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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릴라칼럼'은 <오마이뉴스> 시민기자들이 쓰는 칼럼입니다. [편집자말]
일년 전 악몽 그대로였다. 허둥대고, 감추고, 책임전가하고, 거짓말하는 모습까지 재방송 보듯 똑같았다. '괴담 유포자를 엄벌하겠다'는 협박도 여전했다.

관계자들의 모습에서 볼 수 있는 것은 정부가 곤혹스러운 상황에 처하는 것을 막기 위한 몸부림, 이것 하나뿐이었다. 늘 그랬듯, 국민의 생명과 안녕은 뒷전이었다. 보건당국이 질병의 확산보다 '괴담 확산'을 더 두려워하고 있으니 놀랄 일도 아니다.

이제 공권력이 등장할 차례였다. 아니나 다를까, 경찰이 혜성처럼 나타나 '괴담 유포자 수사에 나섰다'며 힘을 보탠다. 정부가 중동호흡기증후군(메르스)에 대처하는 모습을 보면, 세월호 이후에도 아무것도 달라진 게 없음을 보여준다.

'경영상 피해'때문에, 치료 병원 공개 거부?

한국의 부실한 대응 매뉴얼. 메르스 '예방책'으로 "호흡기 증상을 보이는 환자 및 동물(특히 낙타)과의 접촉을 피하고 중동지역 여행시 손씻기"를, 치료법으로는 "증상에 따라 적절한 내과적 치료"를 제시하고 있다.
 한국의 부실한 대응 매뉴얼. 메르스 '예방책'으로 "호흡기 증상을 보이는 환자 및 동물(특히 낙타)과의 접촉을 피하고 중동지역 여행시 손씻기"를, 치료법으로는 "증상에 따라 적절한 내과적 치료"를 제시하고 있다.
ⓒ 보건복지부/질병관리본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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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의 첫 번째 대책은 '함구'였다. 어느 지역에서 환자가 발생했는지, 어느 병원이 이들을 돌보고 있는지를 전혀 밝히지 않는 것이다. <연합뉴스>와 인터뷰한 보건당국자는 "지역과 병원을 밝히면 주민들 사이에서 공포와 걱정을 키울 수 있고, 해당 병원에 불필요한 '낙인'이 찍히면서 환자들이 내원을 꺼리는 등 피해"를 볼 수 있기 때문에 공개할 수 없다고 했다.

다시 말해, 병의 확산을 막기 위해서가 아니라, '공포와 걱정'이 커지는 것을 막고, 병원의 수익이 줄어드는 것을 막기 위해 정보를 공개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앞의 '보건당국 관계자'라는 사람은 "병원들이 경영상 피해 때문에 환자 입원·내원 사실을 숨겨 방역망에 구멍이 생길" 우려도 아울러 전했다.

나는 이 발언에서 두 가지를 깨달을 수 있었다. 하나는 '이렇게 멍청한 생각을 할 수도 있구나' 하는 것이었고, 두 번째는 국민보건이 이윤의 장으로 편입될 때 얼마나 끔찍한 일이 일어나는가였다. 진주의료원 강제폐업에서 보듯, 박근혜 정부에서 추진되는 공공의료 축소와 영리병원 도입을 통한 의료민영화는 앞으로 한국사회에 커다란 재앙을 불러올 것이다.

사실, 미래를 말할 것도 없다. 2012년 기준으로도 한국 공공의료기관의 수는 전체의 5.8%에 불과하고, 병상 수로는 10%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다. 공공병원 병상 수가 전체의 90%를 넘어서는 스웨덴, 영국, 체코는 말할 것도 없고, 멕시코의 65%와도 비교가 되지 않는다. '의료복지 후진국'인 <식코>의 나라 미국조차 25%가 넘어, 한국 공공병원의 다섯 배에 달한다.

