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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안 성거산성지 '성모동산'에는 작은 오두막에 작은 성모상이 모셔져 있다.
▲ 오두막의 성모상 천안 성거산성지 '성모동산'에는 작은 오두막에 작은 성모상이 모셔져 있다.
ⓒ 구갑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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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3일 오후 아내와 함께 다시 천안 '성거산성지'엘 갔습니다. 2일 성거산성지에서 열린 제11회 '야생화전시회' 개막식에 참석하여 축시 낭송을 하고 왔는데, 그때로부터 20일이 지난 때에 또다시 성거산성지엘 간 것입니다.

23일 저녁 성거산성지 '성모동산'에서 열린 '성모의 밤' 행사에 참석해야 하는 일 때문이었습니다. 이번에도 성지 담당 정지풍 아킬레오 신부님의 요청으로 시를 한 편 지었습니다. 이번에는 '축시'가 아닌 '헌시'였습니다. 즉 성모 마리아님께 올리는 시를 지은 거지요.

지난 2일 성거산성지 제11회 야생화전시회 '야생화는 말한다' 개막식 자리에서 내 축시 낭송을 들었던 분들이 여럿 정지풍 신부님께 나에 대해서 묻고 감동 표시를 했던 모양입니다. 그런 연유로 정지풍 신부님은 성거산성지 '성모의 밤' 행사를 준비하면서 내게 또 시낭송을 부탁하신 거지요.

깊은 산속 성거산성지에서 거행되는 '성모의 밤' 행사에 참석하고 있는 신자들
▲ 성거산성지의 성모의 밤 깊은 산속 성거산성지에서 거행되는 '성모의 밤' 행사에 참석하고 있는 신자들
ⓒ 구갑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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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은 산속 성거산성지에서 거행된 '성모의 밤' 행사에 참석하고 있는 신자들
▲ 성모의 밤 깊은 산속 성거산성지에서 거행된 '성모의 밤' 행사에 참석하고 있는 신자들
ⓒ 구갑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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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생을 천주교 신자로 살아온 덕에 성모님께 드리는 헌시를 여러 편 지었습니다. 대부분은 내가 적을 두고 있는 충남 태안성당의 5월 '성모의 밤' 행사 때 낭송한 시들이지요. <가톨릭신문>과 <평화신문>에 발표한 시들도 있고, 내가 펴낸 세 권의 시집에 모두 수록되었습니다.

기왕의 그 시들 중에서 한 편을 골라 성거산성지 '성모의 밤' 행사에 낭송할 생각도 없지 않았지만, 나로서는 성지에서 거행되는 '성모의 밤' 행사에 처음 참석하게 돼서 새로 한 편을 짓고 싶었습니다. 덕분에 시 한 편을 생산할 수 있었습니다.        

정말 우리 본당이 아닌 곳에서, 더욱이 깊은 산속 성지에서 갖는 '성모의 밤' 행사에 참석하기는 처음이었습니다. 그만큼 가슴이 벅찬 일이기도 했습니다. 깊은 산속의 고요한 정취 속에서 5월의 감미로운 저녁 기온과 만발한 아카시아와 라일락 꽃향기가 어우러지는 아름다운 밤이었습니다. 

성거산성지 '성모의 밤' 행사에 참례한 신자들이 작은 연못 위에 촛불을 띄우며 기원을 되새겼다.
▲ 연못에 촛불 띄우기 성거산성지 '성모의 밤' 행사에 참례한 신자들이 작은 연못 위에 촛불을 띄우며 기원을 되새겼다.
ⓒ 구갑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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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의 훈향을 만끽하는 가운데 우리나라 특유의 '5월의 슬픔'도 체감하면서 나는 새로운 마음으로 성모님과 수많은 형제자매들 앞에서 '성모의 밤' 헌시를 낭송할 수 있었습니다. 어언 60대 후반 세월을 살고 있는 내게도 이런 기회를 베풀어주시는 하느님께 감사하며….

지난 23일 저녁에 내가 처음으로 천안 성거산성지 '성모의 밤' 행사에서 낭송했던 헌시를 소개하며, '신록의 계절'이자 '계절의 여왕'이라고 일컬어지는 '5월' 안에 역사로 존재하는 우리의 '오월의 슬픔'들도 다시 한 번 반추해 봅니다.

아울러 오늘(25일) 부처님 오신 날을 경축하며….

