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소수의견>에서 검찰 홍재덕 역의 배우 김의성이 26일 오후 서울 팔판동의 한 카페에서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영화<소수의견>에서 검찰 홍재덕 역의 배우 김의성이 26일 오후 서울 팔판동의 한 카페에서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 이정민


영화 <소수의견>에서 김의성이 국가 권력의 상징 홍재덕 검사 역을 맡았을 때 동료들은 하나같이 입을 모았다. 본인 성향과 정반대 인물이라 많이 힘들었을 거라고. 이 물음에 김의성은 말했다. "전혀! 오히려 편했다. 한 개인으로서 이해할 만한 인물이었기 때문"이라고.

영화가 한창 상영 중이던 지난 26일 서울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그를 만났다. 배우로서 30년 가까이 되는 경력을 갖고 있기도 하지만, 쌍용차 해고 노동자 지지 1인 시위 등 적극적인 사회참여도 해왔기에 '인간적' 호기심도 강했던 터였다. 연기자와 자연인 김의성에 대한 궁금증을 안고 갔다.

"영화 <소수의견> 개봉...관객 앞에 부끄럽지 않다" 

과거 그는 한 인터뷰에서 "악역이 편할 때가 많다"고 언급한 바 있다. 단순히 연기하기 쉽다는 의미가 아니었다. 연기적 욕심이 가는 역할이며, 그와 함께 내면에서 끌어올 수 있는 게 많다는 뜻이다. <소수의견>에서 국가 권력의 폭력을 정당화하는 홍 검사 역시 같은 맥락이었다. 애초에 연출을 맡은 김성제 감독이 캐릭터를 지정해주지 않았는데 그가 먼저 제안했단다. 김의성은 "영화에도 좋고 내게도 좋다는 판단에 시켜달라고 했다"고 운을 뗐다.

"웹툰 <송곳>에 나오는 말일 텐데 '서는 데가 바뀌면 풍경도 달라진다'는 대사가 있다. 홍재덕 검사 역시 작은 선택들을 해나가면서 바뀐 인물이라 생각했다. 선배 따라서 세미나를 나가다가 공안통 선배를 알게 됐고, 자기 안에서 합리화 해가며 살았을 거다. 매우 잘 이해할 수 있는 인물이다. 박재호(이경영 분)를 변호하는 윤진원(윤계상 분) 등을 향해 홍 검사가 '너희가 몰라서 그런다, 난 국가를 위해 필요한 일을 하는 거다'라고 하잖나. 누구든 내면에 그런 면이 있을 거다."

그러면서도 김의성은 연기와 삶은 잘 구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악역 연기로 성취감을 맛볼 수도 있지만 삶에서는 예민하게 경계하며 살아야 한다는 주의다. 그 역시 실생활에서 자기 자신을 속이는 선배들을 보며 여러 감정을 느껴왔다고 한다.

 영화<소수의견>에서 검찰 홍재덕 역의 배우 김의성이 26일 오후 서울 팔판동의 한 카페에서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 이정민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서 홍 검사가 던지는 대사를 그에게 상기시켰다. '국가를 유지하는 건 봉사와 희생인데 난 봉사를 하고 있다'는 대사다. 이에 김의성은 "틀린 말은 아니지만 자기 식으로 적용하고 있는 것"이라며 "(공권력 등에게) 억울한 일을 당한 사람을 마치 국가를 위한 희생이니 당연하다고 말하는 건데 아전인수다"라고 생각을 분명히 했다.

영화에 대한 여러 이야기를 뒤로 하더라도 일단 개봉했다는 사실은 김의성도 한 숨 돌리게 했다. 2년 전 완성해놓고도 개봉을 못했던 <소수의견>은 결국 배급사가 바뀌는 등 외적 풍파를 겪었다. "영화와 관련한 다양한 설도 있었고, 우리가 뭘 잘 못했나 생각도 했다"며 "영화가 별로여서 개봉하지 못한 거면 어쩌나 걱정도 들었는데 막상 보니 관객 앞에 부끄럽지 않은 작품 같다"고 자신감을 보였다.

운동 위한 도구로 생각했던 연기가 삶의 전부 되기까지

그의 연기 시작점은 '운동'과 맞물려 있었다. '하 수상한' 시절이었던 군부 독재정권 시절 서울대 경영학과에 재학 중이던 김의성은 자연스럽게 저항 정신을 품고 있었다. 돌을 드는 대신 연극에 뛰어 들었다. "연기 자체에 매력을 느낀 건 아니었다"고 전제한 김의성은 "사회적 이야기를 할 도구로서 연극을 생각했다"고 고백했다.