치명적 전염병이 전국으로 퍼져가는 상황인데도, 보건당국이 병원의 '경영상 피해'를 먼저 우려한다는 점에서, 재앙은 이미 현실이 된 셈이다. 이들의 모습은 세월호 사건 당시 민간 인양회사 이익을 챙겨주기 바빴던 해경의 모습과 정확히 겹친다. 이 둘은 우리사회가 어느 지경까지 왔는지 보여주는 상징적 사건이다.

미국이 발병지역과 병원 공개 안 한다고?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가 인터넷에 공개한 에볼라 치료병원 명단.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가 인터넷에 공개한 에볼라 치료병원 명단.
ⓒ CD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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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병 지역과 병원을 공개하면 시민들의 '공포와 걱정이 늘어날 것'이라는 정부의 주장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불확실성이야말로 공포와 염려를 극대화시킨다는 사실을 정말 모르는 것일까? 국민들이 메르스 치료 병원이 어디인지 알고 싶어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래야만 병원을 찾는 고객이 조심할 수 있을 뿐 아니라, 스스로 감염이 의심되는 상황에서 어느 병원과 상의해야 할지 알 수 있기 때문이다.

보건당국은 정보를 은폐하는 과정에서 어처구니없는 무지를 드러냈다. 예컨대 권준욱 메르스중앙대책본부 기획총괄반장은 "미국 같은 선진국에서도 전염병 확산 시 일부 예외를 제외하고 (지역이나 병원명을) 구체적으로 밝히는 경우가 많지 않은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사실과 거리가 멀다.

미국은 지난해 에볼라 환자 4명이 발생해 당국을 초긴장시켰다. 에볼라는 메르스보다 치사율이 더 높은 전염병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미국 보건당국은 에볼라 치료시설로 선정된 병원 55곳(2015년 2월 기준)을 모두 공개했을 뿐 아니라, 환자 발생 지역과 감염자들이 이동한 경로까지 조목조목 밝혔다.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CDC)가 인터넷에 공개한 정보를 보자.

"2014년 10월 15일, 텍사스 프레스비테리언 병원에서 환자를 돌보던 의료진 한 명이 에볼라 양성으로 판정되었다. 의료진이 에볼라에 감염된 두 번째 사례로, 이 환자는 조지아주 애틀랜타에 위치한 에몰리 병원으로 이송되었다. 이 환자는 10월 10일 텍사스주 댈러스에서 항공편으로 오하이오주 클리블랜드로 이동했다가, 10월 13일 다시 댈러스로 되돌아왔다. 질병통제예방센터(CDC)는 그가 이용한 두 대의 비행기에 탑승했던 모든 승객과 승무원들에게 연락을 취해 공중보건 전문가들과 접촉해 질의에 답하도록 했고, 필요한 경우 후속 연락을 취하도록 조치했다."

미국 보건당국은 발생 환자 모두에 대해 이처럼 자세한 정보를 공개했다. 환자가 언제, 어디서, 얼마나 발생해 어느 병원에서 치료를 받고 있는지 오리무중인 것과 위의 상세한 보고서 가운데 어떤 게 국민의 불안과 공포를 자극할까?

메르스 환자 가운데 다수가 의료진이다. 적절한 보호장구와 조치 없이 환자를 돌보다가 감염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치료병원을 공개하지 않는 것은 병원 이용객들을 불안하게 만들 뿐 아니라, 의료진까지 위험에 빠뜨리는 결과를 낳는다. 어느 병원을 가야 할지 모르는 환자가 전혀 준비가 안 된 병원에 불쑥불쑥 찾아갈 것이기 때문이다. 정부는 병원을 공개하는 정도가 아니라, 전문병원을 지정해 환자의 격리와 치료를 맡기고 물적, 인적 지원을 아까지 말아야 한다.

메르스 '공기전파'가 괴담이라고?

한국 정부의 무능과 무지는 이것으로 끝나지 않는다. 13번째 환자가 발생했던 5월 30일, 권준욱 중앙메르스관리본부 기획총괄반장은 언론에 나와 "현재까지 추세 및 추가적인 검사가 진행중인 상황으로 볼 때 메르스 환자가 더 늘 것으로 판단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리고 사흘만에 환자 수는 30명으로 두 배 넘게 늘었다.