성거산성지 '성모의 밤' 행사에 참례한 신자들이 연못 위에 띄운 촛불들이 바람결에 따라 옹기종기 모여 있다.
▲ 연못의 촛불들 성거산성지 '성모의 밤' 행사에 참례한 신자들이 연못 위에 띄운 촛불들이 바람결에 따라 옹기종기 모여 있다.
ⓒ 구갑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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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하게 하소서

하늘의 모후이신 어머니!
다시금 새로운 푸르름이 
온 산야에 눈부시게 빛나는
신록의 계절 5월입니다

옛날에는 배고픔이 심했던
보릿고개 어름이었지만
이제는 풍성함만이 가득한 시절입니다

풍요로움 속에 만발해 있는
갖가지 꽃들이 내뿜는 향기 속에서
돌연 정신이 혼미해지기도 합니다

그 혼미함 때문에,
어머니를 둘러싸고 있는
화려하고 풍성한 꽃 장식 때문에
주변의 어두운 그림자를 보지 못하거나
잊지 말아야 할 것들을 망각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미사를 지내는 순간에도
미사가 2천 년 전 예수 그리스도님의 수난과 고통
십자가상의 참혹한 죽음을 기억하고 재현하는 것임을 망각한 채
현실적인 이익만을 생각하며 기도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어머니께 찬미의 꽃다발을 드리고
묵주기도를 바치는 순간에도
어머니께서 저 골고타 언덕의 십자가 아래에서
처절하게 오열하셨던 모습을
전혀 기억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삼종기도와 묵주기도 속에서
늘 저희와 만나고 대화하며 함께 걸으시는 어머니
저희로 하여금 망각의 덫에 걸려들지 않도록
저희의 손을 꼭 잡아주소서

일찍이 가톨릭교회가 5월을 '성모성월'로 제정함으로써
세계의 수많은 나라들이
5월을 '가정의 달'로 정하고
어린이날, 어버이날, 스승의 날, 청소년의 날, 부부의 날을
박아놓고 기념하지만
우리 대한민국의 5월 안에는
역사를 더럽히며 피로 물들인 날들도 있음을
저희가 망각하지 않게 하소서
5월의 피와 눈물로 우리나라의 민주주의가 자라고 있음을
저희가 다시금 깨닫게 하소서  

골고타의 눈물을 오늘도 저희에게 보여주시는 어머니
1980년 5월 18일 이후로
또 2014년 4월 16일 이후로
이 땅의 수많은 어미와 아비들이 흘리고 있는 눈물을
위로하시며 함께 눈물을 흘리시는 어머니

성모 마리아님을 어머니로 부르는 저희로 하여금
골고타 언덕의 십자가 아래에서
오열하며 흘리셨던 어머니의 눈물을
오늘 새롭게 기억하게 하소서

미사성제 안에서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을
반복적으로 기억하고 기념하는 사람들만이라도
기억을 부정하지 않게 하소서
기억함으로 기도하고,
기도함으로 행동하며
정의와 민주, 평화의 참된 의미와 가치를,
공동선의 열매를
뜨겁게 추구하며 살게 하소서

최초 한국인 사제이신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께서
저 황해바다의 거친 풍랑 속에서
이 나라를 성모님께 봉헌하신 이후
이 나라의 그리스도인들은 세계 어느 나라보다도
어머니와 친밀한 관계를 유지해오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저희는
어머니의 모습도 더 많이 보고
어머니의 눈물도 더 많이 기억합니다
오늘 더 많이 기억하게 하소서
망각과 매몰을 물리치는 기억의 힘으로
예수님의 희생과 사랑을 새롭게 되새기며
믿는 자의 범위를 벗어나 따르는 자들이 되게 하시고
그리하여 믿음의 자녀인 저희로 하여금
역사 창조의 원동력이 되게 하소서

2015년 5월 23일 저녁
하늘의 안녕을 기원하는 천안 땅 성거산성지에 모인
선남선녀들이 어머니께 간절히 청원합니다.
아멘!

(2015년 5월 23일 저녁 천안 성거산성지 '성모의 밤' 행사에서 낭송)

성당이 아닌 깊은 산속 성지에서 거행된 '성모의 밤' 행사에 참석하여 헌시 낭송을 하기는 처음이었다.
▲ 시낭송 성당이 아닌 깊은 산속 성지에서 거행된 '성모의 밤' 행사에 참석하여 헌시 낭송을 하기는 처음이었다.
ⓒ 구갑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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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성모의 달, #성모의 밤 , #성거산성지, #오월의 슬름, #성모 헌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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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남 태안 출생. 1982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중편「추상의 늪」이, <소설문학>지 신인상에 단편 「정려문」이 당선되어 문단에 나옴. 지금까지 120여 편의 중.단편소설을 발표했고, 주요 작품집으로 장편 『신화 잠들다』,『인간의 늪』,『회색정글』, 『검은 미로의 하얀 날개』(전3권), 『죄와 사랑』, 『향수』가 있고, 2012년 목적시집 『불씨』를 펴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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