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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대통령이 국회법 개정안에 대해 거부권을 행사한 25일 오후 국회에서 열린 새누리당 의원총회에서 유승민 원내대표가 조해진 원내수석부대표, 원유철 정책위의장과 대화를 나누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이 국회법 개정안에 대해 거부권을 행사한 25일 오후 국회에서 열린 새누리당 의원총회에서 유승민 원내대표가 조해진 원내수석부대표, 원유철 정책위의장과 대화를 나누고 있다.
ⓒ 남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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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일 박근혜 대통령의 국회법 개정안 거부권(재의요구권) 행사로 '비토'를 당한 유승민 새누리당 원내대표가 당내 재신임 우세 여론에 기대 일단 자리를 지키기로 했다.

유 원내대표는 이날 의원총회에서 친박(박근혜)계 강경파의 거센 사퇴 요구를 "더 잘하라는 채찍으로 받아들이겠다"라며 일축하고 나섰다. 박 대통령의 날선 비판으로 사퇴 압박을 받았던 유 원내대표로서는 일단 한 고비를 넘긴 셈이다.

박 대통령은 이날 오전에 열린 국무회의에서 국회법 개정안에 대한 거부권 행사 방침을 밝히면서 유 원내대표를 직격했다. "여당 원내사령탑이 정부·여당의 경제살리기에 어떤 국회의 협조를 구했는지 의문"이라고 공개 비판했다. 

대통령이 집권 여당의 원내대표를 향해 공개적으로 책임론을 제기한 것은 대단히 이례적인 일이다. 특히 국회법 개정안 거부권 행사라는 정치적 행위 자체만으로도 '유승민 비토'의 의미가 분명한데, 직접 육성 메시지까지 친절하게 곁들였다. 

"배신의 정치"라고 직격한 박 대통령

박 대통령은 특히 유 원내대표가 국민들을 대변하는 정치를 하지 않고 있다는 점을 설명하면서 "자기의 정치 철학과 정치적 논리에 (국민을) 이용해서는 안 된다"라고 했다.

유 원내대표가 160석을 가진 집권여당 원내대표 임에도 박근혜 정부를 향해 "공약가계부를 더 이상 지킬 수 없게 됐다", "증세 없는 복지는 허구"라고 맹비판해 온 것에 대한 박 대통령의 불만이 폭발한 것처럼 보인다.

새누리당의 한 재선 의원은 "박 대통령이 직접 유 원내대표를 비판하고 나선 데는 이번 국회법 개정안 처리 문제뿐만 아니라 박 대통령이 추진하려는 핵심 정책을 사사건건 견제해온 것에 대한 불만이 누적된 결과"라며 "박 대통령이 유 원내대표에게 심한 배신감을 느끼고 있는 것 같다"라고 말했다. 이날 박 대통령이 유 원내대표를 겨냥해 "배신의 정치"라는 표현을 사용한 것은 이런 맥락에서라는 것이다. 

이에 따라 여당 내에서는 박 대통령이 '말을 듣지 않는' 유 원내대표를 사퇴시키기 위해 정국 급랭 우려를 무릅쓰고 거부권을 행사했다는 분석이 힘을 얻고 있다. 박 대통령이 겉으로는 거부권의 명분으로 국회법 개정안의 '위헌성'을 거론하고 있지만 속내는 '유승민 찍어내기' 의도가 깔려 있다고 보는 것이다.

충격 받았지만 사퇴는 거부... 유승민 "최선 다했다" 반박

박근혜 대통령이 25일 국무회의에서 국회법 개정안에 대한 거부권을 행사할 방침인 것으로 알려진 25일 오전 새누리당 유승민 원내대표가 최고위원회의에 굳은 표정으로 참석하고 있다. 오른쪽은 김무성 대표와 서청원 최고위원.
 박근혜 대통령이 25일 국무회의에서 국회법 개정안에 대한 거부권을 행사할 방침인 것으로 알려진 25일 오전 새누리당 유승민 원내대표가 최고위원회의에 굳은 표정으로 참석하고 있다. 오른쪽은 김무성 대표와 서청원 최고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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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유 원내대표는 이번 일로 물러나지는 않겠다는 뜻을 관철시켰다. 박 대통령의 메시지 수위가 예상을 뛰어넘어 충격을 받은 것은 사실이지만 사퇴 요구는 과하다는 판단에서다. 박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 전 이미 유 원내대표 측은 거부권 행사와 거취를 연계할 필요는 없다는 입장을 정한 것으로 알려졌다.

국회법 개정안이 국회에 돌아온다고 해도 당·청 관계 파탄을 막기 위해 재의에 부치지 않고 자동폐기하기로 당내 공감대가 형성된 데다, 일부 친박 강경파들을 제외하면 유 원내대표가 직을 유지해야 한다는 의견이 더 많은 것도 사실이다. 당내 비박(박근혜)계 재선 의원들은 따로 모임을 열고 '유승민 지키기'에 나섰다.

유 원내대표도 "(야당과의 협상에서) 국회선진화법에 따라 여당 원내대표로서 최선을 다했다"라고 박 대통령의 비난을 받아쳤다. 