보건당국은 메르스의 공기전파 가능성에 대해서도 '불가능하다'고 단언했다. "공기전파는 현재까지 전혀 생각할 수 없다"는 게 권 총괄반장의 주장이다. 하지만 메르스의 공기전파 가능성은 오래전부터 세계 학계와 언론을 통해 제기되어왔다.

예컨대 2014년 사우디아라비아의 파드 왕립 의료연구센터는 메르스에 걸린 환자와 그의 낙타로부터 시료를 채취해 연구했다. 둘 다 메르스에 감염된 상태였고, 얼마 후 낙타 주인은 숨을 거뒀다. 연구팀은 낙타 사육장 공기 속에 메르스 아르엔에이(RNA)가 떠다니는 것을 발견했고, 그것이 사망 환자의 바이러스와 일치한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메르스의 공기전파 가능성을 보도한 CNN.
 메르스의 공기전파 가능성을 보도한 CNN.
ⓒ CN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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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소식은 전 세계 언론에 대서특필되었다. 물론 공기 중에 바이러스 아르엔에이가 떠다닌다고 해서 반드시 감염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위험성을 완전히 무시할 수도 없다. 벤더빌트 의과대학의 마크 데니슨 박사는 CNN과의 인터뷰에서 "메르스의 공기전파 위험성을 고려해야 하느냐고? 당연히 그렇다"고 말했다.

미국의 질병통제예방센터 역시 메르스 환자로 확진되었거나 의심되는 사람을 관리할 때, '접촉에 의한 감염'과 '공기를 통한 감염' 모두에 대비하도록 권하고 있다. 이에 따른 환자 관리법도 구체적으로 소개하고 있다. 환자를 '공기주의격리실(AIIR)'에 유치할 것을 권장하며, 시설이 마련되어 있지 않은 경우, 독실에서 문을 닫은 상태로 관리해야 한다는 것이다. 매뉴얼은 병실의 내부 공기를 '고효율 미립자 에어필터(HEPA)'로 걸러내야 한다고 지적한다.

미국 보건당국은 메르스의 공기전파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환자를 관리하라고 권한다.
 미국 보건당국은 메르스의 공기전파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환자를 관리하라고 권한다.
ⓒ CD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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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데도 한국의 보건당국은 "공기를 통한 전파는 불가능하다"거나 "전혀 생각할 수 없다"는 식의 무책임한 발언을 계속하고 있다. 그러는 사이에 환자는 계속 늘어 있고, 국민들의 불안도 커지고 있다. 이 무능은 정권이 바뀔 때마다 경제, 외교, 교육, 문화, 보건까지 싹 갈아치우는 악습과도 무관하지 않다. 국민의 안녕과 이익보다 '제 사람 심기'에 혈안이 되어있기 때문이다.

아무리 지난 정부가 밉더라도, 사스를 성공적으로 막아냈던 인물과 경험을 활용했더라면, 나라가 어제 세워진 듯 허둥대지 않았을 것이고, 국민의 고통을 최소화할 수 있었을 것이다. 우리는 언제 정치적 타산보다 국민의 목숨을 먼저 생각하는 정부를 갖게 될까?

○ 편집ㅣ손병관 기자



태그:#메르스, #공기전파, #세월호, #미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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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학 교수로, 미국 펜실베니아주립대(베런드칼리지)에서 뉴미디어 기술과 문화를 강의하고 있습니다. <대한민국 몰락사>, <망가뜨린 것 모른 척한 것 바꿔야 할 것>, <나는 스타벅스에서 불온한 상상을 한다>를 썼고, <미디어기호학>과 <소셜네트워크 어떻게 바라볼까?>를 한국어로 옮겼습니다. 여행자의 낯선 눈으로 일상을 바라보려고 노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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