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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릴라칼럼'은 <오마이뉴스> 시민기자들이 쓰는 칼럼입니다. [편집자말]
지난 2014년 10월 16일 오후 서울 여의도CGV에서 열린 MBC에브리원 <더 모스트 뷰티풀데이즈> 제작발표회에서 서브MC 칼럼니스트 겸 방송인 곽정은이 질문에 답하며 프로그램을 소개하고 있다.
▲ '더 모스트 뷰티풀데이즈' 곽정은, 큰 언니 역할 지난 2014년 10월 16일 오후 서울 여의도CGV에서 열린 MBC에브리원 <더 모스트 뷰티풀데이즈> 제작발표회에서 서브MC 칼럼니스트 겸 방송인 곽정은이 질문에 답하며 프로그램을 소개하고 있다.
ⓒ 이정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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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는 잘 바뀌지 않는다. 사회에는 달려온 방향대로 계속 나아가려고 하는 일종의 관성이 작용하고 있다. 달리다가 갑자기 서거나 방향을 틀기 위해서는 여분의 에너지가 필요하다. 사회 구성원들은 대개 '흐르는 방향에' 몸을 맡기기 일쑤다. 그 방향이 옳은지, 그른지는 별개의 문제다.

이런 사회적 지속성은 개인의 심리적 관성과도 맞닿아 있다. 낯익은 것을 포기하고 낯선 것을 모색하는 일은 상당한 정신적 에너지가 소모되는 '피곤한' 일이기 때문이다. 가끔 한 사회가 나아가는 방향에 문제제기를 하는 사람을 만날 때, 우리는 점잖게 한마디 한다.

"참, 인생 피곤하게 산다."

우리 다수가 보이는 이런 식의 태도는, 모두가 인식하는 사회 문제들이 잘 해결되지 않는 이유를 설명해 준다. 우리는 '피곤하게 살지 않기 위해' 문제를 은폐하고 재생산하는 데 공모하고 있다.

곽정은의 트윗을 둘러싼 논란

최근 한 보수언론을 통해 '사회적 관성'의 문제를 새롭게 인식할 기회가 있었다. 이 보도는 기존의 문제의식을 상기시키는 데 그치지 않고, 새로운 문제까지 추가로 깨닫게 해 주었다. 방송인 곽정은의 트위터 글을 보도한 5월 24일자 <국민일보> 인터넷판이 그 주인공이다.

기사에 첨부된 곽정은의 트윗을 보면, "택시를 탔는데 앉자마자 기사분이 주말인데 좋은 데 놀러 가느냐"고 물었다고 한다. "일하러 간다"고 답하자, 기사는 "아니 이렇게 예쁜 공주님들도 일을 하러 가느냐"고 되물었단다. 이 말이 유쾌하게 들리지 않았던 당사자는 다음과 같은 말로 트위터 글을 끝맺었다.

"탄 김에 곧장 서울역까지 가려고 했지만 아무래도 중간에 내려 지하철을 타야겠다."

이 지극히 개인적 푸념에 대한 <국민일보>의 보도 태도는 표제에 잘 드러나 있다. "택시기사 '예쁜 공주님' 발언이 어때서... 곽정은 트윗 시끌시끌"이라는 제목에, "분노의 인터넷... 곽정은 조롱 웹툰까지 등장"이라는 부제까지 달았다. 기자는 누리꾼들이 "곽정은의 트윗에 불쾌감을 드러냈다"며, 해당 글들을 일일이 인용한다.

"24일 인터넷에는 '저런 소리를 들으면 어머 정말요? 호호 감사해요. 이게 정상 아닌가요?', '와 진짜 노답이네', '그게 무슨 정신상태인가요? 스스로 논리적이라고 생각해요?', '갈수록 꼴불견', '못생겼다고 해도 뭐라 하고, 예쁘다고 해도 뭐라 하고', '과연 정상적인 생활은 하시나요?', '대체 어떻게 살았기에 저런 말을 저렇게 비비꼬아 생각할까. 칭찬 아니냐. 칭찬' 등의 비난이 빗발쳤다."

기사는 "곽정은을 조롱하는 웹툰까지 등장했다"면서 내용을 상세히 소개했다. "곽정은이 택시기사로부터 '예쁜 공주님'이라는 칭찬을 듣고 '쿨하게' 자랑할 방법을 찾은 것이 중간에 내리는 것"이라며 비꼬는 내용이 담겼다는 것이다. 나는 이 부분을 읽으면서, 문제가 '한국 언론의 수준'이라는 또 다른 고질병과 겹쳐있음을 깨달았다.

'예쁜 공주님' 발언이 뭐가 문제인데?

모두가 알듯, 우리는 남의 외모를 거론하는 데 익숙하다. 얼굴이 넓네 좁네, 가슴이 크네 작네, 다리가 기네 짧으네를 공공연히 거론한다. 언론까지 나서서 어린 연예인에게 '꿀벅지, 허걱!'이라는 감탄사를 수시로 내뱉는 곳이 한국사회 아닌가. 외모를 평가하는 데 '쇄골'과 '골반'까지 등장하는 것을 보면, 이 사회의 외모에 대한 강박과 집착은 미학을 넘어 해부학에까지 도달한 느낌이다.

이러니, '예쁜 공주님'이라는 말이 불쾌했다는 사람이 별스럽게 느껴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하지만 인터넷이 아무리 '막장'이라도, <국민일보> 기사가 주장하듯, 모든 누리꾼이 한 목소리로 곽정은을 비난했을까? 택시 기사의 발언에서 불쾌감을 느낀 사람이 전혀 없었단 말인가? 믿을 수 없는 일이었다.