유 원내대표가 자리를 지키는 쪽으로 결론을 냈지만 박 대통령이 직접 유 원내대표의 책임론을 거론하며 해묵은 감정을 폭발시킨 이상, 시간이 갈수록 자리 지키기가 쉽지 않을 것이라는 관측이 제기된다. 자존심이 강한 유 원내대표가 본인이 주도한 국회법 개정안 처리를 박 대통령이 뭉개버리는 상황에서 청와대가 요구하는 법안 처리를 위해 다시 호흡을 맞추기가 사실상 힘들 것이라는 이야기다. 친박계의 흔들기도 더 노골화될 수 있다.

발 빠르게 움직인 친박계... '유승민 책임론' 파상 공세

이날도 친박계 의원들은 박 대통령의 메시지에 발맞춰 발 빠르게 움직였다. 친박계 의원들은 전날 모임을 통해 거부권 행사 이후 의원총회에서 유 원내대표의 사퇴를 요구하기로 의견을 모은 상태였다.  

친박계 김태흠·이장우·박덕흠 의원 등은 의원총회에서 당·청 갈등의 책임을 지고 관계 정상화를 위해서라도 유 원내대표의 결자해지가 필요하다며 사퇴를 촉구했다.

김태흠 의원은 "국회법 처리 과정을 주도해 당·청간 불협화음을 내고 집권당으로서 국민을 불안하게 만든 유 원내대표는 그에 따른 책임을 져야 마땅하다"라고 주장했다. 

역시 친박계인 김현숙 의원은 유 원내대표가 지난달 29일 국회법 개정안 처리 문제를 논의한 의원총회에서 허위 보고를 했다며 강하게 비판했다. 김 의원은 "유 원내대표는 국회법이 처리되는 과정에서 당·청간 조율을 마치지 못했음에도 조율을 거쳤다고 보고했고, 5월 1일 운영위 소위에서 국회법 개정안이 위헌적 요소로 계류됐음에도 위헌적 요소가 없다고 했다"라며 "사실과 다른 내용의 정보를 전달했던 유 원내대표의 정확한 해명이 반드시 필요하다"라고 주장했다.

이 같은 주장은 유 원내대표와 가까운 의원들이 국회법 개정안 처리는 의원총회를 통해 당내 합의가 이뤄진 것이라 원내대표만의 책임이 아니라며 방어막을 친 것에 대한 친박계의 반박으로 해석된다.

하지만 의원총회에서는 '유승민 재신임' 의견이 더 우세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유 원내대표도 "청와대와 소통 원활하지 못했던 점 매우 송구스럽게 생각한다, 앞으로 청와대 식구들과 당 지도부와 함께 당·청 관계를 복원시킬 수 있는는 길을 찾아보겠다"라며 친박계 달래기에 나섰다.

결국 이날 의원총회에서는 국회법 개정안은 자동폐기하고 유 원내대표를 재신임하는 쪽으로 가닥이 잡혔다. 국회법 개정안 거부권 행사에 따른 후폭풍을 최소화하기 위한 고육책이다.

본질은 총선 공천권 둘러싼 '파워 게임'... 김무성-유승민 체제 순항할까

그러나 유 원내대표의 거취가 두고두고 분란을 일으킬 가능성이 큰 이유는 따로 있다. 박 대통령의 거부권을 둘러싼 친박계와 비박계의 다툼이 사실상 내년 총선 공천권과 연계된 권력 다툼의 성격이 짙기 때문이다. 내년 총선을 김무성-유승민 체제로 치를 수 없다는 청와대와 친박계 핵심의 의중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여권 관계자는 <오마이뉴스>와 만나 "유 원내대표가 사퇴하고 올 가을 쯤 친박계 최고위원들이 어떤 식으로든 꼬투리를 잡아 사퇴하고 나서면 김무성 체제는 사실상 유지가 어렵게 된다"라며 "김무성 체제를 무너뜨리고 비상대책위 체제로 총선을 치르겠다는 게 친박들의 생각일 것"이라고 말했다.

김 대표가 사전에 친박계 의원들을 만나 박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하더라도 유 원내대표의 거취를 문제 삼지 말자고 설득하고 나선 것도 이 같은 상황과 무관하지 않다.

유승민 새누리당 원내대표와 이종걸 새정치민주연합 원내대표가 23일 국회 교육·사회·문화 분야 대정부질문이 열린 본회의장에서 만나 악수하고 있다.
 유승민 새누리당 원내대표와 이종걸 새정치민주연합 원내대표가 23일 국회 교육·사회·문화 분야 대정부질문이 열린 본회의장에서 만나 악수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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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야 관계도 문제다. 새정치민주연합은 박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과 국회 비난에 강하게 반발하면서 국회법 개정안을 재의할 때까지 모든 국회 일정을 보이콧하겠다고 선언했다. 결과적으로 공무원연금법 개정안과 국회법 개정안 연계 처리라는 약속을 깬 셈이 된 유 원내대표를 야당이 협상 파트너로 인정할지도 미지수다.

유 원내대표는 "야당과의 관계는 그것대로 풀어 가겠다"라며 "야당을 설득하는 노력을 해 나가겠다"라고 말했다.

○ 편집ㅣ최유진 기자



태그:#유승민, #박근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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