듣기까지 그 단어는 나에게 낯선, 다른 나라 말이었다. 그러나 그날 이후 우리 가족은 그 불편한 단어와 긴 싸움을 해야 했다. 아이는 날마다 처절하게 울었다. "왜 나야? 오 만 명 중에 하나라는데 그게 왜 나냐구?" 아이의 울부짖음은 우리 가족 가슴에 유리조각이 되어 박혔다. 아이도 우리 가족도 3년의 긴 시간을 견디고 아이의 성정체성을 받아들였다.

성전환 수술로 문제가 해결되는 것이 아니었다. 더 큰 전쟁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하나는 아이를 받아주지 않는 세상이고, 다른 하나는 완벽해질 수 없어 영원한 결핍 속에 자신을 가두고 나오지 않는 아이였다. 우리 가족은 아직도 그 문제를 놓고 싸우고 있다.

가끔씩 절망이 찾아오는 날 나는 스스로에게 말한다. "그래도 아이가 옆에 있잖아. 죽지 않고 살아 있으니 됐잖아." 세상은 알까? 짐승 소리를 내며 우는 자식 앞에 아무것도 해줄 수 없었던 어미의 마음을. 트랜스젠더이기에 겪어야 하는 절망과 외로움을. 자신을 받아 주지 않는 세상에 성정체성을 숨기고 살아야 하는 공포를. 아무도 모를 거다. 내 아이가 성소수자가 되지 않았다면 나도 몰랐을 거다.  

나는 세상이 뭐라 해도 내 아이가 자랑스럽다. 그 긴 고통 앞에 비굴하게 도망가지 않았고, 지금도 자신과의 싸움을 계속하고 있는 아이는 세상 어떤 청춘보다 멋진 삶을 살고 있다. 내게 소망이 있다면 아이가 트랜스젠더 여성으로 당당하게 자신의 삶에 우뚝 서는 것이다. 행복하게 사는 것을 보는 것이다. 십년 후든, 이십년 후든 그날은 꼭 오리라 믿는다.

[빨강이 아빠 이야기] 남은 인생, 소수자 차별 없애기 위해 노력

지난 6월 28일 오후 서울광장에서 열린 퀴어문화축제에서 한 참가자가 무지개 현수막을 바람에 날리지 않도록 뒤에서 붙잡고 있다.
▲ 퀴어축제에 펼쳐진 무지개 물결 지난 6월 28일 오후 서울광장에서 열린 퀴어문화축제에서 한 참가자가 무지개 현수막을 바람에 날리지 않도록 뒤에서 붙잡고 있다.
ⓒ 이희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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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년 전, 아주 어렵게 아이가 자신의 성정체성 혼란을 털어놓았다. 고등학교 졸업반이었다. 하늘이 무너지는 느낌이 이럴까. 아이를 위해 살아온 삶이 송두리째 뽑히는 기분이었다. 지금까지의 삶이 한순간에 재가 되는 기분이었다. 몇 군데 병원을 다니며 상담을 하고 정밀검사를 해봤지만 트랜스젠더라는 결과가 나왔다. 내 앞에 떨어진 기막힌 현실을 인정하기 어려웠다. 무기력하게 몇 달을 보냈다. 아이는 학교를 그만두었다.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었다. 되돌릴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희망을 버릴 수 없었다. 그러며 조금씩 성소수자에 대해 알게 되었다. 문제는 아이가 아니라 나였다. 아이의 입장이 아니라 내 입장에서 문제를 바라보는 이기심이었다. 나는 엄청난 고통을 당하는 아이를 헤아리지 못하는 못난 아비였다. 아이의 마음을 여는 일이 먼저였다. 오랫동안 마음을 닫아걸었던 아이에게 다가서는 건 쉽지 않았다. 아내의 헌신적이 사랑이 있어 아이는 쓰러지지 않았다.

올해 초 아이는 외국에 나가 성전환수술을 했다. 병원에 가족 모두 함께 갔다. 우리 모두는 네 편이라는 걸 보여주고 싶었다. 죽음과도 같은 고통을 아이는 참아냈다. 그저 옆에서 손을 잡아주는 게 아버지로서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이었다. 이제 아이는 방문을 잠그지 않는다. 퇴근하면 반갑게 인사를 한다. 내 품에 안겨 조곤조곤 이야기도 한다. 다시 공부해서 학교에 갈 계획도 세웠다. 이제는 딸이 된 아이와 얼마 전에 단둘이 바다를 보고 왔다.

아직 몸이 회복이 안 돼 장거리 여행을 하기 힘든데도 아이가 선뜻 따라나섰다. 차 옆에 앉아 하루 종일 떠들고 잠자고 다시 떠드는 아이를 보니 말할 수 없이 좋았다. 

미국 대법원이 동성결혼 합헌 판결을 했다. 오바마는 환영 성명에서 이렇게 말했다.

"모든 미국인이 평등하게 대우받음으로써, 우리는 더욱 자유로워지게 되었습니다.… 미국은 당신이 누구든, 어떻게 생겼고 어떻게 시작되었든, 누구를 사랑하든 스스로 운명을 개척해 나갈 수 있는 국가입니다."

세상은 이렇게 발전하고 있지만 나는 아직 가장 가까운 사람에게도 내 아이를 말하지 못한다. 한국 사회 관용의 토대를 믿지 못하기 때문이다. 누가 어떤 정체성을 가지든, 서로 인정하는 사회가 건강하다. 내 생의 남은 일 중의 하나는, 이 땅의 모든 소수자들에 대한 편견과 차별을 없애는 일에 조금이라도 힘을 보태는 것이다.

[다시 파랑이 엄마 이야기] 내년 축제에선 그들의 손을 잡아주고 싶다

축제는 다시 열릴 것이고 그들 또한 그곳에 올 것이다. 내년엔 그들의 손을 내가 먼저 잡아줄 수 있을까? 용기를 내보자. 낯선 것에 대한 두려움도, 내 것만 옳다는 이기심도, 힘 있는 자들의 위협도 진짜 자기 삶을 살려는 사람들의 연대와 사랑 앞에선 무력하다는 것을 우리 아이들이 보여주었으므로. 나의 하나님이 알려주셨으므로. 

지난 6월 28일 오후 서울광장에서 퀴어문화축제가 열리는 동안 축제 반대집회 참가자들이 피켓을 들고 서 있다.
 지난 6월 28일 오후 서울광장에서 퀴어문화축제가 열리는 동안 축제 반대집회 참가자들이 피켓을 들고 서 있다.
ⓒ 이희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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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편집ㅣ박혜경 기자



태그:#퀴어문화축제, #동성애, #LGBT, #트랜스젠더, #동성결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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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온뒤무지개재단은 한국 최초의 성적소수자들(LGBTAIQ)을 위한 재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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