"그러다 생각이 바뀌었다. 연기 자체를 계속 해야겠다고 마음먹었지. 1990년대 초 동구권 국가들이 무너지지 않았나. 자본주의의 폐해를 지적하고 나름 대안이라 생각했던 사회들이 사실은 자본주의 국가보다도 못한 체제를 갖고 있었던 거다. 사상적 혼란이 왔고, 뭘 해야 할 지 갈피를 못 잡을 때 연기를 업으로 해야겠다고 결심했다."

영화 <비개인 오후를 좋아하세요>(1991)를 기준으로 김의성은 본격적인 연기자 생활을 해나갔다. 홍상수 감독의 영화 <돼지가 우물에 빠진 날>으로 평단의 주목을 받았고, <머나먼 쏭바강>(1993) 등의 드라마에 출연하며 보폭을 넓혔다. 하지만 2000년에 접어들어 돌연 활동을 중단한다. 이후 엔터테인먼트 회사를 차렸다가, 베트남으로 건너가 드라마 제작 사업에 뛰어들기도 했다. 

"어느 순간 그만둬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잘 하지도 못하는 연기에 매달리는 게 옳지 않다고 생각했다. 베트남에서 현지 드라마를 만들며 시간을 보냈다. 사업이 잘 됐다가 실패하기도 했다. 잠깐 한국에 돌아왔을 때에 홍상수 감독님이 다시 불러주셨다. <북촌방향>에 출연하라고 해서 동창회 한다는 생각으로 부담없이 들어갔는데 하면서 너무 좋은 거다. '연기자가 되게 좋은 직업이고 너만이 표현할 수 있는 영역이 있다'고 감독님께서 조언했다. 용기를 얻어 지금까지 하고 있다. 연기자로 전성기를 보냈을 시절을 다른 일로 보냈다는 게 아쉬울 정도다."

사회 참여 배우? "지킬 게 적어서 그럴지도..."

 영화<소수의견>에서 검찰 홍재덕 역의 배우 김의성이 26일 오후 서울 팔판동의 한 카페에서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 이정민


앞서 잠깐 언급했지만 김의성은 트위터 등에서 강한 사회 비판을 하는 등 자신의 의견을 피력하는 것에 주저하지 않는다. 일각에선 '소셜테이너'라는 수식어를 붙이지만 과한 면이 없지 않다. 그저 한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던질 수 있는 말을 하는 건데 과한 낙인을 찍는 건 아닐까. 그 역시 "그렇게 인식된다는 자체는 조심스럽다"고 말을 이었다.

"언제든 실수할 수 있는 사람이고, 실제로도 실수하는 사람이다. 잘 드러나지 않을 뿐이지. 공적 영역에서 발언하는 것 외에 내 모습이 잘 드러나진 않잖나. 사회적으로 바른 말을 하는 사람으로 인식됐다고들 하는데 술 취해서 노상방뇨라도 하면 엄청 욕먹을 거것아닌가. 사실 아무렇게나 막 살아야 하는데! (웃음) 아마도 이런 발언을 할 수 있는 건 다른 사람들 보다 지킬 게 좀 적어서일 수도 있다. 돈이 많은 것도 아니고. 내가 더 중요한 위치가 되면 몸 사릴 수도 있을 것 같고... 실제로도 조심스러워지는 건 사실이다.

나이 먹을수록 더 많은 목소리는 들어야 한다. '내 길만 옳고, 나머지는 기회주의자라든지 변절자라든지' 하는 것도 보기엔 좋지 않더라. 합리와 상식선에서 벗어나면 분노해야지. 물론 그 선을 벗어난 녀석들이 많긴 하다. (웃음) 말이나 행동하는 것에서 두려움 없는 사람이고 싶다.

인권 문제를 예로 들자. 인권은 오랫동안 지켜진 가치가 아니라 시대에 따라 바뀌어 온 가치다. 상상력과 감수성이 필요한 지점이다. 문화, 특히 영화가 그 외연을 넓힐 수 있다고 본다. 타인의 아픔에 공감할 줄 아는 게 그 시작이다. 감수성을 자극하는 작품들이 많이 나왔으면 좋겠다. 그런 면에서 <소수의견>은 자기 가치를 충분히 지키고 있는 영화라고 생각한다."

○ 편집ㅣ이미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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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메가3같은 글을 쓰고 싶다. 될까? 결국 세상을 바꾸는 건 보통의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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