사실이 아니었다. 잠깐의 검색만으로도, '예쁜 공주' 발언에 대해 곽정은의 심정을 이해한다는 글을 여럿 찾을 수 있었다. 개인이 가벼운 마음으로 올린 트윗이 언론의 심층보도감이 되는지도 알 수 없지만, 설사 그렇다 해도, 기자는 그 '논란'에 대해 기초적인 균형감각조차 보여주지 못했다.

언론의 목적은 시민들에게 공동체에서 일어나는 일에 관해 정확한 정보를 제공하고, 이를 합리적으로 판단해 해결책을 찾도록 돕는 것이다. 그렇다면 기자는 '누리꾼들'이 보였다는 태도 역시 비판적으로 분석하고 논평했어야 옳다. 하지만 기자는 자신의 입장을 합리화하기 위해 극단적 사례를 나열해 놓았을 뿐이다.

이제 곽정은의 '정신상태'를 비판적으로 언급했다는 사람들 이야기를 해 보자. 몇 년 전, 한국 대학에서 강의를 했던 외국인을 만난 일이 있다. 그는 자신이 한국에서 겪은 '기막힌 경험'을 들려주었다. 학술논문을 발표하는 자리에서 학과의 동료교수가 자신을 "우리 학교 바비 인형"으로 소개했다는 것이다. 그는 주체할 수 없을 만큼 당황했고, "깊은 수치심을 느꼈다"고 말했다.

여기서 문제는 무엇일까? 수치심을 느낀 "꼴불견" 외국인의 "정신상태"? 그가 "정말요? 호호 감사해요" 했어야 정상일까? 상대방이 어떻게 느낄지 고민하지 않고 내뱉는 발언이 '칭찬'이 될 수는 없다. 칭찬이 자신을 위해서가 아니라 상대를 위해서 하는 말이라면 말이다.

문제는 곽정은의 불쾌감이 아니라 수준 낮은 배려의식

남의 외모를 멋대로 거론하는 건 '선의'도 아니고, '문화적 차이'로 합리화할 수 있는 행동도 아니다. 한국의 높은 성범죄율과 남녀 간의 임금격차가 '미풍양속'이 아니듯 말이다.

칭찬이든 조롱이든, 남의 외모를 함부로 거론하는 것은 보편적 상식에 어긋나는 행동이다. 남을 불편하게 만들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생김을 거론하는 것 자체가 인격체를 물적 대상화하는 일이다. 빤히 바라보는 행위도 '사물화'의 한 형태이기에 사람을 불편하게 만들며, 그런 이유로 미국에서는 '응시(staring)'를 성희롱의 범주에 넣어 처벌한다.

권력관계가 결코 공평하다고 할 수 없는 남녀관계에서는 더 섬세한 배려가 필요하다. 힘의 불균형 상태에서 외모의 거론은 불쾌감을 넘어 위협감과 공포까지 심어줄 수 있기 때문이다. 인적 드문 곳에서 낯선 남자가 '외모'를 거론할 때, 그것은 실제 폭행을 암시하는 말이 되기도 한다.

물론, 문제가 된 택시 기사의 "예쁜 공주님들도 일을 하러 가느냐"는 발언은 '선의'에서 나온 말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분별없는 발언이었다. 그 말은 이중으로 상대를 불편하게 할 가능성이 있다. 상대가 원하지도 않는 외모를 거론했을 뿐 아니라, '예쁜 여자는 일할 필요가 없다'는 성적 편견을 드러냈기 때문이다.

확신할 수 없으면 침묵하는 게 예의다

앞의 '예쁜 공주님' 발언이 '칭찬'으로 들리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런 사람들은 낯선 사람이 이런 말을 할 때 히죽 웃으며 즐거워하면 된다. 자신의 몸에 쏟아지는 논평을 즐기는 것은 온전히 그 사람의 권리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같은 이유로, 그 말을 불쾌하게 여기는 사람을 비난할 권리는 그들에게 없다.

<국민일보> 기사에서 가장 흥미롭게 읽은 부분은 한 누리꾼이 "택시 기사분이 보면 기분 나쁘겠어요"라고 지적했다는 부분이었다. '기분 나빠질지 모를' 사람을 염려하는 것은 고마운 일이지만, 지금 '이미 기분 나빠진' 사람이 눈앞에 있다. 우습게도, 마음이 비단결 같은 이 누리꾼은 마음 상한 사람은 비난하면서, '앞으로 기분 나빠질 가능성이 있는' 애먼 사람 걱정을 한다.

나는 그 택시기사가 곽정은씨 트윗을 보기 바란다. 기분이 언짢아질지 모르나, 그런 말이 상대를 불쾌하게 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하기 때문이다. 상대가 즐거워할 것으로 확신할 수 없다면, 침묵하는 게 예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말하고 싶어 견딜 수 없다면, 그 말은 상대를 위한 게 아니다. 이 경우, 자신의 말에 책임을 져야 한다.

○ 편집ㅣ곽우신 기자



태그:#곽정은 , #트위터, #외모, #성차별, #성희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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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학 교수로, 미국 펜실베니아주립대(베런드칼리지)에서 뉴미디어 기술과 문화를 강의하고 있습니다. <대한민국 몰락사>, <망가뜨린 것 모른 척한 것 바꿔야 할 것>, <나는 스타벅스에서 불온한 상상을 한다>를 썼고, <미디어기호학>과 <소셜네트워크 어떻게 바라볼까?>를 한국어로 옮겼습니다. 여행자의 낯선 눈으로 일상을 바라보려고 노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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